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58일차

<虛明自照/허명자조/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不勞心力/불로심력/애써 마음쓸일이 아니로다>

 

(虚) (空) 다르지 않다.

비었다  뜻이다.

하지만 차이는 있다.

불교에서 공은 단순히 비어 있다는 상태가 아닌 비움이라는 상징  가깝다.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처럼, 공은 멈춰있는 비움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안에서 공은 쉴 사이 없이 돌아간다.

멈춤이 있는 비움이 아니라, 늘 고정되지 않고 돌아가는 비움이 공이다.

우리가 인연에 의해 모였다가 흩어지는 순간에 발생하는 고정됨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내가 아버지가 되고, 아들이 되고, 부장이 되고, 손님이 되고, 승객이 되는 모습은 고정되지 않는다.

찰나의 순간인 동시에 인연에 의해 바뀌어지는 순간을 (空)이라는 글자의 상징인 것이다.

(虚)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마태복음의 구절 마음이 가난한 복이 있나니  중국어 성경에는 허심자유복(虚心者有福) 이라고 쓴다.

한글판 성경에서 허심(虚心)라는 의미를 마음이 가난한 , 혹은 심령이 가난한 자로 해석한다.

허를 '가난' 혹은 '없다' 는 의미에서 뽑아내 썼다.

그러나 중국어 성경은 도교에서 나오는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허는 단순히 비어 있음을 넘어선다.

허심은 마음에 사심이 없어 거리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티끌 같은 잡념이 없는 비어 있으나 도심(道心)으로 가득 있다.

그래서 도덕경의 허는 텅 빈 충만함 으로 의미를 두었다.

비었지만 충만하다는 뜻이 무엇일까.


우리가 사는 물리적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로 가득 차 있다.

공기를 마시고, 물을 마시고, 숨을 쉬지만, 그 입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물질 세계는 눈에 보이는 것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조화로 이루어졌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연결이 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충만함 이라고 표현할 있는 것이다.

 


허명자조(虛明自照) 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불로심력(不勞心力) 애써 마음  일이 아니로다

 

우리의 본체는 비어 있으나 밝아 있다.

그래서 스스로 비춰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 충만함 속에 있다면 따로 애써서 마음 일은 없을 것이다.

허심한 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 虛明: , 밝은 명: 비어 있으나 밝은 즉, 허는 텅 빈 충만을 뜻함.

自照:  스스로 , 비출 조: 스스로를 비추고

不勞: 아닐 , 애쓸 로: 애 쓰지 아니한다.

心力: 마음 , 힘 력: 마음을  쓰다.


By Dharma & Mahea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