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이라면 발끈할 일을 어릴 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몇백 명이 넘는 전교생이 일렬로 줄을 맞춰 서서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들어야 했던 조회 시간이라든가,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이 잘못한 일을 두고 반 전체가 똑같은 벌을 받아야 했던 단체 기합이라든가, 머리카락 길이가 귀밑 3센티미터를 넘었느니, 색깔 있는 양말을 신었느니 같은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전교생 앞에서 벌을 받아야 했던 복장 검사 같은 일들. 몸이 좀 큰 후에는 수염이 성성한 남자 선생님들이 복장 검사를 한다며 여학생들의 블라우스나 치마 속을 들추는 일이라든가, 친하게 군답시고 여학생들의 어깨에 손을 두르거나 팔뚝을 주무르거나 목덜미를 만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요즘 학생들이라면 부당하고 불쾌한 일을 당했다고 SNS에 알렸겠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SNS는커녕 스마트폰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일을 당했다고 부모님이나 다른 선생님들에게 알린다 한들 내가 바라는 대로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네가 예민하게 구는 거라고, 네가 빌미를 제공한 거라고 더 혼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니 으레 그런 것이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어린 나에게 으레 그런 게 아니라고, 다들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의 주인공 '아일린'에게도 그런 어른이 필요했다. 1964년 미국 북동부 대서양 연안의 뉴잉글랜드 지역 어딘가에 스물네 살 여성 아일린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 어머니는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고, 하나뿐인 언니 조우니는 자기 삶을 살겠다고 집을 나간 지 오래다. 은퇴한 경찰인 아버지는 하루 종일 집에서 술을 퍼마시다가 아일린이 보이면 잔소리를 퍼붓는 것이 일과다. 마을에는 아일린의 집보다 부유하고 가족들끼리 화목하게 지내는 집도 많지만, 아일린의 집보다 가난하고 가족들끼리 원수처럼 지내는 집도 많다. 아일린이 그 사정을 잘 아는 건, 아일린 자신이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소년 교도소 '무어헤드'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일린은 자신보다 기껏해야 서너 살 어리거나 그보다 한참 어린 소년들이 아버지를 찔러 죽이거나 동생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명목으로 교도소에 끌려오는 모습을 매일같이 본다. 찰나의 충동으로 박살 나버린 소년들의 인생에 비하면 자신의 인생은 한참 낫다고 아일린은 짐짓 안도한다.


시내에서 본 기억이 있는 신입 경찰 - 그의 여동생에게 어떤 장애가 있었던 게 생각난다 - 이 간이 테이블에서 내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기회를 잡아 그 청년에게 농담을 했다. 조우니와 내가 '감옥 미끼(성관계를 하면 본인 등의 여부와 관계없이 강간죄가 성립되는 미성년자를 이르는 속어)'라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몇 년 동안이나 알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으며 지금도 원망스럽다. (98-99쪽)


아버지는 내 허벅지 위로 손을 뻗어 다리를 쓰다듬더니 무릎 사이에 아무렇게나 팔꿈치를 넣어 지탱하며 창문을 올려 닫았다. 나는 그냥 침착하게 앞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내 편안함이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발육이 막 시작되었을 때, 아버지는 밤에 어머니와 식탁에 앉아 술을 마시다 이따금 나를 불러 얼마나 자랐는지 본다며 꼬집고 재고 했다. (266-267쪽)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어쩌면 지금은 비록 교도소에 수감되었지만 형기라도 있는 소년들의 처지가, 아버지의 집에 매여 형기도 없이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는 자신의 처지보다 더 나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일린의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계기는 대체로 아버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한 딸에게 다시 밖에 나가서 술을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는 아버지. 자동차 창문을 닫는다는 핑계로 다 큰 딸자식의 허벅지를 만지는 아버지. 성인인 딸이 평소보다 좀 늦게 귀가했다는 이유로 목을 조르며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아버지. 아일린이 집 밖에서 아버지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을 만났다면 언니처럼 집을 떠날 수도 있었겠지만, 불행하게도 당시 아일린의 주변에는 아버지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교도소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멍청하고 게을렀고, 이웃들은 아일린의 처지를 알면서도 모르는 체할 만큼 인정머리가 없었다. 잠시 동거했던 남자는 아일린이 '작은 젖통' 때문에 아버지를 실망시켜 내 기분이 나쁜 거라고 했다. "여자애들은 모두 아빠가 찌찌를 만져주길 바라지." (267쪽) 지금은 그 남자가 구제할 길 없는 '멍청한 새끼'란 걸 알지만, 그때는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현실 감각과 판단력이 부족했다. 아버지 그리고 여러 남자들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너는 못났어, 너는 멍청해, 너는 평생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 같은 말들이 아일린의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린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나는 못나지 않았다고, 멍청하지 않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고 틈날 때마다 상기한다. 그 누구도 아일린에게 학력을 물은 적 없지만, 아일린은 자신이 한때는 대학에 다녔고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할 수 없이 자퇴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공립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우편 구독하고, 자신을 깎아내리고 무시하는 교도소 직원들과 웬만해선 말을 섞지 않는 것은 그 노력의 일환이다. 애인이 없는 외로움은 교도소 직원 랜디와 연애하는 망상으로 해소하고, 친구가 없는 고독함은 혼자서 영화 보러 가는 걸로 채운다. 때로는 그걸로도 외로움과 고독함이 사라지지 않아서 이대로 죽고 싶다,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너희와 달라, 나는 원래 이런 모습이 아니야 같은 생각이 아일린을 붙든다. 영영 타락하지 않도록. 영영 스러지지 않도록.


"고마워요, 아일린." 그녀가 나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있죠, 자길 보면 어떤 네덜란드 그림이 생각나요." 그러면서 내 눈을 응시했다. "참 이상한 얼굴이야. 흔하지 않고. 평범하지만 매혹적이고. 안에 아름다운 난기류가 숨겨져 있어. 정말 좋아요. 분명히 눈부신 꿈이 있겠죠. 분명히 다른 세상을 꿈꿀 거야." ... (중략) ... 나는 아직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밤은 덜 여물었고,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마침내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219-220쪽)


마침내 아일린은 리베카를 만난다. 리베카가 교도소장의 뒤를 따라 처음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만 해도 아일린은 리베카에게 일말의 호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동안 살면서 만난 인간들이 죄다 실망스러웠던 까닭이다. 리베카 또한 며칠 전에 본 영화 속 여배우처럼 멍청하고 내면도 텅 빈, 아일린 자신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고 교류도 없을 인간이라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리베카가 하버드 대학원을 나왔고, 앞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소년들의 교육을 담당할 예정이며, 보면 볼수록 뛰어난 미모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갖추었다는 걸 알고 점점 태도를 바꾼다. 이윽고 리베카에게 푹 빠진 아일린은 리베카가 관심을 보이는 모든 것을 시기하고 리베카의 관심을 독점하려 애쓴다. 아일린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교도소에 들어온 레너드 포크라는 소년에게 리베카가 주의를 기울이자 자신도 레너드를 눈여겨보기 시작한다. 어쩌면 아일린 자신도 레너드 포크처럼 아버지를 죽이고 리베카의 관심을 받겠다고 이때부터 생각했는지 모른다. 어리고 멍청한 레너드 포크는 교도소에 갇혀 꼼짝없이 벌을 받는 신세가 되었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환상을 이때부터 품었는지 모른다.


아일린은 누구에게도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여자애였다. 고분고분한 딸이었고, 성실한 직원이었으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웃이었다. 하지만 레너드 포크가 부모에게 당한 일을 알게 된 순간, 미시즈 포크가 아들이 당하는 일을 뻔히 알면서도 부모 자식 간이란 으레 그런 것인 줄 알았다며 변명하는 것을 본 순간, 아일린은 모든 것을 버리고 당장이라도 떠나기로 결심한다. 지금 당장 떠나지 않으면 자신도 레너드와 같은 꼴을 당할 수도 있다고, 어쩌면 미시즈 포크처럼 자기 편하게 살겠다고 아들이야 어떻게 되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괴물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자신이 으레 그런 것인 줄 알았던 일들이 실은 규칙이니 관습이니 전통이니 하는 명목 아래 자행되는 모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행히 아일린의 작은 핸드백 안에는 평생 모은 예금과 아버지가 넘겨준 총이 들어 있다. 만약 그것들이 없었다면 아일린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영영 그 끔찍한 마을에 눌러 살았을까. 아니면 또 늦게 왔다고 아버지가 아일린의 목을 졸라 죽였을까.


당신은 맘대로 생각해도 된다. 내가 악랄하고 간교하다고. 이기적이고 망상이 심한 데다 너무 꼬이고 편집광적이어서, 죽음과 파괴에서만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해도 좋다. 내가 범죄자적 정신을 지녔다고, 타인의 고통을 통해서만 쾌락을 느낀다고, 어떻게 말해도 좋다. ... (중략) ... 그래, 당연히 나는 도망치고 싶었고, 리베카가 나와 함께 가준다면 더욱 그러고 싶었다. (346-347쪽)


여자라는 걸 제외하면 아일린과 나 사이의 공통점은 거의 없다. 출생연도도 다르고, 가정 환경도 다르고, 직업도 관심 분야도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린>을 읽는 동안 나는 마치 예전에 쓰다만 일기장을 오랜만에 꺼내 읽는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나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비아냥거렸던 말들. 내 몸에서 가슴이 튀어나오고 엉덩이의 곡선이 드러나자 나를 탐하고 욕망하던 눈길들. 나를 함부로 만지고 상처 입히고도 미안해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던 손길들. 그들은 나를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나는 그들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감정도 없고 욕망도 없는 투명인간 행세를 했다. 때로는 미친 듯이 악을 쓰고 싶다가도 여기를 벗어나면 밖은 더 끔찍한 지옥이라는 생각을 하며 분노를 억눌렀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은 채로, 그저 시간이 흘러 자연히 죽게 되기만을 기다렸다.


<아일린>을 읽는 내내 아일린이 이대로 죽지 않기를, 이 지긋지긋한 동네로부터 멀리멀리 떠나서 지금까지의 삶을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아일린>의 결말을 아는 지금 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리나>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고 싶다. 고향을 떠난 아일린은 낯선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을 리나라고 소개한다. 아일린은 리나로 살아가기를 결심하면서 하느님에게 이렇게 맹세한다. 이제 변하겠다고. 날마다 일기를 쓰고, 교회도 가고, 기도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남자들과 진지하게 만나겠다고 약속한다. 과연 그 맹세는 잘 지켜졌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착한 여자는 더 나빠질 뿐이다. 남들에게 나쁘거나, 아니면 그 자신에게 나쁘거나, 그 둘뿐이다. 나는 리나가 '착함'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더는 굴종하지 않는 삶을 살았기를 바란다. 누가 뭘 시켰는데 내키지 않으면 단호히 거절했기를 바란다. 여자가 살림도 제대로 안 하고 예쁘게 꾸미지도 않는다고 타박하면 뭐라도 보태준 것 있느냐고 따졌기를 바란다. 남자가 허벅지를 만지면 손목을 꺾어버리고 가슴을 더듬으면 가랑이 사이를 걷어찼기를 바란다.


나는 리나가 누가 으레 그런 거라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훈계하면 으레 그런 일이란 없다고, 다들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고 딱 잘라 말했기를 바란다. 끝까지 누구의 착한 딸도, 착한 아내도 되지 않은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기를 바란다. 참는 것이 착한 것이라고 믿는 어린 '아일린'들에게 참지 않아도 괜찮다고, 너 자신을 죽일 만큼 착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기를 바란다. 그런 리나의 이야기가 나는 더 궁금하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