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
박연준 지음 / 북노마드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항상 명랑한 줄로만 알았던 사람의 어두운 맨얼굴을 봤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 이제까지 나는 박연준 시인에 대해 밝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에서 남편인 장석주 시인과 시드니에서 대판 싸우고 와인 먹고 쓰러져 토한 이야기도 그렇고,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에서 글 쓰려고 토지 문학관까지 내려갔다가 쓰라는 글은 안 쓰고 읍내에서 예쁜 플랫 슈즈나 샀다는 이야기도 그렇고, 어쩌면 그렇게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친한 언니 입에서 흘러나오는 수다 같은지,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유쾌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었다. 


박연준 시인이 2014년에 발표한 첫 산문집 <소란>을 읽은 지금은 저자에 대한 인상이 퍽 다르다. 길게 늘여 쓴 시 같은 산문을 통해, 저자는 생모 슬하에서 자라지 못한 어린 시절과 가난한 뮤지션이었던 아버지의 오랜 투병 생활과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고통을 슬며시 고백한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유년기와 청년기를 살아내면서 저자는 대체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스스로 '소란'하다고 일컬을 만큼,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시절에 느낀 감정을 단정하고 예리한 단어들로 벼려서 사람들 앞에 선보이기까지 대체 얼마나 외로운 투쟁을 해왔을까. 


그동안 여러 권의 산문집을 읽으며 박연준 시인의 단편적인 모습만 봐왔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시집을 읽으며 박연준 시인의 내밀한 감정들과 치열한 사유를 들여다봐야겠다(요즘 들어 박연준 시인, 김소연 시인, 오은 시인 등 시인들에게 부쩍 관심이 간다). 어지러운 마음의 풍경들을 간결한 언어로 정제해 표현하는 솜씨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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