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생문 (라쇼몽) - 1915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ㅣ 소와다리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5년 9월
평점 :
책 제목: 라쇼몽(나생문)
지은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제 목: 광기(狂氣)의 불꽃은 지옥문을 불 태우고
이번에 읽게 된 <라쇼묭> 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 의 단편 소설집이다.
출판사는 소와다리, 1915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이란 표지가 맘에 들어 구매하게 되었다. 이 책의 특징은 요즘 책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세로 읽기로 되어 있어 사라진 옛날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라쇼몽' 은 영화 <7인의 사무라이> 로 유명한 구로사와 아키라(1910~1998) 가 제작한 영화로도 알려져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은 별다른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일부러 찾아 보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어쩌다 흥미가 생겼는지...)
이번에 읽은 소와다리 판본의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소설들 중에서 그의 대표적 작품 10편을 엄선해서 시대순으로 실려져 있다.
이 소설들은 작품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하지만 작가의 어떠한 의식을 공유 하고 있는 듯 하다.
먼저 소설의 타이틀인 <라쇼몽> 작품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대표적 작품이다. 나생문(羅生門 라쇼몽 )은 나찰들이 사는 곳이란 뜻과 도시 외곽에 폐허가 된 수도의 정문이란 뜻을 함께 지니고 있다. 비오는 날 나생문에 간 인물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강도짓을 하느니 차라리 굶어 죽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런데 마지막엔 돌연 강도가 되는 길을 선택 하고야 만다.
다음 작품< 코> 에서는 자신의 코가 너무 긴게 싫어서 코를 짧게 만들려는 승려의 고군분투(?)가 담겨 있다. 결국 자신의 바램대로 코는 짧아 졌지만
모순 되게도 예전의 길었던 코를 그리워 한다.
<여체> 에서는 양모라는 중국인이 작은 벌레인 이가 되는 에피소드인데 사람일 때는 몰랐던 아내 육체의 아름다움을 이가 되어서야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어지는 <지옥변>은 이번에 읽은 류노스케 작품들 중 가장 좋아하게 된 작품인데 요시히데라 불리는 화가의 예술에 대한 광기(狂氣)를 다루고 있다. 성주의 명령으로 '염열지옥(焰熱地獄)' 이라는 지옥의 무시무시한 장면을 그리게 된 요시히데의 광기와
그에 뒤지지 않는 변태 성주 간의 갈등의 긴장감이 팽팽하다. 그렇게 요시히데와 성주의 광기는 폭주를 하고 마침내 충돌하여 미친 불꽃을 피우게 된다. 그들의
광폭(狂暴) 은 끝내 지옥 불을 일으키고 요시히데는 결국엔 지옥변상도를 그려낸다.
<거미줄> 에선 부처님은 지옥에 떨어진 죄인을 내려다 본다. 그에 대한 자비의 마음으로 인해 그 죄인이 생전에 딱 한번 했었던
선행인 거미를 죽이지 않고 살려 줬던 공덕을 알게 된다. 그래서 거미줄을 지옥으로 내려 보내 그를 살리고자 한다. 하지만 죄인의 욕심으로 인해 거미줄은 끊어지고 죄인은 다시 지옥에 떨어지고야 만다.
<귤> 에서는 기차 옆자리에 함께 앉은 촌스러운 외모의 소녀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화자(話者)는 쉽게 피로감과 권태를 느낀다. 그러다 창밖으로 동생들에게 귤을 던지는
소녀의 심성을 보고 방금 느꼈던 피로감과 권태 그리고 따분함 마저 잊게 된다.
<파> 라는 소설에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멋진 남자와
생애 첫
데이트에 들뜬 다방 레지 출신의 소녀의 일상과 설렘을 담았다. 꿈같은 데이트가 되리라 기대했던
설레임과 달리 데이트 장소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장 골목에서 파 두단을 사는 것으로 마무리 되어진다.
다음 이어지는 <덤불 숲>은 영화 <라쇼몽> 의 실사화 된 소설이기도 하다.
죽은 사무라이의 범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고 소설 전체를 통해 묻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의 서로 다른 시점과 해석들로 인해 끝내 진실을 알 수가 없게 된다.
<흰둥이> 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흰색 강아지가 까맣게 변해 버린다. 흰둥이로만 알고 있던 자신이 검둥이로 바뀌자 주인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우여곡절 방랑 끝에 결국 흰둥이의 모습으로 주인에게 돌아오게 된다.
이쯤 되면 류노스케의 작품을 이어가고 있는 소설적 장치 구조에 대해 대략 감이 잡힌다.
소설의 매 작품마다 처음엔 그럴 의도가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해버리는 '변덕' 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매번 반복 되게 그려
내고 있다.
굶어 죽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강도가 되어 버린다거나, 긴 코가
싫어 짦게 만들려 했지만 다시 긴 코를 원하게 된다, 또 평상시엔 몰랐지만 하잘 것 없는 이가 되어서야 아내의 아름다움을 새삼 알게 되었다는 등 양극단의 모순을 지닌 인간 마음에 대해 표현 하고 있다. 심지어 성인인 부처 조차도 자비심의 마음으로 살리려 했던 죄인을 다시 지옥으로 떨어드리고야 만다.
작품속의 등장 인물들은 늘 항상 이렇게 하려다가 저렇게 결정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째서 '변덕' 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동일한 패턴으로 보여주는 것 일까?
류노스케에게 모순된 감정은 어떠한 의미였을까?
<덤불 속> 에서 사무라이의 죽음이라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함께 공존 시키고 있다. 이것은 일명 '라쇼몽 효과' 라고도 부르는데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으로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즉 그의 소설 작품 속에서 류노스케는 무엇이 절대적으로 옳다, 이것이 바로 진실이다 라고 주장을 하지 않는다.
마음의 본성은 고정 되지 않았음을 각각의 소설속의 서로 다른 상황과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결국 류노스케는 모순이란 감정 또한 고정되지 않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에서 마지막 작품으로 소개 되는 <톱니 바퀴>는 그의 단편 소설중 가장 난해한 내용을 지녔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로 유명한 우리나라 작가 이상(李箱: 1910~1937)이 떠올랐다.
학창시절에 읽은 이상의 <날개> 에서 주인공 '나' 는 자신만에 세계에 빠진 자폐증 환자와 비슷한 심리를 다루고 있다고 느꼈었다.
류노스케 의 <톱니 바퀴> 에 등장하는 '나' 역시도 정신 착란증을 앓는 작가 자신의 심리를 다루고 있으며 자신이 곧 죽게 되리라는 암시를 읽게
된다. 실제 류노스케는 이 작품을 유작(1926) 으로 다음해
(1927년) 에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생을 마감한다.
이번 리뷰에 사족을 붙히면 일본의 류노스케와 한국의 이상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먼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둘 다 한창 나이에 요절 했다는 점이다.
류노스케는 1892년 태어나 1927년에 극단적 선택으로 35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상은 1910년 생에 1937년 에 폐결핵으로 인해 27세에 세상을 떠났다.
또한 이 둘은 죽은 후 자신들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만들어 졌다.
'아쿠타가와상' 은 일본의 대표적 문학 신인들을 선별하는 권위의 상이 되었고 '이상 문학상' 은 동인 문학상, 현대 문학상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문학상중 하나가 되었다.
그 외에도 두 명은 대중에게 알려진 이름외에 자신의 본래 성(姓)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류노스케는 어릴 때 친부를 일찍 여의는 바람에 외삼촌의 양자로 들어가는 바람에 친부의 성을 쓰지 않고 외가쪽의 성 '아쿠타가와' 라는 성을 쓰게 되었다. 아울러 이상은 필명이고 김해경(金海卿) 이란 이름이 본명으로 '이씨'가 아닌 '김씨'이다.
마지막으로 둘 다 당시 최고 학벌 출신이었다.
류노스케는 동경제국대학(현, 동경대학교) 문과대학 영문과 출신이었고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출신이란 점이다.
둘의 이미지는 천재라는 점이 공통점이 있는것 같다.
알려진 바대로 둘 다 동시대를 살았으며 실제로 서로 만난적은 없지만 이상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동경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그들 모두 불운하게 삶을 마감하는 현실의 삶 까지 비슷하다.
그러니 류노스케의 톱니바퀴 작품에서 이상이 떠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나 싶다.
이상이 류노스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류노스케는 왜 자살 했을까? 류노스케의 돌연한 자살은 단순히 정신병 때문일까?
정신병을 앓았던 류노스케 모친의 유전적 원인 때문 이었을까? 아니면 천재들은 본래 불운하며 단명 한다는 일종의 운명 때문 이었을까? 우리가 지닌 모순된 감정 또한 인간 본성이라는 사실을 누구 보다 알았던
작가는 왜 자살을 선택 했을까?
이 또한 보통 사람은 이해 못하는 천재 지식인의 작가적 고뇌 였을까?
이것도 아니라면 류노스케는 <지옥변> 의 요시히데와 같은 예술적 광기를 선택한 것일까?
류노스케의 자살에 대한 의미는 여전히 미스터리 하다.
<덤불 숲>의 사무라이 죽음과 같이 그의 죽음 또한 라쇼몽 효과로 해석해야 되지 않을까?
결국 류노스케 삶 자체가 바로 라쇼몽이 아니였을까?
君看雙眼色 군간쌍안색 (그대여 두 눈빛을 들여다 보라) 不語似無愁 불어사무수 (말하지 않으니 수심이 없는 것과 같지만) - P11
그렇다면 내가 강도짓을 해도 원망하진 않겠지,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몸이거든 <나생문> 중에서 - P30
인간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이 있다. 물론 타인의 불행을 동정하지 않을 자는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 불행을 어떻게든 해서 타계할 수 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이쪽에서 왠지 섭섭한 기분이 든다. <코> 중에서 - P46
다시 말해 그가 그린 지옥은, 천하제일 화사 요시히데 자신이 언젠가 떨어질 지옥이었던 것 입니다. <지옥변> 중에서 - P80
게다가 급기야는 그 가냘픈 손가락을 뻗어 한 단에 사 전이라는 팻말이 서 있는 파 더미를 가르키며 <방랑> 이라는 노래라도 부르는 듯한 목소리로, "저거 두 단 주세요‘ 하고 말했다. <파> 중에서 - P172
뿐만 아니라 내 시야 안에서 묘한 것을 발견했다. 묘한 것! 그것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반투명한 톱니바퀴였다. <톱니바퀴> 중에서 - P238
아무것도 아니긴 한데요. 그냥 왠지 당신이 죽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톱니바퀴> 중에서 - P2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