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열린책들 세계문학 54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내 머릿속은 21세기 사상이 아니라 18세기 사상이 박혀져 있다. 물론 시작은 20세기부터 시작이었으나, 그 종착지점은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가 등장하던 시대이다.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가? 리오 담로시의 <루소, 인간불평등발견자>라는 책이 있다. 루소 연구에서 아주 중요한 도서로 정평한 그 도서에서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삶과 더불어 그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역사적 조건 아래서 사상과 철학이 새롭게 등장한다. 물론 세상이 사상으로 연결되나, 다르게 보자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장한 것처럼 세상이 사상을 만들기보단 사상이 세상을 만드는 것이 더 옳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사상이 도래한 것이 바로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도래와 더불어 18세기 말에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이다. 따라서 내 머릿속의 사상이 18세기에 멈추어버린 이유도 다 18세기 사상이 아직도 유효하며, 심지어 21세기 철학의 선두주자라고 볼 수 있었던 자크 데리다 같은 사상가조차도 루소의 사상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그의 사상을 새롭게 이어갔다. 20세기 최고의 인류학자 겸 사상가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역시 루소에 대해 큰 평가를 했다. 인간에 대한 연구에서 인류학의 최초 연구자가 루소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아무튼 20세기를 지나 21세기로 지나오면서도 루소의 사상은 끊임없이 이어간다.

 

그런 루소와 더불어 당대 계몽주의 사상가를 든다면 누구를 볼 수 있을까? 물론 루소는 계몽주의 사상가이면서도 반계몽주의 사상가이기도 하였다. 그의 모순되는 행동에 대해 생각한다면 마치 광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천재는 본래 그 시대에 대해 엄청난 박해나 모욕에서 살아가야 할 경우가 많다. 그런 운명인가? 루소의 유해는 현재 프랑스 파리 판테옹 신전 안에 잠들고 있다. 루소의 무덤 건너편 주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볼테르가 잠들고 있다. 볼테르와 루소의 관계에서 사실 볼테르가 18세기 프랑스에서 차지한 비중이 더 컸다. 그의 계몽주의 사상이나 기발한 착상이 당대 최고의 문인이란 호칭이 내려졌다.

 

이에 반해 루소는 <사회계약론>과 <에밀>을 발표하고 나서 프랑스 정부를 비롯한 수많은 적들에게 도망치거나 놀림당해야 했다. 부유한 볼테르와 가난한 루소, 살아생전 볼테르는 계속 국가에 의해 압박을 받으나 그가 죽기 전에 환대받은 모습에서 루소와 사뭇 다른 모습으로 인생의 종지부를 마감했다. 그렇지만 볼테르가 루소와 같이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루이16세가 자신의 목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가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와 내 왕국이 사라지는 것은 루소와 볼테르 때문이라고 말이다.

 

프랑스대혁명이 가지는 의미에서 루소와 볼테르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고, 게다가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가 남긴 것은 비단 철학이나 사상뿐만 아니라 문학과 음악, 그리고 연극과 오페라 등 수많은 예술을 남기기도 하였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에 의해 우리 인류는 상당한 수준까지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발전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내 머릿속이 18세기 사상으로 가득하다고 하여 그것이 결코 시대착오적이지 않은 것은 알아주기를 바란다. 헌법이 정립된 것도 18세기이니 말이다.

 

그러지만 헌법의 정립과 더불어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영광은 아쉽게도 볼테르가 아닌 루소가 이어졌다. 만약 당신이 1789년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을 조사하면 그 마지막 사진에 루소의 동상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대혁명의 소개에서 루소가 등장한 이유는 루소가 만든 <사회계약론>이 헌법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도서이고, 루소의 사상이 결국 18세기부터 시작하여 19세기 그리고 20세기까지 발발한 혁명의 중요한 사상이 되었다. 20세기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라던 러시아 10월 혁명이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인 볼셰비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계몽주의자들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

 

국제노동자연합에서 만든 인터내셔널 노래가 페트로그라드에 울려 퍼진 것이 아니라 라 마르세예즈까지 울려 퍼졌다. 참고로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의 국가이며, 1792년 마르세예에 외적에 대항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기념하며 만든 곡이다. 왜 볼셰비키혁명에 라 마르세예즈가 울려 퍼지는 것인가? 심지어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마라와 로베스피에르하고 같이 활동한 혁명가 당통의 연설문이 퍼지기도 하였다. 물론 혁명의 실패로 끝났지만, 계몽주의 사상은 아직도 우리나라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고, 그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든 계몽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영광은 루소에게 돌아가도 볼테르에게 크게 돌아가지 못했다. 리오 담로시의 <루소, 인간불평등발견자>에서 루소에 대해 로베스피에르, 마르크스, 프로이트의 아버지라고 칭한다. 심지어 니체가 말한 사상을 100년 이전에 주장한 사람 역시 루소다. 루소가 죽고 나서 그 명성이 올라갔으나, 살아생전에 볼테르가 훨씬 우세했다. 그런 점에서 볼테르는 모차르트라는 벽에 가려진 살리에르인가? 그런 점에서 볼테르가 프랑스 판테옹 신전에 잠들고 있었다고 해도 우리의 인식에서는 그렇게 친숙한 인물은 아니다.

 

그래도 그의 업적은 역시 프랑스대혁명의 위대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지식인이란 이름에 걸맞게 목숨을 걸고 다른 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 죽은 자의 누명을 벗어내기도 하였다. 단지 그 역시 프라이드가 높은 지식인이었고, 그런 점에서 살아생전 루소와 보이지 않은 마찰을 일으켰다. 그런 볼테르의 불멸의 소설인 <캉디드>를 나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캉디드>란 소설을 예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내용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캉디드>라는 제목처럼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볼테르가 지적하고 싶은 대로 캉디드라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멍청이로서 당대의 현실을 비판한다.

 

특히 라이프니츠라는 사상가에 대해 깊고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담고 있는데, 그런 이유는 바로 과학적인 사고와 주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유령 같은 허울에 목매인 당대 사람들을 무비판성을 비판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보면서 잠시 사드 후자의 <소돔의 120일>을 생각했다. 사디스트의 말처럼 사드의 책을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당시 18세기 귀족과 살롱문화는 매우 음란하고 추잡했다는 점이다. 사드의 <소듬의 120일>에서 어린 소녀들은 성직자와 귀족 그리고 관료들에게 성노리개가 되었고, 이제는 그 성노리개가 새로운 포주와 악당이 되기도 한다.

 

몸에 시체냄새가 날 듯 한 그들에게서 볼테르의 <캉디드>를 읽는 순간 딱하고 생각나는 것이 있다. 매독을 가진 퀴네공드의 하녀 파세트가 왜 매독이 걸렸는지 알아가는 순간 사드의 이야기가 생각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매독의 원인이 수도승과 백작부인, 후작부인, 육군대위, 젊은 하인들이 서로 연결되어 구멍과 구멍을 채워주는 관계가 되자 그런 운명이 되었다. 그런 운명은 캉디드의 스승인 혼자만 똑똑한 철학자 팡글로스의 몸에 옮아져 갔다. 매독의 시발점은 수도승과 어린 소년의 관계였다. <소돔의 120>에서 어리고 예쁘게 생긴 미소년들은 동성연애자들에 의해 무참하게 능욕 당한다. 그런 소년이 매독을 품고, 자신을 고용한 후작부인과 뒹굴고, 그 후작부인은 육군 대위와 음탕한 짓을 벌이고, 육군 대위는 늙은 백작부인에게로, 그리고 백작부인은 또 다른 고리를 가진 사람들과 관계하고, 최후에 젊은 미녀인 파세트에서 팡글로스에게 이어져갔다.

 

매독이 성병이란 말처럼 매독은 또한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선사한 선물이기도 하다. 또한 매독은 전쟁 중에 3만 군사 중에 2만이 걸렸으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 보여주듯이 인류는 전쟁에서 총과 칼보단 균에 의해 더 많이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더러운 학살과 음모를 두고 영웅적인 행동으로 치부한다. 과연 캉디드의 세계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전해오는 이유는 그렇게 낯설지도 않을 듯하다. 캉디드의 운명은 바로 그런 바보 같은 사고방식에 매달린 현실로부터 시작했다.

 

캉디드는 퀴네공드의 아버지인 툰더텐트론크 남작의 여동생의 배에서 나온 사람이고, 남작의 여동생은 건너편 귀족 청년을 사랑했지만, 단지 자기 집안의 뿌리보다 1대가 낮아서 결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캉디드가 태어나고, 그는 어째보면 자신의 외사촌 누이를 사랑하게 된 셈이다. 이미 처음부터 근친상간이라니? 물론 사촌끼리 결혼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것이 남작에게 마음에 들지 않아 캉디드는 운명의 방랑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건과 인물, 그 속에서 죽거나 미쳐버린 사람들, 또한 기가 막힌 인연과 재회는 한 편의 거대한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다.

 

볼테르가 칼로 찔려 죽일 수밖에 없던 자가 사랑하던 사람의 오빠고, 그가 추후에 노예선에서 만나 구해주었지만, 자신이 오랜 가문의 귀족이란 이유는 추녀로 변한 여동생과 결혼조차 못하게 하는 어리석음이란 참으로 답답한 기분이다. 문제는 아직도 이런 답답한 모습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퀴네공드의 운명은 그녀의 것이나, 옆에서 그것을 방해했고, 캉디드가 전혀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도 아닌데도 단지 남작집안의 명예 때문에 떼를 쓰는 퀴네공드의 오빠를 보며, 자신들이 정해진 운명에 끝까지 고집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는 주체임을 망각한다.

 

물론 운명의 선택적인 사항에 대해 사회적 조건이나 상황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캉디드가 남작 집에서 쫓겨나지 않았으면 불가리아군대에 강제로 징집될 일도 없었고, 리스본의 항구에서 지진을 만나는 것이나, 미치광이 종교재판에 끌려갈 이유도 없을 것이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이 세상의 흐름에 따라가면서 그 세상의 모든 것이 잘못되어도 그것이 옳다고 여기는 캉디드처럼 현재까지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캉디드처럼 무한한 낙관주의자일 터이다.

 

캉디드의 결말을 보면 캉디드는 진짜 아무 것도 없고, 단순하게 땅을 파고 열매를 수확하는 늙은 노인으로 통해 결론에 이른다. 열심히 자신이 노력하고 거기서 얻는 것이 최고라고 말이다. 땅에서 열심히 농사짓는 사람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여 오리려 전자가 행복하다고 말이다. 허황된 욕망에 의해 재력과 권력을 노린 자들은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가족과 친구까지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18세기 중반의 <캉디드>라면 가능할 것이다. 당시 사회는 전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고, 왕이 지배하는 전제군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에 부르주아인 볼테르가 왕정시대의 산업기반은 농업과 같은 1차 산업을 택한 이유는 당연한 처사다.

 

적어도 자신이 노력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볼테르가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어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인근에 땅을 사서 볼테르만의 왕국에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캉디드가 농부로서 땀을 흘리며, 스스로 노력하며 선택하는 삶을 원했을 것이다. 캉디드는 계속 어리석게 남의 말만 듣고 사기당하고, 사기꾼의 속임수로 고생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이 되는 이유는 당시 봉건사회와 종교적인 이유가 크다. 봉건사회의 왕족과 귀족은 음탕한 짓을 좋아했고, 어느 유명한 귀족부인에게 여러 명의 애인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시 시대의 로코코 화가 그림을 보면 어느 귀족부인이 애인으로부터 볼에 키스를 받으나, 집안의 누군가 그 모습을 볼까나 두려워하는 모습이 나온다. 탐미주의적인 로코코가 음탕한 당시 프랑스사회라는 점에서 <캉디드> 역시 놓치지 않았다. 그런 점에 비해 성직자 역시 겉으로는 좋은 말만 하나 뒤에 가서는 여자를 능욕하고, 어린 남자들을 동성연애의 희생양으로 삼는 점에서 타락한 도덕관이 결국 사회를 병들게 했다. 하지만 도덕에 대한 수치심 대신 오히려 겉으로 친절하게 대하다가 뒤에 가서는 뒤통수를 날리는 모습에서 볼테르가 생각하던 당시 사회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이들이 오히려 타락하고, 그 타락함이 이미 모두가 알지만 겉으로 진리를 추구한다는 모습에서 정치와 종교의 무능한 부패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 이미 몰락의 수준에 온 것이다. 그래서 이미 결정된 것에 의해 아무런 의심을 해서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팡글로스의 이야기는 요새도 볼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쉽게 증명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이란 가장 좋은 목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미 그 목적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미가 부여되었기에 그 자체로만 당연한 진리로 여기는 맹신적인 행위는 그 사회의 병폐로 이어지게 한다. 그 맹신에 대해 진리로 여기가 그 맹신에 대한 근본적 사유를 포기함으로서 죄를 지어도 그 자체가 죄가 아니라 그 죄마저 하나의 목적이라고 말하는 엉뚱함이란 결국 우리 인간 스스로 무지한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계몽주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스스로의 계몽을 찾아가야 하는 점이나, 그것이 쉽지 않으며, 오히려 계몽이라는 이름 아래 실천되는 교육은 도리어 새로운 이름의 억압으로 변질된다.

 

캉디드가 만나던 늘 새로운 사람들이 제기하는 진리와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도 정당한 부합성은 없지만, 없어도 있는 것처럼 된 점에서 캉디드의 낙관주의는 볼테르가 보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진짜 앞날을 위한 사유와 비판 없이 그저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이 그 자체가 목적의 시작이고 완료라는 점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캉디드는 그나마 억지로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으나. 우리 시대의 캉디드들은 남에게 폭력을 처음부터 휘두른다는 사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