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핸드폰의 노후에 따라 새로운 핸드폰 하나를 구매했다. 핸드폰을 교체하면 반드시 거쳐야 할 작업이 기존 핸드폰을 정리하는 것이다. 기존 핸드폰에 있는 주소와 데이터를 새로운 단말기로 이전 후 초기화하여 최종 정리한다. 핸드폰 자료정리를 하려면 우리 일반인들이 할 수 없으니 자신이 구매한 단말기의 업체 서비스센터로 간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서비스센터 직원이 문제가 있다거나 서비스의 질을 따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장 보기가 불편하고 피곤한 감이 드는 것은 무조건 5점 만점에 5, 십점 만점에 십점 같은 평가제도다. 평가제도의 도입이 고객에 질 높은 서비스를 줄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필요 이상의 불편함과 부담감이 온다. 기본적으로 인성 쪽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손님이나 고객에게 큰 불편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가게에 와서 행패부리는 유형도 다분하다. 핸드폰 단말기 교체하고 나가는 와중에 서비스센터 데스크에 앉아있는 안내원에게 괜히 트집잡는 아저씨를 보았다.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떼를 쓰고 화를 내어도 그 사람의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오히려 시간을 지체시키고, 거기서 해결되지 않은 점에서 더 기분만 상할 뿐이다. 이런 모습에서 과연 서비스산업에서 고객의 눈에 맞추어 일을 하는 것은 맞겠지만, 그들은 필요 이상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것이다. 고객센터에 가면 행패부리는 인간은 정말 드문 케이스고, 특별히 업체의 실수가 아닌 이상 고객은 화를 내거나 쓸데없이 시비를 걸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서비스평가를 요구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피곤한 일이다. 핸드폰 단말기를 교체하고 데이터 이송한 뒤에도 심지어 요금제 관련 변경으로 통신사 방문 때도 그렇다. 모두 직접 본사에서 확인전화가 오면 높은 점수를 달라는 것이다. 충분히 친절하게 업무를 했고, 그 업무에 대해 나는 불편함도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저 한 마디와 본사에서 걸려오는 전화 한 통은 무척 불편하다. 본사에서 오는 전화 한 통에 응답하는 시간은 30초 이내일 것이다. 30초에 목숨 걸 이유도 없고, 30초를 할애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다.

 

단지 그 30초의 통화에 각각 한 사람들의 평판이 결정되고, 그들은 고객의 확인전화 후에 희()는 없고 단지 비()만 올 뿐이다. 세상은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오로지 비만을 생각하고 업무에 매진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간이 직업에 매개에 의해 하나의 평가대상이 되는 것은 도구로 되는 것과 같다. 직원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와 초조함, 고객에겐 불편함을 안겨주는 친절함은 조금 잘 못되어가는 우리 모습 같다.

 

게다가 고객에게 이런 평가를 강요하는 것도 고객에게도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고객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찾아와 그 목적에 대한 합리적인 결과를 평가하고 싶은 것이지, 자신을 응대하는 직원을 평가하고 싶어 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타인에 대한 판결을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진다. 감정노동이 이젠 새로운 노동문제로 볼 때이다. 감정노동에 육체적으로 변화가 없어 보이지는 않으나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어 생리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서비스센터직원과 손님의 시작은 인간과 인간이지 주인과 자본의 노예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세상은 자본의 노예를 손님과 직원에게 강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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