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ㅡ무라카미 하루키
홍은주옮김 , 문학동네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 덮은 책이 미미여사의 레벨 7 이었다 . 그 책의 1권 들어가는 입구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
《 그러나 , 그대 , 이것은 모두 꿈에서 본 것 , 꿈의 이야기 . 》
ㅡ그림 형제 : 도둑신랑 ㅡ
이제 막 프롤로그를 읽었을 뿐인데 레벨 7 의 그 문구가 그냥 자동으로 떠오르고 말았다 . 퍽 익숙한 인물이란 느낌과 분명 이 인물을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나는 여러 얼굴로 만난 적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왈칵 반가우면서 이렇게 익숙한 인물로 또 어떤 이야기를 이끌어 갈지 호기심이 물기 잘 마른 스펀지 같았었다 .
1권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 두껍고 시커먼 하드 커버 속의 그는 아키가와 마리에를 2미터 앞에 앉혀 두고 슥슥 스케치를 잇고 있을 거였다 . 이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불안의 싹을 꿈으로 단속적 단서로만 암시받아도 무기력하게 자신을 내던지면서 그는 내내 일생을 수동적 공격형 인물로 수행하는 인간으로만 기능해온듯 했다 .
자신 스스로도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 거였는데 되돌아가 그 문제가 스스로 고칠 수있는 부분인지 조차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인간으로만 . 행여 물으면 ' 그래 그 모든 문제가 다 네 탓이야 . ' 라는 말을 듣게 될까봐 원망을 본격적으로 듣게 될지도 모를 상황에서 절실하게 도피하는 인간으로 보인다 . 막상 마주치면 별거 아닐지도 모르는데 마주하는 것부터가 공포인 겁장이일까 . 그걸 알아가는게 이 소설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
한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을 효율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을 기막히게 설명한 멘시키의 대뇌피질에 관한 예는 그래서 너무나 적절하고 탁월하다 . 특히나 주인공 ' 나 ' 가 보이는 일관된 회피의 행위와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사건에 될대로 되라지 하는 , 어찌보면 터무니없게도 보이는 낙관성은 그 안에 잠재된 문제 해결능력을 스스로 자각하고 각성이 되기만 하면 그와 아내 유즈 사이의 문제까지 일사천리로 스르륵 풀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예감마저 들게 하고 있다 .
그런 또 하나의 예시와 암시로 , 그는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뛰어난 능력이 있다 . 그렇기에 저 자신은 원하진 않았지만 초상화가로 나름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거였을 거다 . 그 부분을 크게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 문제가 더 큰 것일수도 있다 . 무뎌진다는 것 . 일상이 된다는 것 . 익숙해져 버린다는 것 . 그는 불편함이 없다는 걸로 고통이 없고 갈등이 없었다는 걸로 매사를 단순하게 도식화하는 체질이 되어 버린 것이다 .
그렇기에 사랑한다고 믿은 소중한 여자의 변화에 그렇게 충격을 받으면서도 전혀 알수 없었던 거였고 ,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기에 그저 자신의 잘못이 되는 것만이 두려워 도망치듯 집을 나와버린다 . 그래서 그 앞에 필요조건으로 나타난 현상이 이데아 ' 기사단장 ' 즉 관념이다 .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는 관념이 , 모호함이라는 껍질이 ,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만큼의 중요한 정도로 존재하는 대상의 드러남이 꼭 필요한 피흘림의 ' 기사단장 ' 이고 , 그의 ' 죽음' 일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