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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 - 대반열반경, 초기불전 시리즈 003
각묵 엮음 / 초기불전연구원 / 2007년 3월
평점 :
요즘 회사와의 노동 분쟁 속에서 하루하루 인간관계 속에 드러나는 밑바닥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
말은 장황해지고, 뜻은 허깨비와 같고, 사람이 한 낱 도구에 지나지 않음에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100일 정진을 마쳤지만 겨우 마음 줄을 놓치지 않고 있음에 그나마 다행이라 느꼈다.
어제 알라딘 이웃님의 격려를 들었는데 아침에 문득 2년 전 오늘 남겼던 글이 다시 눈에 띄었다.
어쩌면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보낸 글이라 여겨질 정도로 이제 관계의 정리가 아니라 내 안의 스승을 다시 찾아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 아닐까 싶다.
스승을 찾는다는 것은 오늘의 나를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다시 과거의 글을 일부 수정하여 다시 올려보기로 했다.
<곧 부처님 오신날이다.
올해(2024년)는 스승의 날과도 겹친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에서는 스승의 본뜻이 '스님' 에서 왔다고 했다.
스님이 부처가 되는것. 그것이야 말로 스승의 최고의 단계라고했다.
즉 부처님은 말 그대로 최고의 스승이시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삼계도사사생자부(三界導師四生慈父)' 라 부른다.
삼계(三界)는 욕계, 색계, 무색계이며 곧 존재하는 모든 차원 즉, 온 우주를 뜻한다.
도사(導師)는 이끌어 주는 스승이시다.
사생(四生)은 난생: 알로 낳고, 태생: 어미 태에서 낳고, 습생: 습한곳에서 낳고, 화생: 화하여 낳는 4가지 형태로 생명이 태어나는걸 말한다.
자부(慈父) 는 자비로운 어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예불문에서는 “삼계도사사생자부 석가모니불” 이라 독송한다.
부처님은 온 우주의 스승이시며, 모든 생명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것이다.
불교는 서원(誓願)의 종교이기도 하다.
서원은 원을 세운다는 뜻이고, 불자들은 법회 때마다 사홍서원, 네가지 큰 서원을 외운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녹이오리다. 법문을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비록 지금은 번뇌 많은 중생일지라도, 끝내는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부처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구원이 인간의 목표라면, 불교에서의 목표는 부처를 이루는 데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도 거기에 있다.
부처님은 단지 위대한 성인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 주시기 위해 오셨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안에 이미 그 가능성이 있음을 일깨워 주러 오셨다.
다만 스스로 닦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수행하라고 간곡히 권하셨다.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 는 <<대반열반경>> 을 바탕으로, 부처님께서 열반(涅槃) 즉 이 사바세계를 떠나기 전후의 행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는 책이다.
방대한 불경 가운데에서도 부처님의 마지막 여정을 가장 인간적으로, 또 가장 장엄하게 드러내는 경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오래전 한마음선원 본원 법회에서 있었던 한 장면을 다시 회상했다.
아마도 20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진주에서 올라오신 한 보살님이 법회중에 경전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큰스님께 질문을 드리신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장면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그것이 바로 대반열반경의 한 대목임을 알게 되었다.
그 장면은 이렇다.
부처님께서는 본래 무량겁, 즉 한량없는 세월 동안 이 세상에 육신을 가지고 머무르실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마라 즉, 마왕 파순이 나타나서
“이미 이룰 것을 다 이루셨고 제자들도 많이 길러 놓으셨으니 이제 그만 열반에 드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부처님께 여러번을 권한다.
그때마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결정하겠다며 파순의 제안을 고려해 보신다.
그 당시 부처님 곁에는 언제나 제자 아난이 있었다.
아난은 부처님 제자들중 가장 총명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기억한 제자였다.
하지만 그는 그때까지 아직 완전한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만약 당시에 아난이 그 순간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더라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지 말고 이 세상에 더 머물러 법을 설해 달라고 청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당시의 우리의 마음에 남았던 것은 청(請)함의 중요성이었다.
깨달은 이는 먼저 나서서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논어 술이편의 '불분불계(不憤不啓) 처럼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는 것이다.
물어야 답을 얻고, 찾아야 길을 만나며, 두드려야 문은 열린다.
그러나 그 순간 아난은 미처 청하지 못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차례 아난에게 당신이 남아있기를 요청하라고 힌트를 주셨다.
그러나 아난은 끝내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결국 부처님께서 남은 수명을 놓아버리시고 열반에 드시기로 결심하신다. (당시 아난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부처님 열반 후에 모이는 집회에 초청을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
부처님께서 남은 수명을 스스로 놓아버리자 하늘과 땅이 진동한다.
놀란 아난이 그 까닭을 묻자,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한 설명해 주시고서야 그는 사태의 중대함을 깨닫게 된다.
그날 법회에서 보살님은 떨리는 음성 속에 결의에 찬 마음으로 말씀하셨다.
2600년 전 부처님 당시의 이와 같은 열반 상황을 설명하면서 “현세의 우리들, 즉 큰스님 직계 제자, 재가제자 모든 분들이 열심히 수행하여 아난의 그러한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고 하셨다.
그 말씀은 당시에 모여 있던 모든 사부대중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나 역시 그날의 그 장면은 오래 잊지 못했다. 아니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그때의 감동을 다시 살려 주었다.
그리고 대반열방경 속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더 많은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불경은 대개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 여시아문)' 라는 아난의 말로 시작한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여정 속에서도 여러 나라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법을 설하신다.
마가다 국왕이 왓지국을 어떻게 정벌 해야 하는지 부처님께 자문을 구하는 장면도 나오고, 수행에 관한 가르침과 공동체 질서에 관한 말씀도 이어진다.
가는곳 마다 사람들은 부처님을 친견하고 공양을 올리며 법문을 청하고 듣는다.
그러는 가운데 파왕 마순의 열반에 대한 종용과 열반의 암시는 이어지지만, 부처님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마지막 길을 향해 걸어 가신다.
열반에 들기 직전, 대장장이 아들 쭌다의 공양을 드신 뒤 부처님께서는 병환을 얻으신다.
그로 인해 쭌다가 스스로를 탓할까를 염려하여,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그의 공양을 찬탄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 주신다.
이 장면에서는 스승의 자비가 무엇인지 강하게 와 닿는다.
당신 자신의 고통보다,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할 제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장면에서 진정한 스승의 마음을 보여주셨다.
아난을 대하는 모습 또한 깊은 울림을 준다.
열반에 이르게 된 직접적 계기와 관련해 아난의 책임을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부처님은 대중 앞에서 질책보다 격려를 택하신다. 또한 마지막 제자 수밧다를 받아들이시는 장면에서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단 한 사람을 위해 문을 닫지 않으시는 자비를 보여 주신다.
마지막 유훈 역시 분명하셨다.
방일 (放逸: 나태, 게으름) 하지말고 정진하라.
부처님께서는 열반 직전까지 수행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당신의 육신은 어떻게 화장(火葬)하고 사리를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까지 세세히 일러 주신다.
참으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은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챙기셨다.
그렇게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유훈대로 장작에 불을 붙이려하지만 불이 붙지 않는다.
아무리 해도 붙지 않는 불이 대제자 마하가섭이 도착하자마자 비로소 붙는 장면은 삼처전심(三處傳心:세곳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 받았다) 의 상징이 되었다.
스승의 법맥과 마음이 누구에게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뛰어난 작가나 영화감독이 있다면, 부처님 열반 전 상황 며칠의 과정을 담담히 소설이나 영화로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걸어와 인간으로 고통을 겪고, 인간으로서 떠나간 마지막 여정을 말이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
남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번역자 각묵 스님의 서두도 결국 이 질문으로 귀착된다.
남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의 찬란함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다시 죽음의 찬란함은 또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부처님의 탄생은 우리 또한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고, 부처님의 열반은 우리에게 윤회의 사슬을 넘어서는 길을 보여 주신 사건이다.
처음과 마지막, 탄생과 열반.
그 바탕은 한 몸이라고 큰스님은 설하셨다.
2600년전과 지금, 아득한 과거와 아주 먼 미래도 다 내 한마음에 있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지극한 마음으로 돌아가 귀의합니다.>
“이제 남아 있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각묵 스님의 질문이 다시금 내 안의 스승을 다시 놓치지 말라는 청함(請)으로 들린다.

By Dharma & Maheal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 남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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