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 - 예의 바른 무관심의 시대, 연결이 가져다주는 확실한 이점들
조 코헤인 지음, 김영선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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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읽다, 이제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것에 관한 책'까지 읽게 될줄이야...

'아이구, 참나. 나 살기도 바쁜데 웬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말을 걸어야 한다니... 누군줄도 모르는데... 왜 그래야 하는데? 그리고 이런걸 또 책으로 내는 사람도 있다니...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책으로까지 나왔을까?' 제목에서 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책의 제목은 쉽고 가벼운 주제 같은데 막상 읽어보니 생각보다 쉬운 주제가 아니었다.

이 책은 소통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상의 화두가 들어 있다.

작가의 경험에서 책은 시작한다.

대서양 어느섬에서 시나리오 작가들의 교류행사가 있었다.

행사와 파티를 치르고 저녁에 동료 작가들과 택시를 탔었다.

그때 그 택시에서 작가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마주하게 된다.

우연히 마주친 낯선이에게서 한평생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완벽하게 요약한 타인의 인생담을 듣게 될줄 몰랐단것이다.

그후 작가는 낯선이에 대한 생각과 왜 우리는 낯선이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할까? 낯선이에게 말을 걸어 대화를 나누면 어떤일이 생길까? 등의 의문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사실 오늘날 현대 사회는 외로움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사는 도시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매일 수많은 사람을 보고 지나치지만 서로간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서로다 모른다.

이제는 모두가 모두에게 낯선이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가는 우리가 점점 잃어가고 있는 '낯선이에게 말을 거는 능력' 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낯선 이는 위험하다는 말과 달리, 낯선 이와 대화할때가 오히려 대화 하지 않을때 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한다. 낯선 이와의 대화는 단순히 살아가는 방편이 아니라 살아 남는 전략이다. P.21>

책은 크게 두가지 구조로 짜여진것 같다.

첫째는 작가가 직접 배우고 참여하는 실험정신 가득한 체험들.

작가는 낯선이에게 말을 거는 방법에 대한 수업을 듣거나 그러한 모임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조언을 구한다.

즉 작가가 현장감 있게 몸소 체험하면서 낯선이에 말을 걸면 어떤 잇점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구성이다.

둘째는 학구적인 방법으로 낯선 이에 대한 인류학적, 종교학적, 심리학적, 정치학적인 면까지 다양한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원시시대부터 인류 문화의 낯선이에 대한 규정, 이방인에 대한 성서속의 규정들, 세계 곳곳  문화속의 환대에 대한 인식들, 현대사회에서 낯선이에 대한 두려움의 이유, 점점 심해가는 정치적인 양극성에 대한 해결책 제시등.

낯선이에 대한 규정이 단순하게 내 주위의 '모르는 사람'만을 지칭하는게 아니다.

좀더 나아가 '나와 다른 사고를 가진 사회적인 계층'과 '정치적인 양극단'의 소통에 대한 문제까지 다루어 진다.

그래서 이 책엔 비교적 방대한 연구와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그냥그냥 쉽게 읽혀지는 내용은 아닌것 같다.

결국 이 모든 구성은 서로 교차해서 이어지며 이 책의 주제, 낯선이에게 말걸기로 완성 되어진다.

그런데 책에서 작가가 배우고 쌓아온 학습의 결과, 낯선이에 말거는 방법은 막상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말을 걸어야 하는) 먼저 상대의 눈을 바라본다. 친절한 마음을 담아서...

둘째, 상대를 향한 다정한 미소를 짓는다.

셋째, 그후 반응을 보고 다가가 자신이 상대에 대한 호의가 있음을 밝힌다. 이때의 호의는 작업을 거는것과 다르다.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드려도 되는지~?' 혹은 '제가 이런 자리에서 얘기를 하면 안된다는것은 알지만~', 등의 대화전에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닌란것으로 안심시킨다.

넷째, 인사를 하거나, 질문을 하거나, 같이 보고 있는 관심사에 대한 얘기로 연결을 시도한다.

다섯째, 반응을 보고 상대가 불편해 하면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

여섯째, 계속 대화가 시작 되면 경청하기.

자. 이게 낯선 이에게 말걸기 요약 내용이다..

그런데 이게 쉬운것인가?

실제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낯선 이에게 다가가 쉽게 말걸기 위해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고, 수많은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작가는 이런 방법을 시간과 돈을 써가며 배웠다는게 어찌보면 이해가 안가는 면도 있지만 그만큼 작가는 진심으로 '낯선이에 대한 말걸기 화두'에 매달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낯선이에게 말걸기 훈련이 쌓이자 나중에는 본인이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다가와 자신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단다.

내 경험담이다. 약 25년전 쯤, 군대 제대한후 곧 바로 나는 중국 배낭 여행을 떠났었다.

대학에서 중문과를 전공중이었지만 당시에 나의 중국어는 무척 서툴렀다.

그래서 복학전에 중국어라도 단련하자는 의미에서 무협지속의 중국천하를 주유하는 나를 상상하며 여행길을 떠났다.

내 생에 처음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경험이라 중국에 대한 기대는 정말 컸다.

그런데 공항에 내리자마자 맡게된 중국 특유의 이상한 냄새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의 차림새, 한창 짓고 있는 고층건물들의 외벽을 감싼 굵은 대나무 플렌트 구조물, 도로에 굴러가는 똥차 같은 차들. 모든게 낙후된 세계로만 보여졌다.

내가 어릴때 부터 막연히 동경하던 중국하고는 달랐다.

기차를 타면 더욱 황당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기겁을 했는데 기차 창문을 통해 사람들이 영화 '부산행'의 좀비처럼 올라탔다.

정상적인 문으로 출입을 할수 없을정도로 사람과 짐으로 막혀있기 때문이다. 기차안 통로도 꽉 막혀있어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

지정좌석은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개념자체가 아예 없었고 자리가 나면 아무나 앉아버렸다.

겨우 끄집고 들어가 내 자리를 찾아서 앉아있던 사람 쫓아내고 앉으면 자리 밑에 뭔가 물컹한다.

그래서 내려다보면 좌석 밑바닥까지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심지어 화장실안에 까지 사람이 짐과 함께 꽉~차있어 14시간동안 오줌을 정말 필사적으로 참아야만 했었다.

나의 중국에 대한 모든 환상은 기차여행을 통해 전부 무너져 내렸다.

지금와서 돌아보건데 당시 중국은 지금의 중국하고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상식이 전부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때 중국 여행에서는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였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 언급했던 노바디(NOBODY) 였던것이다.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특별한 존재(SOMEBODY) 가 되는게 아니라 개별성을 잃어버린다. 결국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 일 뿐이다.>

-<여행의 이유> 일부 중에-

그런데 신기한것은 여행을 다니면서 그 낯선 세계의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웬지 모를 즐거움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그 즐거움이 앞의 나의 모든 실망을 전부 덮어버렸다.

낯선 세계, 낯선 사람들, 낯선 문화속에서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었지만 그들은 내게 크고작은 호의를 베풀었다.

말도 잘 못하는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내가 혼자 여행하는것을 걱정해주고 심지어는 어떤 목적지까지 같이 동행하거나 차를 태워주기도 했었다.

물론 바가지를 노골적으로 씌우는 일부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그건 세상 어느곳이나 있으니 스스로 조심하면 됐다.

그때엔 호기심 가득한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그들도 내게 많은 호기심어린 걱정과 호의를 베풀었다.

이때 나는 내가 사는곳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많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경험을 했던것이다.

그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거의 몇달을 여행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계속 생각이 났다. 만났던 사람들, 가봤던 곳들, 또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

정말이지 또 한번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난생 처음으로 마음에서 생겼던 것이다.

그렇게 그리움이 되어 버렸다.

결국, 그 바람이 지금은 실현되어 벌써 20년이 넘게 이곳에 살게 되어 버렸다.

(그때 바람이 너무 컸었나 보다.)

작가가 배우고 체험한 경험과 나의 경험을 종합해서,

지금 돌이켜 보면 낯선이에게 말을 건다는 행위는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열어야 가능한것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의 문을 우선 여는것이 상대의 마음과 겉모습을 고려하는것 보다 중요한것이다.

우리는 보통 자기 마음에서 우선적으로 걸려버린다.

'상대가 어떻게 날 생각할까? 날 이상한 놈으로 보지 않을까? 괜히 말걸지 말자.'

그렇게 상대방의 알지도 못하는 마음을 핑계로 내 마음부터 닫아버린다.

상대가 아니라 내 마음부터 봐야 했던 것이다.

여행지에서 철저히 나는 나만 볼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철저하게 낯선 이로 '노바디'에서 시작할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여행지에서는 마음을 열수밖에 없는 환경인것이다.

그러니 상대가 누구든 먼저 재고 따질 필요가 없다. 그냥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 말을 걸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들의 대부분은 내가 열어둔 마음 상태로 그쪽 마음도 함께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야 상대와 내가 서로 마음이 열린상태에서 대화가 될수 있었던 것이 아니였을까?

그렇기에 당시에 중국어가 서툰 나는 상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뜻을 상대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수 있었다.

결국 내 자신의 마음을 연다는것이 가장 중요한것이다.

이것은 불교식으로 표현 한다면, '나'를 내려 놓는것이 되는것이다.

결국 수행도 '나' 라는 관념 부터 내려 놓아야 시작 하는셈이 아닌가?

나를 내려 놓을수 있어야 스승의 가르침도 받아 들일수 있고, 만물 만생의 뜻도 받아들일수 있게 되는것이다.

그러니 노바디가 되는 '나'가 없는 경험을 하는데는 여행의 환경이 최적이였던것이다.

그것은 내 마음이 열리며 상대와 내가 둘이 아님을 경험했던것 이었다.

그래서 그때 여행의 경험을 잊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여행은 구도가 되는 것이었다.

책의 작가 존코헤인은 지금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서부 출신의 저널리스트이다.

작가가 주창하는 낯선 이와 말을 걸어야 하는 것만으로는 지금의 현대 사회에 발생하는 문제점들 (고독, 계층간 분열, 정치적인 양극성 등) 을 해결 할수있는 열쇠가 될 수 없음을 나는 안다.

하지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와 실험정신은 진심으로 느껴진다.

작가의 그 진심은 현시대에 던지는 조그만 돌과 같다. 그 돌은 곧 화두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나와 타인, 즉 낯선 이에 대한 소통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게 하는 화두를 던진것이다.

작가가 던진 그 돌이 물위에 동심원처럼 점점 커져가는 파장이 되길 바란다.

1994년 6월 르완다의 후투족이 난데 없이 들고 일어나 투치족 이웃과 동료를 살해했다.

살해된 이는 50만에서 10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현재까지 전쟁중이며 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이 전쟁으로 희생을 당하고 있다. 양쪽의 희생자가 앞으로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른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이슬람 저항운동 단체인 하마스가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의 규모가 어떻게 될지, 어떤 영향을 끼칠지?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은 지금 이순간에도 발생하고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무슨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가?

이웃 나라에서 행해지는 전쟁과 살인에 대해 우리는 전혀 무관한것인가?

우리나라 상황은 이미 남과 북이 분단상태이고 대한민국 내에서도 정치의 양극화와 계층간, 부의 양극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개인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 국가간의 이기주의가 팽창하고 있다.

과학기술은 발전하고 사회는 복잡다양 해졌지만 정작 현실의 우리는 갈수록 고립화가 되고 우울해지며 점점 생각의 폭은 좁아지고있다.

기술 발달로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온 세계의 소식은 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우리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마음은 전혀 모른다.

이제는 나 조차도 정확히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다가올 곧 미래엔 우리가 선택하고 소통해야될 문제를 AI가 대체하는 시대로 변해버릴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통하는 '주체적인 나' 는 없어진다. 그 '나'는 관념의 울타리에 더욱 더 갇히게 될것이다.

각자가 스스로 주인이 되고 '고정된 나' 라는 관념을 벗어나, '나'와 '너'가 '우리'로 서로 소통하는길은 마음 밖에 없는것 아닌가?

지금 우리의 마음은 닫히고 있다. 관념에 갇혀있는것이다. 고정 관념은 점점 심해진다.

소통은 점점 힘들어진다.

나만 옳다는 관념. 남들은 틀렸다는 관념.

그렇게 둘로 보는 생각이 세상에 만연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낯선 이와 소통할수 없을것이다.

먼저 나부터 돌이켜 봐야한다.

내가 과연 열린 마음으로 있는 상태인지.

나의 마음을 지켜보지 않으면 영원히 상대를 볼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위해, 인류를 위해, 평화로운 마음으로 내 자신 부터 돌아봐야겠다.

그리고 나서 나와 다르지 않은 낯선 이를 바라봐야겠다.

이것이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낯선이도 나의 형제요 자매요, 부모란 마음으로 생각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하는것을 걱정하라.(不患人之不己知,患不知人也)
군자는 두루 사귀어 편벽하지 않다.소인은 편벽해 두루 통하지 못한다.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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