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00일 정진 91일차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고, 때가 왔을 때에 단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게 됩니다. 걱정거리는 욕심이 많은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한왕의 신하로 있지만 군주를 벌벌 떨게 할 만한 위력이 있고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는데, 당신은 앞으로 위태로울 뿐입니다.
괴통은 한신에게 말했다.
유방과 항우가 다투는 이 천하에서, 이제는 한신이 제나라의 왕이 되어 천하를 셋으로 나누고 형세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이른바 천하삼분론이다.
그러나 한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듭 거절했다.
흔히 한신의 비극은 괴통의 계책을 따르지 않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한신이 여후에게 죽임을 당하며
“내가 괴통의 계책을 쓰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는 뜻의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한왕 유방을 떨게 하고, 초패왕 항우조차 두렵게 만들었던 한신이 어째서 괴통의 말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인의 손에 허망하게 죽어야 했을까.
그것이 단지 유방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을까.
나는 한신의 비극을 다른 곳에서 보게 된다.
한신은 어릴 때부터 가난했다.
늘 굶주렸고, 사람들에게 기대어 밥을 얻어먹었다. 한때는 시골 정장 집에서 여러 날 밥을 얻어먹었으나, 그 집 부인이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끝내 밥을 주지 않게 되었다. 결국 한신은 그 집을 떠났다.
그러다 너무 배가 고파 괴로워하던 어느 날, 빨래터의 한 아낙이 그를 보고 밥을 주었다.
그 뒤로도 여러 날 그 아낙에게 밥을 얻어먹은 한신은 기뻐하며 말했다.
내 반드시 이 은혜를 크게 갚겠소.
실제로 한신은 훗날 초왕이 된 뒤, 자신에게 밥을 준 그 아낙을 찾아가 일반천금(一飯千金)의 고사대로 천금을 주어 보답했다. 자신에게 과하지욕(胯下之辱)의 굴욕을 준 건달도 찾아내어 죽이지 않고 장교로 삼았다. 옛날 밥을 주었던 정장 집에도 다시 찾아가 그 값을 치렀다.
그런데 그 시절 빨래터의 아낙은 한신의 보답 앞에서 오히려 화를 냈다.
대장부가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하니, 내가 왕손을 불쌍히 여겨 밥을 주었을 뿐이오. 어찌 보답을 바랐겠소?
바로 이 말이 한신의 핵심을 찌른다.
한신은 스스로 대장부라 여겼고, 실제로도 세상은 그의 큰 뜻을 알지 못했다. 그의 재능은 분명했고, 포부 또한 컸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핍이 하나 있었으니.
빌어는 먹어도 스스로 벌어먹지는 못한 것이다.
배가 고파 죽게 생겨도, 일을 해서 끼니를 해결하겠다는 태도보다는 누군가의 인정과 도움 속에서 버티는 쪽이 먼저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굶주림을 견디는 힘은 있었으나, 자기 삶을 자기 손으로 꾸리는 힘은 끝내 약했던 것 아닐까.
한신은 미래를 보았다. 큰 뜻도 품었다. 굴욕도 참았다.
마침내 자신의 재능으로 천하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무의식 깊은 곳에는, 배고프면 남에게 기대고, 굴욕이 와도 참으면 되고, 때가 오면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줄 것이라는 습성이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빌어먹는 것은 견뎠지만, 스스로 벌어먹는 독립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셈이다.
그래서 그는 제나라를 얻고도 완전히 자기 길로 나아가지 못했다.
한신은 스스로 얻은 땅 위에 서서도, 한왕 유방에게 자신을 가제왕(假齊王)으로 봉해 달라고 청한다.
제나라를 손에 넣은 사람이, 형식이나마 왕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유방은 이 요구에 크게 분노했다. 자신은 항우와의 싸움 속에서 목숨이 오가는 판에 서 있는데, 한신은 작위부터 요구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장량과 소하의 만류 끝에 유방은 한신을 제왕으로 세웠지만, 바로 그 순간 유방은 한신을 두려운 존재로 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한신의 비극은 괴통의 계책을 따르지 않은 데만 있지 않다.
어쩌면 더 깊은 곳,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결핍과 의탁의 습성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늘 인정받기를 바라고, 남이 자리를 주기를 기다리고, 굴욕은 참고 견디면 된다고 여기는 태도.
그것이 결정적인 순간, 독립의 결단을 가로막은 것은 아닐까.
괴통의 계책도, 무섭의 충고도, 결국은 이제는 남의 밑에 서지 말고 스스로 한 축이 되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신은 끝내 그 자리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니 항우에게 몸을 의탁하기도 했고, 유방의 신하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유방과 항우는 전혀 달랐다.
유방은 비록 낮은 신분에 구차한 모습도 있었지만, 언제나 자기 무리를 모아 스스로 살아남았다.
건달 노릇을 하든, 사수의 정장을 하든, 도망자들의 우두머리가 되든, 늘 자기 식으로 판을 만들었다.
항우는 본래 귀족 출신이었고, 능력 또한 출중하여 스스로 중심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신은?
셋 중 가장 뛰어난 전술과 능력을 지녔음에도, 스스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한신의 비극은 천재적 재능이 아니라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해서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 태사공 사마천이 한신의 비극을 안타까워 하지 말라고 한 것이 이해가 된다.
남이 주는 밥으로는 목숨을 이어갈 수 있어도,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는 어렵다.
결국 사람은 제 밥그릇을 스스로 책임 질 수 있어야 한다.
자기의 밥은 스스로 벌어 먹자.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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