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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 인류의 저주이자 축복, 질병이자 치료제, 숙명이자 구원,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성을 찾아서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2월
평점 :

오늘은 지난 8월에 읽었던 두권의 책에 대한 독후감이다.
첫권은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부제: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수업, 제목도 길고, 부제도 참 길다... 제목을
줄여서 '잠죽길'이라고 하자) 와
둘째권은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줄여서 '이횡호' 라고 하자) 이다.
두권 다 제목이 길다. 제목에서 유추할수 있듯이 첫권, '잠죽길'은 고고학자의 이야기이고 두번째 '이횡호'는 제목에 '이야기'와 '모험'이
있어서 무슨 아동용 책이 아닐까 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두권의 작자는 다르지만 작가의 결이 비슷한것 같다. 둘다 '이야기'란 소재를 삼고 있기 때문이다.
<잠죽길>은 고고학자이자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인류의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인류의 유물이라 하면 이집트 피라밋이나, 중국의 만리장성 같은 인류의 문화유산 이란 할만한 거대하거나 화려한 것을 떠올리게된다.
하지만 이책엔 그런 유물은 하나도 나오지도 않는다. 300만년전의 동굴 속의 발자국, 5만년 전의 어느 동굴에서 발견된 유골, 5000년 전의
거석들, 신석기 시대 집터, 심지어는 돌고래 뼈와 미이라가 된 2000년 전의 사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300만년전에 남겨진 의미없는 발자국들을 보면서 그 발자국의 크기와 형태, 찍혀있는 정도, 돌아가져 있는 방향에 담겨진 의미를 포착한다.
그 발자국에서 먼저 어린 딸과 함께 길을 가는 가족의 발자국을 읽었다. 그리고는 어린딸과 함께 가는 가족에게서 어느 위협적인 소리를 듣고서 몸을
돌려 봤을것이라 유추한다. 동시에 그런 돌아보는 몸짓 뒤에 함축된 현재까지 공감이 되는 가족애를 전한다. 이후에 소개되는 유물 하나하나에 대한
이 같은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해석이 정말 감동스럽다. 아마도 고고학자의 통찰은 사건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탐정이나 경찰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인간적인
보편적 감정이 깔려있는것 같다. 거기다 '닐 올리버'라는 이 영국인 작가의 인문학적인 문장력도 수준급이라 너무나도 하찮아 보이는 유물들에 대한
사연이 모두가 의미가 있게 변해버린다. (누가 동굴속의 발바닥을 보고 그런 해석을 하겠는가?)
내 주위에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들 (나를 포함해서..)이 긴 시간이 지나 먼 미래에 유물로 변해 버릴때를 상상하게 된다. 미래의 어느
통찰있는 후손이 지금 시대의 유물을 보고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감정을 이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 이 순간순간들의 의미가 더욱 새로와진다.
먼 우리 고대 조상의 남겨진 유물에 대한 작가의 통찰에 경의를 표한다.
두번째 책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은 제목만큼 단순하지 않다. 이 책은 엄청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읽는 내내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과 이야기에 대한 관계와 스토리텔링이라는 뜻에 대해서...
작가가 전하는 '스토리'에 대한 스토리 텔링은 우리가 보는 이 세상에 대한 이해의 창을 더욱 넓혀준다.
읽는 내내 놀라웠던 점은 이야기라는 것이 살아있는 유기체와 비슷하다는 점.
이야기가 DNA이고 유전자이라는 점. 인류가 멸망치 않고 존속하는 한 이야기 또한 같이 살아 나간다는 점,
인류 그 자체가 이야기라는 점.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은 구술림이라는 서두에서 부터 마지막 까지 이야기 자체에 대한 몰입감이 상당히 깊다.
이책에서는
크게 두가지가 핵심이다.
작가는 먼저
이야기의 효용중 '구슬림'이란 표현을 썼는데 이게 쉬운것 같지만 대단한 통찰인것 같다. 두번째는 플라톤의 국가론에 대한 작가의 해석력이 돋보인다.
우선 이야기의
목적이 말로써 상대를 구슬리는 것에 있다는것이다. 즉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꼬신다' 는 것이다. 상대를 나의 의도에 맞게 구슬리려면 짜임새 있게
서사를 넣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가 결국은 구슬림이란 것이다. 상대를 구슬림으로 이야기에 공감하게 하고
화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될수 있었던 이유중의 하나가 우리 호모사피엔스 종은 소통을 통해 이야기를 공감하면 서로 전파해서 공유한다는 것이다. 세계 어느 곳이든 신화나
전설이 존재하는데 인류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그러한 이야기들을 같이 믿고 공유했다는것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종교처럼 오직 호모사피엔스
종만 그렇게 할수 있었던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에서도 이와 같은 언급이 나온다. 우리는 공유된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 믿고
따른다. 보이는 지폐를 돈이라 칭하고 화폐의 가치를 인정하고, 게다가 보이지도 않은 비트코인까지 거래하고 있다.
거기엔 잘
짜여진 서사와 가치가 함께 바탕이 되고 있다. 즉 인류는 이야기의 공감을 통해 화합, 단결로 평화로울수 있었다. 그리하여 지구상에 그 어떤 종도
인류의 위치를 넘볼수가 없다. 그것이 이야기가 가진 좋은점이란것 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가진 나쁜점도 있다.
그것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 같다. 특히 <플라톤의 국가>에 대해서 작가는 아주 중요하게 언급한다.
그리고는 '이야기
꾼을 믿지 말라' 고 까지 주장한다.
플라톤의 국가(난
아직 읽지 못했다)에는 플라톤의 철학자가 다스리는 이상적인 유토피아 국가론이 나온다.
거기에서 플라톤은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했단다. 당시 모든 문학의 형태는 운문의 형식이었고, 연극의 대본 또한 운문이였다고 한다.
플라톤의 위대한 스승이 이러한
시인들에 의한 선동으로 인해 대중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즉 이야기는 상대에 대한 분열 , 불신, 증오를 조장을 할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대에 들어서
우리 주위에 범람하는 정보 미디어 홍수들, 가짜 뉴스, 보이스 피싱, 매일 매순간 마다 업로드 하는 유투버들의 선정성 콘텐츠들. 정치가들의 분열적인
선동들. 모든게 진짜같다.
하지만 다 믿어서는 안된다. 결국 이야기 꾼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마치 매트릭스 영화의 내용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매트릭스 같은 세계가 너무나 현실적이지만 사실은 가상의 세계였다는것.
이런 혼란을
조장하는 시대의 이야기가 바로 2500년전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았던 그리스 시대와 다르지 않다고 할수 있는가?
읽을수록 시공간을
연결하는 작가의 독창적인 해석력에 감탄하게 된다.
작가는 '조너선
갓셜' 이란 영문학을 전공한 미국인이다. 과학적인 인문학의 선두주자라고 한다. 그래서 이책의 결론은 과학적 사고 방식이 제안된다.
책을 읽다가
이런 수작을 만나면 정말 기쁘다. 작가의 다른 작품이 있는가 해서 조사를 해보니 딱 한권 있다. 2014년에 이미 <스토리텔링 에니멀>
이란 책이 발간 되어 있었다.
'이호행' 은 2023년 신간이지만 2014년의 작가의 책도 궁금해서 하나 구입했다. 초기에 나온 책이니 만큼 작가의
어떠한 생각에서 출발했는지, 지금은 어느것이 더 발전되었는지, 과거의 책과 현재의 책에서 관통하는 주제가 있는지, 작가의 집필의도를 비교해 읽는것도
재미있을것 같다.
기대가 된다.
곧 읽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