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학원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왔다.

고속도로를 혼자 달리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친절한 네비의 안내로 초행길을 안전하게 다녀와서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다.

짐을 내려놓으려 여학생 기숙사에 들어가니 다른 아이들의 짐은 거의 이삿짐 수준이다.
한 달 입을 것, 단출하게 챙겨왔는데 속으로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필요한 것 있으면 사무실 가서 언제든지 말하고, 연락 오면 택배로 부쳐주마 했는데 아이는 내가 넣어 놓은 것도 다 빼 놓더니 지난밤엔 춥지나 않은지, 학원의 안전시설은 잘 되어 있는지,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 잠을 설쳤다.
노는 것,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좀 떼어놓아야겠다 싶어서 기숙학원을 신청하게 되었다.

작은 아이까지 기숙 학원에 가버리면 너무 쓸쓸할 것 같아 안가겠다고 하면 취소할 생각이었는데, 아이는 순순히 가겠다고 한다.

나를 소리 지르게 할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천적인 작은 아이.
태어나서 처음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으니 마음이 쓰여 잠도 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금강경을 읽고 마음을 다잡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5주간 생활해 보는 것도 아이에게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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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12-29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주간 기숙학원에 떨어져 보내셨군요.
혜덕화님, 엄마 마음 알고 열심히 잘 생활할 거에요.
전 오늘 방학이라도 기숙사에서 자는 큰딸 잠시 보고 왔어요.
해거름이었는데 자습하다 내려온 아이 얼굴이 하얗게 추워보였어요.
아이와 '안녕'하고 텅빈 운동장에서 펑펑 울다 왔어요. 왜 그런지 그냥..
내일이 생일인데, 하는 생각은 방금 들었네요.ㅠ

혜덕화 2010-12-29 20:54   좋아요 0 | URL
해질녘이라 그랬나봐요.
저도 가끔 어둑어둑 해지면 막 슬퍼질 때가 있거든요.
혼자 서면의 야경을 보며 밥을 먹으면
세상의 불 빛들이 참 아름다운데도 목이 메일 때가 있어요.
님의 글을 보니 나도 눈물 나려고해요.
오늘 어느 님의 글에서 속절없다는 표현을 보고도 마음에 잠시 눈물이 맺혔는데...

hnine 2010-12-2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을 '천적'이라고 하신 표현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을 보니 저도 제 손으로 자식을 키우는 부모 맞나 봅니다.
잠시 떨어져 보는 것, 저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이 없지만요.
그래도 편한 밤 되셨으면 좋겠어요.

혜덕화 2010-12-30 08:31   좋아요 0 | URL
평소엔 봄바람 같은 아인데, 어쩌다 한 번씩은 혼낼 일을 만들어요. 오빠가 아이의 천적 노릇을 해 주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이길 사람이 없어 제가 소리를 지르는 수 밖에^^
둘째라 너무 마음에 끼고 있었나봐요.
큰 애는 어딜 가도 남자니까, 하고 마음을 놓았는데 작은 아인 그렇지가 않네요. 고집도 세고 조심성도 없어서, 잘 하고 있을지 내내 마음이 쓰입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백악관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미국인들의 지지도가 많이 떨어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오프라가 물었다. 

오바마 왈 '대통령이 되었을 때,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6개월만 지나면 지지율이 떨어질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지율에 신경쓰지 않느냐는 물음에 오바마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설명할 수는 있지만, 지금 직장을 잃었거나 아이의 등록금을 낼 수 없거나 집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 설명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변명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싶다."  

비록 오바마가  자신의 뜻을 다 펼치지는 못하더라도, '책임을 지고 싶다'는 그의 말이 놀라웠다. 

책임을 지고 싶다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 

부러워서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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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12-28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진짜 그 누구랑 너무나도 비교되는군요...
단지 립서비스일지도 모르지만 그것마져도 저렇게 차이가 나니..

혜덕화 2010-12-28 08:27   좋아요 0 | URL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한 사람이 국가 운영의 전체적인 흐름을 모두 바꿀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통령도 하지 못하는 일이 있겠지요.
하지만 책임을 지고 싶다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나라.
미국에 대한 선입견이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 2010-12-2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진짜 글 읽으면서 울컥했습니다.
이런 생각 해본 적 없었는데... 립서비스라도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정말 부럽네요...

혜덕화 2010-12-28 08:28   좋아요 0 | URL
정말 부럽죠?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오바마의 열정적인 연설을 보고 반했었는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글샘 2010-12-28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부에서...
대학 신입생에게 장학금? 빌려준다고 빤딱거리는 좋은 종이에 인쇄해서 왔길래, 쓰레기통에 확 쑤셔박아 버렸습니다.
반값 등록금은 어디가고... 대출은...
정말 립써비스도 수준이 있네요.

혜덕화 2010-12-28 08:33   좋아요 0 | URL
대학 등록금도 그렇고, 비정규직 문제, 구제역, 한미 FTA, 용산 참사...
생각하면 어둡지 않은 소식이 없습니다.
사람을 길게 두고 봐야 안다지만, 저는 오바마의 진심을 믿고 싶어요.
그가 단지 립서비스 차원에서 한 말이 아니라
그의 진심이 담겨있었다구요.
우리도 이 땅 어딘가에서 저런 사람이 자라고 있을 거라 믿으면 좀 마음이 놓일까요?
이렇게 삭막한 교육 현실 속에서, 저런 연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
뿌리지 않고 거두려는 탐욕 같아 마음이 켕기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 봅니다.
연꽃이 진흙탕에서 피는 것을 알기에....

진주 2010-12-29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젠가 뉴스에서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에 오바마라고 나오더군요.
오늘 아침엔 오바마가 휴가가서 아이스크림 퍼먹는 모습 나오구요ㅎㅎ
미국인들이 오바마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우리가 불쌍...


혜덕화 2010-12-29 10:00   좋아요 0 | URL
저도 자막으로 지나는 뉴스로 본 것 같아요.
대통령을 존경할 수 있는 나라.
참 낯설어요.
그게 정상적인 것일텐데, 우린 왜 그렇게 안될까, 이상하죠?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관하여 - 인생의 참주인을 찾는 깨달음의 길
사쿙 미팜 지음, 안희경 옮김 / 판미동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책 제목이 사람의 마음을 끈다. 

이런 종류의 명상 서적을 많이 읽은 사람에겐 그저 그런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카르마를  알아야 하고, 나라는 것에 집착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며, '나에게 무엇이 이익인가'를 '당신에게 무엇이 이익인가'로 바뀌는 순간 삶의 연금술이 일어난다는 이야기. 

단지 책을 읽기 위해 책을 산다면, 이런 종류의 책은 서점에 넘쳐난다. 명상은 읽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고, 읽는 것은 체험하는 것과 다르다.

하지만 정말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삶에서 가장 큰 의문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수 많은 삶의 이정표 중에 하나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가 수행자처럼 살 수는 없어도, 하루에 10분이라도 호흡 명상을 하든, 요가를 하든, 다른 어떤 수행을 하든 삶의 일부를 바꾸어 보려고 노력하는 것. 

아침 10분의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 10분의 평온을 하루 종일 이어가도록 노력하는 것. 

내 마음의 평온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전염되어서, <나> 뿐만 아니라 <너>도 행복하고 평온한 세상을 만드는 것, 

천국이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을 가르치는 글이다. 

매일 보도되는 뉴스를 보면 세상이 온통 악다구니 속에 살아가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숨어있는 관세음보살이 얼마나 많은지, 그 분들 덕분에 오늘 나의 평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하지만, 책 속의 길은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내가 누구인가 라는 가장 깊고 오래된 질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삶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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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 여시아문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선방일기가 새 옷을 입고 나오는 광고를 보았다. 

몇 해 전에 사서 읽고 모셔두었던 책을 어제밤부터 다시 읽었다. 

상원사에서 동안거를 보낸 지허 스님의 일기, 말 그대로 동안거 결재일부터 해제일까지의 일기가 담담하게 엮어져있다. 

이 책의 발행인은 헌 책방에서 우연히 이 글을 만나 출판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좋은 글도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인연이 있어서 그 발행인을 만난 것일테고, 그로 인해 나도 선객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일상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읽을 때는 감자서리라든가, 대중 공양으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건성건성 읽고 넘어갔다. 한자어도 많고 사자성어도 많아서 글쓴이가 전달하고자 한 의도를 많이 놓쳤다. 

오늘 새벽 일찍,  어제 저녁 읽다가 만 나머지를 다 읽고는 책을 가슴에 꼭 안았다. 

지허 스님이 이 생에 이루고자 하신 것을 이루셨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이 리뷰의 제목으로 쓰인 글은 '선객의 고독'이라는 어느 날의 일기에 쓰인 니체의 독백이다. 

'나의 입이 노래하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을'  설악산의 토굴로 홀로 정진을 떠나신 스님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현재의 나는 숙명의 객체이지만 운명의 주체임을 붙잡고 잔혹한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계시다던 스님. 혹시 다른 책이 있나 검색해보니 저자 약력에 돌아가셨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젊은 스님들을 보면, 어떤 인연으로 발심하게 되었을까 예전엔 참 궁금했는데 이젠 오로지 그들의 발심의 계기가 무엇이었든간에 구도자로서 생을 걸게된 그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기만을 바라게 된다. 

내 인생의 50권의 책 속에 오늘 한 권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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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9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0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끼던 후배의 언니의 부음을 들었다. 

후배가 특휴를 낸 것도 모르고 있었고, 친목회에서도 아무 말이 없어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히 특휴 낸 소식을 듣게 되었다. 

특휴를 낼 만한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몇 달 전부터 언니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평소 무척 건강했던 언니가 그렇게 갑자기 갈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몇 달 전 공무원 건강 검진을 갔는데 산부인과 의사가 대수롭지 않게 자궁 근종이 있다고 수술해야한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주변에 좀 더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는데, 놀랍게도 자궁을 열어보니 근종이 아니라 암이었고, 그것도 자궁에 생긴 암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생긴 암이 자궁까지 전이가 다 된 상태였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서울의 종합병원으로 왔는데 아예 손을 못 대는 상태라고 집으로 가서 마지막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환자의 고통이라도 줄여주려고 다른 병원에 입원해서 링겔과 호흡기로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다가 그제 돌아가셨다고 했다. 

병이 난 것을 알고부터 꼭 4개월만이란다. 

평소 그렇게 건강했던 사람이 병을 알고부터는 밥도 못 넘기고 모조리 토해냈다고 하니, 몸의 병을 모르고 사는 것이 좋은 건지, 알고 준비하는 것이 좋은 건지 알 수가 없다. 

후배에겐 친정 엄마도 몇 해 전 돌아가시고 언니가 엄마 같았을 텐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할 말도 없고, 손을 잡고 눈물만 흘리다가 돌아왔다.  

 

동생을 잃고 나도 참 많이 울었다. 

결혼을 하고부터는 따로 살아서 큰 상실감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방학을 하면 매일 동생이 입원한 병실에 출근을 했다.  

동생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동생을 간병하는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올케는 장사를 하니, 엄마가 모든 수발을 해야 해서 엄마가 좋아하는 것, 동생이 좋아하는 것을 매일 들고 가서 30분이라도 있다가 와야 마음이 편했다. 

그래도 가고 나니 동생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가 남아서, 얼마나 많은 '미안해'의 눈물을 흘려야했는지 우리 가족들은 모른다.  

이제 겨우 그 눈물이 말랐다. 

해질 무렵, 혼자 식탁에 앉아 불이 하나 둘 켜지는 저 먼 시내의 불 빛과 야경을 보면서도 눈물을 삼키지 않게 되었다. 

후배의 남편은 내 친구이자 남편의 친구이다.  

남편은 국내에 없어 혼자 문상을 다녀 온 길. 

고 3 딸 아이 수능도 치르게 하고, 가족들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주느라 4개월을 버틴 망자의 영혼이 평온하였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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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2-19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일은 정말 많이 많이 아파요~ 보내고 나서의 상실감이 더 힘들어요....

혜덕화 2010-12-19 16:03   좋아요 0 | URL
작년과 올 해, 참 많은 사람들이 떠나갑니다.
물만두님의 귀천 소식도 너무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댓글 주고 받지 않아도 가끔 알라딘을 떠난 사람들이 궁금해집니다.
잘 지내고 있겠지요.
봄이 오면 새 잎 돋아나듯,상실감도 내 안에서 새 잎으로 피어날거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