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엔도 슈사쿠 지음, 송태욱 옮김 / 포이에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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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쓴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강연집이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이동진 작가가 이 책의 일부를 낭독한 걸 듣고 호기심이 동해 구입해 읽었다. 저자의 대표작 <침묵>을 비롯해 <사무라이>, <스캔들> 등의 창작 비화와 집필 의도, 같이 읽으면 좋을 책들을 설명하는 책인 만큼 저자의 작품(최소한 <침묵>만이라도)을 미리 읽고 나서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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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인생의 후미에[人生の踏繪]'이다. 후미에[踏繪]란 에도시대 그리스도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예수상이나 성모 마리아상을 동판에 새겨 나무판에 끼워 만든 것으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이를 밟으면 용서받지만, 밟지 않으면 곧바로 죽임을 당하거나 고문을 받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세례를 받은 저자는 성인이 된 후 그리스도교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져서 고민했는데, 그러던 중에 우연히 후미에를 만났고 깊은 상념에 빠졌다. ​ 


저자는 배교자의 발자국이 큼지막하게 남아 있는 후미에를 보면서 수많은 생각들을 떠올렸다. 동판을 밟으면 배교자로 낙인찍히고, 밟지 않으면 끔찍한 고문을 받거나 죽임을 당하는 가혹한 상황. 나라면 저 동판을 밟고 목숨을 구할까, 아니면 동판을 밟지 않고 믿음을 지킬까. 성경 말씀대로 신이 너그럽고 자비롭다면 내가 저 동판을 밟고 목숨을 구한다 해도 개의치 않고 용서해줄 것이다. 하지만 신이 진정으로 너그럽다면 애초에 나로 하여금 저 동판을 밟을지 말지 고민하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지 않았을까. 저자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올랐고, 결국 저자는 이 모든 의문의 최종 해답이라고 할 수 있는 <침묵>을 집필하기에 이르렀다. ​


이 책은 저자가 <침묵>, <사무라이>, <스캔들>을 집필하게 된 동기와 창작 비화를 설명하고, 저자가 읽은 그리스도교 문학 작품들 -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스케루>, 그레이엄 그린의 <사건의 핵심>, 쥘리앵 그린의 <모이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등 - 을 깊이 있게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제는 쉽지 않지만 강연록에 기반한 책인 만큼 문장은 어렵지 않고 유머 또한 녹아 있다. 그리스도교 문학 입문서로도 볼 수 있지만, 그리스도교에 국한하지 않고 인간과 종교, 선과 악, 죄와 벌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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