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던 후배의 언니의 부음을 들었다.
후배가 특휴를 낸 것도 모르고 있었고, 친목회에서도 아무 말이 없어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히 특휴 낸 소식을 듣게 되었다.
특휴를 낼 만한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몇 달 전부터 언니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평소 무척 건강했던 언니가 그렇게 갑자기 갈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몇 달 전 공무원 건강 검진을 갔는데 산부인과 의사가 대수롭지 않게 자궁 근종이 있다고 수술해야한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주변에 좀 더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는데, 놀랍게도 자궁을 열어보니 근종이 아니라 암이었고, 그것도 자궁에 생긴 암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생긴 암이 자궁까지 전이가 다 된 상태였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서울의 종합병원으로 왔는데 아예 손을 못 대는 상태라고 집으로 가서 마지막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환자의 고통이라도 줄여주려고 다른 병원에 입원해서 링겔과 호흡기로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다가 그제 돌아가셨다고 했다.
병이 난 것을 알고부터 꼭 4개월만이란다.
평소 그렇게 건강했던 사람이 병을 알고부터는 밥도 못 넘기고 모조리 토해냈다고 하니, 몸의 병을 모르고 사는 것이 좋은 건지, 알고 준비하는 것이 좋은 건지 알 수가 없다.
후배에겐 친정 엄마도 몇 해 전 돌아가시고 언니가 엄마 같았을 텐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할 말도 없고, 손을 잡고 눈물만 흘리다가 돌아왔다.
동생을 잃고 나도 참 많이 울었다.
결혼을 하고부터는 따로 살아서 큰 상실감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방학을 하면 매일 동생이 입원한 병실에 출근을 했다.
동생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동생을 간병하는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올케는 장사를 하니, 엄마가 모든 수발을 해야 해서 엄마가 좋아하는 것, 동생이 좋아하는 것을 매일 들고 가서 30분이라도 있다가 와야 마음이 편했다.
그래도 가고 나니 동생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가 남아서, 얼마나 많은 '미안해'의 눈물을 흘려야했는지 우리 가족들은 모른다.
이제 겨우 그 눈물이 말랐다.
해질 무렵, 혼자 식탁에 앉아 불이 하나 둘 켜지는 저 먼 시내의 불 빛과 야경을 보면서도 눈물을 삼키지 않게 되었다.
후배의 남편은 내 친구이자 남편의 친구이다.
남편은 국내에 없어 혼자 문상을 다녀 온 길.
고 3 딸 아이 수능도 치르게 하고, 가족들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주느라 4개월을 버틴 망자의 영혼이 평온하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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