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내내 잘은 감자를 깎았다 . 두 박스나 들어온게 두어 달은 된 것 같다 .

여름의 햇감자를 간신히 다 비웠을 무렵 온 거라 , 당분간 감자는 안봐도 될 것만 같았는데 , 양파 한 상자와 두 상자의 감자를 혼자서 어쩌나 하다 인터넷 검색에서 메모해 둔 감자 샐러드 만들기를 주섬주섬 꺼내들고 양파와 감자를 다듬느라 오전의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

 

오래 서서 벌서기 같은 감자 깎는 시간 .

손은 금방 시리고 저리고 , 다리도 금방 저리고 시리고 , 아 진짜 많다 .

잘디 잔 감자들이 쥐구멍 같은 박스로 세어든 태양 빛이 그리웠는지 싹을 많이도 길렀다 .

어두운 베란다에 서서 싹을 떼어내고 거칠고 주름진 엄마 손 같은 감자를 더듬 더듬 다듬는 시간 .

 

한 바구니는 넘는 껍질을 보면서 , 이렇게 만들어 놔도 결국은 혼자 헤치워야 할 텐데 싶어 갑자기 쓴 소주 생각이 더럭 났다 .

그런다고 술로 대신 뭔가를 풀기엔 하루 시간은 짧다 . 날 잡고 친구나 불러다 같이 한잔하면 좋겠단 부질없는 생각도 물기를 털듯 털어낸다 . 누군가를 부를 짬도 마음도 쉬운 것이 아니라는걸 아니까 ,

1리터들이가 넘는 솥 가득 다듬은 감자를 토막내어 넣고 물을 끓인다 . 물엔 소금 , 설탕을 한 스푼 씩 넣고 간을 하고 팔팔 끓어 오르는 감자를 채로 건져내서 물기를 빼고 , 양푼에 넣고 따듯할 때 뭉게 준다 .

포슬 포슬한 감자들이 비명도 없이 나방의 가루같이 반짝 반짝 거린다 . 뭉게진 감자의 입자는 흰설탕 같이 보인다 .

감자가 삶아지는 동안 계란 몇개도 따로 불에 얹어 놓고 , 그 사이 양파와 양배추를 당근을 꺼내서 채를 친다 , 가능한 곱게 ...... 아이가 먹다 남겨둔 피자 집의 피클도 다 끄집어 낸다 .

피클의 국물도 아주 조금 쓰기로 한다 . 피클도 잘게 다진다 .

식은 감자 위로 삶은 달걀 역시 같이 섞어주면서 마요네즈를 투척에 가까운 살포 .

중간 중간 다진 야채와 밑간을 더 한다 . 소금과 흰 후추와 설탕 약간 . 단 건 좋아하지 않으니 적당히만 ,

한 양푼 가득 감자 샐러드를 만들었다 . 보관용기에 턱턱 숟가락을 쳐내듯 찰진 감자 샐러드를 옮겨 담는다 . 이렇게 두달 치의 감자가 , 소비된다 .

손가락이 뻣뻣해지도록 저어댔으니 , 이젠 뒷정리 시간 ...하아...이제 겨우 한박스를 없앴을 뿐 , 흐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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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6-11-29 2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단합니다 짝짝짝!!^^
감자샐러드로 토스트 먹고 싶네요
참,감자를 깎아서 밥 앉힐때 몇 개 넣어서 감자밥을 해서 드셔 보세요
지인이 시아버님이 감자밥을 좋아해서 항상 감자를 넣어서 밥을 한대서 혹시나 싶어 몇 번 해먹어 봤는데요 밥의 간이 절로 베어들어 달짝지근하니 맛있더라구요^^
저는 감자 깎는게 귀찮아서 그러곤 해먹질 않는다지만 감자밥이랑 고구마밥은 참말로 맛있었어요^^

[그장소] 2016-11-29 22:29   좋아요 0 | URL
고구마, 무, 버섯, 감자 등등 밥에 많이들 해먹죠 . 콩나물도~^^ 사실 전 어릴때 감자, 고구마 무 등 넣는 밥 너무 많이 해봐서요 ^^
나물밥 ㅡ 좋아해요 . 요즘에는 ..^^
간도 맛도 좋은 감자샐러드 ㅡ그런데 손이 엄청간다는 ..감자 껍질때문에요!^^ㅎㅎㅎ

AgalmA 2016-11-29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허수경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시집을 펼쳐 감자 줄기들을 갖고 오고 싶지만 지금 사무실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고, 감자 파티 하시면 꼭 불러 주기요~ ㅎㅎ

[그장소] 2016-11-29 22:31   좋아요 0 | URL
아~ 일하는 중이군요?^^ 청동& 감자의 시간 그것도 함 보여주세요. 전 그 시집 없어요. ^^;
다음 한박스 마저 없앨 때 호출토록하겠음~^^

AgalmA 2016-11-29 22:34   좋아요 1 | URL
그 시집에 대해선 10월에 리뷰 한 번 올렸죠^^ 최근 나온 시집 리뷰도 써야 할 텐데 시집에 실린 이광호 평론가 해설이 훌륭해서 리뷰 쓸 의욕 떨어짐ㅎㅎ

[그장소] 2016-11-30 00:17   좋아요 0 | URL
아 , 그런 시집 , 책 들이 더러 있죠 .
가져오고 픈 시집들이 넘나 많아요 .^^ 이 넘의 욕심좀 덜어야 덜 가난해지는데 , ㅎㅎㅎ
평론은 Agalma 님도 못지않으면서..뭘~~~(엄살은!! ㅎㅎㅎ)

프레이야 2016-11-29 2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웅 감자 깎는 시간의 그 느낌을 감응해 봅니다. 거칠고 주름진 엄마손 같은 감자를 더듬는 시간에서 흠칫. 포슬포슬한 감자들이 비명도 없이 나방의 가루 같이 반짝반짝거린다,에서 또 멈칫합니다. 어쩜 이런 표현이 !

[그장소] 2016-11-29 22:33   좋아요 1 | URL
살림을 해야 표현이 괜찮아지나봐요~^^ 아무래도, ㅎㅎㅎ
시인들이 전부 그럴까 궁금해졌네요. 덕분에~ 여름 감자 , 겨울 감자 다 괜찮네요 . 나름 나름~

2016-11-29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11-30 00:12   좋아요 1 | URL
꽤 오래 걸린 , 아 끝에서 거의 끝으로 이동이죠? ㅎㅎㅎ
먼 길 고생했네요! 오늘 이제 11월의 마지막 날예요 .
그러게 저 인천살때 알았음 좋았을 걸 ..ㅎㅎㅎ(응?) 그춍?!

yureka01 2016-11-29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자전..감자고르케,감자채튀김.


강원도 심심산골 오지
오두막에 눈이 설설히 내린,
길조차 끊긴 나날에 나무해 다 누고
군불 지펴서 솥 두껑 엎어 놓고
부쳐 먹는 감자전...

그런 생각이 퍽퍽 지나갑니다.

맛낫겠습니다...

[그장소] 2016-11-30 00:14   좋아요 0 | URL
거실에 책장이 있어서 , ㅎㅎㅎ 기름이 오래 많이 쓰이는 건 잘 못해먹게되네요.
바람 술 술 통하는 옛집의 부억에선 뭔들 맛나지 않을까 싶고요 .
추위도 맛있게 익는 곳이 그런 곳이잖아요. 살어름이 끼는 동치미며.. 받아둔 물이
아침이면 꽁꽁 얼고, ㅎㅎㅎ
추억 지네요..완전!!

보슬비 2016-11-30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슬 포슬 맛날것같아요.
전 감자가 많으면 편하게 믹서로갈아서 녹말 조금 넣고 전 부쳐먹어요. 감자전도 은근 감자 소비가 많이 되더라고요^^

[그장소] 2016-11-30 01:42   좋아요 0 | URL
갈아야하기도하고, 입자가 아무래도 고와서 많이 들고요..그쵸? 밀가루와 녹말은 찰기가 맘ㅎ이 다를까요? 부침가루는요? 해보신 적있는지 아시면 가르쳐주세요 . 집마다 약간은 다르던데.. 맛은 어떻게 다를지도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