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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ㅣ Philos 시리즈 27
사이토 고헤이 지음, 정성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3월
평점 :
책 제목: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DAS KAPITAL 資本論)
지은이: 사이토 고헤이 지음/ 정성진 옮김
제 목: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힘 되찾기
마힐: 안녕하세요. 저는 마힐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자본론>이란 책을 펴낸 원작자 칼 마르크스(1818~1883)님을 모시고 가상 인터뷰를 진행 하도록 하겠습니다.
원래는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을 쓴 사이토 고헤이 상(樣)을 모셔 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원저자를 모시는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이토 고헤이 상한테는 아쉽겠지만 나중에 별도로 한번 모실 기회가 있으니 그때 까지 참아 주세요.
칼 마르크스: 암, 그렇지. 아무래도 원조가 가장 근본이 되는게 아닌가? 사이토 고헤이 군 보다야 내가 더 박식하지.
마힐:네, 저도 선생님 처럼 생각 하는데요. 근데 마르크스님의 책을 접하기가 쉽지 않아요. 생각 보다 훨씬 진입장벽이 높아요. 특히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선생님 책은 거의 금서나 다름 없었어요.
칼 마르크스: 금서? 음. 나도 지하세계에서 대략 알고 있어. 그럴만도 하겠더구만. 그래도 지금은 많이들 읽잖아? 자네 같은 사람도 읽을 정도면 대중적인 책이 된거지..
마힐: 뭐, 예전에 비해선 대중적이 된게 맞긴 하죠. 선생님이 자본론이란 책을 1867년에 쓰셨잖아요. 저희는 거의 100년이 지나서 1970년대가 되어서야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몰래 보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때는 독일 원서가 아닌, 미국이나 일본 이런데서 몰래 입수해서 봤데요. 지금은 선생님 책을 읽으라고 해도 않 읽는 시대가 됐었지만요... 먼저 선생님 소개 좀 간략히 부탁드려도
될 까요?
칼 마르크스: 나, 칼 마르크스라고 하네. 독일의 트리에르 지역 출생으로 8남매중에 셋째, 장남으로 태어났어. 원래 집안은 유대인이고 대대로 랍비 노릇을
했다고 해. 그런데 기독교로 개종 했지. 부모들도 먹고 살아야지. 유대인이란 사회 시선을 가지고 당시 유럽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쉬운게 아니야.
마힐: 아, 제가 보면 좀 천재적인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많던데... 역시 선생님도 유대인 출신 이였군요.
칼 마르크스: 유대인은 우리 조상님 이였고, 난 독일인야.
내 아버지는 당시에 아주 잘
나가는 변호사 였어. 그래서 소싯적엔 돈 걱정 없이 살았지. 난 원래 시인이 되고 싶었어. 그런데 아버지가 법학를 전공해야 된다고
하는 바람에 마음에도 없는 법대에 들어갔지. 그땐 맨날 아버지 용돈으로 놀기만
하고 시(詩)만 주구장창 써댔지.
마힐: 아, 원래 마르크스님은 시인이 되고 싶었군요. 시를 쓰셨다면 감수성이 되게 예민 하셨나봐요? 그런데 제가 궁금 한게 하나
있는데요. 선생님 초상화나 남겨진 사진을 보면요. 위, 아래 할 것 없이 전부 곱슬 머리,곱슬 수염으로 더부룩 하거든요.
그때도 그랬나요? 항상 늙은 노인의 이미지만 있어 가지고 서요.
같은 19세기를 살았던 찰스 다윈(1809~1882) 이나 레프 톨스토이(1828~1910) 도 보면 또 비슷하게 흰 수염을 엄청 길렀거든요. 그런 스타일이 그 시대에는 먹혔나 보죠?
칼 마르크스: 난 다윈이나 톨스토이 보다 머리 숱이 많아. 비교하지마. 나도 왜 사람들이 내 이미지를 배불뚝에 덥숙룩한 머리와 수염을 기른 모습만 상상하는지 이해가 안돼.
난 그 사람들 보다 훨씬 잘 생겼다고. 안 믿기나 보지?
마힐: 죄송합니다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칼 마르크스: 이 친구 참 뭘 모르네. 내 외모와 나의 재능에 반한 사람이 내 와이프야.
내가 베를린 대학시절에 '제니 폰 베스트팔렌(1814~1881)' 양과 비밀 약혼을 했었지.
마힐: 아. 낭만이 넘치셨군요. 그런데 한가지 의문은 선생님은 남부럽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부인이 되신 제니 양의 집안도 명문가의 딸이라고 하는데요.
그냥 선생님 아버지가 원했던 변호사가 되거나 혹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데도 왜 굳이 힘든 삶을
사셨는지 이해가 안가는데요.
자본론도 따지고 보면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 하고 있지 않나요?
칼 마르크스: 난 말이야. 인류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어. 진짜로 말이야.
나는 편안한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내 성격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뭐든지
한 곳에 꽃히면 그것만 깊이 파고드는 경향이 있었지. 내가 학창시절에 결투도 여러번 하고, 나중엔 총 까지 들고 다녔었어. 죽는 것? 두렵지 않았어. 안 믿겨?
나의 투쟁적 성격은 본능이야. 전사의 피가 흘렀다고...
마힐: ......... 마르크스님이 전사의 피가 흐른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칼 마르크스: 아마도 내 자신도 몰랐지만 유대인들 피 속엔 저항이라는 DNA가 있을 꺼야. 비록 내 아버지가 기독교로 개종 했고 나도 무신론자라고 해도
말이야. 결국엔 본능이란 게 있단 말이지.
어릴적 난 유복하게 살았고, 난 내일은 생각지도 않았어, 늘 오늘만 있었지.
그런 내 성향 깊숙이 또 기존
체제의 불합리한 것들에 대한 반감이 자리 잡고 있었어.
특히 법을 공부 하면서 말이야. 법이란게 사실 보면 없는 사람들를 위한게 아니라 가진자를 변호하는게 무척이나 많았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한때 신문사의 저널리스리트로 활동 하면서 만났던 아래 계층의 사람들이 받는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 분개 할 수 있었던 거야.
난 그들이 받는 불평등에 대해 그 원인을 사회 구조 문제라고 봤던 거지.
마힐: 아, 그럼 자본론은 불평등에 관한 내용 인가요? 제가 사이토 상의 책을 보면서 선생님 자본론의 핵심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노동과 상품, 가치로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 했거든요.
칼 마르크스: 그걸 이해라고 하면 안돼. 물론 틀리진 않아. 하지만 내 사상은 훨씬 심오해.
이봐. 공부 좀 더 해 보라구. 그건 너무 수박 겉핡기 식이야.
자네의 이해 수준에 맞추어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상품을 팔아야 돌아가는 구조야.
그 상품은 노동을 통해 만들어 지고, 그 상품은 가치가 있어야 팔 수 있는 거지.
난 이윤이란 말을 쓰지 않지. 이윤은 자본가들이 하는 말이고 나는 '잉여 가치' 라고 부르지.
이 과정중에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아 즉,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해서 자본가에 파는 거지.
자본가는 정당하게 노동의 댓가로 임금을 줬다고 여기지만 노동자는 노동력을 통해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고 , 그 상품의 가치는 잉여 가치가 되어 자본가의
자산을 불리게 만들지.
여기서 노동자는 잉여 가치에 대한 어떤 지분도 얻지 못해.
자본가는 노동의 댓가로 얻어낸 잉여 가치를 노동자 한테서 착취를 한 거잖아.
노동을 한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 되고 있는거야.
세상에 이런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관계가 어디 있나?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모순
된 것이라고 본 거야.
난 그걸 면밀하게 관찰하고 또 파헤쳤지.
어떻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해결 할 수 있을 까?
마힐: 아, 그래서 < 공산당 선언> 의 명 구절, "만국의 노동자들 이여 단결하라!", 고 하신 것 아닙니까? 불평등한 대우를 개인이 항의하는 것 보다
단체 행동을 통해 하는게 더 효과적이라서 단결하라고 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구절 때문에 우리나라는 파업이나 시위가 너무 많아서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질렸어요.
제가 어릴 때 80년대만 해도요. 근로자 아저씨들하고 전경 아저씨들 하고 화염병을 던지고, 최류탄을 쏘고 온 도시가 숙대밭이 된 게 한 두번이 아니었거든요.
칼 마르크스: 결국 그래서 노동자들은 자기들 권리를 챙취 했잖아.
그 당시 그들은 인간적으로 대우 받길 원했던
거야. 자네가 당시에 어려서 몰랐던 거고.
시위는 질린다고 생각 해선 안돼. 모두가 엄청난 댓가를 치루는 과정 이었던
거야.
자네 나라 얘기를 해 보자면 내 사후의 일인 셈인데... 나도 지하 뉴스를 보면서 알았지만.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 시간 준수 하라고 청년 전태일이 청계천에서 분신을 한 게 1970년이야. 자본가의 시각으로 노동자는 부려먹는 존재에 불과
했던 거야.
그런데 그전에 이미 1886년 5월 1일 미국에서는 8시간 근무시간을 요구하며 총 파업을 했었던
적이 있었지. 이때 시위중에 많은 사상자가 났었어.
그 뒤 1890년 5월 1일에도 프랑스에서는 노동자 단결의 날 로 정하고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한 시위를 했었지.
이후 5월 1일은 메이데이MAY DAY로 불리고 한국, 중국, 유럽에서는 노동자의 날이라 정하게 되었던 거야.
내가 1848년에 '만국의 노동자들 이여 단결 하라' 고 했어도 실제로 근무시간 8시간 준수 되기 까지는 15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걸렸어.
내가 자본론에서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을 하잖아?
그런데도 지금은 8시간 준수는 지킬지 몰라도 자본가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잉여 가치를 쌓고 있어.
마힐: 그렇군요. 전 무척 선동적인 문구라 금방 다 이루어 진게 아닌가 했는데 정말 많은 시간에 걸쳐 이뤄낸 거였군요.
칼 마르크스: 내가 프랑스 파리에서 내 친구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게 1848년 인데 그때 내 나이 30살이야. 한창 젊은 혈기 였지.
그땐 프롤레타리아 계층 즉, 무산계급, 노동자층의 주도로 사회를 변혁 시켜야 된다고 생각 했어.
가진자들 즉, 자본가들은 순순히 자기들 기득권을 내놓지 않을 꺼라고 봤지.
그래서 공산당 선언에서는 무력으로 권력을 뺏앗자고 했었지.
아마도 이 부분 때문에 공산당은 과격하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킨거라고 봐.
그런데 나는 1849년 그 다음해에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망명하게 돼.
여기서 잠깐 나의 이력을 좀더 살펴 봤으면 해.
왜냐면 내 자본론이 그냥 나온 책이 아니거든.
마힐: 아마도 선생님의 마르크스 사상도 단계별로 이루어 지는가 보죠?
마르크스 : 그렇지. 일단 나의 시기는 크게 3단계로 나눠진다고 보면 돼.
독일 시절, 프랑스 시절, 영국 시절까지 이렇게 3개국을 거쳐 가며 살았어.
독일 시기때 당시에 유행했던 헤겔(1770~1831) 철학에 영향을 받았지. 헤겔의 변증법 알지?
정반합으로 유명하잖아. 그 당시 헤겔의 사상은 독일 젊은이들에게 크게 영향을
줬어. 나도 한때 헤겔의 사상에 심취했으나 그의
사상은 절대정신 이라는 관념론적 성향과 나의 유물론적 성향은 맞질 않아. 난 헤겔의 영향을 받았지만 난 철저한 유물론자야.
이후 프랑스 시절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확고 해졌지.
그러다가 결국 영국으로 망명해.
그곳에서는
조용히 지내. 아니 홀로 도서관에서 수련했어. 나는 수도자들이 도를 닦는 심정으로 도서관에서 아침 저녁까지
앉아서 책을 보고 분석하고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지. 사상을 숙성 시켰다고나 할까?
그렇게 완성 된 것이 1867년에 발표한 자본론 이야.
마힐: 선생님이 발표한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 사이에 19년의 시간의 갭이 있었군요.
마르크스: 나의 자본론은 공산당 선언과 같이 선동과 과격한 논리로 자본주의를 전복 시키자는 내용이 아니야. 나는 그 시간 동안 정말로 당시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구조를 면밀히 분석했어. 사회주의니 공산주의 같은 내용은 나오지도
않아.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오해를 하지.
마힐: 저도 그랬습니다. 사이토 상의 책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 을 읽지 않았다면 저도 마르크스 사상은 공산주의 사상이다 라고 생각 하면서 평생을 살 뻔 했으니까요.
칼 마르크스: 난 자본론을 총 3권으로 구성 했었는데 1권은 1867년에 출판 됐지만 2권과 3권은 내 사후에 출판 됐어. 사실 엄밀히 따지면 미완성의 작품인거지.
친구 엥겔스가 내 원고를 정리 해서 2,3권을 모두 출판 시킨 거야.
사실 2권은 7번에 거친 수정을 거쳤기 때문에 거의 완성을 했다고 봐. 그런데 3권은 사실 내가 1권을 쓸 때 구상은 했지만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고 볼 순 없어.
엥겔스가 3권을 집필하면서 내 본래 사상은 희석 되었지만 오히려 자본론은 대중화가 된 셈이지.
마힐: 아.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 그런데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사실 선생님과 여쭤 볼 께 많았거든요. 자본주의 사회와 코뮤니즘의 차이 같은거나 공산주의 사회의 문제점, 그리고 케인즈라는 경제 학자와 선생님 사상
비교 같은것 등등. 또 가쉽거리로 혼외자 사건 같은 이슈 같은
것도 좀 물어 볼까 했는데요. 또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등가 교환의 법칙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 등등...
그런데 지면 관계상 더 진행 할 수 없게 되어 아쉽 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시면 간략하게 좀 부탁 드립니다.
칼 마르크스: 자네 지금 장난 하나? 좀 거창하게 물어 볼 것 처럼 하더니만
이렇게 끝내 버리자구? 에이... CX... 부루주아 돈 앂는 소리 하고 있네... 내 예전 성격 같으면 그냥 확...
뭐, 한마디만 하고 가겠네.
내 사상의 유통기한이 끝났다고 지금 사람들은 말 하고 있지만 난 아직도 무덤에서 살아 있네.
난 예언자가 아니야. 난 내가 생각하고 숙고한 것을 저술 했을 뿐이야.
어쩌면 요즘 시대에서 말하는 시나리오중 하나를 말 한 거야.
그런데 나의 시나리오를 맹신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있어.
자신의 생각과 관점으로 보는건 자유지만 내 의도가 뭔지는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냥 봐. 내가 뭘 얘기 했는지.
사이토 상이 아주 좋은말을 했더군.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힘 되찾기 위해서라도 자본론을 읽어야 한다' .
일본인을 비롯한 동양인을 별로 내가 좋아 하진 않는데 난 이 말엔 박수를 쳐주고 싶네.
무덤으로 돌아가겠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죽지 않았네. (연기만 솔솔..)
마힐: 선생님 말씀 감사 합니다. (한마디가 아니 시군요.... 욕도 프롤레타리아식으로하시네요. )
저는 이번 인터뷰를 진행 하면서 저의 부족한 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다음번 다른 기회로 만난다면 선생님과 설전을 펼칠 수 있도록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무덤에 있는 사람 다시는 깨우지 말아야 할 텐데...)
자본주의는 인위적으로 ‘희소성‘을 만들어 사람들의 삶을 가난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33
국제 NGO옥스템에 따르면, 세계 부호 상위 26명의 자산 총액은 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약 38억명의 자산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중략.... 반면 서민들은 장시간 노동, 불안정 고용, 저임금 등을 강요 당하며 점점 가난해져만 갑니다. - P39
이 착취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자본론>의 목적이 아닙니다. 이 점은 종종 오해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우리가 오히려 물어야 할 것은 착취의 존재가 드러났는데도 왜 노동자들은 묵묵히 일을 계속하는가 하는 문제 입니다. - P70
노동 과정에서 극히 비열하고 혐오스러운 전체 지배에 노동자를 복종시키며, 그의 생활시간을 노동 시간으로 전환시키고 그의 처지를 자본이라는 저거너트의 수레바퀴에 던져 넣는다. <저거너트: 사람들에게 절망적인 희생을 강요하는거대한 힘> - P122
우리는 코뮤니즘이라는 유토피아를 상상하기 위해 <자본론>을 읽어야 합니다. - P199
각자는 그의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그의 필요에 따라!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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