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인 <Revolution No.3>를 읽으면 웃음과 흥미가 유발되는 작품이다. 좀비스라고 불리는 삼류 고등학교 불량아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우리 사회의 일면의 모순을 불랙코미디적 요소를 보여준다. 진짜 옳고 그른 것은 단순히 겉이 아니라 그 안의 진실성이다. 그런 소설을 쓰는 가네시로가 반드시 유쾌한 글만 적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슴이 시리고 아쉬움만 전해오는 글을 적는다. 우연히 아는 동생 녀석에게 소개받은 소설 <연애소설>, 내가 알던 가네시로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기본적인 그의 작품세계관의 맥락은 많이 연계되어 있었다.


가네시로의 작품이라 하여 재미를 기대한 사람이나, 그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을 보고 그 흐름에 기대는 사람 모두 가네시로의 작품 근원은 변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소설 제목이 <연애소설>이니 이 책은 분명 연애에 대한 내용을 적고 있다. 나는 연애에 대해 생각하면 그다지 좋고 아름다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애 운이 없는지 내 자신이 부족한지 모르나, 그저 씁쓸한 기분도 맛 봤을 뿐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허무하게 날라 가거나 시작하려고 할 때 뒤통수를 맞던지 또는 잘 될 것 같았는데도 불발탄으로 그친 적이 많다.


게다가 성격이나 가치관도 일반인과 많이 동 떨어져 있다. 예전에 어느 사람에게 내 자신을 두고 "Little Comedian"이라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Rialto 밴드에 정규앨범이 아니 싱글앨범이 실린 곡으로 차분한 모던 락으로 노래를 듣는 순간, 뭔가 어눌하고 답답한 기분이 전해온다. 아무런 성과 없이 그저 노력하지만, 끝에는 스스로 체념해야 하는 Little Comedian처럼 내 자신이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정말 그런 일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시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는 나만의 광대가 되었다.


연애, 그것은 사랑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무엇이라 이야기해야할까? 말은 하기 쉬워도 인간의 감정을 쉽게 무너뜨리고 때로는 하늘로 올라갈 것처럼 만든다. 가네시로의 <연애소설>에 나온 사랑이야기도 내가 느끼는 고독과 허무가 나온 것을 보았다. 주인공이 대학시절 옆에 동기이야기는 그야말로 끔찍한 고독과 허무다. 자신 주변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죽고, 최후에 사랑하던 여자도 병으로 죽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준 여자를 만나 그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이 죽기 전까지 세상에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이야기를 주인공 작가에게 말해주었다. <연애소설>이 일반적 연애소설과 다른 점은 죽음이란 세계를 항상 옆에 끼고 이야기한다. 첫 번째 “연애소설”에선 주인공은 언제나 주변사람의 죽음을 보았고, 두 번째인 “영원의 환”편의 주인공은 암을 선고받아 언제 죽을지 모른 사람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꽃”에서 주인공은 뇌질환으로 언제 지금 당장 죽을지 모를 운명이고, 그 주인공과 같이 드라이브를 떠난 변호사 도리고에는 암을 선고받은 초로의 남자였다.


모두 죽음을 바라보고 죽음 앞에 있는 점에서 마지막으로 인간이 죽기 전에 무엇이 하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서 과연 글쎄 무엇일까? 우리는 철학자가 아니라서 스피노자처럼 사과나무를 심으려 들판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다. 결국 그 최종은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인간은 1번 태어나면 죽는 것이 당연한 운명이다. 그 운명 안에서 어떻게 벗어나려 해도 답은 없다. 죽는 모습과 과정 그리고 시기는 달라도 죽고 나면 모든 인간은 평등해진다.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깐.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죽으면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고, 나를 추모해주며, 그 사람들 마음에 내가 살아있다면,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영원할 것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사실 그 고통과 충격을 깊이 고민하는 것만으로 괴롭지만, 그보다 괴로운 것은 혼자 외롭게 고독과 허무 아래 사라지는 것이다. 마지막에 눈을 감는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연애소설>에선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이란 어떻게 보면 전혀 기대하지 않거나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오거나 느낄 수가 있다.


<연애소설>에서 사랑의 시작은 정말 우연이고 뜻밖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별의 슬픔과 죽음 역시 생각하기 어려운 선택지였다. 만약 이런 운명 앞에 우리가 그 길을 걸어야 한다면 우리는 우리 삶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사랑은 혼자서는 되는 게 아니라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우연으로 치부하면 안 될 것이다. 사랑이란 것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나는 그 사람을 왜 사랑하는가? 그 질문에 해답을 내놓지 않으면 금방 사랑은 식어간다.


내가 사랑에 빠진 것만큼 중요한 게 나는 왜 사랑하고 있는가이다. 아마 그 표현은 “꽃”편에서 가장 잘 보여준 것 같다. 가네시로 작가의 특유의 재미가 잘 나오지 않은 소설이라 해도 그의 인생가치관이 “꽃”편에 잘 나와 있다. 게이코는 남편과 28년 넘게 떨어져 살아왔지만, 남편이 살인범(그는 1970년대 일본에 살고 있는 사회적 약자 - 아마도 징용된 - 조선인의 후예였다)의 변호를 맡은 과정을 계속 찾아 정리하였다. 가난하고 소탈한 남편이나, 남편집안의 이야기인 '도리고에 가의 전설‘은 몇 번이나 들려 달라 했고, 그 전설을 만들어 내었다. 남편의 할아버지는 관동대지진 때 억울하게 핍박받은 조선인과 중국인 친구를 변호하다가 얻어맞아 죽었다.


이에 반해 아내 게이코의 집안은 한국전쟁과 일본 대공업시기에 거부가 된 사람이다. 어울리지 않은 두 사람, 하지만 게이코가 남편 도리고에를 진정 사랑한 이유는 그만이 약한 자를 비웃지 않고 진정으로 위해 뛰었기 때문이다. 바로 신념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 살았던 것이다. 만남은 계단에서 떨어진 게이코를 보고 다정하게 감싸준 것처럼 게이코가 바라본 도리에고의 모습은 바로 다정함이다. 그 다정함은 게이코만이 아니라 ‘도리고에 가의 전설’처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내 자신의 이기심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거나(“연애소설”편), 아니라면 그 사람을 위해 누군가를 죽일 각오가 있는지(“영원의 환”편) 아니라면 죽음만이 유일한 화해(“꽃”편) 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 “꽃”편에 게이코는 남편과 죽은 아들의 묘비에 남긴 꽃은 물망초다. 물망초의 말뜻은 나를 기억해주세요! 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기억해주고 내가 그 사람을 기억해주어 서로 마음이 아픈 일이 많더라도, 그것조차 넘을 수 있다면 멋진 사랑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는 그런 기억이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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