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사&일리카의 『라 보엠』을 끝으로 올 한해 독서를 마무리한다. 무척 추운 날씨에 적합한 것 같기도 하고, 독서 권수를 늘리려는 꼼수이기도 하다.


올해 독서는 권수로 53권으로(망가 제외) 아마도 내 생애 가장 많이 읽은 한해가 아니었나 싶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기도 했고, 책장을 읽을 책들로만 채우고 싶은 욕망이 강했던 것 같다. 


2021년 독서의 특징을 몇 가지만 꼽자면, 


첫째, 지리(지정학), 에너지, 과학, 미술, 경제학 등 분야를 넓히려 애를 좀 썼다. 다만, 지난해 열심히 읽었던 음악 관련서적은 없었던 점은 아쉽다.




둘째, 불문학이 돌아왔다. 도스또예프스끼 탄생 200주년이어서 연말에 『까라마조프 형제들』과 『백치』 두 권을 읽기는 했지만, 동시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불문학에도 푹 빠져버렸다. 리디셀렉트에 업로드된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을 줄기차게 읽었고, 에밀 졸라도 다시 집어 들었다.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셋째, 2021년 출간작이 꽤 되었다. 곤조가 있어 그간 시간을 견뎌낸, 검증된 책들만 선택했는데, 올해에는 신작을 읽고 싶어져 번역되는 고전문학도 올해 출간된 것 위주로 많이 읽으려 했다.  


넷째, 올해 산 책들은 거의 읽었다. 두 권은 읽다 포기하고 되팔고, 세 권을 못 읽고 꽂아 두었는데, 남은 것 중 완독/구입 비율이 역대 최고가 아닐까 한다. 이제는 읽어도 머릿 속에 오래 안 남기 때문에 깨끗이 읽는 것보다는 밑줄 쳐가면 읽고, 안 팔려 한다.


2022년 독서 목표.

여러 개가 있겠지만 최우선은 적폐청산이다. 종이책-전자책 할 것 없이 안 읽은 책이 상당한데, 안 읽으면 (희귀본이라도 피눈물을 머금고) 팔거나 읽어 없애려 한다. 20년 넘은 책도 있다. 2022년을 '내 책장은 오직 읽은 책들만' 운동의 원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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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샘 세트 - 전2권 - 석유가 탄생시킨 부와 권력 그리고 분쟁의 세계사, 최신증보판 황금의 샘
대니얼 예긴 지음, 김태유.허은녕 옮김 / 라의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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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검심』 최대의 적은 시시오 마코토이다. 그의 대련장은 불기둥이 늘어서 있고, 거기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 켄신 일행은 '취수' 냄새라고 하지만, 시시오는 그것이 '석유'라고 정정해 주고, 그것을 이용해 세계를 제패할 것이라고 호언한다. 


만화의 배경은 1878년 경으로, 드레이크 대령이 석유를 퍼올린 지 20년 정도, 록펠러가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한 지 1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인데, 석유를 통해 세계를 제패한다는 생각이 과연 있었을까 싶다. 그러나 일본은 항상 석유 등 에너지 자원 수급이 국가적 과제였고, 이 만화가 연재되기 시작한 1994년 무렵에는 걸프전쟁(제1차 이라크전쟁)이 종결되는 등 석유가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석유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이 장면은 역사적 사실에는 부합하지 않겠지만, 90년대 초중반 국제정세 속 드러난 작가의 바람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황금의 샘The Prize』는 드레이크 대령의 최초의 석유 시추부터 걸프전까지를 다루고 있다. 개정증보판은 그 이후부터 2013년 경까지 이야기를 에필로그에서 살짝 언급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래서 석유를 넘어 신재생에너지 연구가 활발한 지금에는 시의상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세계 에너지 산업의 흐름을 알기 위한 필독서라 하겠다.  


작가가 책에 붙임 제목인 'The Prize'는 윈스턴 처칠의 회고록에서 가져왔다. 독일과의 함대 경쟁이 한창이던 1910년 경, 해군장관 처칠은 영국함대의 에너지원을 영국의 풍부하고 질좋지만 효율이 떨어지는 석탄에서, 외국에서 구해야만 하는 석유로 교체하면서 '패권은 모험에 대한 보상'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석유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패권'도, '보상'도 아닌 '모험'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석유를 찾아내려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여정을 다루고 있어서이다. 곧 그들의 개척정신, '아메리칸 드림'이 책의 진정한 주제일 것이다.


고등학교 지리부도를 옆에 두고 밑줄 그어가며 참 열심히도 읽었다.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두 권 1400쪽에 육박하는 벽돌인지라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그 한 달의 시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정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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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보엠 풍월당 오페라 총서
푸치니 (Giacomo Puccini) 작곡, 이기철 옮김, 주세페 자코사 외 대본, 김문 / 풍월당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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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이 참 좋다. 지금껏 읽었던 <라 보엠>의 해설 중 가장 좋다. 원작소설과 레온카발로의 오페라와도 비교 해주고 있다. 번역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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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 풍월당 오페라 총서
푸치니 (Giacomo Puccini) 작곡, 이기철 옮김, 주세페 자코사 외 대본, 김문 / 풍월당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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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 팬들에게는 선물과 같은 대본집. 너무 좋다. 해설부터 번역까지, 완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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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4
에밀 졸라 지음, 조성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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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휴... 간신히 끝냈다.


'루공-마까르'가 사람들을 안 불편하게 하는 건 없지만, 이 작품 『대지』는 (푸근함을 주는 제목과 다르게) 그 끝판왕을 보는 것 같다. 에밀 졸라의 등장인물들은 욕설, 간음, 폭력, 학대, 뒷다마는 기본으로 장착하지만, 여기에 이르러서는 존속살인과 근친상간을 패치한다. 광부들이 파업에서 폭동으로 번지는 과정을 그린 『제르미날』보다도, 그 선정성과 폭력성이 압도적으로 자극적이고 세세하다. 


작품은 한평생 땅을 일군 자린고비 노인이 자식 셋에게 재산을 양도하는 데서 시작한다. 노인의 누이는 경고한다. 재산을 나눠주면 자식들의 존경심도 함께 잃는다고. 『대지』는 그렇게 재산을 분할해 준 자식들로 인해 노인이 '서서히 죽어가는' 이야기가 기본 뼈대이다. 『목로주점』의 제르베즈(이 작품의 주인공 '장 루공'의 누이)가 서서히 굶어죽어가는 것처럼, 노인은 그렇게 고통 속에 죽어간다. 재산 분할로 인해 그의 일가가 피튀기는 싸움을 이어가는 것을 모두 지켜보면서 (이 작품에서만은 작가의 이름을 바꿔도 되겠다. '에빌 졸라'). 내 주변에 재산이 많은 친척 일가가 있고, 그들 형제 간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는 모습을 보긴 했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이들의 재산분배 과정에 이어지는 이전투구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당대의 풍경들을 카메라로 찍듯 펜으로 그려내는 졸라이기 때문에, 단순히 '욕하면서 보는 작가의 막장드라마'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여기에 등장하는 농부들은 땅에 진심이고, 정직하게 하는 대하는 등 거의 '여자'처럼 사랑하고 아낀다. 그러나 에밀 졸라를 읽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의 작품 속 '여자'들은 언제나 폭력과 욕설에 노출되어 있는, 거의 남자에게 매인 존재이다. 아무리 자존심이 강하거나 강인해도 여자들은 그를 취한 남자에게 돌아간다. 처음에는 갖은 사탕발림으로 꾀지만, 갖고 나면 그냥 소유물 취급을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게 아니고, 당대의 가부장적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땅을 '여자'로 비유하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땅은 'motherearth'인데, 땅을 물려준 부모를 내내 학대하다 살해하다시피 한 인물들의 행각을 보면,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지 않나 싶다.


이외에도 다양한 차원의 갈등들을 볼 수 있는데, 공업과 농업,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전통농법과 진보적 농법 등이 그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수입되는 값싼 밀 때문에 유럽의 밀값이 하락하고 그것이 도시의 노동자들을 먹여살리기는 하지만 농업인들은 희생되는, 사라져가는 전통농가에 대한 안타까움도 함께 담겨 있다.


번역은 조금 아쉬웠다. 여기서 일일이 지적하지는 않겠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문장들이 간간히 눈에 들어왔다. '루공-마까르'를 꾸준히 출간해 주는 출판사에 감사할 뿐이고, 20권을 다 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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