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말의 희망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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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슬픔에 새로운 눈물을 낭비하지 말라.' 영화 <신과 함께>에 처음 나온 대사인 줄 알았는데 그리스 3대 비극 시인 중 한 사람인 에우리피데스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영국 작가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대표작 <패트릭 멜로즈 5부작> 제3권 <일말의 희망>은 유년 시절 친아버지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약물 중독에 시달린 패트릭 멜로즈가 서른 살이 되어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모습을 그린다. 10대와 20대를 약물에 의존하는 상태로 보낸 패트릭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약물 중독 치료를 받고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와 무책임하게 방치했던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완전히 잊을 순 없었는데, 그러던 차에 패트릭을 기억하는 영국 상류층 사람들로부터 한 파티에 초대받게 되고, 패트릭은 이 파티에 갈지 말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패트릭의 마음은 산산이 부서진다. 그들은 패트릭의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하지만, 패트릭이 아는 아버지는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친자식에게 고함을 지르고 폭력을 휘둘렀던 사람, 성적인 학대를 가하고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 패트릭은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진실을 까발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끝내 그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일부러 망치고 싶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어쩌면 자신에게도 남아 있을지 모르는 - 아니,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한 - 아버지의 흔적들을 굳이 들춰서 그들이 보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파티에 참석한 패트릭은 예나 지금이나 위선적이고 모순적인 영국 상류층 사람들의 모습을 목도하고 좌절하는 한편 안심한다. 불과 이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패트릭은 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벌벌 떠는 가엾고 힘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아버지는 죽어서 세상에 없고 패트릭은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어른들의 파티에 끼지 못해 울적해 하는 어린아이를 달랠 수도 있고, 입만 열면 쓰레기 같은 말을 내뱉는 어른들을 조롱할 수도 있다. 패트릭의 가족과 유년 시절을 망친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이지만, 그 이후의 삶을 통제하는 것은 전적으로 패트릭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패트릭 멜로즈 5부작>은 작가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20년에 걸쳐 집필되고 발표되었다. 3권에 이르러서야 '일말의 희망'을 발견한 패트릭이 이후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몹시 궁금하다. <셜록>, <닥터 스트레인지> 등으로 유명한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패트릭 멜로즈>가 오는 금요일 8월 24일 캐치온에서 국내 최초 독점 방송될 예정이다. 원작 소설의 씁쓸한 분위기를 어떻게 드라마로 표현했을지 궁금하다. 이번 주 금요일에 꼭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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