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노인과 바다 (양장) - 1952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수정 옮김 / 더스토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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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OLD MAN AND THE SEA

지은이: HEMINGWAY

   :  헤밍웨이와 가상 인터뷰

 

마힐: 안녕하세요. 헤밍웨이(1899~1961) 작가님, 전 마힐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선생님의 <노인과 바다> 를 읽었는데요. 독후감을 쓰려다 차라리 선생님을 초빙해서 가상 인터뷰를 진행 하고자 합니다. 괜찮으시겠지요?

 

 

헤밍웨이: 물론요. 상상속에서 존재하는 인터뷰인데 뭐가 어렵겠어요?

 

 

 

마힐: 그럼 오늘은 몇가지 작품 속의 내용과 관련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작품 배경이 쿠바 이던데요. 왜 하필 쿠바로 배경을 정하신 건가요?

우리에게 쿠바는 체 게바라의 나라, 공산 국가, 야구 최강의 나라로 알려 졌거든요.

전 작품속 배경이 쿠바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어요.

 

 

헤밍웨이: 체게바라(1928~ 1967)와 피델 카스트로(1926~2016)가 쿠바에서 공산 혁명을 한 것은 1953년 이후 일이에요.

전 그전에 1939년에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살았었죠.

내가 <노인과 바다>를 내놓은 것은 1952년 이에요.  

작품속 배경은 공산 혁명 하기전의 시기 쿠바 배경이라 보면 되고요.

쿠바는 미국의 플로리다주 바로 아래에 있는   섬나라예요. 아마 대한민국 면적하고  비슷 할 꺼예요.

원래 쿠바가 스페인 식민지 였어요. 그런데 1898년에 미국이 도와줘서 쿠바가 독립을 하게 돼요. 그래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50년대 전까지는 미국과 쿠바 사이가 지금 처럼 적대적 관계가 아니였어요.

그래서 그 시기의 쿠바는 미국 본토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제 작품속에 메이저리그 경기 소식이 나오는 것이 다 그 때문이죠.

그 당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의 인기가 쿠바에서도 최고였죠.

나중에 쿠바 혁명을 성공한 피델 카스트로도   혁명 전사가 안 됐었다면 야구선수가 되었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요?

아마도 그 때문에 쿠바가 나중에 아마추어 야구 최강이 된 이유가 되기도 하는 거죠.

 

 

 

마힐:, 그래서 작품속에 '양키스는 지는 법이 없어. 양키스를 믿어라.  위대한 디마지오가 있잖니 ? 하는 대사가 나오는 군요?

 

 

 

 

헤밍웨이: 맞아요. 노인이 가장 우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양키스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1914~1999)'예요.

조 디마지오는 1936~1942년 과 1946~1951년 동안 모두 13시즌을 뛰는데 원클럽 맨이라고 해서 은퇴할 때 까지 줄곧 뉴욕 양키스, 한팀에서만 뛰었죠.

그가 있는 동안 양키스는 월드 시리즈 우승 9번 과 자신은 리그 MVP 3번을 받았고 지금 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운 대단한 선수였죠.

그래서 디마지오가 있는 이상 양키스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긴거죠.

 

 

 

마힐: 아 그렇군요. 디마지오가 당시 시대에선 엄청난 선수였군요. 그래서 노인이 그렇게 우상화한 것 이였군요.

 

 

헤밍웨이: 우상화란 표현 보다는 존경을 넘어선 경배하는 마음이 강했다고 하는게 좋겠어요. 사실 우리 주위에 어떤 영역에서도 독보적인 성취나 경지를 보여 주면 우리는 그사람을 경외하고 존경 하잖아요. 아마 노인에게 디마지오는 그런 사람 이었던 겁니다.

또 노인을 존경하는 소년도 노인을 그렇게   존경하잖아요.

누구든 누군가를 존경하면 또 경배 하게 됩니다.

 

 

마힐: , 맞습니다.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은 나도 그 사람을 닮고 싶다는 마음도 같이 있는 것 같아요. 소설에서 소년이 노인을 존경하는 마음이 참 지극해서 마치 스승과 제자와 같이 느껴지더라구요. 소설에서는 노인이 84일동안 물고기를 낚지를 못하는 얘기로 시작 하는데요. 그래도 소년은 노인이 꼭 물고기를 잡게 되리라고 믿더라구요.

그런데 왜 하필 노인은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했을 까요?

 

 

 

헤밍웨이: 그래요. 사실 84일에 뭐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그전에 노인이 소년과 함께 87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한 적도 있었죠. 그러다 88일째 대박을 터드려 3주 내내 만선이 됐고요.

우리 인생도 순조롭지 않잖아요. 꼬일때로 꼬이는 것도 정상 아닌가요? 맨날 바다에 나가 만선을 채울 수 있나요? 그렇게 안좋다가 또 좋아지기도 하는게 인생인거죠.

그래서 노인은 삶의 경험치가 있으니 조급하지 않죠. 소년도 그런 노인을 믿는거죠.

 

 

 

마힐: , 그렇군요. 그런데 노인은 왜 어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 건가요?

 

 

 

헤밍웨이: 어부 라는 직업은 태생 부터 정해지는 직업중 하나가 아닌가 싶어요.

쿠바는 섬나라 예요.  그곳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바다와 맞닿을 수 밖에 없죠.

책에는 어부라는 직업이 예수님 제자 베드로도 어부 출신이고, 디마지오 아버지도 어부 출신이라고 표현해서 미화 했지만 우리 인류가 수렵 채집 시기 때부터 시작해서 가장 원시적 직업으로 현재까지 남은게 어부라는 직업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제가 쿠바에 살때 바다를 보면 제 남은 인생을 어부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내가 만약 어부가 되었다면 어땧을까 생각해 본거죠.

 

 

 

마힐: 그럼 노인은 작가님 자신의 분신으로 작품속에 투영 시킨 건가요?

 

 

 

 

헤밍웨이: , 사실 그렇죠.

당시  내가 쿠바에 살 때는 40대 였거든요.

사실 제 실제 노년은 62살에 끝을 맺죠.

작품속의 노인은 대략 60대라 보면 돼요. 내가 만약 쿠바에서 어부로 태어나 생을 마감하게 된다면 소설속 노인 산티아고 처럼 살게 되리라 생각 했어요.

젊을적 산티아고는 능력있는 어부였어요. 아마 행복 했을 거예요. 결혼도 했지만 자식은 없었죠. 그래서 이웃의 소년을 아들 처럼, 또 손자 처럼 사랑했던 거죠.

노년이 되면 참으로 외로워 지죠. 더구나 젊을 적에 '엘 캄페온(EL CAMPAON: 참피온 스페인어 )' 으로 불렸던 강했던 몸도 쇠해지게 되죠.

그럴때 모든 것이 변했다고 느끼겠죠.  이때 또 84일 동안 고기를 한마리도 잡지 못 하잖아요?

그렇지만 노인은 희망을 버리지 않죠. 

그러다 마지막 자신의 삶의 불꽃을 일으켜줄  강력한 동기가 나타난 거죠.

그렇게 노인은 티뷰론(TIBURON: 상어 스페인어) 을 잡아내죠.

제 실제 삶도 같아요. 저도 이 작품을 쓰기전에 이미 능력있는 작가라 칭송 받았죠. 하지만 늘 새로운 작품을 쓰지만 그게 다 히트 합니까? 저도 혹평을 당하기도 했었죠.

그렇게 저도 나이를 먹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 <노인과 바다> 란 티뷰론을 잡아낸 것 아니겠어요? 

 

 

 

 

마힐: 저도 그점에서 감동 했어요. 특히 티뷰론을 잡아내는 장면들 묘사에서 노인 혼자 고군분투(孤軍奮鬪) 하잖아요. 그것도 잠도 못자면서 힘겹게 낚시대를 들어 올리면서 소위 밀당 하는 것 처럼 낚은 고기를 낚시줄로   풀어주고 다시 당기고 내가 직접 고기를 잡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몰입감이 상당하더라구요.

특히 낚시줄에 손이 베여 피가 나오는 장면은 내 손이 베인 것 처럼 손이 쐐~ 했어요.

 

 

 

 

헤밍웨이: 맞아요. 원래 인생은 외롭지요.  고군분투 하는거죠.  홀로 낚시대를 잡고 물고기와 다투는 거와 뭐 다를게 있나요?

 

 

 

 

마힐: 그렇게 물고기를 잡아낼 때 노인은 늘 소년을 생각 하잖아요. '그 아이가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아이가 여기 있으면 좋을텐데... ' 하면서 낚시대를 잡고 있으면서 여러번 떠올리잖아요? 그것도 외로워서 그런거죠?

 

 

 

 

헤밍웨이: 노인이 외롭다기 보다는 , 사실 늙으면 다 외롭습니다.

그보다 소년과 노인은 서로 무한한 신뢰와 믿음으로 연결 되어 있어요.

작중 초반에 노인이 살라오(SALAO: 불길한 스페인어) 가 됐다고 믿는 소년의 부모에 의해서 소년을 노인에게서 떼어 놓게 되죠.

소년은 어쩔 수 없이 노인과 헤어지게 되는 거죠. 하지만 소년도 그렇고 노인도 서로 굳은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있었죠. 소년이 5살때 부터 노인을 따라 다녔잖아요?

소년은 노인을 최고의 어부로 믿었고 늘 배워야 된다는 마음이었던 거죠.

또 노인에게 있어 어부 인생 최대의 대어를 낚는데 같이 있어 지켜 봐주고 도와줄 소년이 절실했겠죠. 또 자신이 별난 노인이었음을 입증 하고 싶었죠. 그리고 함께 그 영광을 보고 누렸으면 했겠죠. 그래서 더욱 찾은 것 이고요.

 

 

 

 

마힐: 그런데 그렇게 힘겹게 잡은 티뷰론을 왜 다른 상어떼 한테 전부 뺏았기게 되나요? 결국 노인이 집으로 돌아오지만 남은건 뼈 밖에 없잖아요? 너무 아쉽지 않나요?

이점은  소설적 장치 인가요?

제가 노인 이었다면 참으로 억울 할 것 같아요.

 

 

 

헤밍웨이: 이건 소설적 장치라기 보다는 현실을 담아 낸 거예요.

노인이 물고기를 무사히 잡아와서 제대로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오히려 성한 물고기를 팔아 돈을 버는 것은   재미도 없구요. 또 피 냄새 맡아 쫓아오는 상어떼가 없다는 게 더 비현실적이에요.

현실은 바다 한 가운데서  상어떼와  사투를 벌이는 겁니다.

물론 상어떼에게 모두 다 뺏았겼다고 생각 할 수도 있죠. 또 실제로 그렇구요.

 

'인간은 패배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어. 인간은 파괴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아.'

작품속에서  잡은 물고기를 지키기 위해 상어떼와 사투를 벌이며 노인이 이렇게 말 하잖아요?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건 아니었죠.

잡은 물고기 뼈는 남게 되잖아요.  5.5미터 대형 물고기의 뼈 잔해.

노인이 젊을 적 팔씨름으로 하루 날밤을 새우고 '참피온' 이란 칭호를 사람들에게 받게 되잖아요?

노인의 본래 참피언이었음을 말년에 다시 한번 증명 한 셈이 된거죠.

비록 뼈만 남았지만 뼈를 통해서 우리는 그 노인이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잡아낸 것이라고 믿게 되잖아요?

그러니 소년은 그 뼈를 보지도 않고 알죠. 그리고 눈물을 흘리 잖아요.

이 눈물에서 진심어린 노인에 대한 존경이 느껴지죠.

 

 

 

마힐: 동화 같은 결말은 아니지만 충분히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 였네요.

그런데 작품 제목이 왜 <노인과 바다> 인가요? 노인이 주인공이라서 노인이 들어 가는건 이해가 가는데 왜 바다를 넣었을 까요? 노인과 소년, 혹은 노인과 티뷰론, 노인과 상어떼 , 어부와 물고기, 또 디마지오를 사랑한 노인등등 같은 제목도 지을 생각은 없었나요?

 

 

 

헤밍웨이: , 좋은 질문 입니다. 소설에서  한번 설명이 되어 있는데요. 노인은 바다를 라 마르(LA MAR) 라고 여성형 스페인어로 바다를 좋게 표현할 때 쓰는 말로 부르죠.

바다를 남성형 엘 마르(EL MAR)라 부르는 부류도 있지만 노인에게는 바다는 여성을 상징하죠. 바다는 만물이 기원(起源)하는 생명의 공간이죠. 바닷속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살고 있나요?

바다는 생명을 잉태하는 공간이자 또 죽음의   공간이기도 하죠.

여성 처럼 변덕을 부릴 때도 있죠. 파도가 치고 폭풍이 불고, 그래서   바다를 속셈을 알 수 없는 여성 처럼 대하는 거죠. 게다가 바다는 달에 영향을 받잖아요. 우리 여성이 월경을 하는 것 처럼 바다와 달, 그리고 여성은 하나로 이어지는 거죠.

바다에서 노인이  상어떼와의 사투에서 패배했나요?

노인이 이러잖아요. '아무것에도 패하지 않았어.', '그저   내가 멀리 나갔을 뿐이야'  

바다의 입장에서 노인이 티뷰론을 잡았든, 상어떼에 다 뜯겨 먹었든, 다   자신의 몸에서 벌어진 일 입니다. 파도가 치고, 폭풍이 몰아쳐도 다 바다에서 일어난 일이죠.

파도가 폭풍이 바다를 지배할 수 있나요?

바다는 큰 의미를 담고 있죠.

노인이라는 인간과 바다라는 거대한 공간, 그 공간에서 노인은 태어나고 자라며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포함하는 공간이 되는거죠.

 

 

 

 

마힐: <노인과 바다> 단순한 제목이라 생각 했지만 뭔가 좀 더 심오 한 면이 있네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작가님이 작품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뭔가요?

노인의 마지막 불꽃 같은 열정을 보여 주고자 한 건가요?

 

 

 

 

헤밍웨이: 전 사실 노인이 바다에서 마딱드린 고난과 역경을 이기는 그런 의미 보다는 믿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작품속에는 많은 믿음들이 있어요.

자신이 은퇴할 때 까지 양키스에서만 뛴   디마지오의 팀에 대한 믿음,  양키스는 절대 지지 않는다는 노인의 믿음, 오늘도 디마지오가 안타를 치리라는 믿음, 디마지오가 발 뒤꿈치 가시 뼈가 아픔에도 견뎠듯이 자신도 왼손의 고통을 이겨내리라는 믿음, 그리고   노인 산티아고 에 대해 소년 마놀린의 순수한 존경의 믿음 들이 있죠.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이끌어 가는 셈이죠.

시련과 고통도 다 믿음을 시험하는 거잖아요.

노인이 한평생 쿠바 바닷가를 벗어난적이   없는데 아프리카의 사자를 본 적이 있나요?

그러나 꿈속에서 백수의 왕 사자를 보잖아요. 사자는 노인 자신인거죠.

자신에 대한 믿음을 뜻하는 거죠.

그래서 전 역경 고난을 극복한 노인의 서사보다 바다에 벌어지는 믿음에 대한 서사라고 봅니다.

전 노벨상을 운 좋게 받았지만 사실 많은   위대한 작가들은 은연중에 믿음을 말합니다.

제 작품속 노인과 비슷한 연령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을 예를 들면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를 보면요,

싯다르타의 말년은 제 작품의 노인 산티아고와 비슷한 나이 대에요.

그 작품 마지막 부분에서 말년의 강가에서 싯다르타와 뱃사공간의 믿음은 어떤가요? 서로간의 믿음이 곧 자신의 믿음이지 않았나요?

또 니코스카잔차 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와 주인공인 '두목' 과의 믿음은 어땠었나요? 광산을 말아 먹었어도 그 둘의 서로에 대한 믿음은 끝까지 가지 않았나요?

결국 인간에게는 서로간의 믿음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가장  절실하지   않나 싶습니다.

 

 

 

 

마힐: , 그렇게 이해 할 수도 있겠군요.

앞으로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기회가 된다면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독후감 인터뷰 소환에 응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헤밍웨이: , 문학은 주관적인 세계를 표현한 겁니다. 객관적일 수가 없어요. 해석은 각자의 영역입니다. 맞고 틀리고가 없는 거죠. 제가 표현한 서사는 제 생각을 벗어난 영역이 되면서  독자는 달리 해석 할 수 있는 겁니다.

어찌 이 우주에 똑 같은 별이 있을 수 있나요? 같은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것 같아도 결국 다 다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나를 떠나서 존재하는 세계는 없습니다.

 

 

 

마힐: 해밍웨이님. 저의 지면 관계상 이렇게 아쉽게도 끝을 맺어야 하네요.

다음번에 소환해서  좀더 깊은 대화를 나누는 걸로 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 했고요. 저승에서 잘 지내시고요.  안녕...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 불멸의 기록이 되었다.>

 

 

 

양키스는 지는 법이 없어. 양키스를 믿어라. 위대한 디마지오가 있잖니 - P17

퀘바(Que Va) 천만예요. 고기 잘 잡는 어부도 많고 실력이 월등한 어부들도 있긴 있어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독보적이에요. - P26

사자들은 황혼 녘이면 새끼 고양이처럼 뛰놀았고 노인은 소년을 사랑하듯 사자들을 사랑했다. - P28

나는 자신감을 가져야 해. 발뒤꿈치 가시 뼈가 몹시 아플 텐데도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는 위대한 디마지오 처럼 나도 훌륭해져야 한단 말이지. - P82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이 말했다.
인간은 파괴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아. - P127

"그놈들 한테 내가 졌어,마눌린" 노인이 말했다.
"놈들에게 제대로 지고 말았어"
"그 물고기 한테 지신 건 아니예요. 그 물고기는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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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6-25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힐님!
가상 인터뷰 기사 잘 읽었어요😄😄
저도 7월엔 ‘노인과 바다‘를 한 번 정독해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인터뷰 내용, 참조하겠습니다^^

마힐 2024-06-26 16:51   좋아요 1 | URL
전 ‘양키스를 믿어라‘ 에서 꽂혔는데요. 페넬로페님은 어느 부분에서 꽂힐까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