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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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 선생을 처음 알았을 때 받은 충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서경식 선생은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재일조선인 1세인 부모가 현해탄을 건넜을 때 한반도는 분단 이전이었으므로 그들은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조선인들의 자식이므로 일본인이 아니었고 한국인도 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여겼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없어진 나라, 추억할 거리도 없는 나라를 조국으로 삼게 된 것이다. 살아본 적도 없는 나라를 조국으로 삼게 된 서경식 선생의 처지도 기구하지만, 살았던 기억이 생생한 나라로부터 쫓기듯이 떠나야 했고 끝내 그 나라가 없어져서 영영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의 처지는 또 얼마나 기구한가. 사샤 스타니시치의 장편소설 <출신>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사샤 스타니시치는 1978년 지금은 없어진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의 소도시 비셰그라드에서 태어났다. 1991년에 발발한 전쟁의 여파로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하는 나라들이 차례로 분리 독립하면서 민족 간, 종교 간 갈등이 폭발했다. 그로 인해 스타니시치의 가족은 안락한 집과 안정된 직장을 모두 버리고 나라 밖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우여곡절 끝에 독일에 정착했다. 열네 살의 그가 독일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그와 그의 가족은 독일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다행히 그는 난민 자격을 얻어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순조롭게 학업을 마친 후 작가로서 데뷔까지 했다. 현재는 독일 함부르크에 살면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얻고 작가로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고 있지만, 때때로 그는 다른 독일인들이라면 겪지 않을 크고 작은 곤란을 겪는다. 그는 독일에 살지만 독일인이 아니고, 유고슬라비아인을 자처하지만 유고슬라비아는 지도상에서 사라졌고 기억하는 사람도 점점 드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태어난 나라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나라가 존재할 때만 해도 나는 내가 유고슬라비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르비아 출신인 아버지와 보스니아-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어머니처럼 말이다. (19쪽)


소설은 '나'가 2008년 3월, 독일 국적을 획득하기 위해 외국인청에 제출할 자필 이력서를 작성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필 이력서를 앞에 두고 그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1978년 3월 7일, 세르비아 출신인 아버지와 보스니아-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런 쓸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력을 보충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생애를 증명할 만한 과거의 일화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그가 태어난 마을 사람들은 전설에 나오는 용을 숭배했다, 할아버지는 친구들과의 모임에 손주인 자신을 데려가기를 좋아했다, 할머니의 입속에서 금니가 번쩍번쩍 빛나는 게 부러워서 일부러 이를 노랗게 칠한 적이 있다 등등. 이런 일화들은 그가 주변 어른들로부터 얼마나 다정한 보살핌을 받았는지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하지만, 독일 국적을 취득하기에 마땅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관청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원하는 건 그의 국적과 태어난 도시 이름뿐인데, 그가 태어난 나라는 없어진 지 오래이고 태어난 도시는 그가 가본 적 없는 나라에 속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관청의 공무원들이 알아줄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친할머니를 모시고 그의 집안사람들이 묻힌 묘지가 있는 오스코루샤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친척 노인으로부터 조상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처음에 그는 "이곳, 넌 이곳에서 왔다."라고 말하는 친척 노인에게 적의에 가까운 반발감을 느낀다. 평생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당신이, 열네 살 때 낯선 나라에 가서 낯선 언어를 배우고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에 적응해야 했던 나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고 항변하고 싶어진다. 황당해 하는 그에게 친척 노인은 그동안 그가 알지 못했던 증조부모의 생애를 들려준다. 그로서는 늙고 병들고 약해진 모습밖에 모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릴 때는 얼마나 건강하고 생명력이 가득했는지도 알게 된다. 친척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는 오스코루샤가 그의 출신이라는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나는 '늘 그렇듯 역시나 출신이군' 하고 생각하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문제군요! 어디서 왔냐는 말이 암시하는 바가 뭔지부터 정확히 따져봐야 해요. 분만실이 위치한 언덕의 지리적인 위치를 암시하는지, 마지막 진통이 시작되는 순간에 머물고 있는 나라의 국경을 암시하는지? 부모님 혈통인지? 유전자, 조상, 방언인지?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출신이 창조물이라는 건 변함이 없어요. 한번 입으면 영원히 입고 있어야 하는 옷 같은 거죠. 그건 저주예요!" (44쪽)


그의 부모의 삶에 관해서도 생각해본다. 그의 부모는 고향에서 엘리트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경영학을 전공한 아버지는 주중에는 벌이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주말에는 아들과 축구 경기 중계를 보는 걸 즐기는 괜찮은 가장이었다. 정치학자인 어머니는 형제자매 중 유일한 대학 졸업자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나라가 내내 평안했다면, 필경 그들은 전도 유망한 그들의 미래를 현실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소망과 달리 전쟁이 일어났고, 세르비아 출신인 아버지와 무슬림 집안 출신인 어머니는 집도 직장도 모두 버리고 도망치듯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품은 때도 있었다. 그때는 그들처럼 전쟁을 피해 나라를 떠나온 사람들과 쓰레기장 같은 숙소에서 함께 살아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절망한 표정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잘 곳으로 찾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등에 부상을 입기까지 했다.


한때 그는 이런 처지를 원망했다. 누구도 자신이 태어날 나라를 선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나라에 따라 개인의 위치가 결정되고 조국의 흥망성쇠에 따라 사람들이 자신을 취급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사실에 깊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자신의 기원을 추적하는 여행을 마친 후에는 생각이 조금 바뀐다. 그가 독일 국적을 얻어도 그가 태어난 나라는 독일이 아니라는 사실, 그의 모국어가 독일어가 아니라는 사실은 영영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의 희생 덕분에 그는 비교적 어릴 때 독일에 와서 학교에서 정식으로 독일어도 배우고 독일에 있는 대학교도 졸업하고 독일에서 작가로 성공하기까지 했다. 그의 조부모는 노동자 출신임에도 아들을 엘리트로 키워냈고, 그의 외조부모는 그의 어머니를 딸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대학에 보냈다. 이 모든 일은 오스코루샤에서 나고 자란 증조부가 어느 날 드리나 강에서 헤엄을 치다가(혹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때마침 빨래를 하러 나온 증조모를 만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거나 무관했을 일들이다. 그는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조상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로소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출신임을 깨닫는다.


이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건 때론 무거운 짐 같고, 때론 선물 같기도 하다. (86쪽)


우리를 이곳저곳으로 이끈 달콤 쌉쌀한 우연들이 곧 출신이다. 사람들과 아무 상관없는 소속감이 곧 출신이다. (89쪽)


나라가 아니라 소속감이야말로 출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사람이 소속감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2018년 8월 독일 켐니츠 시민 수천 명이 이민자, 난민을 포용적으로 받아들이는 독일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 이른바 '열린 사회'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 대표적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은 이민자들을 적대시하고 지금도 히틀러식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133쪽) 그들은 출신지나 피부색처럼 개인이 스스로 선택해 타고날 수 없는 요소가 배제나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는 안전과 평화를 찾아 독일에 왔지만 여전히 안전과 평화를 얻지는 못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아무리 독일이 그를 이방인 취급하고 그런 그가 돌아갈 고향이 없어도, 독일도 아니고 고향도 아닌 여러 곳에 그를 환영하고 기꺼이 잠자리를 내어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런 사람들과 나누는 소속감이 진정한 그의 고향이고 출신이다.


책을 덮으며 나라면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았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배척하고 차별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도 나를 잘 몰랐다고 고백하고 묵묵히 나의 과거와 조상들의 과거를 그러모을 수 있을까. 험한 얼굴로 나를 쫓아낼 구실을 찾는 사람들에게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으냐며 게임을 제안하는 위트를 발휘할 수 있을까. 나로 하여금 고향이고 출신이라고 느끼게끔 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나는 그들로부터 어느 정도로 충분한 소속감을 얻고 있을까. 어쩌면 몇 번의 단기 여행을 제외하고 태어난 나라에서 계속 살고 있는 나야말로 타향살이 중인 건 아닐까. 잃어본 적 없는 고향이 이따금 그리워지는 이유를 이 책에서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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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0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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