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 아파도 힘껏 살아가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주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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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조증을 호소하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말할 거다. 의사를 찾아가라. 술을 마시지 말아라. 사람과의 접촉면을 줄여라. 잘 안되겠지만 혼자서 빈둥대라. 울증 환자에겐 이런 조언을 할 거다. 의사를 찾아가라. 아깝더라도 업무량을 줄여라. 산책하라. 스스로 먹을 음식을 천천히 준비하라. 조증이든 울증이든 핵심은 이거다. 괴로우면 의사를 찾아가라. (150쪽)



조울병. 병명은 많이 들어봤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증상이 있는지는 잘 몰랐다.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병이라고 하니 조울병 환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짐작도 했다. 그러다 얼마 전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듣고 한겨레 신문사의 이주현 기자님이 오랫동안 조울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주현 기자님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후 한겨레신문사에 취직해 24년째 기자로 일하고 있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다. 이렇게 똑똑하고 사회생활도 잘 하고 있는 사람이 조울병이라니. 내 머릿속에 있던 조울병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내 주변 사람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도 조울병이 있거나 조울병의 기미가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주현 기자님의 책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가 처음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시절의 일화로 시작해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 청년기,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처음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만 해도 저자는 조울병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말라리아에 감염된 걸 조울병으로 착각하고 있다며 가족에게 분노하고 의료진에게 항의했다. 퇴원할 즈음에야 비로소 자신이 조울병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때는 조증에서 벗어나 울증으로 진입할 즈음이었다. 

조울병은 이름 그대로 조증과 울증이 공존하는 병이다. 조증일 때는 감정이 고양되고 폭발할 듯한 에너지가 나온다. 저자는 조증의 추진력에 힘입어 회사 옥상 빈터에 정원을 만들고, 한밤중에도 새벽에도 사무실에 출근했다. 남들은 열심히 산다고, 일을 잘한다고 칭찬했지만, 사실 저자는 조증의 사막을 건너고 있었을 뿐이다. 조증일 때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홀딱 반하기도 잘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욕이나 비난도 잘한다. 조증의 파고가 높을수록 울증일 때의 여파가 심하고 또 길게 간다. 

조울증은 증상과 패턴에 따라 제1형, 제2형, 급속순환형, 순환기분장애 등으로 나뉜다. 저자는 제1형 양극성장애에 속하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약 1퍼센트의 유병률을 보인다. 원인은 주로 사회문화적 영향보다는 생물학적인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전자가 있어도 '트리거(trigger)'로 작용하는 사건이나 요인은 사람마다 다르다. 저자는 어린 시절 가정에서 받은 상처, 입시 경쟁과 학업 스트레스, 첫사랑의 죽음과 이로 인한 죄책감 등이 조울병을 가속화한 원인이 아닐까 추측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작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 생각이 많이 났다. 그 친구도 저자 못지않게 추진력이 강하고 남들보다 서너 배는 열심히 사는 친구였다. 죽기 전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말을 친구 어머니로부터 얼핏 들었는데, 어쩌면 그 친구가 조울병을 앓지 않았나 싶다. 열심히 사는 것도 병의 증상일 수 있다니 무섭고, 그런 병이 있다는 걸 미리 알고 도와주지 못해서 친구한테 미안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 친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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