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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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무료 이북으로 만나게 된 책이다. 다 읽고 나서 인터넷 서평을 살펴보니 의외로 부정적인 평이 많아서 놀랐다. 무료로 읽어서 그런가. 나로서는 이 소설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제시 버튼의 다른 소설을 전부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는데.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건 당연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긍정적인 평이 압도적으로 적을까. 그래서 내가 하나 보탠다. 


때는 1686년. 가난한 집안의 맏딸인 넬라 오트만은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성공한 상인 요하네스 브란트에게 시집을 간다. 여자는 그저 좋은 남편 만나서 편안한 가정을 꾸리는 게 최고라고 믿는 넬라의 어머니는 넬라가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좋은 남편을, 그것도 막대한 부를 축적한 남편을 만났다는 사실에 흡족해한다. 넬라 역시 하루빨리 요하네스와 가까워져서 귀여운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넬라의 기대와 달리, 요하네스의 여동생과 하인들은 넬라를 차갑게 대한다. 남편인 요하네스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집을 자주 비운다. 이제 고작 열여덟 살인 넬라는 앞으로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하네스가 결혼 선물이라며 미니어처 하우스를 선물한다. 집과 집안 식구들을 그대로 축소한 듯한 미니어처 하우스를 보고, 넬라는 놀라는 척했지만 실은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더 크다. 아니나 다를까, 넬라의 주변에서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때마다 마치 예언이라도 하는 듯 미니어처 하우스에도 변화가 생긴다. 넬라는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의지할 수 없는 낯선 도시에서 미니어처 하우스만이 자신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고 믿고, 미니어처 하우스를 만든 미니어처리스트를 만나려고 한다. 하지만 넬라가 미니어처리스트라고 짐작하는 여인은 넬라가 손을 뻗어 잡으려 할 때마다 사라진다. 


이 소설은 언뜻 보면 어린 신부 넬라가 돈 많은 남편을 따라 낯선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겪는 일을 그린, 할리퀸 로맨스 풍의 미스터리 소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찬찬히 읽어 보면 성차별, 인종 차별, 계급 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에 기반한 사고방식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넬라가 남편 요하네스, 시누이 마린, 흑인 남자 하인 오토, 고아 출신의 여자 하인 코넬리아와 한 집에서 생활하면서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자기 안의 오해와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작가는 미니어처 하우스라는 설정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예언이나 미신, 관습이나 통념 같은 것에 매달리는지를 고발한다. 넬라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미니어처리스트의 예언을 듣는 데에만 급급하다. 한 지붕 아래 사는 식구인 요하네스와 마린, 오토, 코넬리아에 대해서도 직접 물어보지 않고 남들이 들려주는 말이나 소문에 의지해 판단한다. 만약 넬라가 요하네스와 마린, 오토, 코넬리아와 더 일찍,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눴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소중한 건 왜 항상 잃고 나서 그 가치를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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