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한비자 ㅣ 낭송Q 시리즈
고미숙 기획, 한비 지음, 구윤숙 옮김 / 북드라망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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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나레이션) 16세기 일본은 수많은 영주가 서로 싸우던 전국시대였다. 그 격정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 세 사람이 차례로 등장하며 일본 통일에 다가서게 되었다. 먼저 등장한 오다 노부나가는 강력한 군사력과 과감한 개혁으로 기존 질서를 깨뜨렸지만,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신으로 혼노지에서 죽었다. 그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뛰어난 정치적 수완으로 일본을 통일했다. 그러나 조선 침략이라는 무리한 전쟁을 일으켰고, 그가 죽은 뒤 정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사람은 오늘 이야기 주인공,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그는 앞선 두 사람의 시대를 모두 살아남았고, 마침내 새로운 막부를 열었다.

그리고 그 막부는 약 260년 동안 이어졌다.

이에야스와 한비 선생의 법가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뭔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비 선생에게 이 인물을 직접 만나보자고 제안했다.


이제 시공간을 넘어 마련한 작은 찻자리이다. 

한쪽에는 일본 전국시대의 끝에서 천하를 얻은 이에야스가, 다른 한쪽에는 2천여 년 전 군주의 통치술을 고민했던 한비가 앉아 있다.


마힐: 이에야스 공, 어제 저는 조선의 이순신 장군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일본 사람들(사실은 '놈들'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의  신의를 믿을 수 없다고 하셨지요. 침략과 전쟁을 겪은 우리 조선사람으로서는 당연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이에야스:  그 말에 내가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소. 히데요시가 일으킨 조선 침략은 조선에 큰 고통을 주었고, 일본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소.


마힐: 그나마 공께서는 그 전쟁에서 일본군의 주력 지휘관으로 조선에 건너가지는 않으셨죠.


이에야스: 에휴...네.  그렇다고 내가 그 시대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나는 전쟁이 끝난 뒤의 일본이 다시 전국시대 같은 혼란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랐소.


한비: 그렇다면 공께서 고민한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보다, 승리한 뒤에 전쟁을 반복하지 않는 방법이었겠군요.


이에야스: 네, 천하를 얻는 데 칼이 필요했다면, 천하를 유지하는 데에는 칼 이외의 것이 필요했소.


마힐: 두 분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일본에는 울지 않는 두견새를 두고 세 사람(앞에 설명했던 오다, 도요토미, 도쿠가와) 의 성격을 비교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히데요시는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겠다.”

이에야스 공은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

물론 후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만, 세 사람의 특징을 참 재미있게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이에야스: 하하. 후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말이오?


한비: 마지막 이에야스 당신이 가장 흥미롭군요.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을 기다린다는 뜻입니까?


이에야스: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오. 하지만 기다림에도 때가 있는 법이지. 젊은 날에는 강한 자에게 맞서 살아남을 수 없었소.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었고, 히데요시가 천하를 장악했을 때는 그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소.

그러나 세키가하라에서는 결전을 피하지 않았소. 오사카 전투에서도 칼을 거두지 않았소.


마힐: 그렇다면 이에야스공의 기다림은 단순히 참고 견디는 일이 아니었군요.


이에야스: 사람이 원하는 것을 모두 당장 얻으려 한다면 세상에 싸움이 끊이지 않겠지. 내게 필요한 것은 오늘의 승리가 아니라 내일도 남아 있을 힘이었소.


한비: 흥미롭습니다. 당신은 욕망을 버린 것이 아니라 욕망을 다스린 것이군요.


마힐: 저는 이에야스공의 그 기다림이 한비 선생님의 무위(無爲)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한비: 그래요.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군주가 자신의 기분과 재주를 앞세워 모든 일에 개입하지 않고, 사람들이 정해진 질서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것이지요.

다만 기다릴 때와 움직일 때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위가 아니라 무능일 것입니다.


한비: 그런데 공께 묻고 싶습니다. 천하를 얻은 뒤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에야스: 흔히들 전쟁에서 이기는 일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하지 않소. 일본의 다이묘들, 즉 영주들에게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소. 그들이 소유한 영지와 성, 그리고 가문의 이름이죠.

그 모든 것을 빼앗으면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 싸울 것이오. 그러나 정해진 질서를 따르면 가문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면 사정이 달라지지.


마힐: 실제로 도쿠가와 막부는 영지의 재배치와 몰수, 성과 군사활동에 대한 규제를 통해 다이묘들을 통제했습니다. 후대에는 참근교대(参勤交代)로 제도화되었지요.


한비: 참근교대라니, 무슨 뜻입니까?


이에야스: 쉽게 말해 각 지방의 영주들이 자기 영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기적으로 쇼군이 있는 에도에 올라와 일정 기간 지내도록 하는 것이오.


마힐: 1635년, 3대 쇼군 이에미쓰 때 정례화되었습니다. 영주들은 대체로 에도와 자신의 영지를 오가며 번갈아 거주해야 했고, 아내와 자녀들은 에도에 머무르는 체제였습니다.


한비: 그렇다면 영주가 마음대로 군사를 일으키기 어렵겠군요. 가족도 에도에 있고, 오가는 데에도 많은 비용이 들 테니까요.


마힐: 그렇습니다. 영주들의 경제력과 행동을 제약하면서 막부에 대한 복종을 유지하는 수단이었습니다.


한비: 허허, 흥미롭군요. 칼을 들고 매일 감시하지 않아도 제도 자체가 영주들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군요.


마힐: 일본 막부의 통치 방법이 한비 선생님의 법·술·세와 비슷하지 않나요?

법(法)은 영주들이 따라야 할 규칙이고, 술(術)은 그들의 이해관계와 행동을 관리하는 방법이며, 세(勢)는 그 규칙을 집행할 수 있는 쇼군의 권위와 힘입니다.


한비: 혹시 그렇다면 이에야스 공이 죽은 뒤에도 그 질서가 유지되었나요?


마힐: 네, 그렇습니다. 이에야스 공은 1616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기초를 놓고 후계자들이 발전시킨 막부체제는 19세기까지 약 26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한비: 허허, 놀랍군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마힐: 저도 선생님께서 그렇게 감탄하실 줄 알았어요. 이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고 봤거든요. 


한비: 네, 맞아요. 선생께서는 어제 제 통치술이 실제로 성공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이론이 아니냐고 물으셨지요?

그런데 한 사람의 재주로 천하를 얻는 것과,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군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죽은 뒤에는 무엇이 나라를 다스려야 하겠습니까?


마힐: 당연히 사람을 대신할 원칙과 제도겠지요.


한비: 네, 바로 그것입니다! 군주가 매번 나서지 않아도 신하들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움직이게 만드는 것. 제가 고민했던 것도 그 문제였습니다. 그 일본의 군주가 제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들려주신 통치의 구조는 제가 추구했던 것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이에야스: 제가 그대의 사상을 배운 적은 없지만, 그 설명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군요.


한비: 물론 공께서 법가를 따랐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사람들의 욕망을 읽고, 권위를 세우고, 규칙을 남겼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특히 훌륭한 군주 한 사람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후계자들이 이어갈 질서를 마련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마힐: 선생님, 저는 여기서 법가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한비: 뭔가요? 말씀해 보시지요.


마힐: 선생님의 법은 국가의 규칙이지만, 그 법을 세우고 유지하는 사람은 결국 군주입니다. 군주가 자신의 욕망에 따라 법을 흔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비: 제가 글에도 밝혔지만 좋아하는 신하에게는 상을 주고, 미워하는 신하에게는 벌을 내리겠지요. 그러면 신하들은 법이 아니라 군주의 기분을 따를 것입니다.


마힐: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법이란 단순히 백성과 신하를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군주 자신의 욕망에도 경계를 세우는 원칙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야스: 그 말에 동의하오. 사람이 권력을 얻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소.

하지만 법을 세우는 자가 먼저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어떻겠소?


한비: 좋은 질문입니다. 군주가 자신의 감정에 따라 상벌을 뒤집는다면 신하들은 법이 아니라 군주의 기분을 살피겠지요.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마힐: 무엇인가요?


한비: 이에야스 공의 인내는 그 사람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법은 그런 능력이 없는 후계자에게도 작동해야 합니다. 저는 훌륭한 군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야스: 저도 한비 선생님의 그 말씀에 동의하오. 나 역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언젠가는 죽을 테니 말이오.


마힐: 그러고 보면 두 분은 서로 다른 길에서 같은 문제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한비 선생은 제도에서 출발해 군주의 절제를 요구했고, 이에야스 공은 자신의 인내를 통해 얻은 권력을 제도로 남기려 했습니다.


한비: 제가 공께 한 가지 묻고 싶군요. 오래 유지되는 질서가 반드시 올바른 질서이겠습니까?


이에야스: 반드시 그렇지는 않겠지. 오래 유지되었다는 것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뜻이지, 모든 사람이 만족했다는 뜻은 아니오.


마힐: 네, 말씀대로 실제로 막부시대에도 신분의 제약과 기근, 반란이 있었습니다. 결국 막부도 무너졌지요.


한비: 그렇다면 우리가 확인한 것은 영원한 통치의 비결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일정한 질서 안에 묶어두는 방법이겠군요.



(마힐 나레이션) 나는 오래전 읽었던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 을 떠올렸다.

그 소설 속 이에야스는 단순한 정복자보다,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끊임없이 다스리는 수행자에 가까웠다.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작가가 상상한 내면이었지만, 그 모습은 한비의 무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마힐: 이에야스 공,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있습니다.

공께서는 울지 않는 새를 왜 기다리셨나요?


이에야스: 음. 새를 억지로 울게 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것이 내가 원하는 울음, 혹은 새가 원하는 울음이겠소?


한비: 하하하! 공의 말씀을 듣고 보니 오래전 제가 책에 적었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마힐: 선생님께서 쓰신 책에도 새 이야기가 있습니까?


한비: 그렇습니다. 《한비자》 〈유로〉에 이런 말이 있지요.

불비불명(不飛不鳴), 비필충천(飛必沖天), 명필경인(鳴必驚人).

날지도 울지도 않던 새가 한번 날면 하늘을 찌르고, 한번 울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에야스: 허허. 선생님의 책에도 그런 새 이야기가 있었다니 이런 우연히 일치가 있다니...


한비: 그렇습니다. 다만 그 새는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날개를 기르고, 세상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지요. 공의 긴 기다림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이에야스: 음. 솔직히 나는 그저 살아남으려 했을 뿐이오.


한비: 살아남은 사람은 많소. 그러나 살아남아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자신이 죽은 뒤에도 그 질서가 이어지도록 기초를 놓은 사람은 흔치 않지요.


마힐: 그러면 한비 선생님께서는 이에야스 공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한비: 일명경인(一鳴驚人)! 한 번 울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공께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일명경세(一鳴驚世)! 한 번 울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고 칭찬하고 싶군요.


이에야스: 하하. 과찬의 말씀이오. 내가 만든 질서와 제도도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오.


한비: 물론입니다. 영원한 나라는 없지요. 그러나 한 사람의 인내가 후대의 제도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오래 생각할 만합니다.


함께 인사를 나누며 차담회를 마친다.


(마힐 나레이션) 울지 않는 새를 기다린 사람.

그리고 울지 않는 새의 뜻을 이미 2천여 년 전 자신의 책에 기록했던 사람.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던 두 사람은 뜻밖에도 한 마리의 새 앞에서 만났다.

욕망을 가진 인간이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이 다시 인간의 욕망을 다스린다.

한비는 그것을 법과 통치술의 문제로 고민했고, 이에야스는 전쟁과 권력투쟁 속에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갔다.

울지 않는 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날개를 기르고, 때를 살피고, 마침내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군주와 영주가 사라진 현대의 기업과 조직에서는 어떨까?


내일은 현대 기업과 조직 속에서 법가 사상을 찾아보고자 한다.


8일차 마침.

어린아이가 소꿉놀이를 할 때 흙을 밥이라 하고, 진흙을 국이라 하며, 나무를 고기라고 한다. 그러나 저녁 때가 되면 반드시 집에 돌아가 진짜 밥과 국을 먹는다. 이는 흙밥과 진흙국은 가지고 놀 수는 있어도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대의 일을 칭송하며 외는 일도 이와 같아, 말할 수는 있으나 참되다고 할 수 없다. 선왕의 인의를 말하더라도 나라를 바로잡을 수 없고, 그것을 즐길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다스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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