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번의 세계가 끝날 무렵
캐트리오나 실비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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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백만번의 세계가 끝날 무렵

지은이캐트리오나 실비 / 공보경 옮김

  :  독서는 희망과 믿음을 키우고



 

지난  일년간 나의 독서 생활중에서 소설 읽기의  비중이 가장 낮았다.

사실  나는 소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 편견은  '소설은 전부 허구다' 라는 선입견 때문이다.(그런데  선입견  때문이라기 보다는 원래 학교에서 그렇게 배우지 않았나)

학창시절에서 부터 나는 남여 간의 사랑을 다루는 소설을 제일 싫어 했다.

그래서 인지 알라딘 사이트에서 장바구니에 책을 담을 때 소설  영역은 클릭하지도 않았다. 물론 소설의 종류는 다양하고 남들은 소설속에 사랑이야기가 없으면 재미가 없겠지만 난 그 재미를  도저히 모르겠다.

그런데  알라딘 이웃 서재님들이 올리는 여러 분야의 소설 리뷰들을 보면서 점차 나도 일부 소설은 읽어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최근 접한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 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고전 소설들을 통해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들여다 보게 되었다.

즉 그동안  단순히 허구라고 생각 했던 소설은 사실 작가가 소설이란 형식을 빌려 독자와 소통을 하고자 하는 방식이란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름 고심 끝에 선택해서 읽게 된 것이  <백만번의 세계가 끝날 무렵> 이다.

이 책은  나의 본격적인 소설 읽기의 도화선이 되리라 믿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도화선은 불발이 되었다.

불이 붙다가 중간에 꺼져 버렸다.  ? 도대체 왜 불발이 되어 버렸을까?

, 이건 나의 안목을 탓 할 수밖에 없겠다.


이 책< 백만번의 세계가 끝날 무렵>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산티아고 로페즈 로메로(산티)' 와 여자 주인공 '소라 리슈코바(소라)'는 독일의  퀼린에서 만난다.

이들은  몇 번의 죽음과 다시 환생을 거쳐 각기 다양한 상황속의  만남을 이어간다.

여기 까지 보면 처음엔 백만번이나 윤회를 하며 만나는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다.

또 소설 제목과 표지 그림이 의미 하는 것이  환생을 거듭하여  완성시키는 우주적 차원의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보는 소설 초반은 나쁘지 않았다.

반복되는  환생과 만남, 그리고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 관계들 간의 관계 설정 등, 나름 흥미를 끌었다.  

만약 내가 사는 현실이 진짜가 아니고 설정된 무대 세트 위에서 벌어지는 일이며 내가 겪는 모든 상황이 다 가짜였다면?

이러한  설정은 영화 트루먼 쇼를 본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익숙 한 설정이다.

게다가  동일한 지역 한정으로  그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며, 또 시간은 항상 동일한 시간대만 흐르게 된다면?  이 부분은 타임루프(Time Loop) 에 해당하는 설정이다.

타임루프란  특정한 시간대가 동일하게 반복 되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타임루프 소재의 영화는 주인공들이 타임루프를 벗어나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반복해서  노력하는데 그걸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재미가 있다. 이러한 타임루프 설정에다가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환생까지 추가가 된다면?

이 소설에서는  이 모든 설정들이 전부 하나로 믹스가 되어 있어 초반에 읽을 때는 어쩌면 대작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소설의 구성은 모두 3부로 되어 있는데 초반 1부와 2부는 앞의 설정 대로 진행이 된다. 그런데 3부 에서는 앞의 믹스 된 설정들 사이에서 여러가지 오류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  오류는 첫째, 타임루프 라면  어떤 생을 살아도 주인공의 나이는 고정 되어야 한다. 누군가  먼저 죽고 나중에  죽더라도 환생하면 다시 같은 시간대로 리셋이 될 것이다. 그런데 환생이란 설정이 가해지면서  앞서 죽었던 이가 먼저 태어나고 뒤에 죽은이가 나중에 태어면서 사람들의 나이가 변해 버린다. 배경이 되는 공간과 시간은 고정이 되어 있는데 사람들의 나이는  고정 되어 있지 않았다. 뭔가 모순 처럼 보였다.

두번째는  전통적인 윤회관에서 환생을 하면 태어날 때 남여의 성별이 바뀌게 되는데 소설에서는 계속 고정된 성별로만 태어난다.즉 시간과 공간, 등장 인물의 성별은 고정 되어 있지만 나이는 변한다. 그리고 남여 주인공외에  주변인물들은 병풍 역할만 한다. (소라의 연인이 성소수자라는 설정 밖에 기억이 안난다. 무대가 되는 쾰린이 성소수자 천국이라 그런 설정 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니체의 영원회귀론도 아니고, 타임루프 설정도 안 맞고, 윤회 환생의 믹스가 전혀 따로 논다. 이게  작가의 설정 오류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 속의 두 주인공도 이러한 오류를 미스터리 같은 상황이라 여기고 이 반복되는 환생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둘이 함께 머리를 싸맨다.  읽는 독자도 이정도 쯤이야 나처럼 따지지만 않는다면 그냥 봐 줄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오류는 두 주인공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학습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에 갇혀 있는 자신들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둘이 합심하여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만날 때 마다 그냥 싸운다.  이게  난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거다. 더구나 급기야는 서로가 서로를 살해하는 상황까지 가고야 만다. 루프를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라나? 그러면서도   환생해서 만나면 서로 또  다투고 언쟁을 벌인다.  . 이건 정말....대체 얘네가 왜 주인공인지 이해가 안 간다. (이때쯤 이면 열 받아서 책을 던지고 싶어 지는 충동을 느끼게 되리라)  나중엔 읽다가 오기가 나더라

도대체 작가는 어떻게 결말을 낼건지...두고보자하는 심정.  진짜  작가의 의도적 설정인지, 내가 이해를 못해서 혼자 발악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 책 읽기가 싫어 지는 것도 또 하나의 체험이 되었다)  

결국 그들의 최종 미스터리 관계가 풀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원래 연인도 아니 였으며 같은 우주 탐사선을 탄 동료 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같이 탑승했던 우주선이 지구로 귀환 중 고장이 나고 주인공들은 가사 상태에 빠지면서 그들의 무의식  상태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들은 생생한 실제라고  여겼다.

다시 말해서 남여 주인공이 코마 상태의 뇌 속에서 꾸는 꿈이었던 것이다.

가사 상태에 빠진 그들은 우주선에서 죽어가는 실제 상황에서 그들 무의식에서 벌어지는 환생과 타임루프를  벗어나고자 하는 환영에 불과 했다. 작가는 요즘 유행하는 타임루프, 환생, 메타버스 같은 설정을  비빕밥 처럼 버무렸는데 오히려 각각의 제 맛을 살리지 못한 그냥 잡탕이 되어 버렸다. 결국 코마상태에 빠진 꿈 이었다니... 허탈했다.

그런데 이걸 영화화 한다고?  그것도 원더우먼의 갤 가돗을 주연으로 한다고?

, 이거 참, 말리고 싶다. 스코트랜드 출신의 저자 '캐드리오나 실비'  한테는 미안하지만....

작가가 전하고 싶은 의도는 어떠한 선택이든 잘못된 선택은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은데, 이 책을 읽게 된 나도 잘못된 선택은 아니였다고 믿자. 그렇게 믿자구!

아니. 내가 이래서 소설은 안 읽고 싶었다구.


소설가는 소통을 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들의 소통은 일방적이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정신세계에 현실의 독자를 초대하는 게 그들 만의 소통의 방식이다.

독자는 작품을 감상해야지만 작가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생생하게 체험 할 수있다.

독자가 작가의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경험하는 순간, 독자는 희망이 보일 수도,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마주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때  독자는 작가의 세계를 이해 하게 되거나 아니면 못 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내게 문학은 어렵다. 아직은 작가의 정신을 이해하기에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 , 괜찮다. 천천히 하자구)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이제 문학도 드디어 K 문학의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이 분 소설이 참 어렵다는데.... 내가 읽고 제대로 이해 하게 될 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열심히 읽다 보면 언젠가는 이해 할 날이 오게 됨 을 믿고...일단 읽자.

어쩌면 독서의 목적이 자신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키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산티는 방향을 바꿀 새도 없이 벽에 부딪힌다. 아니 벽을 통과해 버린다. 존재에서 무 존재로 바뀌어 벽을 통과하고 다시 존재하는 상태가 된다. - P246

어머니에게 나는 단순한 사춘기 소녀가 아니라 무한의 시간을 사는 불멸의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 P269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중요하다면, 그 중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뻗어나 갈 수 있는 길이 무궁무진 할 텐데 그 중에 하나만 옳은 길 일리 없어. - P285

산티는 늘 해온 대로 세상에서 의미를 읽어내려 하고 소라는 안에서 부터 세상을 부수려 한다. - P332

중요한 건 내가 누구인지 아는 거야, 그래야 어디로 갈지도 알게 돼. - P343

잘못 된 선택이라는 건 없어. 그냥 그렇게 될 뿐이야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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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 140주년 고급 벨벳 양장본 최신 원전 완역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가영 옮김, 최행규 해설 / 코너스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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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지은이표도르 도스토옙스키

  : 그래서 아버지를 용서 하실 건가요?


 


마힐안녕하세요마힐입니다얼마전에 제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독했습니다러시아 장편 소설은 처음이라 읽기전에 은근히 내심 걱정했어요.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 거의 대부분은  작가나 제목은 아주 유명하지만 읽어볼 엄두가 솔직히 잘 안 나거든요읽어 보기도 전에 그 압도적인 양때문에  포기 하게 되 더라구요.  제가 살면서 그랬거든요

그래도 늘그막에 독서를 시작 했으면 반드시 고전은 넘어야 할 산이라 생각해서 이번에 큰 맘먹고 이 책<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골랐죠그렇게 알라딘에서 고르고 고르다가 <코너스톤출판사의 2권짜리 양장본으로 구매해서 정독을 했어요

정독 후 느낌이 어땠냐 구요?

이거 정말 읽어 볼만 하다는 겁니다

페이지로 따지면 1500페이지가 넘어 부담을 가졌는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까 진도가 쭉쭉 나가는 겁니다그리고 내용이 생각보다 무척 흥미진진 하더라구요

일단 등장 캐릭터들 간의 입체적 완성도와 종교특히 기독교적 인 사고와 무신론적인 사고의 대립마지막 법정 공방까지 긴장감이 팽팽하게 이어지더라구요

오늘은 그래서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중 한 명을 불러내 인터뷰 형식으로 리뷰를 진행 하면 어떨까 합니다

책에 대한 리뷰를 하기전에 쓸데없는 저의 서론이 길었는데요. (대기하고 있는 사람을 향하며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자기 소개 좀 부탁 합니다

 

이반안녕하세요저는  카라마조프 집안의 둘째 아들 이반 표도르비치 입니다.  카라마조프는 성()이고 이름은 이반 표도르비치 인데 편하게 이반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런데 사회자님은 작가가 소설속의  주인공으로 설정한 내 동생 알렉세이 표도르비치를 놔두고 인터뷰이(Interviewee)로 왜 절 선택했나요?

 

마힐그건당신이 카라마조프가의 남자들 중 가장 이성적이기 때문에 선택했어요

이반당신도 알다시피 의 당신 아버지 표도르는 인터뷰이로 하기엔 제가 너무 힘들 것 같아요도무지 컨트롤이 안되잖아요.  조시마 장로를 만나는 경건한 수도원에서 조차 생난리 굿을 피웠잖아요아시죠

 

이반, (피식 웃음카라마조프 다운 행동거지 였었죠.

 

마힐그리고 큰 형 드리트리는 앞뒤 따지지 않는 감정과 행동 때문에 그 역시 컨트롤이 안되고요.  막내 알렉세이는 또 너무 순수해서 아니 신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인터뷰를 하게 되면 설교를 듣게 될 것 같아요그래도 형제들 중 이반 당신이 가장 이성적 이잖아요그래도 저는 카라마조프가의 사람들 모두가 진주인공이라 생각돼요.

 

이반: (정색을 하며)  방금 저를 이성적이라고 했지만 저도 형의 재판에서 끝내 이성을 놓아 버리고 거의 반 미쳐 버리지 않았나요아뇨전 전혀 이성적이지 않았어요제 아버지도 그렇고 큰형과 저막내 모두 카라마조프적인 기운을 가졌기 때문이에요.

 

마힐카라마조프적 기운요책에서도 수 없이 언급 되어지는 카라마조프적 힘이나 카라마조프식의 방법’ 같은 표현이 많이 나오더라구요도대체 카마라조프적()’ 이라는 불리는 힘의 상징이나 정체성이 무엇 인가요

 

이반.... ‘카라마조프라적(的)’ 하면 한마디로 규정 할 수 없어요

그건 소설을 쓴 도스토옙스키((1821~1881) 작가를 불러서 물어봐야 되지 않을까요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카라마조프적이라 함은 우리 집안 남자들의 특성을 모두 포함한 것이라고 봐요.

 

마힐카르마조프 집안 남자들의 특성요?

 

이반제 아버지 표도르는 거의 짐승에 가까운 성욕과 본능대로 일생을 살았잖아요.

형 드미트리는 정말로 순수한 사람이지만 격정적인 감정에 끌려 일생을 살았고요.

저는 무신론자이면서 이성(理性)을 앞세워 세상을 파악해 왔죠.

또 제 친동생 알렉세이는 신성(神性한 삶을 살고자 했잖아요.

그리고 어쩌면 나의 또 다른 동생일지도 모를아버지의  사생아 스메르탸코프는 이성과 감정을 모두 비틀린 채로 삶을 살았었죠이렇게 우리 카라마조프가의 남자들의 서로 다른 가치관들을 모두 하나로 섞여서 내는 기운이자 힘이라고 생각 합니다.

 

마힐저 한테는 마치 선과 악()와 추(),()과 성()등 저열함과 고결함 같은 서로 반대 되는 모순적 특성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라고 들리는 데요맞나요?

 

이반제가 작품속의 등장인물 하나에 불과 하지만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작가의 뜻은 그게 아닐까 싶어요책의 첫 시작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잖아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 복음 12 24)

마힐님은 죽어야 산다는 말 들어 본적이 있나요?

 

마힐들어 본 적이 있어요죽음을 각오 할 정도로 어떠한 희생을 한다면 결국 결과는 육신이 죽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혼이나 본래 가진 성품이 되 살아난다는 뜻이 아닌가요?

 

이반구체적으로 작품속의 사건들을 통해 예를 들면요?

 

마힐 , 작품속에서는 많은 사건들이 있잖아요그 중에 저는 막장 드라마 같은 설정과 기독교적 인 정서를 서로 적절하게 소통을 시도한 게 아닌가 싶어요

작품의 큰 사건엔 아버지와 큰 아들이 그루센카라는 여자를 두고 대놓고 싸우는 치정(癡情)과 큰 형의 약혼자 카테리나와 시동생 뻘인 당신이반과의 사랑과 같은  세속적 설정이 큰 틀이 되죠그리고 그 안에는  조시마 장로가 깨달은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과 구원 같은 종교적인  설정도 함께 진행되죠.

그런데 작품에서는 세속의 저열한 것이든 종교의 고결한 것이든 모두 하나로 귀결 시키고 있어요.

한 알의 밀이라는 뜻은 작품속에서 한 사람의 숭고한 희생을 말하는 것 같아요

 

이반그럼 한 사람의 숭고한 희생이라면 누굴 말하나요제 동생 알렉세이를 말하나요

 

마힐 , 저는 당신의 동생 알료샤(알릭세이의 애칭)가 인물들간에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을 하나로 연결 시켜주는 역할을 했다고 보았거든요저속한 아버지의 성품격정적인 성품을 지닌 큰형 미탸(드미트리의 애칭)와 그리고 이반 당신의 무신론자적인 이성(理性등을 모두  한마음으로 품었다고 봐요

 

이반맞아요알료샤도 육체적으로는 우리와 같은 카라마조프가()의 피가 흐르지만 그 아이의 정신적 아버지는 스승이신 조시마 장로라고 봐 야죠

조시마장로가 세상을 떠나며 알료샤에게 전한 말이 있죠

"나는 양파 한 뿌리를 주어서 여기 있는 것 이다.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도 양파 한 뿌리를그저 자그마한 양파 한 뿌리를 주었을 뿐이지...

너도 오늘 구원을 갈구하는 여인에게 양파 한 뿌리를 주었 더구나"  P.78

양파 한 뿌리는 구원을 상징하죠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하잖아요

즉 여기서 구원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원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힐저는 양파 한 뿌리 일화를 읽으면서 얼마전에 읽었던 라쇼몽의 작가 이쿠타가와 이노스케의  <거미줄이란 단편에 나오는 설정이  너무나 똑 같아서 놀랐어요

아마도 이노스케가 도스토옙스키의 양파 한 뿌리 설정을 차용한 게 아닌가 싶어요. (도스토옙스키가 더 앞선 시대 였으니까요.) 

아무튼 기독교적 인 구원은 불교  수행하고도 비슷한 것 같아요.

기독교의 구원은 부활하고 연결이 되거든요즉 기독교의 부활은 불교의 깨달음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이반나의 창조자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소설에서도 일관되게 구원에 대한 성찰을 말하고 있다고 봐요. (<죄와 벌>을 읽어 보세요죄를 지은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에 대한 작가적 화두가 작가의 작품들 속에 투영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번 작품속에서는 저는 이성을 대표하는 인간으로 나오죠제가 지은 <대심문관이야기를 보면 대심문관과 그리스도의 갈등 나오잖아요전 이것이 이번 작품의 작가적 화두에 대한 답이라 고 생각했어요.

 

마힐맞아요저도 당신의 이성주의로 풀어낸 대심문관 일화가 흥미로웠거든요.

마지막 대심문관의 소란스런 질문에 대한 그리스도의 무언(無言)의 입맞춤에서 저는 처음엔 뭔가 작가의 화해적 제스추어가 아닌가 생각 했어요.

 

이반그렇죠저도 그런 의미 심장한 뜻으로 알료샤에게 전달 했지요

 

마힐그런데  저는 그 침묵의 입맞춤에서 뭔가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겼다고 봤어요.

그건  바로 '용서'가 아니 였을까 싶어요

 

이반용서요

 

마힐작가의 60평생중 가장 마지막으로 낸 작품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잖아요제가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 보지 않았지만 (<죄와 벌>은 도전해 볼 께요)    마지막 작품에는 아무래도 작가적 역량을 총 집결 시키지 않았을까 싶어요

작품속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입체적으로 너무 완벽했어요어느 것 하나 개연성 없거나 부족한 캐릭터는 전혀 없어요. (그래서 대문호라고 부르는 거겠죠.)

전체 스토리를 보면 요소설의 전반부는 아버지와 아들의 치정에서 출발한 사건들과 조시마 장로의 죽음이 주를 이루었어요후반부로 가면 아버지의 죽음과 3000루블의 행방을 두고 형 미탸의 법정에서 진실 공방이 나오잖아요

 

이반아시다시피 작품속에서 모든 사건의 전개 속도가 굉장히 빨라요아버지와의 갈등형과 카테리나와 갈등조시마 장로의 죽음형 미탸의 구타사건 과 아버지의 죽음에 이르기 까지의 모든 사건들이 시간적으로 3일안에 벌어지는 일이죠후반부에 형이 감옥에 갇히게 되고 나와 스메르탸코프와의 진실 갈등법정 공방까지도 불과 하루 이틀 안에 끝나버리죠이러한 모든 갈등이 용서로 귀결 된다는 건가요?

 

마힐작품 초반부에 아버지와 미탸의 갈등을 풀어보고자 조시마 장로가 마련한 수도원 수행처에서 모두 한자리 하잖아요.  그때 조시마 장로가 미탸의 불안정한 기운을 읽고 서는 무릎을 꿇고 미타에게 용서해 달라고 하잖아요그때 다들 그게 무슨 의미 인지 모르잖아요미타에게 닥칠 불운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국 용서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봐요.

일료샤의 아버지를 두들겨 팬 미탸에 대한 용서그리고 얄료샤를 깨물어 버린 일료샤에 대한 용서그리고 병든 일료샤에게 용서를 구하는 콜라그리고 그루센카 또한 마지막에 미탸에게 용서를 구하잖아요카테리나 또한 미탸에게 용서를 구하고요

각 인물들 간의 갈등은 용서를 통해 해소가 돼요.

 

이반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렇기도 하네요제 관점에선 미타형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 같았어요난 앞뒤없이 나가는 형을 이용했죠그 과보를 나중에 받았지만 말이죠.

 

마힐그 과보라는 것도 결과적으로 보면 당신도형도아버지도글루센카도카테리나도심지어 스메르탸코프 까지  모두가  자업자득이었다고  봐요.

하지만 조시마 장로는 알료샤에게 이미 이런 얘길 했었죠.

진심으로 뉘우치는 데도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지 않으실 만큼 큰 죄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고 존재 할 수도 없다.” 

 

이반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용서 못하 실 죄는 없다는 것인가요?

 

마힐그래서 저는 이 작품속에서 전하는 주제는  용서라고 보는 겁니다

하느님이 죄를 지은 인간에 대한 용서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용서도 포함하는 것이지요그래서 결국 아버지에 대한 용서가 가장 큰 용서가 아닐까 싶어요.

제가 볼 때 가장 근원적인 질문은 당신이나 형 미타는 아버지를 용서해 주실 수 있나요? (알료샤는 이미 다른 차원 사람이니까 그 용서함에서는 벗어 났다고 봐요. )

 

이반….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은 후 우리를 방치 했어요우리의 존재 자체를 인정 조차 하지 않은 사람을 아버지라 할  수 있을까요?  표도르 그는 아버지란 호칭도 부를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미타 형과 저는 어릴 때 받은 상처를 평생 가지고 살아야 했는데 이게 다 아버지 탓이 아니고 누구 때문인가요?  그런 아버지를 용서 하라구요?

나와 형은 하느님이 아니에요인간인 이상 누구를 미워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요?

 

마힐: (침묵) …. …  성숙한 자식들의 미숙한 아버지그 인간 표도르를 아버지 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보자구요인간 같지 않은 짐승적 본성과 성욕이 지배하는 남자카르마조프 집안의 우두머리그를 악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아니죠다만 당신 형제들에게 무책임한 가장이었을 뿐이고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인간 수준으로 바라 보자구요

존경은 못하겠지만 그런 미숙한 인간에게 용서는 해줄 수 있지 않나요?

당신 형제들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하겠지만 그 억하심정을 평생 가슴에 담아 두실 겁니까용서는 하느님만 인간을 용서하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이 인간을 용서 할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이반:…. 나는 모르겠어요또 미타 형은 어떻게 생각할 지… 나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용서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해 보겠어요.

 

마힐사실저는요용서에 대해 기독교적 표현 보다 불교적 표현으로 말씀 드리고 싶어요.

선불교에서는 죄는 없다고 해요내가 없는데 죄가 어디 있고죄가 없는데 무슨 용서가 있냐고 하거든요근본 자리에서는 모두가 평등한데 누가 누구를 용서하느냐는 거죠.

이것은 이해의 영역이 아닙니다그래서 쉽진 않지만 한 순간에 돌려 녹여라 하거든요.

 

이반용서는 없다라돌려 녹여라… 나는 오히려 이 표현이 더 맘에 드는데요무조건 적인 용서를 강요하는 것 보다 차라리 용서는 없다가 저 한테는 더 맞는 것 같네요.

 

마힐:  하하하…. 이번 리뷰 인터뷰는 역할이 바뀌어 버렸어요제가 묻고 이반씨가 답해야 하는데오히려 제 주장만 하는 꼴이 되어 버렸네요

전체 줄거리는 건너뛰고 제가 느낀 것 위주로 했기 때문에 리뷰만 봐서는 줄거리 이해가 쉽지 않겠어요그래도 저는 이반씨 하고 공감한 걸로 만족 하겠습니다.

 

이반그러게요사실 저보다 드미트리 형의 관점과 알료샤 관점에서 보는 리뷰도 좋았을 것 같은데요

 

마힐아닙니다전 이대로 마무리 할 려구요,  사족이지만 미탸가 집착했던  3천 루블이 오늘날 시세로 보면 얼만지 아세요제가 계산해 보니 한화로 약 1 3 4백만원 되더라구요계산 방식은 별도로 올릴 께요그럼 길었던 리뷰는 여기서 마칠께요이반 안녕~ (이반 사라진다)

 

p.s: 그 당시(19세기) 1루블 은() 28g값이라네요. 3천 루블이면 (28*3000/1000=  84) 84KG나 되는 은 값이 되는 거죠. 1KG 은을 현재 시세로 바꾸면 160만원 정도 한다네요그래서 84키로*160만원=   1 3 4백 만원이 됩니다. (은 값은 시세에 따라 달라지니 대략 감만 잡는 걸로...)

결론: 지금 3천 루블은 한화로 약 4만원 정도, 그러나 19세기의 3000루블은 1억 상당의 거액이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장 24절) - P6

진심으로 뉘우치는 데도 하느님께서 용서해주지 않으실 만큼 큰 죄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고, 존재 할 수도 없습니다. 1권-44쪽 - P44

장로는 무릎을 꿇고 드미트리의 발치에 이마가 땅에 닿도록 의식적이고 명백한 절을 했다...
"용서 하시오, 모두 용서 하시오!" 1권-138쪽 - P138

형들은 자신을 망치고 있어요. 아버지도 그렇고요. 그러면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어요. 얼마전 파이시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카라마조프적인 대지의 힘‘ 때문이지요. 1권- 417쪽 - P417

신이 이 땅을 창조 했다면...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유클리드 기하학에 따라 이 지구를 창조했고 인간의 머리는 3차원의 공간만 이해 할 수 있도록 창조한 거야.
신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도 더욱 그렇고 그런 문제들은 3차원만 이해 할 수 있도록 창조된 두뇌로는 결코 이해 할 수 없어. 1권-446쪽 - P446

참되고 아름다운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는 법이다.
2권-76쪽 - P76

내가 만약 하느님 이었다면 모든 사람들을 용서 했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하느님이 아니니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 할 거예요.
나도 양파 한 뿌리를 준 적이 있거든요.
2권- 233쪽 - P233

3000루블 이라는 돈이 강탈 당했다고는 하지만, 그 돈이 정말로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2권-780쪽 - P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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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생문 (라쇼몽) - 1915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소와다리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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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라쇼몽(나생문)

지은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광기(狂氣)의 불꽃은 지옥문을 불 태우고


이번에 읽게 된 <라쇼묭> 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 의 단편 소설집이다.

출판사는 소와다리,  1915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이란 표지가  맘에 들어 구매하게 되었다. 이 책의 특징은 요즘 책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세로 읽기로 되어 있어 사라진 옛날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라쇼몽' 은 영화  <7인의 사무라이> 로 유명한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 가 제작한 영화로도 알려져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은 별다른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일부러 찾아 보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어쩌다 흥미가 생겼는지...) 

이번에 읽은 소와다리 판본의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소설들 중에서 그의 대표적 작품 10편을  엄선해서 시대순으로 실려져 있다.

이 소설들은 작품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하지만 작가의 어떠한 의식을 공유 하고 있는 듯 하다.

먼저 소설의 타이틀인 <라쇼몽> 작품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대표적 작품이다. 나생문(羅生門 라쇼몽 )은 나찰들이 사는 곳이란 뜻과  도시 외곽에 폐허가 된 수도의 정문이란 뜻을 함께 지니고 있다. 비오는 날 나생문에 간 인물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강도짓을 하느니 차라리  굶어 죽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런데  마지막엔 돌연 강도가 되는 길을 선택 하고야 만다.

다음 작품< > 에서는 자신의 코가 너무 긴게 싫어서  코를 짧게 만들려는 승려의 고군분투(?)가 담겨 있다. 결국 자신의 바램대로 코는 짧아 졌지만 모순 되게도 예전의 길었던 코를 그리워 한다.

<여체> 에서는 양모라는 중국인이 작은 벌레인 이가 되는 에피소드인데 사람일 때는 몰랐던 아내 육체의 아름다움을  이가 되어서야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어지는 <지옥변>은 이번에 읽은 류노스케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게 된 작품인데 요시히데라 불리는 화가의 예술에 대한  광기(狂氣) 다루고 있다. 성주의 명령으로 '염열지옥(焰熱地獄)' 이라는 지옥의 무시무시한 장면을 그리게 된 요시히데의 광기와  그에 뒤지지 않는 변태 성주 간의 갈등의 긴장감이  팽팽하다. 그렇게 요시히데와 성주의 광기는 폭주를 하고  마침내  충돌하여  미친 불꽃을 피우게 된다. 그들의  광폭(狂暴) 은 끝내 지옥 불을 일으키고 요시히데는 결국엔 지옥변상도를 그려낸다.



<거미줄> 에선 부처님은 지옥에 떨어진 죄인을 내려다 본다. 그에 대한 자비의 마음으로 인해  그 죄인이 생전에 딱 한번 했었던  선행인 거미를  죽이지 않고 살려 줬던 공덕을 알게 된다. 그래서 거미줄을 지옥으로 내려 보내 그를 살리고자 한다. 하지만 죄인의 욕심으로 인해 거미줄은 끊어지고  죄인은 다시 지옥에 떨어지고야 만다.

<> 에서는 기차 옆자리에 함께 앉은 촌스러운 외모의 소녀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화자(話者)는 쉽게 피로감과 권태를 느낀다. 그러다 창밖으로 동생들에게 귤을 던지는 소녀의 심성을 보고 방금 느꼈던 피로감과 권태 그리고 따분함 마저 잊게 된다.

<> 라는 소설에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멋진 남자와  생애 첫 데이트에 들뜬 다방 레지 출신의  소녀의 일상과 설렘을 담았다.  꿈같은 데이트가 되리라 기대했던  설레임과 달리  데이트 장소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장 골목에서 파 두단을 사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진다.

다음 이어지는 <덤불 숲>은 영화 <라쇼몽> 의 실사화 된 소설이기도 하다.

죽은 사무라이의 범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고  소설 전체를 통해 묻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의 서로  다른 시점과 해석들로 인해 끝내 진실을 알 수가 없게 된다.

<흰둥이> 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흰색 강아지가 까맣게 변해 버린다. 흰둥이로만 알고 있던 자신이 검둥이로 바뀌자 주인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우여곡절 방랑 끝에 결국 흰둥이의 모습으로  주인에게 돌아오게 된다.


이쯤 되면 류노스케의 작품을 이어가고 있는 소설적 장치 구조에 대해 대략 감이 잡힌다.

소설의 매 작품마다 처음엔 그럴 의도가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해버리는 '변덕' 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매번 반복 되게 그려 내고 있다.

굶어 죽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강도가 되어 버린다거나, 긴 코가  싫어 짦게  만들려 했지만 다시 긴 코를 원하게 된다, 또 평상시엔 몰랐지만 하잘 것 없는 이가 되어서야 아내의 아름다움을 새삼 알게 되었다는 등 양극단의  모순을 지닌 인간 마음에 대해 표현 하고 있다. 심지어 성인인 부처 조차도 자비심의 마음으로 살리려 했던 죄인을 다시 지옥으로  떨어드리고야 만다.

작품속의 등장 인물들은 늘 항상 이렇게 하려다가 저렇게 결정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째서 '변덕' 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동일한 패턴으로 보여주는 것 일까? 

류노스케에게 모순된 감정은 어떠한 의미였을까?


<덤불 속> 에서 사무라이의 죽음이라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함께 공존 시키고 있다. 이것은 일명 '라쇼몽 효과' 라고도 부르는데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으로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즉 그의 소설 작품 속에서 류노스케는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다, 이것이 바로  진실이다 라고 주장을 하지 않는다.

마음의 본성은 고정 되지 않았음을 각각의 소설속의 서로 다른 상황과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결국 류노스케는 모순이란 감정 또한 고정되지 않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에서 마지막 작품으로 소개 되는 <톱니 바퀴>는 그의 단편 소설중 가장 난해한 내용을 지녔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로 유명한 우리나라 작가 이상(李箱: 1910~1937)이 떠올랐다.

학창시절에 읽은 이상의 <날개> 에서 주인공 '' 는 자신만에 세계에 빠진 자폐증 환자와 비슷한  심리를 다루고 있다고 느꼈었다.

류노스케 의 <톱니 바퀴> 에 등장하는 '' 역시도 정신 착란증을 앓는 작가 자신의 심리를 다루고 있으며 자신이 곧 죽게 되리라는 암시를 읽게 된다. 실제 류노스케는 이 작품을 유작(1926) 으로 다음해  (1927년) 에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생을 마감한다.


이번 리뷰에 사족을 붙히면 일본의 류노스케와 한국의 이상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먼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둘 다 한창 나이에 요절 했다는 점이다.

류노스케는 1892년 태어나  1927년에 극단적 선택으로 35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상은 1910년 생에 1937년 에 폐결핵으로 인해 27세에 세상을 떠났다.

또한 이 둘은 죽은 후 자신들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만들어 졌다.

'아쿠타가와상' 은 일본의 대표적 문학 신인들을 선별하는 권위의 상이 되었고 '이상 문학상' 은 동인 문학상, 현대 문학상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문학상중 하나가 되었다.

그 외에도  두 명은 대중에게 알려진 이름외에  자신의 본래 성()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류노스케는 어릴 때 친부를 일찍 여의는 바람에 외삼촌의 양자로 들어가는 바람에 친부의 성을 쓰지 않고  외가쪽의 성 '아쿠타가와' 라는 성을 쓰게 되었다. 아울러 이상은 필명이고 김해경(金海卿) 이란 이름이 본명으로 '이씨'가 아닌 '김씨'이다.

마지막으로  둘 다 당시 최고 학벌 출신이었다.

류노스케는 동경제국대학(, 동경대학교)  문과대학 영문과 출신이었고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출신이란 점이다.

둘의 이미지는 천재라는 점이 공통점이 있는것 같다.

알려진 바대로 둘 다 동시대를 살았으며 실제로 서로 만난적은 없지만 이상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동경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그들 모두 불운하게 삶을 마감하는 현실의 삶 까지 비슷하다.

그러니 류노스케의 톱니바퀴 작품에서 이상이 떠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나 싶다.

이상이 류노스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류노스케는 왜 자살 했을까? 류노스케의 돌연한 자살은 단순히 정신병 때문일까?

정신병을 앓았던 류노스케 모친의 유전적 원인 때문 이었을까? 아니면 천재들은 본래 불운하며 단명 한다는 일종의 운명 때문 이었을까?  우리가 지닌 모순된 감정 또한 인간 본성이라는 사실을 누구 보다 알았던 작가는 왜 자살을 선택 했을까?

이 또한 보통 사람은 이해 못하는 천재 지식인의 작가적 고뇌 였을까?

이것도 아니라면 류노스케는 <지옥변> 의 요시히데와 같은 예술적 광기를 선택한 것일까?


 

류노스케의 자살에 대한 의미는 여전히 미스터리 하다.

<덤불 숲>의 사무라이 죽음과 같이 그의 죽음 또한 라쇼몽 효과로 해석해야 되지 않을까?

결국  류노스케 삶 자체가 바로 라쇼몽이 아니였을까?


나쓰메 소세키 선생님의 영전에 바침
- P7

君看雙眼色 군간쌍안색 (그대여 두 눈빛을 들여다 보라)
不語似無愁 불어사무수 (말하지 않으니 수심이 없는 것과 같지만)
- P11

그렇다면 내가 강도짓을 해도 원망하진 않겠지,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몸이거든
<나생문> 중에서 - P30

인간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이 있다. 물론 타인의 불행을 동정하지 않을 자는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 불행을 어떻게든 해서 타계할 수 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이쪽에서 왠지 섭섭한 기분이 든다. <코> 중에서 - P46

다시 말해 그가 그린 지옥은, 천하제일 화사 요시히데 자신이 언젠가 떨어질 지옥이었던 것 입니다.
<지옥변> 중에서 - P80

게다가 급기야는 그 가냘픈 손가락을 뻗어 한 단에 사 전이라는 팻말이 서 있는 파 더미를 가르키며 <방랑> 이라는 노래라도 부르는 듯한 목소리로, "저거 두 단 주세요‘ 하고 말했다.
<파> 중에서 - P172

뿐만 아니라 내 시야 안에서 묘한 것을 발견했다. 묘한 것! 그것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반투명한 톱니바퀴였다.
<톱니바퀴> 중에서 - P238

아무것도 아니긴 한데요. 그냥 왠지 당신이 죽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톱니바퀴> 중에서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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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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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죽음을 배우는 - 시간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지은이: 김현아

   :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국가통계포털을 검색하면 생명표라는 자료가 있다. 출생부터 시작하여 사망할 때 까지 연령별 생존율을 통계한 표이다. 생명표에서 지금 내 나이 기준으로 보면  나에게 앞으로 기대되는 수명은 32년 정도로 나온다.

물론 천지지변이 일어나거나,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급성 질병에 걸리는것 같은 변수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돌연한 죽음을 맞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럴 확율은 0.00314%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생각보다 당장 오늘이나 내일 죽게 될  확률이 높지 않다. 이 정도면  로또 4~5등 정도 당첨 확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일단 기대수명 32년이 바로 눈 앞에 다가왔다고 가정하고 내가 곧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사고 실험을 한번 해봐야겠다.

 

', 여기가 어디지? 내가 방금 잠이 들어 있었구나. 그런데 앞이 잘 안보여... 뭐지

목말라...... 여기.. 어이..거기 누구? 아아아...뭐야.. 이런...... 목 소리가 안나와.

, 손도 안 움직이는데... 꿈쩍도 못 하겠어. 뭐야나 아직도 자는 중인가?

꿈인가옆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데... . . 삐 라니? 초음파 소리인가?

.  아니...  몸에 아무 힘도 안들어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건가?

가위 눌린 건가? 아무래도 여기 나 좀... 깨워줘. 으으으.... 눈 앞엔 희미한 건 뭐지?

희었다 개었다. , 입에 뭔가를 막아 놨구나. 코에도 뭔가를 끼웠어... ... 이게 다 뭐야?

아빠라니큰애 목소리? 맞다. 설이다. 설이야 아빠야. 나 좀 깨워죠. 내가 지금 움직이질 못해.... 왜 그래? 왜 나를 찾아나 여기 있다니까? 이리 좀 와 봐.. , 왜 울고 있냐?

작은 애 소리도 들리네.. 설해야. 아빠 여깄다. 나 좀 일으켜 줘봐라.

말이 안나와... 설해야. 아빠가 지금 힘이 없어서 그러는데 나 좀 일으켜 세워줘 봐..?

힘들다. 너무 힘들다. 눈에 눈물이 나오는데.  닦을 수 가 없네.... 방금 누가 내 눈물을 닦아 줬네... 누구지?

, 당신 이구나. 여보.. 나야, , 당신 나 보이는가? 나 당신이 보이는 것 같아...

내 손,  당신이 잡고 있었구나...나도 잡고 싶은데 힘이 안들어가..여보...

왜 들 다 시끄럽지왜 다 울고 있어?

나 괜찮아. 그런데 몸이 안 움직여져. 말도 못해. 그냥 듣기만 들을 수 있어.

희미하지만 누군지 대충 알 것 같애.

그런데... 허리가 너무 아픈데... 아파... 숨이 잘 안 쉬어져... 가만 지금 내가 지금 죽는 거야?

난 얼마전에 분명히 암 수술하러 들어 왔었는데... 암 수술이 끝났을 텐데... , 수술이 실패 했구나...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과 옆의 소리들 하고  서로 뒤 섞여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잘 모르겠다. 난 지금 죽는 건가?

, 집에 가고 싶다. 나 좀 집에 보내줘... , . 다들 어디가?

가지마..... 여보... 얘들아... 

?  에크모(ECMO:멈춘 심장을 살리는 기계로 체내 산소공급이 어려울 때 사용) 를 창착해야 한다고?  안돼... 내가 분명히 작년에 '사전연명의향서' 를 쓴다고 했었잖아. 생명연장하지 않기로 했잖아.. 왜 에크모를 써서 심장을 뛰게 하는거야?  안돼,  Do Not Resuscitate(심폐소생술 하지마, 약자로는 DNR))  . 나 소생 시키지 마!

난 그냥 이대로 죽을래... 제발.. 나 좀 그냥 죽게 해줘...

난 그냥 편하게 가고 싶어. 제발 날 그대로 둬... 내 몸에 꽂은 것들 싹 다 빼빼 달라구..

... ,... 고통 스러워. 도저히 못 견디겠어...  나 좀 가만 내버려 둬...

. 죽고 싶다. 정말로 죽고 싶다나 좀 죽게 해줘! ... !'

 

방금 내가 사고 실험을 한 임종의 순간에서 나는 어느 병원의 중환자 실에  있었다.

실험대로 라면 아마도 난 죽지도 살지도 못한채로 누워있게 된다.

언제 죽을 지 아무도 모른다. 연장치료의 무한 루프에 빠진 것이다.

이 사고 실험은 오늘날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죽음으로 가는 과정의 한 단면이다.

 

이번에 읽은 현직 내과 교수 김현아님이 쓴 <죽음을 배우는 - 시간>에서는 병원에서 알려 주지 않는 죽음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언급한다.

저자는 30년간 병원에서 의사로 재직하면서 겪었던 환자들의 죽음들을 통해 중요한  한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그것은 현대 의학의 발달이  죽음과 노화를 마치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노화와 죽음을 하나의 질병으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해  우리는  노화와 죽음에 대한 준비를 쉽게 놓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 병원 시스템 아래에서 내가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없게 되었다.

죽음은 병원으로 외주화, 파편화 되어버렸으며 병원은 죽음으로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뭐든 돈 벌이로 둔갑 시켜 벌인다. 과연 자본주의다)

병원에 온 이상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명목 아래 고가의 장비로 여러 검사와 치료를 병행하며 결국엔  엄청난 치료비를 청구하게 되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또한 오늘날 건강 검진은  코스트  시프트(COST SHIFT: 수입을 이전해서  전체 수지를 맞추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창구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죽기전 마지막 한 달간의 병원비가 그 이전에 평생에 걸쳐 쓴 의료비 보다 많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정의하는 좋은 의사는 최선을 다 할때와 이제 그만 놓아 주어야 할 때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죽음을 말하기 싫어하는 의사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환자 가족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중환자실에서는 임종을 맞이 하는 환자로 넘쳐난다.

환자가 중환자 실에 일단 들어가게 되면 그 다음 부터는 연명치료의 무한루프에 빠지게 된다. 병원에서는 이미 죽음을 질병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자연히 노화로 죽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살려야 하는 기본값을 설정해서 환자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무한반복의 연명치료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연명치료 무한루프에 빠지게 되면서  우리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의 작별 할 수도 있던 아버지를 의식도 없이 억지로  육체만 세상에 붙들어 놓은 꼴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존엄스런 죽음을 맞이하는게 아니라 방치하는 죽음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1997 12 4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보라매  병원 사건'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이 사건의 발단은  보라매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50대 남성을 병원에서는 수술 끝에 살려 냈으나  그의 아내는 병원측에 곧 퇴원을  요구했다.

아내는 수술비와 앞으로 들어 갈 치료비를 감당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남편은 17년 동안 무직이며 숱하게 가족을 괴롭혀  왔었기 때문에 아내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죽는게 낫다고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병원 측 담당의사가  퇴원요청을 거부했으나 아내 측의 막무가내 요청으로 인해 결국 추후에 문제 삼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 환자의 퇴원을 허가하였다.

그러나 산소 호흡기를 뗀  5분 후 남편은 사망해 버린다. 그 후 남편측의 가족들이 아내와 병원 담당 의사들을 기소하게 된다. 그렇게 법정 싸움 끝에 아내와 담당의사에게  각각 살인죄와 살인죄 종범으로 징역을 선고 받게 되었다.

보라매 병원 사건은 그 당시 사회적, 법률적 논란을 야기했고 이후 병원에서는 환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무조건 환자를 붙들어 놓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현대 의료가 연명 치료를 할 수 밖에 없는 법리적 근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병원의  연명치료 무한 루프에서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까?

이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 저자는 우리가 의식이 있을 때 미리 사전연명의향서나 DNR(Do Not Resuscitate) 같은 소생 시키지 말라는 서류화된 근거를 남겨 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연명의향서를 썼다고 그대로 진행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33만명이 사전연명의향서를 썼지만 실제로 그렇게 진행 된 것은 불과 1000명도 채 안 됐다고 한다.(0.3%)

그만큼 현실적으로 웰 다잉(Well dying) 은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이 영생을 이루게 하리라는 착각에서 빨리 깨어나야 하며 생노병사에는  답이 없다고 한 저자의 통찰에 깊이 공감한다. 책에는 죽음과 관련된 인문학 이야기와 저자가 작성한 엔딩 노트 같은 것을 익혀 두면 이후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우선 나는 이제 아직 요원한 죽음 보다는 지금 늙어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겠다.

그렇게 늙음을 받아 들이고, 좀 더 멋지게 늙는다면 내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난 지난 세월에 대해 뭐라 답할 수 있게 될까?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 신해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오늘 아침 부터 흥얼 거렸다.


내과의 인기는 형편없이 떨어졌고 많은 병원들의 전공의 모집은 올해도 미달이다. 환자가 줄어들 일이 없는 과임에도 지원자는 계속 줄고 있다.
매 학년 제일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피부과, 성형외과와 같은 노동량 대비 수입이 만족스럽거나 영상 의학과 처럼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 과들을 선택한다. - P16

환자나 보호자가 전원을 요청해오면 나는 두말없이 해주려 하는 편이다.
환자나 보호자들은 똑같은 나쁜결과라도 대형병원에서 그 결과를 맞이 했을때 의심하지 않고 더 쉽게 굴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P58

의료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수명이 늘어났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수명 연장은 사실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에 따른 영양 상태 개선과 근대 사회로 이행하면서 발전한 공중위생 덕분이다. - P85

사회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단 극적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더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게 된다. - P89

결국 생로병사에는 항상 답이 있는 것도, 답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암도 노환이라는 사실이다. - P140

삶과 사랑, 그리고 현재의 순간들을 온 힘을 다해 껴안는 법을 배웠다.
인생은 붙잡고 있는 것과 놓아주는 것의 균형잡기이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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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 어느 장례지도사가 말해주는 죽음과 삶에 관한 모든 것
강봉희 지음 / 사이드웨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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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지은이강봉희 

   :  죽음을 준비하라

 


8년전쯤에 중국 북경에서 내가 겪었던 일이다.

주말 오후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다급한 회사 사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북경에 있는 어느 병원으로 직원 몇 명을 데리고 빨리 오라는 사장의 지시로 영문도 모르게 급히 갔었다

병원에 도착 후 자초지종을 확인해 보니 사장의 아주 먼 친척 뻘 되는 4인 가족이 북경 자금성에  관광을  왔는데 그 가족의 아빠에게 갑자기 심장 마비가 온 것이었다.

자금성이란 장소도 문제 였지만 하필 시간대도 가장 붐비는 오후라서 구급차가 자금성 안으로 들어 오기 까지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겨우 구급차가 들어오고 환자를 가까운 병원으로 다시 옮겨 심폐 소생술을 진행 했지만 결국엔 사망하고야 말았다집안 가장의 황당한 죽음을  객지에서 겪게 된  아내분과 두명의 딸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병원에 대사관 직원이 뒤 늦게 도착했지만 별 다른 도움이 되 질 못했다

 

이때 중국 병원측은  응급실에서 사망을 하면 시신을 유족이 직접 영안실로 옮겨야 한다며 유족들에게 빨리 시신을 영안실로 옮기라고 했다영안실 안치와 영안실에서 화장장으로 이동하는 관()까지 유족이 손수 시신을 옮겨야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당시 우리는 당연히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였다. (최근에 다시 안 사실이지만 당시에 우리는 외국인 신분이라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 남겨진 유족들은 전부 여성 분들이고 중국어도 전혀 몰라서 우리가 직접 나서서 유족대신 뛰어 다녀야 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나는 난생 처음으로  영안실에 가보게 되었고 또 시신을 꺼내서 이동용 침상에 옮기는 일을 해봤다.(중국 병원의 영안실은 정말로 음침했다)

시신은 중국식의 화려한 천에 감싸져 있긴 했지만 시체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그때 생에 처음으로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한 셈인데  그 이후로 죽음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초 장인 어른의 장례를 치르면서 나는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얼마전에  읽었던 능행 스님의 <우리 봄날에 다시 만나면>을 읽으며  '나는 어떠한 죽음을 맞이 할 것인가'  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었다

이때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점차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이번에 비슷한 주제를 다룬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책을 통해서는 고독사와 우리나라 장례 문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 강봉희님은 현재 장례 지도사이며 소위 '시체를 닦는 일을 하시는 분이다.

한자어로 염습(殮 염할 염襲 염습할 습)’ 이라고 하는데  웬만한 담력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늘날 무슨 상조 회사나 웬만한 장례식장에 들어 가는 비용은 대략 4~500만원 선으로 알고 있다그것도 최소한 이라고 하는데… 

저자 강봉희님은 이러한 염습과 장례를 돈을 받고 하는 처리하는 분이 아니다

스스로 자원 봉사단을 꾸려서 시청과 연계해서 관할 지역내의 기초 수급자 분들이나,가족이 없이 홀로 쓸쓸히 돌아가신 분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까지 무료로 해주고 있다즉 저자에게는 무연고로 고독사를 맞이한 사람들이 주고객이 되는 셈이다.

그 분들의 쓸쓸한 죽음을 마지막으로 외롭지 않게 지켜 드리는 일에 나름 자부심과 보람을 가지고 한다는 면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저자 강봉희님은 40대 중반방광암 진단을  받고 5년 이상의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원래 강인한 정신을 가진 그였지만 장기화 되는 병 치료에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그 당시  병실에 누워 바라본 창문엔 병원 장례식장이 눈에 들어 왔다고 한다

그때 떠오른 생각은 자신이 만약 살아서 저 장례식장 옆의 병실 밖을 걸어 나간다면 무언가 인간 답게 살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 한 생각이 그를 죽음 문턱에서 벗어 나게 했고 결국엔 그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 하였던 것이다

그 후 지금까지 20  동안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 과정 중에서  코로나 초기 아무도 접근 조차 하지 않던 코로나로 돌아가신 환자분의 시신을 수습 했고그 외 수많은 고독사와 기초수급자들의 마지막을 돌봐 주었다.

현재 우리나라 고독사의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3년은 1280, 2017년은 2008, 2021년은 3603명을 기록 했다.

코로나 이후 2022년은 4822명이며  2023년은 이미 5천명을 훌쩍 넘어 버렸다

이미  사회 문제가 된 고독사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본다.

고독사를 맞이 한 사람들은 그들이  본래 가졌던 구성원의  관계가 무너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러한  무연고자들은 살아 있을 때부터 잊혀진 사람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그들이 살아있을 때 그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쓸쓸히 죽는 것을 막을 수 있었고홀로 저승으로 가지 않도록 돌볼 수 있었다그런 의무를 내  팽개친 채 고독사를 입으로 떠드는 우리 사회가 원망 스럽다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독사에 대한 국가의 역할에 대해 많은 희망을 걸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베이비 붐세대의 나쁜 아빠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판적이다.

그는1950년대 중반과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베이비 붐세대 남자들이야 말로 가장 나쁜 세대라고 규정 짓는다.

베이비 붐세대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주도했던 세대이기도 하지만 그들 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가정을 버리고 가장의 책임을 져버린 가장 나쁜 남자들의 세대 였다는 것이다.

베이비 붐세대가 지금의 나보다 윗 세대라 뭐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대략 내가 아는 이 세대 남자들을 떠올려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것 같다.

 

그 외  우리나라 장례 문화는 남에게 보여주는 관습이 많은데 이는 누군가의 돈벌이가 된다는 것이다.

죽을 때 입는 옷을 '수의(壽목숨 수 衣 옷 의)'라 한다원래 죄수들이 입는 '수의 (囚 가둘 수 衣 옷 의)'  에서 기인 된다고 보았다왜냐면 둘 다 삼베로 만든 옷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1890년대 에서 일제 강점기 때 죄수가 삼베 옷을 입는 것에서  부모가 죽으면 자식이 죄인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 조선시대 같은 전통 장례에서는 삼배를 입질 않았다고 한다.즉 수의로 삼베 옷을 입는 것은 잘못된 전통이란 것이다또한 본래 삼베는 대마초에서 재배해야 하는데 대마는 알다시피 마약이다우리나라에서 대마초 재배는 불법이며 또한 지금 유통되는 삼베는 모두 합성 섬유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러니 시신에 굳이 삼베 옷을 입히는 것은 장례 업체들의 장삿속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또한 장례식때 고급 리무진에 시신을 태우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산자와 죽은자에 대한 예의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망자와 유족에게 행해지는 불필요한 장례의식은 장례업자에게 돈벌이가 되는  수단밖에 되지 않는다는 저자의 따끔한 충고는 새겨 들을 만 하다 

 

8년전에 겪었던 남의 갑작스런 죽음과 서서히 다가 오는 죽음죽음의 형태는 모두 다르다하지만 '메멘토 모리(memento moli), 죽음을 기억하라고 하는 라틴어 구절 처럼 이제 나에게 죽음은 점차 기억할 무언가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의 나에겐 여전히  많이 낯설지만 급하지 않게 천천히 받아들이고 싶다.

죽음, 준비해야 한다.

죽은 이들에게 우리가 갖추어야 할 어떤 예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있다고 믿고 있다. - P28

쓸쓸한 죽음을 마지막으로 외롭지 않게 지켜 드리는 일, 나는 그 일에서 조그만한 자부심을 느낄때가 있고 그럴때면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자랑하곤 했다. - P32

돌아가신 분들은 저마다의 고통을 몸안에 품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죽은 몸에 그 고통의 흔적들을 다 담고 있다. - P38

태어나면 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이치인데도, 우리는 항시 생과 사를 철저하게 끊어놓는다. - P84

죽음을 준비하라. 마음으로 준비하고 몸으로도 준비하라. - P134

핏줄은 우리 인간의 괄호안과 같다.
괄호안은 무조건 먼저 계산해야 한다. 핏줄의 의무다.
서로 자주 연락을 나누고, 서로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는 계기를 계속 마련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배려의 시작이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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