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칼이 되어줘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김진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할 수만 있다면 내 이름이 적힌 연애편지를 모두 찾아내 태워버리고 싶다. 사랑에 혹해서, 감정에 취해서, 훗날 그 사랑이 무너지고 감정이 사라질 걸 몰라서, 혹은 알면서도 믿고 싶지 않아서 남겼던 사랑의 흔적들을 모두 불태워 없애버리고 싶다. 그래서일까. 2017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이스라엘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의 소설 <나의 칼이 되어줘>를 읽는 내내 명치 언저리가 간질간질했다. 부끄러워서. 아니, 어쩌면 부러워서. 


이 작품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동창회에서 단 한 번 스쳤을 뿐인 미리엄에게 연모의 정을 품은 야이르가 거의 매일 미리엄에게 보낸 편지로, 제2부는 미리엄의 일기로, 제3부는 마침내 마주한 두 사람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야이르의 편지는 달콤함을 넘어 화끈하고 격정적이다. "지금 당장 옷을 벗고 껍데기와 모든 것을 떨쳐내고 당신 앞에 벌거숭이로 서서 자기 영혼의 새하얀 알맹이를 드러내고 싶어 해요.", "갑자기 나를 더 세게 끌어당겨 당신의 온 영혼과 온 마음으로 내게 입맞춤을 해주세요." 같은 문장들을 읽고 있노라면 작가는 대체 어떤 사랑을 하고 있기에 - 혹은 해봤기에 - 야이르의 입을 빌려 이 같은 사랑 고백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르의 편지가 격정적이라면 미리엄의 일기는 조심스럽고 차분한 편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라도 (상대는 내 얼굴을 알지만 나는)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다짜고짜 내가 좋다며 열렬한 구애의 편지를 보내온다면 겁부터 먹을 것 같다. 다행히 야이르의 편지는 단순한 연애편지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잠식하는 권태와 허무, 외로움과 괴로움을 고백하는, 일종의 구조 요청서다. 미리엄은 야이르와 자신이 비슷한 상태인 걸 깨닫고 야이르에게 답장을 보내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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