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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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1985년에 발표한 단편을 일러스트레이터 이우일의 그림으로 각색해 만든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 있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라면 그저 좋다'(=나)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오래된 작품을 새롭게 재해석한 이 책이 반가울 것이다.


이야기는 '양 사나이'가 크리스마스를 위한 음악을 작곡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에어컨을 사지 못할 만큼 가난한 양 사나이는 어떻게든 이 일을 해내서 돈을 받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악상이 떠오르지 않는 데다가, 세 들어 사는 집에선 주인 할머니의 성화로 피아노를 칠 수 없다. 크리스마스가 나흘 앞으로 다가오자 양 사나이는 약 박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양 사나이가 선물한 도넛 몇 개를 홀랑 먹어치운 양 박사는 양 사나이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양 사나이가 지금 저주에 걸려 있으며, 저주를 풀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오랫동안 읽어온 독자라면 이 작품 곳곳에 '하루키적인' 요소가 널려 있음을 간파했을 것이다. 일단 양 사나이가 그렇고, 도넛이 그렇고, 나중에 등장하는 구멍이 그렇고, 외딴 집이 그렇고, 쌍둥이가 그렇고... 주인공이 한바탕 꿈같은 일을 겪고 그로 인해 예전과 비교해 미세하게 다른 사람이 되는 결말도 지극히 '하루키적'이다. 이 작품을 읽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대단한 재미를 느꼈다, 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연말연시에 짬을 내 읽으면서 머리를 식히기에는 괜찮았고, 오랜만에 '하루키 월드'를 체험하니 즐거웠다.


그나저나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도넛이란 뭘까. 책 읽는 동안 도넛(&꽈배기) 먹고 싶어 죽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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