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기 - 우석훈의 국가발 사기 감시 프로젝트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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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자칭했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의 부정과 비리를 가리켜 개인의 사리사욕으로 야기된 일탈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청와대를 비롯한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와 사법부, 기업과 언론까지 그의 비리와 부정에 가담한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의 사기는 국가의 사기요, 그의 죄는 국가의 죄다. 


"국가가 하는 일은 크다. 그러나 크다고 해서 늘 우수한 것은 아니고, 또 언제나 안전한 것도 아니다." <88만 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이 이번에는 <국가의 사기>를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광고, 주식, 다단계, 은행, 신용 등이 어떻게 작동하여 서민의 삶을 황폐화하는지, 모피아, 토건족, 원전 마피아, 박사들의 클랜 등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 국가 실패를 야기하는지, 자원외교, 4대강, 분양권, 버스 준공영제 등이 어떤 방식으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관련자들의 배를 불렸는지 설명한다. 


충격적인 이야기가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신용 계급사회에 관한 이야기다. "만약 내가 재테크 책을 쓰는 입장이라면, 독자 여러분의 자녀에게 무조건 열 살까지 2천만 원짜리 통장을 만들어주시라고 권유했을 것이다." 한국의 법률은 부모가 자식에게 10년간 2천만 원을 주는 것까지는 증여세 면제한도에 들어간다. 성년이 되면 면제한도가 5천만 원으로 높아진다. 부모가 열 살까지 2천만 원, 스무 살까지 2천만 원, 성년 이후에 5천만 원을 준 경우, 그의 자식은 성년이 되었을 때 9천만 원이 들어있는 계좌뿐 아니라 그만큼의 '신용 등급'도 가지게 된다. 


좋은 신용등급을 물려받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경우, 적당히 취직해 월급 받다 보면 금방 1등급에 도달한다. 반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용등급이 없는 경우, 반월세 보증금도 대출받기 힘들고 휴대폰 요금 몇 번만 연체해도 신용등급이 뚝뚝 떨어진다. 일부 정치인이 사회적 논란을 감수하면서 어린 자녀에게 재산의 일부를 일찍부터 물려주는 것은 그래서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신용 계급사회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는 한편 자식에게 좋은 신용등급을 물려준다. 그들의 자식은 좋은 신용등급을 가지고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더 좋은 혜택을 누린다. 그렇게 격차가 벌어지고 계급 사회는 더욱 공고해진다. 


"사기 치지 않는 나라 만들기, 그 마지막 퍼즐이 전문가의 비밀주의를 완화시키는 제도적 장치들이다." 사기가 횡행할 수 있는 건 사기를 알고도 눈 감는 사람들과 사기를 모르고 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난 두 정권 동안 국가 규모의 사기가 횡행한 것은 사기를 알아채고 알려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 즉 학자와 전문가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들이 정부나 기업과 결탁하지 말고 학자로서의 양심,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진실을 말하길 당부한다. 그래야 정부든 기업이든 힘 있는 사람들이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 두려워 투명하고 정직한 행동을 한다. 


나는 여기에 시민으로서의 양심을 추가하고 싶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건 최순실 소유 건물의 경비원이 건물 창고를 기자에게 열어준 덕분이다. 그 덕분에 창고에서 문제의 태블릿PC가 발견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진실을 알게 되었고 새 정부를 얻었다. 만약 그 경비원이 일신의 안위나 생계에 대한 걱정 때문에 대의를 저버렸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후 공익 제보자의 고발이 줄을 잇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진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여전히 입다물고 있는 이들은 어쩌면 좋을까. 우리가 여전히 모르거나 알면서도 속고 있는 사기는 무엇일까. 계속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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