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구슬
엘리자 수아 뒤사팽 지음, 이상해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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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구슬>은 올해로 26세인 한국계 프랑스 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이 발표한 두 번째 소설이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파리와 서울, 스위스의 포렌트루이를 오가며 자랐다. 저자는 책 앞쪽에 실린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에 5년 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경험을 썼다. 저자는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중적인 유배' 상태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과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스위스에서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결코 다르지 않아 보였다고 적었다. 


그리하여 쓰게 되었다는 이 소설 <파친코 구슬>은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읽힐 만큼 저자 자신의 생애와 생각이 많이 반영된 듯 보인다. 소설의 주인공 클레르는 어머니가 한국인인 스위스 여성이다. 클레르의 외조부모는 한국 전쟁 당시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이주해 도쿄 닛포리에서 작은 파친코를 운영하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방학을 맞아 일본으로 온 클레르는 외조부모와 셋이서 한국으로 떠날 여행 계획을 짜는 한편, 오가와 부인의 열 살짜리 딸 미에코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클레르를 '언니'라고 부를 만큼 잘 따르는 미에코는 클레르의 외조부모가 파친코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그곳에 가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오가와 부인은 영 내키지 않는 내색이다. 


이는 일본에서 파친코가 단순한 오락 시설 이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파친코가 나름의 은행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지하경제를 움직이며, 주요 정당들에 검은 돈을 댄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본에 거주하고 세금도 납부하지만 일본 국민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지도 못하는 재일조선인들은, 생계를 위해 파친코를 비롯한 각종 산업에 뛰어들었고 그중엔 크게 성공한 부자들도 있지만, 클레르의 외조부모는 작은 가게를 겨우 꾸리는 영세 업자에 불과하다. 


클레어는 한국인임에도 한국에서 살지 못하고, 일본에서 오래 살았으나 일본인이 되지 못하는 외조부모를 보며 답답함과 동시에 연민을 느낀다. 집안에선 절대로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익숙지 않은 전철을 타고 한국 식재료를 파는 가게에 가는 것을 불사할 만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깊으면서도, 정작 클레어가 다 같이 한국으로 여행을 가자고 하자 내켜 하지 않는 이들의 마음은 대체 어떤 상태일까. 양쪽 모두 한국인인 부모에게 태어나 한국에서만 살아온 내게는 쉽게 와닿지 않는, 그래서 더 알고 싶은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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