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무개 목사의 금강경 읽기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샨티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성경에 문외한인 사람이 기독교의 근본 정신 또한 부처님의 진리와 멀지 않음을 발견하게 해 줄수 있는 책.  수 많은 불교 경전을 섭렵하고 이 책을 썼을 목사님의 열린 마음이 느껴졌다.

알수록 담이 없어 지는 것, 경계가 사라지는 것, 그것이 진리의 모습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 책을 쓰신 분도 진리에 가까운 분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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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9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장공부
대혜종고선사 지음 / 여시아문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우연히 불교방송에서 스님의 법문에 서장을 인용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참정이란 사람이 한 말인데

"옷 입고 밥먹고 손자를 안고 함께 놀아주는 하나하나가 옛날과 같으나 이미 끄달리거나 막히는 정이 없고 또한 기특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며 오래된 습관과 장애도 조금씩 가벼워진다"고 깨달음의 경지를 말했다고 하더군요.

예전과 똑같이 생활하나 집착과 머뭄이 없어졌다는 말이 너무 멋있어서 바로 책을 신청해서 읽었습니다.

문자는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주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문자를 통해 새로이 만나는 세상은 경이롭기도 합니다.

깨달음의 경지가 고요하고 먼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사시와 하나도 다를바  없다는 말은 얼마나 매혹적인지.

깨달으려고 하는 욕심을 앞세우면 결코 깨달을 수없으며 , 다만 범속한 알음알이를 벗겨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새로운 무언가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힘을 얻습니다.

늘 무언가 내게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물은 마셔보아 그 차가움과 따뜻함을 스스로 알게 되듯이

나의 깨달음의 과정은 나 스스로 찾아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또한 내 앞을 가리는 욕심은 아닌지......

무엇을 하든 인연따라 응하되 새기지 말라는 무비스님의 서장 강의 말씀을 생각하며 불교 공부에 참 맛을 주는 책이라고 추천합니다.

서장 원본을 사서 강의를 들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이 책은 많이 걸러진 책이고 한글로만 되어 있는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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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07-2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은 마셔보아야 그 맛도 안다
물에 대한 모든 이론과 지식은 필요없다
진리는 그저 컵에 담긴 물을 마시는 것일뿐..
그렇게 온갖 말과 논리는 필요없다.
나 스스로 체험과 통찰을 통해 아는 것만이 진리일뿐...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화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법륜 스님의 법문집을 읽고 이 책을 읽었다.

법문집이 개인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가에 대한 책이라면 이 책을 사회적인 문제, 환경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남북한의 갈등 통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문제에 대한 스님 나름대로의 통찰과 해법을 담고 있는 책이다.

어려운 사회 문제를 숲에 비유한다면, 높은 지대에서 숲을 내려다보고 쓴 듯한 글이다.

자발적인 가난은 청빈이 되지만 강제적인 가난은 빈곤이 된다.

자발적으로 고개를 숙이면 겸손이 되지만 강제적으로 고개를 숙이면 비굴함이 된다고  말씀 하신다.

이 책을 읽는 중에 글샘님의 서재에 올려진, 굶주려 앙상하게 뼈가 드러난 아이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름대로 마음 닦고 산다고 생각하면서도, 굶주리는 어린이의 사진을 보게 되면 내가 사는 것이 부끄럽다.  이런 세상의 어른인 것이 부끄럽고, 몇푼 안되는 후원금으로나마 위안을 삼는 생활이 부끄럽다.

 사회적이고 정책적이고 경제적인 거시적인 대안과 변화 만큼이나 각 개인의 의식의 변화도 중요하다고 스님은 말씀 하신다.

정말 그렇다.

사회가 아무리 바뀌어도 그 속에 둥지를 틀고 사는 우리 개개인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조건의 변화는 무의미할 것이다.

청빈과 겸손.

그것이 기득권자들의 의무이자 기쁨이 되는 미래를 위해, 우선은 나 하나의 의식과 행동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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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인간의 목숨은 예측할 수도 없고 언제까지 살지 알 수도 없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괴로움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살아있는 존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늙으면 이윽고 죽음이 오나니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것들의 운명이다.

제 아무리 잘 구워낸 도자기도 마침내는 모두 깨어져 버리고 말 듯

인간의 목숨도 이와 같은 것.

늙은이도, 젊은이도, 어리석은 자도, 현명한자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무릎을 꿇는다.

사람들은 죽음에 붙잡혀서 저 세상으로 가고 있지만

그러나 아버지도 그 아들을 구할 수 없고

친척도 그 친척을 구할 수 없다.

보라, 친척들이 지켜보며 슬퍼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는 온 곳도 모르고 가는 곳도 모른다.

탄생과 죽음의 양끝을 모르면서 왜 그리 구슬피 울고만 있는가.

슬피 우는 것으로 무슨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현명한 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슬픔에 젖어 있으면  괴로움만이 괴로움만이 더할 뿐이다.

죽은 사람을 위해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은 가는 슬픔을 또 다시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백년을 산다고 해도 마침내는 친지들을 떠나서

이 생명을 버려야 할 날이 온다.

그러므로 훌륭한 이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 "그는 이미 우리의 힘이 미칠 수 없는 곳으로 갔다"

이렇게 생각하고 슬픔을 거둬야한다.

비탄과 고뇌의 화살을 뽑아 버린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는 일 없이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슬픔을 극복한 다음 더 없는 축복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ps: 이누아님

통속적인 위로 밖에 나눌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작은 언니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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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5-06-04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에 님을 봤습니다. 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 소나무에서 송화가루가 날리는 시골길에서 작은 언니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님에게 "의사가 사망진단을 했는데도 며칠 만에 언니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하는 편지를 보내는 꿈이었습니다. 낯모르는 님에게 저도 모르게 의지했었나 봅니다. 님의 말씀들이 제게 위로가 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혜덕화 2005-06-0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힘내세요.
 

백련암은 성철 스님 계실때부터 등을 달지 않아 부처님 오신날이 되어도 고요하기만 했다. 백련암 입구 주차장엔 온통 아름다운 색깔의 철쭉이 피어 꽃으로 온 암자 가득 꽃등을 켜 둔것 같았다.

부처님 오신날이라 그런지 삼천배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침 8시쯤 내려오는 길에 해인사 큰 절에 들렀다.
이미 예불이 시작되고 있었고 부처님 오신 날의 기쁨과 환희가 그대로 느껴졌다.
몸이 아픈 동생을 위해 등을 하나 달았다.
일부러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해인사에 오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
이렇게 좋은 날,  동생 이름의 등을 달고 나니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등 하나 단다고 아픈 게 금방 나을까 만은 기도 외엔 해 줄게 없어 동생이 병을 이겨 낼 마음을 갖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부처님 시봉 하며 살기를 기원했다.
이렇게 온갖 꽃과 푸른 생명이 넘쳐나는 오월에 사람들 얼굴에 가득한 미소와 연등이 가득한 절 마당에 서 있다는 자체가 감동스러워 "부처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남편이 어려운 일이 있어 "나를 위해 기도를 좀 해 달라"고 처음으로 부탁을 해서 이번 삼천배는 남편을 떠올리며 절을 했다. 절을 하면 할수록 "아, 내가 그동안 남편에게 너무 잘 못하고 살았구나" 참회가 되었다.
그가 날 위해서 한다고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닐 경우엔, 그 의도와 마음을 보기보다는 나타난 결과만 보고 그를 원망했던 것이 너무나 가슴 아리도록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를 위한 기도가, 그에게 참회하는 기도로 바뀌어 마음으로 눈물을 많이 흘렸다.
 
삼천배를 하든, 만배를 하든,  경전을 읽든, 모든 것이 자기 만족을 위한 수행일 뿐이다.
예전에 나는 가족을 위해, 중생을 위해 기도한다는 아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젠 그것조차도 아상 임을 알겠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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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5-16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이 아픈 동생을 위해 등을 다셨다니 갑자기 뭉클하네요.
제 여동생도 교사인데 병으로 1년 휴직중이거든요.
저도 마음속에나마 등을 하나 달아야겠습니다.
초를 하나 켜고 잠깐 기도를 하든지......
부처님의 자비가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저도 빌어봅니다.
.........().........

혜덕화 2005-05-16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그 그늘이 가족 전체에 미치죠.
동생 가족을 볼때마다 가슴이 아립니다.
주변에서 기도해 주는 것도 좋다더군요. 마음의 에너지를 보내주는 것이라고....
로드무비님의 동생도 건강해져서 복직하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누아 2005-05-16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뭉클합니다. 병원에 있는 언니를 생각하면 마음 아픈 것보다 외면하고 싶은 심정일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매주 병원에 갑니다. 곧 퇴원할테지만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님의 글을 읽으니 언니를 위해 축원이라도 올리고 싶어집니다. 혜덕화 부처님, 고맙습니다.

혜덕화 2005-05-16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년 삼만 육천 날, 근심 없으면 아프다. 옛사람의 시를 남희근 대사의 금강경강의에서 읽었습니다. 보통 사람의 경계는 질병 아니면 번뇌라구요.
아픈 사람을 보면서 건강함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참 슬픈 역설이기도 합니다.
언니의 퇴원이 가깝다니 다행입니다. 건강 되찾아 밝고 맑은 날 되기 기원합니다.

니르바나 2005-05-2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혜덕화님 가족를 위해 등하나를 달아 드리겠습니다.
청안하세요.

혜덕화 2005-05-23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니르바나님.
요즘은 바쁘신가 봐요. 마이페이퍼가 뜸하시네요.
그래도 평안하시죠?

2005-05-24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26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5-06-07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자기만족을 위한 수행이 아니라 자기를 초월하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감합니다. 바치는 자리는 그 자기만족마저 바치는 자리입니다. 아상이 있는 자리가 비워져 부처님 향하는 그 마음으로 밝게 빛나는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