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를 말하면 대부분 문관을 지망하던 사대부로 보겠지만, <논어, 사람을 말하다>에서 선비는 무관을 말하던 것이다.장기놀이하면서 왕을 지키는 작은 말 2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士)자이다. 즉 선비는 왕을 지키는 호위무사로부터 시작했다. 낮은 무장관료가 점차 문관으로 지향하면서 관료정치의 바탕이 된 게 선비였다. 삼국지를 읽어봐도 선비의 개념은 특별히 느끼지 못하나, 용맹한 무장은 단순히 용맹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우나 조운 같이 뛰어난 지혜를 가진 자들도 있었다.
선비의 기원인 무장들은 싸움의 기술만이 아니라 문장력과 정치력을 같이 동반해야 한 점이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정치의 핵심은 양반 사대부로 이전되고, 양반은 무반과 문반을 지칭하는 말이다. 조선시대 대부분 공신들은 칼을 잡은 무관이었으나 점차 관직이나 행정기관에서 정치업무를 맡은 사람들이 많았다. 조선 시조 태종 이성계도 무장으로 시작했지만, 그 끝은 군주의 자리고, 군주는 나라는 다스리는 정치가이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기 위해서고, 인간의 도리를 위해서는 학문을 수행하는 것이 유학의 본질이다. 조선의 유학은 본래 유학자로 하여금 바른 정치를 선보여 백성의 생활을 도모하는 것이 근본이다.
하지만 유학이 유교라는 정치적인 학문보단 성리학의 영향으로 종교적인 요소로 강조되면서 공자의 유학은 변질되었다.공자의 가르침엔 제자들로 하여금 직접 농사를 짓거나 농사를 짓는 기술을 전파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모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올바른 정치란 인간이 서로 모여 사회를 구성하여 그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유학의 본질이다. 군주가 살던 시대에 공자가 살았기에 군주정에 대한 기초로서 유학을 만들었겠지만, 군주의 정치는 바로 철인(哲人)정치, 즉 군주나 군주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철학으로 정치를 행하는 것이다.
서양사회에서도 마키아벨리 이전에 정치라는 것은 철학과 연계되어 있지만, <군주론> 이후 정치와 철학은 분리된다. 그러나 21세기에서도 정치는 철학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정치하는 자가 철학이 없다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에서 의(義)가 없다는 것이고, 의가 없는 정치는 명분이 없기에 무의미한 행위로 그친다. 그리고 그 명분이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것이다. 내가 유학에 대해 어느 정도 편견을 버리고, 조금 다른 시선을 볼 수 있던 점은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책을 접하면서부터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정치의 근본은 백성이고, 백성을 다스릴 계책을 얻고 싶거든 길거리의 농민에게 물어보라 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그 사람은 우리가 다스리기 위해선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라는 것이다. 결국 소통과 대화가 먼저 이루어지는 게 정치의 핵심이다. 다산 선생이 곡산군수로 부임하면서 길 앞에 어느 남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남정은 이계심이라 하여 마을관아에 반란을 든 용의자였다. 이계심이 다산 선생에게 나와 마을주민을 괴롭히는 조목을 설명하자 다산 선생은 이계심의 말을 받아주며, 오히려 이계심과 같은 사람이 많아야지 나라가 제대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백성이 힘든 것을 지금으로 말하자면 힘이 약한 사람들의 입장을 말해주는 사람이 가장 정치가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다.유학의 근본이란 바로 다산 선생이 보여준 것처럼 사람을 찾아가는 학문이다. 21세기에 기원전에 기록된 논어를 읽는 게 시대적 간극이 큰 것처럼 보이나, 그 바탕에는 오히려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옳다. 유학에서 공자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인(仁)이다. 어질다는 의미를 가진 인이란 의를 실천하는 단어다. 어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은 자연적으로 매우 선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매우 악한 존재다.
자연적 인간은 자연과 동화되어 유유자적 살아가겠지만, 야만의 인간은 폭력과 무지로서 사람들을 대한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처럼 제자 그러니깐 유학자가 가장 먼저 할 것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 그리고 그들을 편안하게 배부르게 해야 하고 나중에는 글을 배우게 해야 한다고 했다. 즉 인간의 최종완성은 문화적인 인간, 동물적으로 욕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욕망 이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이 가져야 할 도리로서 인을 중시하는 것은 바로 인간은 자신만 보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자의 가르침에서 관계의 미학을 중시한다. 우리는 관계의 미학에서 내 가족만 챙기거나 또는 이익과 손실을 따져 친구를 사귄다. 물론 가족도 중요하고, 친구의 손익 관계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 가족이 소중하면 남의 가족도 소중하고, 친구의 관계에서 이익을 추가하는 것은 물질적 이익이 아니라 정신적・심리적 즐거움이다.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 하나 제대로 없다면 그것만큼 외롭고 쓸쓸한 일은 없다. 그래서 공자도 자신의 제자 안영이 죽을 때 그렇게 슬퍼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공자의 가르침이나 논어에 대한 이야기에서 공자와 유학이 낯선 존재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보편적인 가치를 주고 있다. 단지 그 차이는 조금 더 예를 가지거나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다. 자신의 밥은 초라하나 제사의 밥은 풍족히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지금이야 먹을 것이 풍부하나, 과거에 먹는 것이 부족한 시기에 배고픈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제사에 차려진 음식들은 귀신들이 먹는 게 아니라 결국 인간의 입으로 들어간다. 그 많은 음식을 제사를 차린 제주가 다 먹을 수 없다. 자신의 집에 찾아온 친척과 친구 그리고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제사문화의 특징은 단순히 허례허식만이 아니라 주변이웃에게 나눔과 베푸는 정을 주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관계의 정치는 바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익을 기반으로 한 정치는 공자는 용서하지 않았다. 한국식 민주주의나 유교식 자본주의란 말은 공자가 강요한 적이 없다. 공자는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가란 무릇 백성에게 아버지와 같은 자이나, 아버지가 아들을 혹독하게 대하는 게 아버지의 도리는 아니다. 공자의 유학을 보고 한국식 민주주의를 마치 정치적 정의로 보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옛날 말에 임금은 하늘이 내리지만, 그 하늘은 백성이라 했다. 국가의 모든 시작점은 백성인 점에서 공자의 가르침 중에 이 말이 인상 깊다. 군주가 안보, 백성의 믿음, 경제 이 3가지에서 만약 먼저 버릴 게 무엇이냐? 에서 공자는 맨 먼저 안보를 택하고 다음으로 경제를 선택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안보와 경제를 주구 창창 외치는데, 정작 안보와 경제는 구멍만 나는 현실이다. 안보,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군복무를 하는 것은 국민이고,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국민이나, 그 근본을 제대로 잡지 않고, 관료주의에 물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의 유학사상이라 하여 새로운 사상이나 정치이념이 들어와도 민심의 기우는 변하지 않는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정치이념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철학적 자세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광폭한 정치라고 했다. 가렴주구라는 말은 매우 잔혹했다. 조선후기 군역에 사내아이가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고 시아버지는 이미 죽어 백골이 되었는데도 군역에 올라가 세금을 내어야 했다. 다산 선생이 지은 애절양(哀絶陽)이란 시조는 부패한 관리가 판을 치는 나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글이다.
최근 국내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남자들이 결혼할 수 없고, 결혼해도 아이를 가질 수가 없어서 21세기형 애절양을 보여주고 있다. 자식을 놓은 자신의 남근을 원망하며 칼을 들어 그 남근을 도려낸 남정네, 자신의 남편의 남근을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낙네, 관아의 벽은 성문보다 높고 관아 문을 지키는 포졸은 염라대왕보다 더 무섭다. 공자가 보여주고 싶은 유학은 바로 이런 일을 없애기 위해서고, 아무리 부당한 현실이라도 잘못된 세상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공자의 유학이나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모두 기본적으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이상보단 이익으로 돌아가고, 그럴수록 그들의 사상은 더욱 숭고한 가치를 보여준다. 논어가 비록 고전이라고 하나 그곳에 비수 같은 말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 과거는 멀지 않은 미래와 같다는 말은 아마 이런 연유에서 나오는 것과 같았다. 인간의 과거를 보고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잘못된 관행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과거의 정치적 제도를 되돌려서 안 되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반사교면을 삼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인간의 도리를 아는 것과 실천할 수 있는 용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삶에 작은 실천이 큰 대의를 만드는 것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란 바로 작은 것부터 실천하여 커다란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