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푸른역사 학술총서 5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 들어가기 전에

한국의 역사는 침략을 하기보단 침략을 받은 역사이다. 단군조선부터 시작하여 후기 조선까지 이어져 항상 중원대륙의 한족(漢族)에 의해 국가의 위기를 맞이했다. 21세기인 지금에 중국에는 황제라는 사람이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란 국가는 항상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까지 큰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게다가 글로벌리즘이란 이름 아래 중국 역시 관료주의적인 사회주의형태에서 국가 내부적인 정치성향은 관료주의는 택하고 있으나, 한편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자본주의국가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미 자본주의 VS 공산주의(국가자본주의 내지 관료주의국가) 대립구도는 해체되었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아마 그 이전의 중국보다 더 강력하고 위기로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다고 중국을 과거 한국전쟁에서 이북 위로부터 넘어온 적대국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대외 무역에서 절대 제외할 수 없는 국가다. 특히 등소평의 개방정책은 중국의 상품이 외국으로 넘쳐흐르게 되면서 중국은 어느 순간 우리에게 적대국가가 아니라 한국 주변에 있는 무역국가 중에 하나다. 게다가 중국에서 매년 한국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한국 역시 중국으로 유학 내지 관광으로 방문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 국제사회의 관계적인 요소에서 중국에 대한 역사적인 관점을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록 우리가 수 십 년 내지 수 백 년 전의 일이라도 그것이 지금의 우리 실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해 분단되었다고 해도 대한민국 지도는 조선시대의 영역과 거의 흡사하다. 조선의 탄생이 결국 대한민국 영토의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조선시대 개국군주는 태조 이성계와 그의 아들 태종 이방원이다. 그들은 본래 고려의 신하였으나,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왕국을 멸망시키고, 조선이란 새로운 국가를 설립한다. 당시 원나라 이후 중원은 명나라라는 강력한 한족국가가 있었다.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 대신 명나라라는 국가였다. 한족이란 국가체계는 뛰어난 문인들을 위주로 하였기에 제 아무리 무력이 강한 국가라도 해도, 그 지배논리 내지 국가운영체계에 한족의 문화적 기반을 따라갈 수 없었다.

 

현재 중국은 공산화된 국가라고 하나, 실제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들어가자면 중국은 마르크스의 가르침에 전혀 따른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예전의 봉건사회에서 계급 대신 자본이나 권력의 소유에서 새로운 지배계층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은 세계 어디든 존재하는 국가에서 경제적인 조건만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갈 수 있다. 그렇지만, 빈부격차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이란 슬로건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로 전혀 빈부격차를 줄이지 못하는 지난 세기의 공산주의국가 진영의 모습에서 단순히 우리는 공산진영의 국가이던 중국으로 보는 게 아니라 단지 공산주의라는 이름이 국가정치에서 겉으로 표방하지 민족적 국가적 정체성은 아직까지 우리가 마지막 왕을 가진 조선이 있듯이 그들도 명나라와 청나라의 중국이란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전쟁의 배경

전쟁이란 단순히 감정이나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진행되는 게 아니라 단지 그 단순한 감정과 순간적인 판단이 촉발제가 될 뿐이다. 전쟁의 이유는 바로 국가 내부적으로 경제적인 조건과 환경적인 조건이 중요하며, 특히나 청나라 이전의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는 전쟁이란 이름을 단순히 기마민족의 위상만이 아니라 그들의 생계성에 의해 진행되었다. 우선 영토의 분류상 한국은 몬순기후로 쌀농사가 매우 적합한 국가이며, 중국은 다양한 기후가 섞여 있으나 대부분 농업이 가능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다르게 후금이던 청나라는 대부분 몽골이나 조선함경도 이북에 위치하고 있기에 농업이 매우 부적합하므로 식량문제가 항상 심각했다. 그들이 전쟁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선 식량의 공급이다.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우선 직접 수력이나 채집으로 유지 하던가 혹은 농업이나 축산업을 일으키거나 또는 침략으로 통해 식량을 훔쳐오는 것이다. 후금 인근에 위치한 몽골을 비롯한 대부분 오랑캐부족들은 유목민족으로 일정한 터전도 없이 계속 이동을 하면서 가축을 키워 가축의 우유와 고기로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식량을 가져올 수 없기에 후금의 입장에서 조선이나 명나라의 식량무역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식량외교는 유리한 게 아니다. 물물교환 내지 상품을 화폐로 교환하기 위해서는 그에 해당되는 가치로서 교환해야 한다.

 

문제는 화폐로서 사용되던 것은 지금과 같은 달러 내지 유로 같은 종이화폐가 아니라 금, 은, 보석 등과 같은 귀금속이다. 물물교환이 가능한 것은 가축, 식량, 약재, 무기 등과 같은 그 나라의 살림에 필요한 도구들이다. 화폐의 기준이 되는 척도가 존재하지 않기에 상당량의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화폐적 기능을 할 수 있는 상품 내지 귀금속이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후금의 입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약탈에 의해 자행되는 물자의 귀속에서 물자를 약탈하면 할수록 이에 대한 새로운 물자가 필요하다. 전투에 필요한 물자만큼 그 전투에 참여한 장병과 가족까지 혜택이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후금이 초반에 가난한 국가이고, 전투가 용이한 점은 그들이 문화적인 과잉이 정치적으로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정묘호란과 달리 병자호란이 괴로운 일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런 호족들이 가진 문화적인 역량이었다. 홍타이지를 살펴본 조선 사신들은 홍타이지가 매우 호탕하고 남성적이며, 밑의 부하들에게 엄하지만 백성들에겐 매우 관대하다고 한다. 그러나 병자호란 시기에는 후금이 아닌 몽골족의 용병술로 정묘호란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 것이다. 홍타이지는 초반에 조선을 침공할 때 거리의 양민들을 손대지 않도록 했지만, 병자호란 시기에는 몽골족들이 약탈과 살인을 즐겼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전쟁의 시초는 외교적인 갈등이 시작되나, 그 외교적 갈등에는 국가 내부나 혹은 국가이전의 부족에서 자원의 충당에서 시작된다. 물자부족에 대한 충당과 그 충당과정에서 보상이 일어나고, 그 보상 이후 새로운 인원과 물자를 보급하게 되면서 더 큰 물자와 보상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면서 세력은 확장되었고, 전쟁의 대상은 국가차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몽골족의 칭기스 칸의 경우 본래 몽골의 작은 부족에서 시작한 점에서 청국 황제인 홍타이지 역시 후금의 부족에서 하나의 족장에 불과했던 점이다. 전쟁의 원인은 결국 부족국가에서 물자의 보충과 더불어 그 과정에서 상대진영과 반목된 계기라고 볼 수 있었다.

 

문화가 물질에 의해 지배받은 것이 청국의 시작이라면 문화가 물질을 지배하는 것이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다. 조선의 경우 이성계 이후 명나라에 대한 사대사상에서 중화주의를 논하면서 소중화 국가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이른바 사대부들은 공자로부터 시작하여 주자학이 결국 한족의 유교문화였고, 자신들은 그 문화의 후계자란 사실을 토대로 주변에 있던 일본과 만주족 등을 우습게보았다. 문인들이 중심이 되던 조선사회에서 무인들의 위치는 문인보다 아래였으며, 도원수나 대장군이 위치해도 병조판서와 같은 문인 사대부들이 지금으로 따지면 국방부장관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인들의 정치적 성향은 소중화 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어버이국가 명나라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충성을 기하여 할 것이며, 이에 대한 반대의견을 절대적으로 용납하지 않았고, 조선시대에는 사문난적으로 몰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광해군의 경우 처음에 후금과의 관계성에서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의지하기보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사이에서 중립외교로서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경제적, 물질적, 환경적인 조건보다 문화적인 기반이 우위인 사대부에겐 큰 반발이 되었다. 강홍립이 후금과의 전쟁에서 고의적으로 싸우지 않고, 오히려 진형이 불리하여 투항한 것은 광해군은 정치의 우위는 문화보단 물질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해 조선의 팔도는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그 와중에 우방국인 명나라는 도독 진린을 파병을 보내나, 그들은 왜와 진정으로 싸우려 하지 않았고, 뒤에서 왜와 교섭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명나라의 구원을 토대로 어버이국가에서 아들국가인 조선을 도왔다는 이유로 충성심을 표한다. 일본이 민가를 약탈하면 큰 빗 하나가 스쳐지나갔다고 하면, 명나라의 군사는 참빗 하나가 지나갔다고 한다. 빗의 날이 세세하고 미세한 참빗처럼 명나라가 조선에 기거하면서 하는 일이라곤 노략질과 병량미를 축내는 것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명나라에 대한 우방의식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정치적 무능력을 보여주며, 이와 더불어 그런 후금에 대한 견제성에서 군사력의 한계성과 반정공신들의 이익만 보다가 결국 호란을 당한 것이었다. 정묘호란이 일어난 1627년에 후금의 요구사항은 그래 과다하지 않았다. 광해군이 인조반정에 의해 내쫓겨나도, 결국 후금은 명나라와 조선의 연합전선에 눈치보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운은 조선을 버리고 또 무시했다.

 

□ 외교적 상황

조선이란 국가의 한계성은 바로 실리외교를 무시한 것이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에 아무런 방도도 세우지 못하고 당파싸움에 결국 부산 동래와 한양을 함락당한 선조는 아무리 유능한 신하를 두어도 당파논쟁 및 화이론(華夷論)에 지나친 몰입에 현실적 감각을 상실했다. 북인계통의 이순신 같은 무장이 전쟁을 승리를 이끌어도 반역자로 몰린 이유도 당파논쟁에 큰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북인의 경우 이후 광해군 시대에 외교정책을 효율적으로 다루어 전쟁의 원인을 피하려고 했다. 처음부터 홍타이지도 조선에 대해 강압적인 침공을 하려던 것은 아니나, 결국 명분이란 것이 실리의 모든 것을 우월할 때 전쟁이란 극단적 상황이 도래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광해군은 가도에 위치한 명나라 장수인 모문룡에 대해 견제를 했다는 점이다. 모문룡이 탐욕적이고 자국의 수도에서 멀리 있는 가도에서 변방황제라고 불릴 정도로 재력과 군사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후금, 조선이 필요한 무역의 모든 이권을 챙긴 모문룡은 후금에게 큰 가시거리이고, 조선으로 본다면 막대한 예산을 요구하는 간신배였다. 모문룡에 대한 광해군의 정책은 모문룡을 견제하고 후금과의 중립노선을 지키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인조가 반정에 오르자, 모문룡의 세력에 속한 상관이 인조의 정치적 기반이 약한 점을 이용하여 명나라와 조선의 외교교섭을 강화했다.

 

인조는 본래 광해군의 조카이며, 정상적인 방법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기에 명분이 필요했다. 명나라의 사록에서 인조는 정상적인 왕이 아니라 변란으로 왕이 된 사람이고, 그가 왕위의 안정성을 가지려면 명나라에 의해 책봉을 받아야 하는 점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일개 대군이란 점에서 명나라의 모문룡의 상관으로부터 인조는 자신의 아버지가 왕으로 추숭되는 것을 성공한다. 덕분에 명나라와 후금에 대한 외교 사다리타기에서 명나라로 가면서 추후에 조선은 홍타이지의 침략을 받고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외교의 실리적인 부분에서 명분이란 결국 자신을 옭아매는 아킬레스와 같은 존재다. 그래서 명분 뒤로부터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외교정치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의 조선에서 외교정치를 잘 하는 것은 결국 자국을 보존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쇼군으로 되면서 일본 내의 모든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을 척결한다. 그 덕분에 일본 막부는 전쟁보단 에도 중심의 내정위주의 정치로 옮겼으며, 도쿠가와 막부와 더불어 조선의 교역과 외교회복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일본에는 아직까지 강력한 왜병이 있었고, 조총의 경우 살상력이 매우 높았으며, 항왜(降倭)와 같이 항복한 왜인들은 다른 조선병사와 달리 매우 강한 무술과 돌격능력을 갖추었다. 이런 상황에서 왜관을 동래에 설치하여 일본과 외교문제를 논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로는 명과 후금 아래로는 왜국이 있었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침공해온다면 국가존립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기초는 광해군부터 닦아오고, 인조는 후금의 세력이 강하고, 혹시라도 있을 전쟁을 대비하여 왜국의 조총과 염료, 화약을 구입한 것이다.

 

모문룡 사망 이후, 명나라에서 후금에 대한 전반적인 전투태세에서 중간에서 눈치보단 조선이 명으로 붙은 조선에서 일본의 외교는 중요했으나, 문제는 명나라의 국가 존립을 유지할 수 없었다. 명나라는 외교적인 문제보단 자국 내의 정치적 세력의 분할로 인해 파가 갈리어 있었고, 그 이점을 노려 홍타이지는 자신에게 투항한 명나라 장수로서 이간질 작전을 세웠다. 덕분에 중요한 장수가 처형당하는 일을 당하자, 명나라의 군사력은 점차 약해져 갔고, 이 와중에 자국에서 보충 내지 합의에 대한 보완보단 그저 그대로 흘러가는 추세인 것이다.

 

□ 이신의 존재

이신이란 하나의 왕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두 명의 왕을 섬기는 자를 가리킨다. 즉, 원래 명나라의 장수나 인물이었으나, 후금으로 투항하여 홍타이지를 보필한 자들이다. 명나라는 기본적으로 조선에 대한 정치적 상황이나 외교적 방술을 잘 알았으며, 전쟁은 반드시 무력으로 인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문인들로 통해 정치외교적인 압박과 실리를 넘은 명분으로서 조선을 굴하게 만들 수 있었다. 제 아무리 실리가 중요해도 명분이 존재하지 않으면 대화가 성립되지 않거나 혹은 압력을 주어도 한계성이 따르기 때문이다. 명분성에서 인조의 반정 역시 명분에 의해 명나라와 친교외교로 맺은 것처럼 후금에 투항한 명나라 장수들은 바로 그런 방법으로서 조선을 압박했다.

 

본래 인조가 병자호란 패배로 청국황제인 홍타이지에 삼배구고두례를 할 이유는 없었으나 이 모든 것이 명나라의 이신에 의해 조정되었으며, 조선과 후금의 전쟁에서 밀고 당기는 상황에서 조선에 대해 심한 압력을 주었다. 심지어 척화파에 대한 검색이나 투항 이전 명나라와 밀통하는 자까지 속아내는 효력을 발휘한다. 인조반정의 공신 중에 공신인 승상 최명길이 바로 명나라와 밀정을 나누다가 그 밀정을 나눈 명나라 장수가 청에 투항하는 바람에 실각하게 되는 사례를 알 수 있다.

 

이신의 존재가 그토록 강한 이유는 조선이란 국가가 이때까지 소중화 이었기 때문에 문장력이 부족한 후금이 무력지배로 갈 수 있어도 문화지배가 어려운 부분을 이신들이 보완했고, 때에 따라서는 우수한 성과도 낳았다. 청나라로 연호가 시작되자말자 명나라 이신들은 청나라의 문화 및 정치권에 큰 역할을 맡으며, 홍타이지의 세력을 확장시킨다. 홍타이지 역시 본래 후금에서 버일러라는 한 부족장에 불과하며, 다른 부족장들을 통합하기에는 자신의 세력이 부족하므로 이신들의 존재로서 자신의 세력을 늘리는 것이었다. 이들의 존재는 청나라가 일본에 의해 망할 때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청국에서 문인이 배출되고, 조선으로부터 아버지국가라는 역할을 하면서 특히 강희제 때에 이르러 더 이상 명나라에 의한 그늘에서 초조하게 굴지 않았다. 인조와 효종 시기에 이신들은 끊임없이 조선을 압박했고, 주변에 스파이를 배치하고, 사소한 문제로 시비를 걸었으며, 특히 남한산성 보수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 조선의 피해

개인적으로 조선시대에 북벌론이든 혹은 북학론이든 어느 하나라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효종이 북벌론을 내세우려다가 못한 것이나 혹은 인조 시대에 북학론을 하지 못한 것 역시 안타까운 일이라 볼 수 있다. 인조반정은 결국 사대부들이 가진 성리학적인 중화주의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다. 이 시기에 인조반정 이후 후금을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들이 병자호란으로 모조리 굴복하게 되면서 조선 사대부의 정점에 오른 임금이 오랑캐의 수장에게 머리를 숙인 사건을 충격을 피하지 못할 일이었다. 시대적인 흐름을 보지 못하여 명으로부터 인조반정을 인정받으면서도 한편으로 변란으로 간주된 것은 큰 오명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실리나 정도보단 이름이나 명분에 집착하던 사대부들은 병자호란의 패배와 명나라의 수복불가능에서 청국이 명국의 모든 것을 대체하면서 자기논리에 대해 스스로 모순에 빠졌다. 청을 부정했으나 청이 명을 흡수하여 명의 문화조차 가지면서 명나라의 소산이 청국에게 맡겨지면서 자신들이 청국을 견제하기 위한 행동이 결국 청국이 어버이국가로 되면서 자신들이 저지른 인조반정에 당위성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대한 날조로 광해군이 모문룡과 친하게 지냈다는 거짓말과 광해군이 실리외교를 추구한 것에 대한 문제점보단 폐비살제(廢妃殺弟)라는 명분만 내걸게 된 것이다.

 

그러나 광해군이 일구어 놓은 결과에 대해 부정하면서 광해군이 이룩한 업적 자체가 있었기에 자신들이 무사한 것을 알게 된 지식인들 사이에선 광해군이란 존재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추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전쟁의 패배는 수십만 명의 조선 백성들이 후금으로 끌려가고, 가는 도중에 살해당하거나 추위나 배고픔에 죽고, 또는 가서도 병으로 죽게 된다. 도망치다 걸리면 잡혀 죽고, 혹은 도망쳐도 이른바 환향여(還鄕女)가 화냥년이란 이름으로 창녀취급 당하는 것이다.

 

억지로 간 것도 모자라 집안에서 파문당한 여성들을 본다면 피해의 양상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컸다. 남성들은 그저 살해당하겠지만, 여성들은 강제로 겁탈당하거나 또는 후금에 끌려가서 장병들의 첩이 되어 고진 생활을 당하여야 했다. 원처가 있는 후금 집안에 갈 경우 원처가 조선여인에게 못된 짓을 하는데, 뜨거운 물을 얼굴에 뿌리는 행위 등 심하게 괴롭힌 점에서 홍타이지조차도 질투하는 아내에 대해서는 남편이 죽을 경우 같이 순장할 정도로 엄히 다루었다. 수십만 백성이 끌려가고, 그것도 모자라 왕의 아들부부 그리고 대신관료의 아들조차도 볼모로 끌려가면서 심한 고통을 겪는다.

 

명나라 토벌에서 조선인들을 징병할 때, 만약 전쟁의 결과가 용이하지 않으면 청국에 잡힌 세자에 대해 압박을 가했다. 그런다고 청나라와 명나라 전쟁에서 조선병사의 활약이 돋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도정벌 시에 청국은 조선병사의 사격기술을 인정했는데, 명나라 장수는 자기가 패배한 이유는 후금이 아니라 조선의 조총병사라고 힐책했다. 가도의 명나라 관리들이 가도인근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에 대해 심하게 착취하여 이에 대한 불만이 전쟁에서 보이게 되었다. 물론 명나라와 전쟁 중에 아버지국가라는 사상이 백성에게 뿌리박혀 일부 포수는 허공에 사격하거나 혹은 공포탄을 발사하여, 후금의 감독관들은 이들을 적발하여 처형했다.

 

후금에 의해 임금은 욕보이고, 임금의 모습에 실망한 사대부들은 왕을 무시하는 경우가 늘었으며, 아들들을 볼모로 보내지 않기 위해 관직에서 물러나며, 인조는 반청을 고집하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청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준다. 광해군에 대한 반발심에 의해 일어난 인종반정에서 인조의 행동과 인조에 대해 다양한 시선을 보낸 신료들을 보면 그들의 관심사는 정치의 안정보다는 자신의 명분만 내세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집착의식은 후로 갈수록 강해지는데, 당시 광해군을 인정하지 못하는 명분은 영조시대까지 흘러가면서 인조반정이 변란이 아니라는 것으로 돌리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 조선을 보면서 명나라에 대한 충성과 그것에 대한 집착성에서 강희제는 당근과 채찍에서 조선이란 국가가 의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 덕분에 조선은 19세기 일본이 침공하고, 서양이 다가오고 있을 때 청국과의 외교정책만을 고수하려 했다. 사실 처음부터 우방은 없었고, 단지 우방을 가장한 적군 내지 동맹국만이 존재한 것이다.

 

 

□ 독서 이후 감상평

어리석은 사대주의 사상은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흘러올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과 미국에서 친미와 친일의 의미로서 외교적 방도라면 모르지만 친일파는 국가를 좀 먹게 하여 나라를 몰락하게 하였고, 친미파들은 본래 미국이 가진 정치적 가치보다는 그저 미국의 눈치만 보게 되었다. 외교에서 상대국과의 관계유지는 매우 중요하다. 전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관점에서 의미가 없다. 우선 한국은 전쟁무기를 만들기 위한 금속류의 광물이 없다는 점과 무기를 운영할 수 있는 석유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대에서 비상용 내지 전투용 보급물품들은 분명 비치하고 있겠지만, 항공기와 해상운송이 계속 유지되지 않으면 힘들다는 점이고, 최근 전쟁무기는 한 번의 공격으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다는 점이다. 전쟁이 나게 되면 상대 국가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국민조차도 적대감을 가질 수 있으며, 한국의 경우 대부분 남자들이 징병대상이므로 수많은 현역만이 아니라 예비역 내지 보충역, 민방위까지 전쟁의 희생양이 된다는 점이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나 국가비상 시에 동원령이 반포되면 국민은 더 이상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국가조직의 지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남자 대부분이 예비역으로 전쟁에 참전하면 대한민국 전체인구 1/4 이상 될 것이다. 결국 현재 안보상황이나 국가운영에서 외교적 실리를 명분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당연한 논리다. 전쟁에서 이기면 본전이고, 패배하면 심각한 후유증이 남는 것이다.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에 북한 위의 중국은 우리의 무역 국가이면서도 한편으로 북한에 강한 압력을 불어넣는 국가이며, 일본은 경제적 성장과 더불어 자위대 군사력 합헌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미국과 서양국가의 우방적인 역할에서 무력충돌 내지 그 상황을 만드는 일은 오히려 우리에게 마이너스라는 점이다.

 

실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에서 지금의 무력을 생각하면 양쪽 다 심한 피해를 받고, 어느 정부라도 그 명분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실각하게 될 것이다. 북한에서는 쿠데타 내지 혁명, 한국은 투표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이란 책은 단순히 우리에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서 중원의 명과 청의 교체만이 아니라 그 상태에서 조선에서 어떤 외교정치를 보이고, 그 와중에 다른 국가와 어떤 외교행위를 했고, 그 다른 나라에서 어떤 상황이었냐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정치적인 결정이 국가 존망을 결정하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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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조금 재미있는 말이 나온다. 사랑이란 에로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문학이라고 한다는 것은 너무 깊이 다양하게 파고들어가겠지만, 결국 사랑은 인간의 본능적인 에로스에 의해 조건 지어지는 행위다. 그런다고 사랑은 단순히 에로스로 보는 것일까? 아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애적인 사랑, 아가페도 존재한다. 사랑이란 이름은 어떻게 보면 숭고하고도 때로는 무서운 이름이 된다. 사랑의 깊이는 결국 증오와 질투의 깊이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2014년 봄 신작이던 <건전로봇 다이미다라>는 상당히 적나라한 언어와 이미지로 범벅된 작품이다. 일어는 자세히 모르나, 미다라인 단어가 음란하다면, 다이 미다라는 2가지 음란하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음란한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남자 1명이나 여자 1명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녀 1쌍이 모여야 그 음란한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에서 야한 농담이나 저속한 단어 그리고 여체를 강조하는 그림이나 또는 실제 남자주인공인 코이치가 자신의 파트너인 쿄코를 상대로 무자비하게 가슴을 만지는 것은 처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충격에 빠뜨린다. 게다가 청소년이나 여성들이 보면 상당히 기분이 나쁘거나 유해할 수 있을 것 같으나, 작품 결말부를 보면 조금 생각을 다르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미소녀 내지 미녀들은 많으나, 남자주인공들은 오로지 자신의 파트너에게만 충실할 뿐이다.

 

특히 여자 가슴이라면 죽음을 불사할 코이치의 경우, 지나가는 여자들의 가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자신이 다이미다라 파일럿이 될 때는 같이 동승하는 쿄코를 아주 사납게 가슴을 만진다. 이와 다르게 다른 다이미다라 파일럿인 키리코의 경우, 자신의 동급생 친구인 소마와 같이 동승을 한다. 소마와 키리코는 과격한 코이치와 다르게, 계속 손을 잡고 공공장소에서 키스를 하거나 포옹까지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민폐를 넘어 짜증이 밀려올 정도로 서로 사랑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다이미다라의 주인공들에서 대부분 파일럿이 고등학생이란 점이 중요하다.

 

일단 키리코와 소마는 고등학교 3학년 정도 되고, 코이치는 2학년 정도로 보인다. 이에 다르게 쿄코는 키리코가 선배라고 부른 점과 예전에 있던 학교 선생들이 얼굴을 아는 점에서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이다. 쿄코가 어른이고, 코이치는 학생이나 서로 커플로 나오는 장면에서 코이치가 여자 가슴에 대한 정렬적인 집착은 결국 성숙한 여자의 몸을 원하는 것이고, 키리코와 소마는 성숙하기보단 핸드터치 및 서로 몸과 마음을 의지하는 사이로 나온다.

 

물론 2가지 다 에로스에 기반하고, 그 에로스는 다이미다라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하이에로입자, 에로입자라는 것은 결국 인간의 에너지 중에서 프로이드가 주장한 id(이드, 무의식)에서 libido(리비도, 무의식적 성적 에너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처음 작품 오프닝에서 넘치는 리비도를 힘으로 바꾸어 라는 말이 결국 리비도가 <건전로봇 다이미디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왜 리비도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작품에 등장하는 펭귄이란 존재다. 펭귄은 일반적으로 남극에 서식하는 날지 못하는 새가 아니라 인간의 몸에 마치 인형 탈을 씌우고, 꼬리가 뒤가 아니라 앞으로 길게 나온 생물이다.

 

펭귄은 인간과 별개의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문제없으나, 하이에로입자를 강력하게 주입된 펭귄은 인간으로 변하고, 하이에로입자가 빠진 남자는 펭귄으로 된다. 펭귄은 자신의 부족한 하이에로입자를 구하기 위해 지구로 오고, 인간의 하이에로입자인 리비도를 회수한다. 리비도는 성적인 욕망을 의미하기에 그들이 빨아들인 리비도는 결국 사회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효과가 나타난다. 다이미다라 파일롯이 활약하지 못하던 시기에 펭권들이 야한 콘텐츠를 가지고 가자, 편의점 한 편에 위치한 에로잡지코너가 사라지고, 수상한 가게들도 점점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키리코가 돌아오고, 코이치가 다시 돌아오자 이런 상품코너는 증가하고, 정부는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다이미다라 운영기관인 미용실 프린스를 숙청하고자 한다. 이유는 건전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고, 그 건전함은 특히 청소년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왠지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순간 우리나라의 현실이 왜 이리 비슷한 것일까? 흔히 아청법이라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로 이른바 아동 및 청소년에 성적인 자극을 주는 것을 통제하겠다는 것처럼 인간본연의 생물학적인 욕망을 억제하는 것과 같다.

 

왜 이것이 문제로 떠오르는 이유는 인간은 자신이 야한 것을 직접 보지 않아도, 야한 것을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몽정기에서 반드시 AV 내지 포르노를 보지 않아도 사람(남성)은 수면 중에 단순히 꿈에서 무의식적인 상상의 세계에서 상대 이성을 보고 사정을 한다는 점이다. 물론 우연히 사춘기에 접어든 사람들 중에 야한 것들을 접하게 되면, 각인에 의해 몽정을 할 가능성은 더 높다. 그런다고 그 몽정은 이상한 현상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이란 사실이다.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가려진 성적인 호기심 및 욕망을 막는 것은 처음부터 인간의 조건에 어울리지 않은 것이다.

 

이 작품에서 왜 펭귄황제는 하이에로입자를 모우는 것인가이다. 바로 원인은 인간이 리비도란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이 리비도라는 에너지는 하이에로입자로 변환하여 자신의 DNA를 닮은 존재를 만들어낸다. 즉 그것은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생식기능이다. 펭귄황제는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펭귄코만도를 만들어낸다. 펭귄코만도는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펭귄황제가 하이에로입자를 에너지로 하여 복제를 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펭귄황제는 감정을 그렇게 잘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때에 따라서는 매우 합리적이며 괜찮은 인성을 가진 등장인물이다.

 

그가 말하기로 인간에게 하이에로입자가 없으면 자신과 같은 펭귄이 된다는 점이고, 남성만이 존재한다는 것은 서구사회의 이분법적인 관념에서 남성은 이성적인 존재고, 여성은 감성적인 존재라고 본다면, 펭귄황제는 이성적인 존재이므로, 그에게 부족한 감정적인 존재는 오로지 펭귄코만도로 나온다. 펭귄코만도는 이성적인 판단력으로 활동하기보단 욕망과 충동에 의해 활동한다. 그런 점에서 황제펭귄과 펭귄코만도는 서로 다른 성향을 보인다. 결국 황제펭귄의 유전자를 복제한 펭귄코만도들은 황제처럼 이성적인 판단보단 오히려 재미와 성적인 욕망을 앞세운다.

 

펭귄황제가 그러길 바라는 이유는 바로 펭귄제국의 멸망과 관련해서이다. 인간들이 펭귄처럼 된다는 사실은 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켜 그 사회나 국가를 계속 유지해야할 재생산적인 운동이 계속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재생산의 조건에서 필요한 것은 역시 남녀 간의 결혼에 의해 탄생하는 새로운 생명이다. 새로운 생명을 위해서는 남녀 간의 리비도로서 결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문제는 왜 일본정부에서 프린스 미용실을 돕다가 배신을 하는가이다.

 

결론은 국가라는 조직은 국가운영을 위해 출산을 통제하여 필요한 만큼 인구를 유지해야할 목표가 있는 셈이다. 펭귄제국이 처음 나올 때는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으므로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야 했고, 이른바 풍속문화를 계속 탈취하기에 사회적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펭귄코만도 활동에서 처음에 야한 행동과 언사를 날렸으나, 그들의 활약이 오히려 그 사회의 야한 행동과 생각들을 모두 가지고 간 셈이다. 하이에로입자 저하는 결국 모든 사람들이 건전해진다는 논리로 가겠지만, 문제는 인간은 결코 무의식적으로 건전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억지로 건전성만 강조하면 인간은 역으로 더 음란해지거나 또는 스트레스나 노이로제로 인해 정신적인 증세가 오기 마련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 독일 성심리학자인 빌헬름 라이히에 제기한 의견이 있다. 그는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친분이 깊은 학자로서 그가 남긴 말로는 "성의 억압이 파시즘 낳는다."고 하고, 영국 철학자 겸 수학자인 ​버트란트 러셀은 “가장 음탕한 사회에서 금욕주의가 싹튼다.”고 한다. 성으로 그 사회를 권력으로 억압할 경우, 인간의 본래 펼쳐야 할 정신적인 에너지를 분출하지 못하므로 그것이 역으로 변태적인 요소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건전로봇 다이미다라>에서 다이미다라는 결코 건전한 에너지로 움직이지 않으나, 오히려 그런 음란함이 있기에 그 사회는 건전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하다시피 코이치는 오로지 여자가슴만 좋아하는 열혈남자이나, 그는 다른 여자보다는 오직 쿄코의 가슴이 최고라고 한다. 펭귄제국의 공격을 받고 죽을 위기에 처할 때, 그는 쿄코를 살리고, 대신 죽기로 결심한다. 이때 코이치는 “좋아했어, 쿄코의 가슴을”이라고 한다. 목숨을 던지면서 쿄코를 구했다는 점은 코이치는 진심으로 쿄코를 사랑했기 때문이고, 평행세계에서도 돌아온 것도 역시 쿄코에 대한 마음이다. 에로스라는 것은 단순히 야한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힘 즉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하버트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에서 문명은 오히려 인간의 본래의 성질을 파괴하고 성장하기에 인간은 그 자연적 성질을 되찾아 회복해야 하나, 도리어 인간은 더 문명적 업적으로서 대체하고, 다시 새로운 파괴와 건설이 이루어진다.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여 최후에 착취하는 것은 인간 본인이라고 한다. 자연스러운 에로스의 흐름을 파괴하는 것이 결국 인간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은 적당히 이성적으로 억제하여 통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문제는 그 통제성은 개인과 개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나, 오히려 자위대의 출현은 국가의 폭력으로서 성을 통제하려 한다.

 

그 이유는 청소년이 너무 음란하여 풍기문란을 일으키고, 거리와 가게 한 편에는 야한 잡지가 돌아다니고, 밤거리는 너무 유혹적이라고 한다. 물론 다 그런 흐름이 좋다는 것은 아니나, 그 모든 것을 억압하면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자신의 윤리 내지 도덕성을 상대방에게 강조하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다. 일방적인 자신의 가치관을 남에게 심어주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시에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어야 말로 폭력을 미학으로 간주하는 파시스트적인 사고방식이다.

 

물론 상대방의 동의 없이 몸을 더듬거나 혹은 성희롱하는 것도 문제다. 코이치의 경우는 처음부터 로봇에 탈 마음이 없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특이체질과 그것을 권유하는 쿄코에 대한 음란함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음란함이 사랑으로 이어진다. 소마와 키리코의 경우 서로 간의 호기심으로 시작하여 우연한 기회로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물론 아직 미성년자인 그들이 지나친 성적욕망을 표출하는 것은 좋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권리를 무조건적인 박탈은 옳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어른들은 어른이란 이유로 그 권리를 가지고, 밑에 있는 사람에게는 누리지 못한 것이 분명 불평등한 처사다.

 

단지 조건은 여자가 임신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가거나, 또는 그렇게 되었다면 그 에로스를 새로운 생명에 대한 책임성으로 가야할 것이다. 펭귄황제의 충고는 매우 중요하다. 언젠가 펭귄제국처럼 인간도 변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말이다. 리비도라는 무의식적 성적욕망과 더불어 리비도가 사랑으로 이어지면 에로스로 변하고,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이 되고,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진다. 사랑은 숭고하고 아름답다고 하나, 유럽의 고전주의 시대에는 그만큼 불쾌한 것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성으로 살아가야 하나, 오히려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 내지 무의식적인 충동에 의해 현실을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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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여동생이 마법소녀 - Novel Engine
무기상인 지음, hakusai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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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장르를 대해 생각하면,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의 박인하 교수가 학술논문으로 저술한 글이 생각난다. 마법소녀라는 존재는 어린 소녀가 현실에서는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나, 어떤 특이한 조건과 상황에 맞이하게 되면 마법이란 환상적인 힘으로 일상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로 말하자면 현실의 여성은 아무런 능력이 없지만, 비현실이란 환상적 공간에서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장소에서는 그런 논리는 통할 리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은 세계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을 적들이 존재해야 한다. 마법소녀의 변신은 2가지로서 작용한다. 하나는 현실에서 여성은 아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기에 결국 남성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고, 또 다른 특징은 마법소녀라는 존재로 통해 평소 자신에게 부여되지 않은 요소가 부여된다. 작은 소녀가 성숙한 여성의 몸을 가지게 되거나 혹은 의상이 아주 독특하여 남성으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다. 흔한 클리셰 중에 하나가 여자 주인공이 마법소녀로 변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앞에 다가가면, 그 남자는 그 마법소녀에 대해 반한다는 점이다.

 

평소에는 서로 잘 지낼 수 없으며, 여자주인공은 멀리서 바라본다. 즉 변신이란 이름 아래 소녀는 소녀가 아니라 여성이란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그건 남성이라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 조건 아래서 말이다. 1990년대까지의 마법소녀 장르를 살펴보면 대부분 이런 패턴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마법소녀 역시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들까지도 은근히 욕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성에겐 순응적인 여성, 혹은 여성에겐 자신의 성적매력으로 통한 사회적 지위 향상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마법소녀 이전의 평범한 소녀이던 여자주인공이 옛날 마법소녀 장르처럼 약하지 않고 오히려 강하다면 어떻게 받아 들이야 하는가? 이번에 읽어본 라이트노벨인 <나와 내 여동생이 마법소녀>는 기존의 마법소녀 장르를 새롭게 변모하여 나타났다. 물론 마법소녀 장르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 우선 작가인 무기상인부터 일본 만화애니메이션부터 라이트노벨까지 어느 정도 파고들어갔다는 점이다. 남자주인공인 유청명이 남자인데도, 마법소녀의 의상을 입어야 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좀비입니까?>라는 하렘 애니메이션이 생각났다.

 

마법소녀가 아니라 마장소년이 되어버린 좀비 소년은 자신의 주변에 괴기스러운 미소녀들이 찾아온다. 남자주인공이 좀비설정과 미소녀 괴물들이 모이면서 겉으론 괴기와 모험으로 가득하지만, 속은 여전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욕망을 달성하려고 하는 남성이었다. 일단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를 멀리 내쫓고, 형제인 헤라와 결혼한 것도 모자라 수많은 여자들을 범한다. 단지 제우스는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면, 하렘계통 작품들은 주인공이 가만히 있어도 온다는 점이다.

 

스스로의 망각 속에 정신적 자위는 착각의 자유라는 말도 있겠으나, 결국 그런 작품으로 통해 읽혀지는 것은 한계성이 드러날 뿐이다. 어째든 그런 작품이라도 <나와 내 여동생이 마법소녀>에서는 열심히 패러디로서 차용한다. 게다가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에 나오는 남매처럼 오빠는 늘 여동생에게 무시만 당하고, 심지어는 심한 꼴을 당하기도 한다. 게다가 같은 반에는 마이 페이스인 미소녀 세별이의 등장까지 말이다. 작품에서 원래 마법소녀로 등장하는 루다의 입을 빌리자면 주인공의 여동생인 유아영은 츤데레라고 한다. 겉으로 심하게 차갑게 굴지만 속은 엄청 부끄럽고 좋아한다고 말이다.

 

라이트노벨 표지에서 보다시피 아영이란 인물은 마법소녀의 의상을 입었지만, 뭔가 특이점을 볼 수 있다. 보통 트윈 테일이란 헤어스타일로 등장하는 마법소녀는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고 여겼다. 일단 주인공 캐릭터가 표지에 나왔으니 그 모습을 분석하면, 원 피스에 고등학생치고는 제법 큰 가슴의 위 부분이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어깨부위에서 손목까지 연결되는 상의, 그리고 무릎 위에까지 올라오는 부츠, 마법소녀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트윈 테일과 부츠 끝에 날개가 달려있다.

 

하지만 마법소녀에 가까운 복장보다는 오히려 총잡이인 건너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런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역시 왼손에 매그넘 모양의 권총이 잡혀있다. 최근에 들어 마법소녀의 무기는 상당히 변해온 것을 알 수 있다. 본래는 마법 봉이나 지팡이에서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처럼 칼이나 창, 그리고 활을 사용하고, 심지어는 m-16이나 수류탄도 사용한다. 그런데 아영이는 권총을 들고 있고, 화가 나면 기관총을 들고 싸운다. 사실 총과 칼이 마법소녀 입장에서 중요한 위치가 있는 이유는 본래 칼이나 총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서는 남자의 성기를 의미한다.

 

그러니깐 여자가 여자로서 그냥 있기보다는 여자가 남성으로서 있고자 하는 것이다. 성적인 요소로 들어가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르게 본다면 남성이 가진 권력을 이제 여성이 가지고 있겠다는 의미도 같을 것이다. 그런 요소는 작품 내에 다분한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 과거의 마법소녀들은 평상시에는 매우 귀엽고 순종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아영이는 순종적이거나 혹은 고분고분한 모습이 아니다. 나이 20세 이전까지 애인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뛰어난 외모인데도 남자축구모임에서 활약할 정도로 매우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다.

 

최근의 마법소녀 장르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성적인 구조는 달라도 신체적인 조건과 정신적인 조건 더불어 사회적인 조건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남성보다 더 우월하여 남성의 위에도 군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동생인 아영은 오빠인 청명보다 문무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상당히 인간관계도 좋다. 이에 반해 오빠인 청명은 2D 소녀에게 푹 빠진 오타쿠란 존재다. 물론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에서 등장한 오타쿠와는 조금 다른 개념일 것이다. 적어도 1982년의 오타쿠는 상대방을 가리키는 의미이나, 현재의 오타쿠는 청명처럼 인간실격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실제 아영은 오빠가 롤리타 콤플렉스라고 하면서 변태 취급을 한다. 게다가 오빠가 전혀 되면 안 될 마법소녀가 되면서부터 더 곤란해진다. 마법소녀 장르에서 남자에게 환상의 세계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금기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남자가 환상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오타쿠라는 존재도 있지만, 청명이가 2D 로리(어린 소녀)를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의 옆에 있던 아영이란 존재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가령 <가와이이 제국 일본>이란 책을 보면 가와이이라는 것은 단순히 귀엽다는 것만을 위해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다.

 

만일 여자가 아주 괜찮다면 남자들은 우츠쿠시(아름답다) 내지 키레이(예쁘다)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와이이는 단순히 귀엽다는 것을 넘어 자신의 손에 의해 지켜줄 수 있거나 혹은 소유하고픈 욕망이 드는 대상을 가리킨다. 아영이란 여동생은 이미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슈퍼우먼이었고, 이어 등장하는 7세 기계소녀인 여리 역시 강력한 힘을 가진 어린 소녀다. 도저히 청명에게 여동생이나 여리에게 가와이이 즉 귀엽다고 여길 수가 없을 것이다. 아니라면 아무 것도 안하고 잠을 자는 여리라면 모른다.

 

주변 동급생인 세별이의 경우, 그녀는 분명 외모도 출중하고 스타일도 좋으나, 마이 페이스에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보자면 <나와 내 여동생이 마법소녀>에서는 평범한 사고방식을 지닌 등장인물은 없다는 점이다. 물론 라이트노벨에서 특이한 인물을 내세우거나 혹은 특이한 상황을 설정해야 이야기가 흐르고, 재미를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왜 모든 사람들에게 특이한 속성과 일반적이지 못해야 하는가? 어떻게 보면 청명이로 보는 세계관은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나 속으로 뭔가 자신의 취향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예전의 마법소녀 장르라면 대개 주인공은 옆에 좋은 친구나 다정한 부모님이랑 보내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탈근대적인 현대사회에서는 인터넷의 발전과 개인 사생활의 중요성으로 가족과 학교라는 공간의 커뮤니티가 단절되기 시작했다. 주인공 역시 자신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을 즐기고, 세별이는 인간형 인형을 고르는 것을 좋아하고, 아영이도 토끼 인형이나 곰 인형을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아영이의 팬티가 곰이 새겨진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여중생이나 여고생이 되지 않아 그런 말을 하기가 그렇지 않을까 하나, 적어도 그런 속옷은 사춘기 이후부터는 착용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특히 생식기가 도래하는 제2차 성징기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아직 어린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즉 몸은 점점 커지는 만큼 자신이 초등학생 같은 어린이로 취급당하기를 거부하는 점이다. 문제는 여동생은 고등학생이 된 점과 신체적으로 이미 거의 성숙한 점을 본다면 어린아이보단 오히려 어른에 가깝다. 오타쿠인 오빠와 달리 우등생인 그녀에게 탁월한 이성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곰이 새겨진 속옷을 입는 점은 아직까지 정신적으로 보자면 마음 속 깊이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있다는 점이다.

 

평소 오빠를 두고 인간취급도 하지 않은 아영이가 은근히 어떤 상황에서 집착을 보이고, 때에 따라서는 매우 부끄러워한다. 별로 부끄러울 상황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세별이와 만남은 조금 의미가 있다. 둘 다 인형에 대하여 안목이 높다는 점과 때에 따라서는 상당한 콜렉터라는 점이다. 또 그게 서로간의 인격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특히 아영이의 경우, 그녀는 분명히 마법소녀지만, 기존의 마법소녀는 어린 소녀가 어른여성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나, 그녀는 반대로 보인다. 왜냐하면 여리가 적에서 어느 순간 적이 아니게 될 때의 모습이다.

 

여리에게 옷을 입히는 아영은 마치 여리를 인간이기보단 살아있는 인형으로서 옷을 입히는 모습이었다. 즉 자신이 인형을 제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어도 자신의 욕망을 부정할 수 없었으며, 대신 자신이 인형 같이 꾸미고 싶어도 꾸밀 수 없기에 여리로서 욕망을 대체한 것이다. 이와 다르게 세별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형이 여자형인데도 남자라고 한다. 인형이란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소유물처럼 집착한다. 이쁜 것은 남자인형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주변에 있는 동급생 여자보단 자신의 소꿉친구인 청명이가 더 소중하고, 청명에 대한 소유욕이 인형으로 대체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법소녀의 욕망이 아직 어린 여자아이가 어른이 가질 수 있는 특권에 대한 동경이라면, 여기서는 마법소녀들로 통해 욕망이 퇴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자면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시작되지 않은가 싶다. 청명이는 2D라고 하나 결국 어린소녀를 원하고, 다 큰 아영은 아직까지 곰이 새겨진 속옷을 입고 다닌다. 두 남매가 지금은 서로 원수처럼 지내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예전처럼 잘 지내고 싶다는 게 드러날 뿐이다.

 

또한 마법소녀 하면 선과 악의 이분법이 중요한 플롯인데, 여기서는 그 플롯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선의 사도여야 할 루다는 의무감도 없고, 악의 존재인 여리를 가지고 노는 모습만 나온다. 아니 오히려 여리가 아영과 청명을 위기에 빠지게 하자, 여리를 공격 후에 치료까지 해준다. 악의 역할로서 여리가 등장해도 여리는 자신의 의지로서 악의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니라 로이드라는 자에 의해 억지로 인스톨이 되었기 때문이란 점이다. 게다가 루다는 마법소녀이면서도 청명에게 선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단 그저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여준다.

 

적과 아군이 원래 그래야 하는 이분법적인 요소는 해체되어 버렸다. 최근에 들어와 많은 작품들에서 이분법적인 요소가 해체된 만큼 마법소녀 장르 역시 해체되는 형태를 보여준다. 정의라는 절대적 가치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절대적이지 못하거나 그게 더 가치로서의 존립하기가 어려워진 셈이다. 게다가 마법소녀가 소녀의 것이 아니라 소년에게도 부여되었다. 그러면서 루다는 이렇게 말한다는 마법소녀는 소녀이든 소년이든 중요하지 않아 라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작가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겠지만, 작가가 받아들이는 세계에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청명과 아영을 만들어내었을 것이다. 이것을 본 우리는 남자가 불행해서 세상이 불행질 것이라 보지만, 중요한 것은 남자가 불행해도 여자가 불행해지고, 여자가 불행지면 남자도 불행해진다. 남자주인공의 불행이 결국 여동생의 불행이 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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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 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윤태영 지음, 노무현재단 기획 / 책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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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시간을 내어 나는 볼테르의 서적 <캉디드>를 읽었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자,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낙관주의자 같이 그냥 살아가는지 혹은 <캉디드>에서 등장하는 버림받은 학자인 마르틴처럼 다소 비관적인 요소가 보이는 것일까? <캉디드>라는 소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프랑스 루이15세가 집권하던 때에는 다미엥이 몇 시간 동안 고문을 받으며 죽어가던 때이다. 마녀사냥이 일어나고, 더러운 매독이 여기저기 음탕함에 흘러들어가던 시기다. 도저히 현실에서 희망이란 단어 내지 긍정이란 단어를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캉디드>의 주인공인 캉디드는 낙관주의자로서 살아간다.

 

우리에게 낙관적인 요소를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과연 현실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낙관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오히려 캉디드와 논쟁을 하던 마르틴처럼 현실에 대한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거기에 대한 근본을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철학이란 문제의 해답을 주지 않으나, 그 문제에 대한 원인이 무엇인지 답을 찾아준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틀렸는지 알아야 이후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이정표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故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관이자 제1부속실장을 맡았던 윤태영 씨가 저술한 <기록>을 보면서 나는 <캉디드>로서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

 

볼테르의 <캉디드>는 현실의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의 진리이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형이상학적인 이분법을 나누는 방법에서 그 기준이 윤리도덕적인 영역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냥 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므로 거기에 부조리가 하나의 당위성을 가지게 되었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낙관론적인 태도를 보이는 캉디드와 달린 <기록>에서는 보이는 노무현이란 이름은 <캉디드>에서 찾아보면 그 어떤 인물에 속할 수는 없다. 단지 캉디드와 다르면서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실에 대한 부조리와 비판적 관찰은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고 투쟁했으나, 그런다고 미래에 대한 비관론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나는 아마 캉디드와 같이 논쟁을 하며 여행하던 마르틴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 대하려는 내 생각이 마치 마르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지도 모른다. 마르틴은 사실 볼테르를 <캉디드>란 소설에 등장시킨 하나의 등장인물이기 때문이다. 마르틴으로 보는 세상은 온갖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하였기에 마르틴은 부정적인 세상관념으로 통해 캉디드와 논쟁했던 것이다. 부정적인 비관과 긍정적인 낙관, 그 어떤 것이든 포기할 수 없을 인간의 판단력이다.

 

윤태영 씨의 <기록>은 볼테르의 <캉디드>로 통해 보자면, 18세기 중반의 프랑스나 혹은 21세기 초반의 한국이나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했다. 대신 캉디드는 그 곳에서 있는 그대로 맞추어 살던 무비판적 낙관론자이고, 노무현은 있는 그대로와 맨얼굴로 싸우던 비판적인 낙관론자였을 뿐이다. 어느 한 인물로 통해 보는 소설이나 혹은 수기 내지 역사는 분명히 우리에게 특이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 인물이 살던 시절에 모든 관점은 그 인물을 중심으로 보여주나, 그 인물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회적 흐름과 현재적 상황이란 조건이었다.

 

조건에 의해 그 당사자가 선택하거나 혹은 선택하도록 강요받은 상황에서 늘 인간은 희비가 엇갈리는 운명에 처한다. 윤태영이란 사람이 보는 인물, 노무현은 어떤 사람인가? <기록>이란 서적은 어떤 한 인물이 다른 인물과 만남과 이별을 기록한 책이다. 대개 어떤 인물에 대해 기록한 도서를 보면 기록하는 사람의 주관이나 입장이 매우 강렬하게 반영되는 편인데, 이 책은 오히려 그것을 최대한 배제하였기에 그 강렬함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기록을 맡은 윤태영 씨가 당시 있었던 상황을 묘사하기보단 당시 있었던 말이나 글을 그대로 텍스트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기록이란 것은 분명 입장의 차이에 의해 갈림길이 나눌 수 있지만, 타인이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 적었다는 것은 최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기록은 후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도 생각하지만 정치라는 것은 참으로 난해한 이름이다. 정치를 두고 정치철학으로 들어간다면 정치라는 것은 상당히 인간에게 필요한 제도이고, 때에 따라서는 정치가 없으면 우리 사회조차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문화적인 제도이다. 그렇지만 정치철학이란 말을 우리 사회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철학이란 이름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정치라는 것은 더러운 진흙에서 몸을 서로 뒹굴며, 자신과 다른 상대편을 어떻게든 밀어내어 그 진흙탕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의 모습이다. 진흙에서 벗어난 인물은 진흙이란 더러운 장소에 나왔지만, 문제는 진흙탕 밖에는 모두 늪과 같은 어둠이다. 인간은 권력의 맛을 보면 절대로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일까? 정치가 철학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정치판은 진흙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다고 더럽고 치사하고 보기 싫어도 우리는 그곳에서 나올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이란 인간에 대한 기록은 스스로 추방되면서까지 그곳에서 투쟁하던 어느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기록>이란 책을 보면서도 노무현이란 인간을 어떤 인간과 비교하면 좋을지 다시 한 번 떠올려보았다. 이전에 게오르크 뷔히너라는 독일 연극작가가 저술한 <당통의 죽음> 그리고 그 소설을 영화로 만든 <당통>이란 작품이 있다. 노무현을 보면서 왠지 당통이란 사람을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프랑스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투쟁하던 한 혁명가가 자신의 동지이었던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죽음을 받아들인 것을 말이다. 노무현이 당통처럼 보인 이유는 그의 죽음을 앞두고 같은 진영에 있던 사람들도 혹은 진보라고 불리는 이들도 버렸다.

 

그리고 진보라는 이름은 계속 패배해갔다. 당통 뒤에는 수많은 자코뱅당이 뒤를 따라 오지 않았던가? 왜 하필 당통이라고 나는 생각하는가? 기록에서 보듯이 노무현은 검찰이나 경찰 같은 권력조직을 활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비판했다. 노무현은 당통처럼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권력을 행사하는 기구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이 한 번은 로베스피에르처럼 확실하게 칼을 빼는 것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뭐든지 대화로서 풀어가려는 그의 노력, 하지만 그 대화의 장이 서기 위해서도 로베스피에르의 결심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늘 여론과 언론에 공격만 당하면서도, 국민이 기분을 풀기 위해 대통령인 자신을 두고 욕을 한다면 그것조차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그 태도에서 그는 결코 로베스피에르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연설문 적고 그것을 발표할 때는 로베스피에르와 같았다. 왜 연설은 로베스피에르처럼 했어도 진짜 로베스피에르처럼 한 번은 칼을 날리지 않은 것이 큰 안타까움이었다. 자신 앞에 거대한 적을 두고는 그렇게 당당한 그의 모습에서 그에게 지지를 보낸 사람들은 많은 기대를 보냈을 것이다. 역사의 청산, 사실 지나간 세월을 잡고 다그친다고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놓쳐 영원히 미래에 영향을 준다면 1분 1초라도 먼저 수술 칼로 도려내야 할 것이다. 그 도려내지 못한 상처가 아물지 못한다면 병원균에 의해 감염되어 나중에 사지를 베어내거나 목숨을 잃어야 하기 때문이다. 윤태영의 <기록>에서는 그런 모습보단 대통령의 일상적인 모습에 대해 많이 적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작은 모습에는 그의 인격이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었다. 내가 가장 인상 깊은 정치적 판단은 누구 한 명이 없다고 해서 그 국가나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안 된다는 점이다.

 

국가나 사회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 시스템만 제대로 갖추면 누구라도 다시 원활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란 존재는 정치적으로 가장 위에 있을 사람이기도 하나, 그가 진짜 해야 할 일은 그 시스템이란 체계적인 구조에 대해 기반을 닦고 운영을 하는 것이다. 시스템에 모순이나 에러가 생기면 거기에 대해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란 점이다. 문제는 그 시스템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현재 시점으로만 인스톨을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운영되던 체계까지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문제가 있는 시스템의 한 요소가 있다면 다른 시스템까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일까? 기록이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있었던 정황을 정리하여 추후에 누군가 그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 <캉디드>의 이야기를 거론한 것은 당시 프랑스의 부조리와 모순을 볼테르가 자신의 소설로 통해 풍자했기에 그 동기로 인해 프랑스 혁명가들은 루소와 더불어 볼테르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 문제점에 원인, 그리고 그것을 정리한 기록, 혹시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을 기록을 남기는 것이야 말로 계속 사회가 발전해가는 과정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지만, 계속 민주주의라는 역사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다. 그 자체로서 계속 변증법적으로 후퇴와 더불어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후퇴한다고 하여 비관적인 마르틴이 될 것인지 아니면 그 상황조차도 만족하고 따르는 캉디드가 되어야 할 것인지 혹은 제3의 길을 찾아야 할 것에서 볼테르는 캉디드와 마르틴의 논쟁처럼 다른 길을 바랬을지도 모른다. 노무현에 대한 평가에서 그가 모든 것을 다 잘했다는 것과 못했다는 것만을 떠나 공과 실을 나누어 볼 필요는 있다.

 

그런 점에서 기록이란 무척이나 소중하다. <성공과 좌절>이란 자신의 회고록이나 혹은 <여도 나 좀 도와줘>에서 보면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노무현은 자신의 유리한 점을 내세우기보단 오히려 자신이 부족한 점을 내세운다. 특히 <성공과 좌절>에서 자신이 실수한 점을 반사교면으로 삼아 후에 자신의 실수를 모델로 삼아 그 문제점을 파악하여 다른 길을 찾아가기를 바란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록이 중요한 것이다. 사람의 기억이 컴퓨터 하드디스크처럼 반영구적으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기에 언제라도 그 문제를 찾아보기 위해서는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똑같은 상황이나 비슷한 사건이 터져도 우리는 볼테르의 <캉디드>처럼 멍하게 그냥 당하기만 할 것이다. 문제는 캉디드처럼 당해도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그것마저도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선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선택에 의해 모든 것이 좋은 것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최선의 선택이란 지금의 상황보다 조금 더 좋게 만들거나 혹은 덜 나쁘게 만들 뿐이다. 정치에서 말하는 결정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부분은 존 롤즈의 <정의론>에서 밝히고 있다. 정치가 모든 것이 정의로울 수 없다면 때로는 부정의를 택해야 할 상황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부정의를 피하기 위해 다른 부정의를 택하는 것도 하나의 정의론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상황이 도달하는 것은 우리의 삶 어디에나 볼 수 있다. 그런다고 선택을 포기하는 것도 선택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록을 남긴다면 누군가 똑같은 문제를 풀고 그 돌고 도는 미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을 바꿀 수 있겠지만, 그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모순과 부조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분명 윤태영 씨는 故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한 비서관이었고 제1부속실장이었고, 퇴임 후에도 그의 곁에 있었던 사람이다. <기록>이란 책으로 본다면 노무현에 대하여 그가 어떻게 보고 있기보단 그와 있었던 시간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제시한다. 하지만 노무현이란 인간이 처음 국회의원으로 나올 때부터 윤태영 씨는 그와 같이 있었다. 노무현이란 인간을 본다면 우리나라가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어떤 사회였고, 그 사회에서 노무현이란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어떤 인간이고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보는 사람의 관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기 위해서는 기록으로 통해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태영의 <기록>을 보면서 느낀 점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내가 <기록>을 다 읽으면서 노무현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그는 캉디드가 아닌 캉디드이었다. 혹은 마르틴이 아닌 마르틴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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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6-2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장문이군요. ㅎㅎㅎ. 밥 먹고 나서 읽겠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6-23 12:42   좋아요 0 | URL
식사 맛나게 해용~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열린책들 세계문학 54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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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머릿속은 21세기 사상이 아니라 18세기 사상이 박혀져 있다. 물론 시작은 20세기부터 시작이었으나, 그 종착지점은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가 등장하던 시대이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가? 리오 담로시의 <루소, 인간불평등발견자>라는 책이 있다. 루소 연구에서 아주 중요한 도서로 정평한 그 도서에서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삶과 더불어 그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역사적 조건 아래서 사상과 철학이 새롭게 등장한다. 물론 세상이 사상으로 연결되나, 다르게 보자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장한 것처럼 세상이 사상을 만들기보단 사상이 세상을 만드는 것이 더 옳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사상이 도래한 것이 바로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도래와 더불어 18세기 말에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이다. 따라서 내 머릿속의 사상이 18세기에 멈추어버린 이유도 다 18세기 사상이 아직도 유효하며, 심지어 21세기 철학의 선두주자라고 볼 수 있었던 자크 데리다 같은 사상가조차도 루소의 사상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그의 사상을 새롭게 이어갔다. 20세기 최고의 인류학자 겸 사상가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역시 루소에 대해 큰 평가를 했다. 인간에 대한 연구에서 인류학의 최초 연구자가 루소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아무튼 20세기를 지나 21세기로 지나오면서도 루소의 사상은 끊임없이 이어간다.

 

그런 루소와 더불어 당대 계몽주의 사상가를 든다면 누구를 볼 수 있을까? 물론 루소는 계몽주의 사상가이면서도 반계몽주의 사상가이기도 하였다. 그의 모순되는 행동에 대해 생각한다면 마치 광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천재는 본래 그 시대에 대해 엄청난 박해나 모욕에서 살아가야 할 경우가 많다. 그런 운명인가? 루소의 유해는 현재 프랑스 파리 판테옹 신전 안에 잠들고 있다. 루소의 무덤 건너편 주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볼테르가 잠들고 있다. 볼테르와 루소의 관계에서 사실 볼테르가 18세기 프랑스에서 차지한 비중이 더 컸다. 그의 계몽주의 사상이나 기발한 착상이 당대 최고의 문인이란 호칭이 내려졌다.

 

이에 반해 루소는 <사회계약론>과 <에밀>을 발표하고 나서 프랑스 정부를 비롯한 수많은 적들에게 도망치거나 놀림당해야 했다. 부유한 볼테르와 가난한 루소, 살아생전 볼테르는 계속 국가에 의해 압박을 받으나 그가 죽기 전에 환대받은 모습에서 루소와 사뭇 다른 모습으로 인생의 종지부를 마감했다. 그렇지만 볼테르가 루소와 같이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루이16세가 자신의 목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가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와 내 왕국이 사라지는 것은 루소와 볼테르 때문이라고 말이다.

 

프랑스대혁명이 가지는 의미에서 루소와 볼테르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고, 게다가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가 남긴 것은 비단 철학이나 사상뿐만 아니라 문학과 음악, 그리고 연극과 오페라 등 수많은 예술을 남기기도 하였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에 의해 우리 인류는 상당한 수준까지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발전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내 머릿속이 18세기 사상으로 가득하다고 하여 그것이 결코 시대착오적이지 않은 것은 알아주기를 바란다. 헌법이 정립된 것도 18세기이니 말이다.

 

그러지만 헌법의 정립과 더불어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영광은 아쉽게도 볼테르가 아닌 루소가 이어졌다. 만약 당신이 1789년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을 조사하면 그 마지막 사진에 루소의 동상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의 소개에서 루소가 등장한 이유는 루소가 만든 <사회계약론>이 헌법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도서이고, 루소의 사상이 결국 18세기부터 시작하여 19세기 그리고 20세기까지 발발한 혁명의 중요한 사상이 되었다. 20세기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라던 러시아 10월 혁명이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인 볼셰비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계몽주의자들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

 

국제노동자연합에서 만든 인터내셔널 노래가 페트로그라드에 울려 퍼진 것이 아니라 라 마르세예즈까지 울려 퍼졌다. 참고로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의 국가이며, 1792년 마르세예에 외적에 대항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기념하며 만든 곡이다. 왜 볼셰비키혁명에 라 마르세예즈가 울려 퍼지는 것인가? 심지어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마라와 로베스피에르하고 같이 활동한 혁명가 당통의 연설문이 퍼지기도 하였다. 물론 혁명의 실패로 끝났지만, 계몽주의 사상은 아직도 우리나라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고, 그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든 계몽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영광은 루소에게 돌아가도 볼테르에게 크게 돌아가지 못했다. 리오 담로시의 <루소, 인간불평등발견자>에서 루소에 대해 로베스피에르, 마르크스, 프로이트의 아버지라고 칭한다. 심지어 니체가 말한 사상을 100년 이전에 주장한 사람 역시 루소다. 루소가 죽고 나서 그 명성이 올라갔으나, 살아생전에 볼테르가 훨씬 우세했다. 그런 점에서 볼테르는 모차르트라는 벽에 가려진 살리에르인가? 그런 점에서 볼테르가 프랑스 판테옹 신전에 잠들고 있었다고 해도 우리의 인식에서는 그렇게 친숙한 인물은 아니다.

 

그래도 그의 업적은 역시 프랑스대혁명의 위대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지식인이란 이름에 걸맞게 목숨을 걸고 다른 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 죽은 자의 누명을 벗어내기도 하였다. 단지 그 역시 프라이드가 높은 지식인이었고, 그런 점에서 살아생전 루소와 보이지 않은 마찰을 일으켰다. 그런 볼테르의 불멸의 소설인 <캉디드>를 나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캉디드>란 소설을 예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내용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캉디드>라는 제목처럼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볼테르가 지적하고 싶은 대로 캉디드라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멍청이로서 당대의 현실을 비판한다.

 

특히 라이프니츠라는 사상가에 대해 깊고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담고 있는데, 그런 이유는 바로 과학적인 사고와 주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유령 같은 허울에 목매인 당대 사람들을 무비판성을 비판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보면서 잠시 사드 후자의 <소돔의 120일>을 생각했다. 사디스트의 말처럼 사드의 책을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당시 18세기 귀족과 살롱문화는 매우 음란하고 추잡했다는 점이다. 사드의 <소듬의 120일>에서 어린 소녀들은 성직자와 귀족 그리고 관료들에게 성노리개가 되었고, 이제는 그 성노리개가 새로운 포주와 악당이 되기도 한다.

 

몸에 시체냄새가 날 듯 한 그들에게서 볼테르의 <캉디드>를 읽는 순간 딱하고 생각나는 것이 있다. 매독을 가진 퀴네공드의 하녀 파세트가 왜 매독이 걸렸는지 알아가는 순간 사드의 이야기가 생각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매독의 원인이 수도승과 백작부인, 후작부인, 육군대위, 젊은 하인들이 서로 연결되어 구멍과 구멍을 채워주는 관계가 되자 그런 운명이 되었다. 그런 운명은 캉디드의 스승인 혼자만 똑똑한 철학자 팡글로스의 몸에 옮아져 갔다. 매독의 시발점은 수도승과 어린 소년의 관계였다. <소돔의 120>에서 어리고 예쁘게 생긴 미소년들은 동성연애자들에 의해 무참하게 능욕 당한다. 그런 소년이 매독을 품고, 자신을 고용한 후작부인과 뒹굴고, 그 후작부인은 육군 대위와 음탕한 짓을 벌이고, 육군 대위는 늙은 백작부인에게로, 그리고 백작부인은 또 다른 고리를 가진 사람들과 관계하고, 최후에 젊은 미녀인 파세트에서 팡글로스에게 이어져갔다.

 

매독이 성병이란 말처럼 매독은 또한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선사한 선물이기도 하다. 또한 매독은 전쟁 중에 3만 군사 중에 2만이 걸렸으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 보여주듯이 인류는 전쟁에서 총과 칼보단 균에 의해 더 많이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더러운 학살과 음모를 두고 영웅적인 행동으로 치부한다. 과연 캉디드의 세계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전해오는 이유는 그렇게 낯설지도 않을 듯하다. 캉디드의 운명은 바로 그런 바보 같은 사고방식에 매달린 현실로부터 시작했다.

 

캉디드는 퀴네공드의 아버지인 툰더텐트론크 남작의 여동생의 배에서 나온 사람이고, 남작의 여동생은 건너편 귀족 청년을 사랑했지만, 단지 자기 집안의 뿌리보다 1대가 낮아서 결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캉디드가 태어나고, 그는 어째보면 자신의 외사촌 누이를 사랑하게 된 셈이다. 이미 처음부터 근친상간이라니? 물론 사촌끼리 결혼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것이 남작에게 마음에 들지 않아 캉디드는 운명의 방랑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건과 인물, 그 속에서 죽거나 미쳐버린 사람들, 또한 기가 막힌 인연과 재회는 한 편의 거대한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다.

 

볼테르가 칼로 찔려 죽일 수밖에 없던 자가 사랑하던 사람의 오빠고, 그가 추후에 노예선에서 만나 구해주었지만, 자신이 오랜 가문의 귀족이란 이유는 추녀로 변한 여동생과 결혼조차 못하게 하는 어리석음이란 참으로 답답한 기분이다. 문제는 아직도 이런 답답한 모습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퀴네공드의 운명은 그녀의 것이나, 옆에서 그것을 방해했고, 캉디드가 전혀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도 아닌데도 단지 남작집안의 명예 때문에 떼를 쓰는 퀴네공드의 오빠를 보며, 자신들이 정해진 운명에 끝까지 고집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는 주체임을 망각한다.

 

물론 운명의 선택적인 사항에 대해 사회적 조건이나 상황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캉디드가 남작 집에서 쫓겨나지 않았으면 불가리아군대에 강제로 징집될 일도 없었고, 리스본의 항구에서 지진을 만나는 것이나, 미치광이 종교재판에 끌려갈 이유도 없을 것이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이 세상의 흐름에 따라가면서 그 세상의 모든 것이 잘못되어도 그것이 옳다고 여기는 캉디드처럼 현재까지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캉디드처럼 무한한 낙관주의자일 터이다.

 

캉디드의 결말을 보면 캉디드는 진짜 아무 것도 없고, 단순하게 땅을 파고 열매를 수확하는 늙은 노인으로 통해 결론에 이른다. 열심히 자신이 노력하고 거기서 얻는 것이 최고라고 말이다. 땅에서 열심히 농사짓는 사람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여 오리려 전자가 행복하다고 말이다. 허황된 욕망에 의해 재력과 권력을 노린 자들은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가족과 친구까지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18세기 중반의 <캉디드>라면 가능할 것이다. 당시 사회는 전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고, 왕이 지배하는 전제군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에 부르주아인 볼테르가 왕정시대의 산업기반은 농업과 같은 1차 산업을 택한 이유는 당연한 처사다.

 

적어도 자신이 노력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볼테르가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어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인근에 땅을 사서 볼테르만의 왕국에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캉디드가 농부로서 땀을 흘리며, 스스로 노력하며 선택하는 삶을 원했을 것이다. 캉디드는 계속 어리석게 남의 말만 듣고 사기당하고, 사기꾼의 속임수로 고생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이 되는 이유는 당시 봉건사회와 종교적인 이유가 크다. 봉건사회의 왕족과 귀족은 음탕한 짓을 좋아했고, 어느 유명한 귀족부인에게 여러 명의 애인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시 시대의 로코코 화가 그림을 보면 어느 귀족부인이 애인으로부터 볼에 키스를 받으나, 집안의 누군가 그 모습을 볼까나 두려워하는 모습이 나온다. 탐미주의적인 로코코가 음탕한 당시 프랑스사회라는 점에서 <캉디드> 역시 놓치지 않았다. 그런 점에 비해 성직자 역시 겉으로는 좋은 말만 하나 뒤에 가서는 여자를 능욕하고, 어린 남자들을 동성연애의 희생양으로 삼는 점에서 타락한 도덕관이 결국 사회를 병들게 했다. 하지만 도덕에 대한 수치심 대신 오히려 겉으로 친절하게 대하다가 뒤에 가서는 뒤통수를 날리는 모습에서 볼테르가 생각하던 당시 사회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이들이 오히려 타락하고, 그 타락함이 이미 모두가 알지만 겉으로 진리를 추구한다는 모습에서 정치와 종교의 무능한 부패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 이미 몰락의 수준에 온 것이다. 그래서 이미 결정된 것에 의해 아무런 의심을 해서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팡글로스의 이야기는 요새도 볼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쉽게 증명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이란 가장 좋은 목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미 그 목적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미가 부여되었기에 그 자체로만 당연한 진리로 여기는 맹신적인 행위는 그 사회의 병폐로 이어지게 한다. 그 맹신에 대해 진리로 여기가 그 맹신에 대한 근본적 사유를 포기함으로서 죄를 지어도 그 자체가 죄가 아니라 그 죄마저 하나의 목적이라고 말하는 엉뚱함이란 결국 우리 인간 스스로 무지한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계몽주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스스로의 계몽을 찾아가야 하는 점이나, 그것이 쉽지 않으며, 오히려 계몽이라는 이름 아래 실천되는 교육은 도리어 새로운 이름의 억압으로 변질된다.

 

캉디드가 만나던 늘 새로운 사람들이 제기하는 진리와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도 정당한 부합성은 없지만, 없어도 있는 것처럼 된 점에서 캉디드의 낙관주의는 볼테르가 보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진짜 앞날을 위한 사유와 비판 없이 그저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이 그 자체가 목적의 시작이고 완료라는 점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캉디드는 그나마 억지로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으나. 우리 시대의 캉디드들은 남에게 폭력을 처음부터 휘두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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