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자시절 3 -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박원자 엮음, 김민숙 사진 / 다할미디어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이후, 뉴스도 드라마도 영화도 보지 않았다.

세상의 어떤 영화보다도 더 충격적이었고 고통스러웠던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면서 말할 의욕도, 희망도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이번 여름, 해인사 여름 수련회를 4박 5일 다녀왔다.

새벽 예불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의식, 새벽 4시의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서 성철 스님 사리탑에서 108배와 참선, 스님의 청정하고 맑은 염불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의 슬픔을 씻어내고 온 것 같으나 나는 아직도 슬프다.

사람으로 이 고통스런 세상으로 자꾸 윤회하여 와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고 세월호가 아직도 슬프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나의 행자시절을 읽었다.

초발심의 젊은 행자들의 치열한 삶과 이제는 아름다운 일화로만 남은 큰 스님들의 따뜻하고 크신 보살행을 글로 만나면서 내 생의 남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가 중에 41명이나 출가한 일타스님의 일화는 특히 자비의 마음 크기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였다.

일타스님의 상좌 하나가 환속하고 장가를 갔다. 많이 배우지 못한 상좌가 처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혼인을 해서 두세 해가 지나도록, 스님께선 승적을 정리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제자가 아무개는 애기 낳고 잘살고 있는데 아직 승적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좀 언짢은 소리를 하니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집안 좋고 배운 것 많은 그 아이 처가 내 상좌와 얼마나 살는지 걱정이 된다. 혹시나 그 애가 버림 받으면 오갈 데 없이 불쌍하지 않느냐? 한두 해 더 두고 봐서 잘 살면 정리하마”고 하셨다고 한다.

스님이나 신부님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조금만 잘못해도 수행자가 어쩌구저쩌구 비난하고 비판한 우리는 ‘인간’에 대한, 나약한 ‘존재’에 대한 자비심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에는 우리가 이름만 들어서 알고 있는 동산스님, 청담스님, 성철스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예전에 너무나 구수하게 들어서 목소리가 낯익은 일타스님의 일화도 있어 내게는 감동과 수행에 대한 발심을 다시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3권의 송담스님 글에는 성철스님과 지월스님의 일화가 있다.

지월스님이 가시기 전, 병고를 받아들이시고 수술을 마다하고 해인사로 돌아와 경내를 말없이 돌아보셨다고 한다.

성철스님께서 방으로 찾아와 예의 그 투박한 음성으로

“아파요?” 하고 물으셨다.

아무 말씀없이 조용히 웃음지으시던 지월 스님

“몸 바꿔야 되겠네요.”

스님께선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셨다.

“그럼 먼저 가소.”

지월 스님께선 바로 다음날 고요히 몸을 바꾸셨다. p321

 

이번 여름 해인사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이 오욕락이 들끓는 세상에서 청정하게 자신을 닦아나가고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학인들과 스님들을 보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도록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을 출가 시킨 엄마 마음이라고 할까, 짠하고 대견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젊은 스님들이 올곧게 잘 수행해 가시기를 진심으로 발원한다.

새벽 산사에서 들리던 학인 스님들의 경 읽는 소리, 도량석을 도는 소리, 초를 다투며 생활하시던 승가대학의 모든 학인 스님들에게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하기를.

 

삼일수심 천재보, 백년탐물 일조진,

삼일 마음 닦은 것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물질을 탐하는 것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라.

스님들께서는 스님들의 처소에서

재가불자인 저희들은 저희들이 삶 속에서

계행을 지키며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며 살기를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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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14-09-20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글을 올리셨네요. 반가운 마음에 인사드려요. 요즘처럼 밖으로만 향할 때 혜덕화님 이름만 봐도 정신차려야지 하는 마음이 듭니다. 아침 저녁 기온차가 큽니다. 건강하시고, 슬픔 중에도 평화로우시길 빕니다.

혜덕화 2014-09-20 20:13   좋아요 0 | URL
이누아님. 정말 오랫만입니다.
간혹 책 사러 와서 님의 글을 보긴 했지만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싶어
인사도 건네지 못했네요.
저는 평온하고 평화롭습니다.
하지만 이 평온과 평화가 얼마나 허약한 망상 위에 지어진 집인지 잘 알면서도
수행하는 삶을 살지는 못합니다.
금강경 읽고, 자비도량참법 읽고 매일 절은 하지만
절벽 끝에서 떨어지는 꿀 한 방울에 안주하는 삶을 살 뿐입니다.
자신을 경책하는 의미에서 요즘은 예전에 사 두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 읽습니다.
오늘 햇살과 바람은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지,
이 삶이 허약한 망상 위의 집이라고 해도, 아름다운 이런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아기들 많이 컸지요?
아기들도 님도 행복한 가을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_()_

라로 2015-01-01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그동안 잘 지내시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2015년이 밝았네요~~~. 늘 건강하시고 알라딘에서 좀 더 자주 뵐 수 있기를 욕심내 봅니다. 혜덕화님의 글을 통해서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을 자주 하고 싶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혜덕화 2015-01-01 12:43   좋아요 0 | URL
앗, 나비님.
너무 반가워요.
요즘은 폰으로 글을 잠시잠시 읽고 보니
댓글도 달지 않게 되고, 글도 쓰지 않게 되더군요.
미국에서 잘 생활하고 계신 것 같아 사실은 마음으로 굉장히 흐뭇해하고 있었답니다.^^
씩씩한 나비님,
하시는 일 더 잘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_()_
 

삶이 고해라는 말.

요즘 들어  정말로 삶이 고통스럽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선암사에 올라 간절히 빌었다.

제발 아이들이 돌아올수 없다면

죽은 시신이라도 돌아와서

이 몸을 나라고 믿고 사는 중생들의 근기에 맞게

이별 인사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아이를 차가운 바닷물 속에 두고

어떻게 팽목항을 떠날 수 있겠는가 싶어서

살아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없다면

마지막 가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게해달라고 빌었다.

뉴스는 도저히 볼 수가 없고

스마트폰으로 실종자의 수만 검색했다.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아

살릴 수 있는 많은 시간을 그냥 보내버린 우리 어른들은 이렇게 비통하고 슬퍼하게 내벼려두어도 좋으니

너의 부모에게는 꿈 속에서라도 모습을 나타내어

이별 인사를 하고 가렴.

미안하다. 

오월의 햇살도 바람도 꽃들도

너무 맑고 부드러워 오히려 슬프구나.

미안하다. 아가들아.

고통없는 세상에 닿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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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사원의 지옥 형상

 

 

 

 

 

 

 

 

 

 

 

 

 

 

 

 

 

 

백색 사원 안 화장실

 

 

 

 

 

 

 

 

 

 

 

 

 

 

 

 

백색 사원

현재 태국의 대학 교수가 6년 전부터 짓고 있는 사원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교수의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살아서 공덕을 짓지 못해 지옥에 있다, 너라도 나를 위해 공덕을 지어 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6년 전부터 자기가 모은 돈으로 절을 지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입장료를 받아 지으면 자기 돈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서, 입장료도 받지 않았다.

들어가는 입구엔 지옥을 묘사한 조형물이 있고, 절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서 찍지 못했지만 극락을 형상화 한 것 같았다.

백색 사원 옆의 화장실도, 황금빛으로 칠하고 예쁘게 지어 놓아서, 모르고 보면 사원 같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태국은 소승 불교의 나라라서,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불교적인 행사가 있는 날이면 거의 전 국민이 사원을 찾아온다고 한다

후세의 사람이 소승, 대승 갈라 놓았지

지혜와 자비에 나와 남이 갈라져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분이 사원을 지은 공덕이

모든 부모님들께 회향되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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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임팩트 맨 -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남기 1년 프로젝트
콜린 베번 지음, 이은선 옮김 / 북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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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약속의 땅에서 지내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계율의 하나로 전쟁 중에 열매를 맺는 나무는 '죽이지 말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것은 단순히 나무에만 적용되는 계율이 아니라 그릇을 깨거나 옷을 찢거나 건물을 무너뜨리거나 우물을 막거나 음식을 낭비하는 사람은 누구나 '죽이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 것이다."-69쪽

우리 가족을 위해 영양이 풍부한 상을 차리는 것이 언제부터 꼬박꼬박 지킬 수 없는 허드렛 일이 되었을까? 그 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인생 자체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편의용품을 더 많이 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나는 자기 꼬리를 먹는 뱀 같다.
편의를 위해 허비하는 행위는 내가 지금 이 순간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인생은 그 자체가 허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손을 거쳐가는 물건들을 소중하게 다루면 내 발밑으로 지나가는 지금 이 순간도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쓰레기를 복도에 내어놓는 순간, '나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가 된다.
내가 일회용품을 처분하는 순간, 내가 누린 편의가 전 인류에게 민폐가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의 80%가 일회용품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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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인 에고는 대개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보다도 더 무의식적이다. 예를 들면, 일시적인 집단 에고체인 군중은 개인으로 떨어져 있었으면 하지 않았을 잔혹행위를 태연하게 저지른다. 개인이었으면 그 자리에서 정신병자라고 인정될 행동에 국가는 자주 개입한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p 172-

변호인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에크하르트 툴레의 통찰력있는 말을 인용하여 대신해 본다.

국민은 적이 아니다.

국회의원들도 서로 적이 아니다.

단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진보좌파니, 보수 우파니 하는 말은 그런 낱말로 상대를 규정지어 놓은 '단어'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진보좌파와 보수우파가 실존한다고 생각한다.

교사와 학부모를 가르고

노동자와 사용자를 가르고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

젊은이와 노인을 가르고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가르고

정리 잘 된 서랍처럼 모든 것을 질서정연하게 분류해서 이름표를 붙인다.

내가 그 이름표를 붙인 장본인이란 것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나의 '적' 혹은 '경쟁자'로서의 타인을 본다.

이름표를 떼어 버리면, 우리 각자는 다만 외롭고 허약한

이 삶에 조금이라도 격려와 위로가 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삶의 어느 싯점에서는 우리 모두 영화 속의 진우처럼

'죽음'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야 하는, 삶의 파도에 멍투성이가 된

그냥 한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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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3-12-22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잘 지내셨어요?
저도 이 영화 보러 가야 하는데 사실 용기가 안 난답니다.
뻔히 아는 내용이지만 '분노'라는 감정을 다스릴 용기가요..
어렵습니다.

혜덕화 2013-12-23 14:12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습니다.
예전에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옆 자리에 영화를 혼자 보러 온 여자가 흐느끼며 영화를 보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사람이 또 울고 있지 않을까, 뜬금없이 ,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낯선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울고 싶은 현실입니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답답합니다.
꼭 보러 가세요.
분노도 때로 힘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