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100일 정진,  56일차

<狐疑淨盡 /호의정진/여우같은 의심이 다하여 (마음이) 맑아지면 

 正信調直/정신조직/ 바른 믿음이 고루 발라지며>

 

인도 남쪽 타밀지방, 아루나찰라(Arunachala) 라는 성스런 산이 있다.

산을 가본 적은 없지만 동경하며 자란 어느 평범한 사춘기의 소년이 있었다.

어느 , 그 소년에게 아무 이유 없이 강렬한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 이제 내가 죽는다.

병도 없고, 외상도 없는데도 다가오는 죽음이 여실히 느껴진다.

좋다. 이 몸이 이렇게 죽는다면  나는 사라졌는가.

죽어가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순간 소년에게 죽음을 넘어선 무언가를 알게 된다.

경험은 관념이 아닌, 완전한 체험적 확신이었다.

이후 소년은 집을 떠나 아루나찰라로 떠난다.

나는 이제 아버지를 찾아가니 걱정하지 말라.

소년이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였다.

육신을 남겨준 부모를 떠나 참 나의 아버지를 찾아 성산으로 들어간 소년은 훗날, 아루나찰라의 현인이라 불려졌다. 

그가 바로 라마나 마하리쉬(1879~1950) 다.

 

아루나찰라에서 라마나 마하리쉬는 평생 질문만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그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 오는 어떤 사람들에게도 전해 것은 하나의 질문 뿐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에게는 어떤 체계적인 교리도, 현란한 설교도, 다른 그 어떤 가르침도 없었다.

오직 질문 하나로 그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 호수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어쩌면 그의 질문은 선가에서의 화두 시심마(是甚麽)  무척 유사하다.


시심마, 나를 움직이게 하고, 보고, 듣고, 말하게 하는 그것이 무엇인가.

경상도 선방의 스님들로 부터 유래된, 뭐꼬  이게 과연 무엇인가를 묻는 화두와 같은 구조다.

뭐꼬.

나는 누구인가.

질문들, 사량의 헤아림으로는 답을 수가 없다.

 

계심평등(契心平等) 마음이 계합하여 평등케 되어 지고

소작구식(所作俱息) 짓는 바가 함께 쉬도다

호의정진(狐疑淨盡) 여우같은 의심이 다하여 (마음이) 맑아지면

정신조직(正信調直) 바른 믿음이 고루 발라지며


여우는 의심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여우 같은 의심이 다하여만 질문에 대한 바른 믿음으로 전환된다.

아루나찰라의 어느 성자처럼, 산속 깊은 선방의 스님들처럼.

하나의 질문만이 바른 믿음으로 메아리쳐 돌아 것이다.

아루나찰라여!

나는 누구인가. 이 뭣꼬!


: 狐疑 :  여우 , 의심 의: 여우 같은 의심

淨盡:  깨끗할 , 다할 진: (의심)이 다하여 (마음이) 깨끗해지면

正信: 바를 , 믿을 신 : 바른 믿음

調直: 고를 , 곧을 직:  곧고 고르게 되다.


By Dharma & Mah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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