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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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죽음을 배우는 - 시간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지은이: 김현아

   :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국가통계포털을 검색하면 생명표라는 자료가 있다. 출생부터 시작하여 사망할 때 까지 연령별 생존율을 통계한 표이다. 생명표에서 지금 내 나이 기준으로 보면  나에게 앞으로 기대되는 수명은 32년 정도로 나온다.

물론 천지지변이 일어나거나,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급성 질병에 걸리는것 같은 변수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돌연한 죽음을 맞이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럴 확율은 0.00314%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생각보다 당장 오늘이나 내일 죽게 될  확률이 높지 않다. 이 정도면  로또 4~5등 정도 당첨 확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일단 기대수명 32년이 바로 눈 앞에 다가왔다고 가정하고 내가 곧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사고 실험을 한번 해봐야겠다.

 

', 여기가 어디지? 내가 방금 잠이 들어 있었구나. 그런데 앞이 잘 안보여... 뭐지

목말라...... 여기.. 어이..거기 누구? 아아아...뭐야.. 이런...... 목 소리가 안나와.

, 손도 안 움직이는데... 꿈쩍도 못 하겠어. 뭐야나 아직도 자는 중인가?

꿈인가옆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데... . . 삐 라니? 초음파 소리인가?

.  아니...  몸에 아무 힘도 안들어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건가?

가위 눌린 건가? 아무래도 여기 나 좀... 깨워줘. 으으으.... 눈 앞엔 희미한 건 뭐지?

희었다 개었다. , 입에 뭔가를 막아 놨구나. 코에도 뭔가를 끼웠어... ... 이게 다 뭐야?

아빠라니큰애 목소리? 맞다. 설이다. 설이야 아빠야. 나 좀 깨워죠. 내가 지금 움직이질 못해.... 왜 그래? 왜 나를 찾아나 여기 있다니까? 이리 좀 와 봐.. , 왜 울고 있냐?

작은 애 소리도 들리네.. 설해야. 아빠 여깄다. 나 좀 일으켜 줘봐라.

말이 안나와... 설해야. 아빠가 지금 힘이 없어서 그러는데 나 좀 일으켜 세워줘 봐..?

힘들다. 너무 힘들다. 눈에 눈물이 나오는데.  닦을 수 가 없네.... 방금 누가 내 눈물을 닦아 줬네... 누구지?

, 당신 이구나. 여보.. 나야, , 당신 나 보이는가? 나 당신이 보이는 것 같아...

내 손,  당신이 잡고 있었구나...나도 잡고 싶은데 힘이 안들어가..여보...

왜 들 다 시끄럽지왜 다 울고 있어?

나 괜찮아. 그런데 몸이 안 움직여져. 말도 못해. 그냥 듣기만 들을 수 있어.

희미하지만 누군지 대충 알 것 같애.

그런데... 허리가 너무 아픈데... 아파... 숨이 잘 안 쉬어져... 가만 지금 내가 지금 죽는 거야?

난 얼마전에 분명히 암 수술하러 들어 왔었는데... 암 수술이 끝났을 텐데... , 수술이 실패 했구나...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과 옆의 소리들 하고  서로 뒤 섞여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잘 모르겠다. 난 지금 죽는 건가?

, 집에 가고 싶다. 나 좀 집에 보내줘... , . 다들 어디가?

가지마..... 여보... 얘들아... 

?  에크모(ECMO:멈춘 심장을 살리는 기계로 체내 산소공급이 어려울 때 사용) 를 창착해야 한다고?  안돼... 내가 분명히 작년에 '사전연명의향서' 를 쓴다고 했었잖아. 생명연장하지 않기로 했잖아.. 왜 에크모를 써서 심장을 뛰게 하는거야?  안돼,  Do Not Resuscitate(심폐소생술 하지마, 약자로는 DNR))  . 나 소생 시키지 마!

난 그냥 이대로 죽을래... 제발.. 나 좀 그냥 죽게 해줘...

난 그냥 편하게 가고 싶어. 제발 날 그대로 둬... 내 몸에 꽂은 것들 싹 다 빼빼 달라구..

... ,... 고통 스러워. 도저히 못 견디겠어...  나 좀 가만 내버려 둬...

. 죽고 싶다. 정말로 죽고 싶다나 좀 죽게 해줘! ... !'

 

방금 내가 사고 실험을 한 임종의 순간에서 나는 어느 병원의 중환자 실에  있었다.

실험대로 라면 아마도 난 죽지도 살지도 못한채로 누워있게 된다.

언제 죽을 지 아무도 모른다. 연장치료의 무한 루프에 빠진 것이다.

이 사고 실험은 오늘날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죽음으로 가는 과정의 한 단면이다.

 

이번에 읽은 현직 내과 교수 김현아님이 쓴 <죽음을 배우는 - 시간>에서는 병원에서 알려 주지 않는 죽음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언급한다.

저자는 30년간 병원에서 의사로 재직하면서 겪었던 환자들의 죽음들을 통해 중요한  한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그것은 현대 의학의 발달이  죽음과 노화를 마치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노화와 죽음을 하나의 질병으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해  우리는  노화와 죽음에 대한 준비를 쉽게 놓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 병원 시스템 아래에서 내가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없게 되었다.

죽음은 병원으로 외주화, 파편화 되어버렸으며 병원은 죽음으로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뭐든 돈 벌이로 둔갑 시켜 벌인다. 과연 자본주의다)

병원에 온 이상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명목 아래 고가의 장비로 여러 검사와 치료를 병행하며 결국엔  엄청난 치료비를 청구하게 되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또한 오늘날 건강 검진은  코스트  시프트(COST SHIFT: 수입을 이전해서  전체 수지를 맞추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창구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죽기전 마지막 한 달간의 병원비가 그 이전에 평생에 걸쳐 쓴 의료비 보다 많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정의하는 좋은 의사는 최선을 다 할때와 이제 그만 놓아 주어야 할 때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죽음을 말하기 싫어하는 의사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환자 가족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중환자실에서는 임종을 맞이 하는 환자로 넘쳐난다.

환자가 중환자 실에 일단 들어가게 되면 그 다음 부터는 연명치료의 무한루프에 빠지게 된다. 병원에서는 이미 죽음을 질병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자연히 노화로 죽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살려야 하는 기본값을 설정해서 환자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무한반복의 연명치료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연명치료 무한루프에 빠지게 되면서  우리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의 작별 할 수도 있던 아버지를 의식도 없이 억지로  육체만 세상에 붙들어 놓은 꼴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존엄스런 죽음을 맞이하는게 아니라 방치하는 죽음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1997 12 4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보라매  병원 사건'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이 사건의 발단은  보라매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50대 남성을 병원에서는 수술 끝에 살려 냈으나  그의 아내는 병원측에 곧 퇴원을  요구했다.

아내는 수술비와 앞으로 들어 갈 치료비를 감당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남편은 17년 동안 무직이며 숱하게 가족을 괴롭혀  왔었기 때문에 아내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죽는게 낫다고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병원 측 담당의사가  퇴원요청을 거부했으나 아내 측의 막무가내 요청으로 인해 결국 추후에 문제 삼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 환자의 퇴원을 허가하였다.

그러나 산소 호흡기를 뗀  5분 후 남편은 사망해 버린다. 그 후 남편측의 가족들이 아내와 병원 담당 의사들을 기소하게 된다. 그렇게 법정 싸움 끝에 아내와 담당의사에게  각각 살인죄와 살인죄 종범으로 징역을 선고 받게 되었다.

보라매 병원 사건은 그 당시 사회적, 법률적 논란을 야기했고 이후 병원에서는 환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무조건 환자를 붙들어 놓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현대 의료가 연명 치료를 할 수 밖에 없는 법리적 근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병원의  연명치료 무한 루프에서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까?

이에 대한 대처 방법으로 저자는 우리가 의식이 있을 때 미리 사전연명의향서나 DNR(Do Not Resuscitate) 같은 소생 시키지 말라는 서류화된 근거를 남겨 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연명의향서를 썼다고 그대로 진행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33만명이 사전연명의향서를 썼지만 실제로 그렇게 진행 된 것은 불과 1000명도 채 안 됐다고 한다.(0.3%)

그만큼 현실적으로 웰 다잉(Well dying) 은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이 영생을 이루게 하리라는 착각에서 빨리 깨어나야 하며 생노병사에는  답이 없다고 한 저자의 통찰에 깊이 공감한다. 책에는 죽음과 관련된 인문학 이야기와 저자가 작성한 엔딩 노트 같은 것을 익혀 두면 이후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우선 나는 이제 아직 요원한 죽음 보다는 지금 늙어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겠다.

그렇게 늙음을 받아 들이고, 좀 더 멋지게 늙는다면 내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난 지난 세월에 대해 뭐라 답할 수 있게 될까?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 신해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오늘 아침 부터 흥얼 거렸다.


내과의 인기는 형편없이 떨어졌고 많은 병원들의 전공의 모집은 올해도 미달이다. 환자가 줄어들 일이 없는 과임에도 지원자는 계속 줄고 있다.
매 학년 제일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피부과, 성형외과와 같은 노동량 대비 수입이 만족스럽거나 영상 의학과 처럼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 과들을 선택한다. - P16

환자나 보호자가 전원을 요청해오면 나는 두말없이 해주려 하는 편이다.
환자나 보호자들은 똑같은 나쁜결과라도 대형병원에서 그 결과를 맞이 했을때 의심하지 않고 더 쉽게 굴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P58

의료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수명이 늘어났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수명 연장은 사실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에 따른 영양 상태 개선과 근대 사회로 이행하면서 발전한 공중위생 덕분이다. - P85

사회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단 극적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더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게 된다. - P89

결국 생로병사에는 항상 답이 있는 것도, 답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암도 노환이라는 사실이다. - P140

삶과 사랑, 그리고 현재의 순간들을 온 힘을 다해 껴안는 법을 배웠다.
인생은 붙잡고 있는 것과 놓아주는 것의 균형잡기이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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