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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하면 저 위의 링크된 글을 들어가서 보는 것에 대해 말리고 싶지만,
도서모임에서 전에 내가 메갈리아 사이트에 대해 비판적으로 작성한 글에 대하여 잠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참석한 자리에서 인원은 나를 포함하여 4분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분들은 여성이었고, 그 중 2분은 집에 자녀를 둔 기혼여성 분이었다. 그 중 한 분은 나의 글을 읽은 후 이번 넥슨 사태와 관련된 내용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그리고 판정은 내 생각에 동의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번 메갈리아 사태와 페미니즘 논쟁 사이에서 그들을 도저히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 없다.
우선 세상 인간들 중에 반은 남성이고, 반은 여성이다. 문제는 세상의 반이라는 여성들에게 그곳에서 또 구분되어 있는 것이 있다. 여성의 일부는 미혼이고, 여성의 일부는 기혼이다. 그리고 그 여성 미혼 안에서도 미성년자와 어린 아이들도 있고, 결혼하지 않은 채 노년을 맞이하는 분들도 있다. 내가 메갈리아의 문제점을 뽑자면 바로 그들 대부분 인원구성에 20~30대 미혼 여성이다. 그렇다면 기혼여성은 얼마나 되는가?
한겨레나 경향신문 자칭 진보성향 신문들이 메갈리아의 편을 들어 사설을 쓰는 것을 보았다. 물론 쓰는 것은 자유이고, 그 쓰는 것에 대한 원칙적인 내용과 논리적인 평이 있다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문제가 조금 있었다. 서울 성공회대학교 신부님이나 많은 신문기자들이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보여준 1910년대 영국 여성참정권 운동 이야기를 끌고 온 것이다. 이 영화는 에멀린 팽크허스트 여사의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란 자선을 토대로 만든 이야기이다. 신문기사에서 엄청난 오류는 페미니스트 역사에서 영국여성운동하고 지금 메갈리아하고 상당히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르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세상 인간 중 반이 여성이라면 그 여성의 반이 기혼여성이란 사실이다.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모드는 공장노동자이면서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이다. 그녀가 처음 영화에서 공장노동자라는 열악한 환경, 그 공장노동자에서도 여성이란 약점, 또한 아이 때부터 착취당해야 하던 문제를 말한다. 즉 노동문제, 여성문제, 아동문제까지 이어진 것이다. 모드가 처음에 여성이란 이유로 무시당하는 것에서 분노했다면 모르나,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 이혼을 하거나 가정에 문제가 있을 경우 여성에게 아이에 대한 양육권이나 친권을 소유할 수 없었다.
남편의 일방적인 행위에 따라 아이를 만날 수도 없고, 어머니로서 행위를 할 수 없었다. 영화 서프러제트> 마지막에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는 날짜가 새기지는 것도 있지만, 영화감독은 어머니도 자녀에 대한 친권행세를 할 수 있게 된 날짜도 집어넣는다. 그렇다면 영화 <서프러제트>와 메갈리아 운동을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서프러제트 운동에서 에멀린 팽크허스트 여사는 여성에게 사회적 쇠사슬로부터 해방되면 남성 역시 더 좋은 세상에 산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부분은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에서 밀의 주장과 일치한다. 게다가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에서도 존 스튜어트 밀이란 이름이 거론된다. 가끔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왜 남성이 페미니즘 사상과 관련된 것에 반발하는 사람을 보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가 없다. 페미니즘이 여성 그 자체를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자유주의,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등 다양한 사상과 결합하여 태어났기 때문이다, 18세기 프랑스혁명 때 여성운동가가 등장하여 19세기부터 영국을 시작하여 20세기는 전 세계로 뻗은 것이다.
문화인류학 도서를 보면 인류의 모습을 보기 때문에 페미니즘 관련 내용들이 참 많다. 매릴린 옐롬의 <아내의 역사>나 <유방의 역사>는 서양에서 원시시대부터 중세, 근현대까지 망라하기에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내가 메갈리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인가? 페미니즘 이론과 관련하여 남성을 배제한 사상이 얼마나 있는지 까지 모르겠다. 단지 해러웨이 박사처럼 사이보그 페미니즘이라고 하여 인간이 생물학적인 조건이 아니라 기계적인 요건이라면 필요 없을 것이다. 만약 인간의 신체구조와 판단기관인 뇌조차 기계로 되면 인간은 굳이 동물적 존재로 살아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고, 만약 된다고 해도 그것은 남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와 지구환경시스템 전반적이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공상세계가 아닌 이상 우리 현실을 바라보는 게 정답이다. 펭크허스트 여사는 자신에게 인간이란 존재가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동일한 조건아래 인격을 존중받고 사람답게 사는 것을 원했다. 여자라서 우대하고, 남자라서 존대 받는 게 아니다. 다시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모드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자신의 자녀가 아들이었고, 아들을 볼 수 없던 그녀는 절망과 분노로 과격한 페미니스트가 된다.
그녀가 페미니스트가 된 것은 여성에 대한 탄압, 열악한 노동환경, 그리고 자녀에 대한 친권행위이다. 그런데 메갈리아에서 한국의 남성을 부정하고, 때에 따라서는 심각한 발언을 한다. 만약 그 발언자체가 성인남성이라면 모르나, 아이들까지 연계되고, 한국남성과 결혼한 한국여성까지 비난하는 것이다. 아주 비속한 언어 중에 “명예자지”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자신을 비판하는 여성 혹은 유부녀와 남성과 교제하는 여성”이란 뜻이다. 결국 메갈리아는 한국의 남성만이 아니라 순수하게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까지 욕을 하고, 남자친구와 연애하는 여성까지 욕하는 부류다.
페미니즘 이론에서 여권신장은 기본이겠지만, 아동인권에 대해서는 더욱 생각해 볼 점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 여사 역시 가난한 여성에게 태어난 2세에 대한 걱정을 심하게 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병이나 굶주림으로 대부분 죽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면 교육환경이 좋지 않아 다시 비참한 일을 해야 하는 재생산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정말 한국남성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해서 시위나 저항을 하지 마란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 시위행위에서 그녀들은 모든 한국남자는 배제하고, 그들의 옆에 사는 여성도 포함하여 앞으로 그들 남성과 여성 사이에 태어날 아이조차도 부정한다. 나는 이들이 페미니즘이라는 포장으로 한국사회에 들이대는 게 너무 걱정된다. 누군가는 이들로 통해 페미니즘 담론이 활성이 된다고 하나, 막상 그들이 말하는 범주에서 윤리적 가치관이 통용되는가?
폭력으로 대응하여 그들에게 말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 그 원심적 논리와 가치관이 어느 정도 윤리적 정당성을 받아야 한다. 사회적 권력과 흐름에서 정착된 도덕적 관념이 아니라 과거든 현재든 먼 미래가 되든지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이어야 한다. 변증법적인 관계에서 그들이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관심도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그들 자체가 하나의 페미니즘이란 사실을 된다면 엄청난 모순이 될 것이다. 링크된 글을 보면 나와있다. 메갈리아에서 다시 나온 메갈리아4, 그들이 말하는 주장이란 무엇인가?
한국남성에 대해 한남충 같은 단어 같은 것은 그냥 넘어간다. 여성이 여성으로 목소리는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희 목표는 성재기 조롱과 오뎅드립으로 클리떨리게 웃고 마는 것이였나요? 씹치남 번식탈락이 목표가 아니였나요?”에서 나는 이들이 과연 인간이라 생각이라 여기는 것이 너무 어렵다. 성재기 씨가 일부 여성에게 불편한 감정을 준 것 같은 사실이나(고인에 대한 조롱하는 인간성에서 의문이 들지만),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조롱에서 오뎅드립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분명 말한다. 남자 말 잘 듣는 좋은 페미니스트만이 페미니즘 운동가가 아니라 저항하는 사람 역시 그렇다고 말이다. 하지만 페미니즘 담론 이전에 인간이 되는 게 정상이 아닌가? 이것도 메갈리아4 운영진이란 인간이 적은 글이고, 그 밑에 덧글은 안 보는 편이 좋다. 씹치남 번식탈락에서 왜 한국에 사는지 묻고 싶다. 한국남자가 싫으면 상대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이유는 여성운동 이전에 먼저 자신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자신의 얼굴에 흉악한 가면을 쓰고 시작했지만, 어느새 그 가면이 자신의 얼굴로 되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신문기자들, 진짜 영화<서프러제트>만 말고 에멀린 팽크허스트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다 읽어보았나? 에멀린 팽크허스트 여사가 언제 세상의 모든 남자를 번식탈락이라든지 혹은 죽이야 한다든지 필요 없다는 말 한 마디가 있던가? 신문기자들도 나름 고인에 대한 모욕을 하고 있다. 메갈리아 논리로 보자면 영화 <서프러제트> 모드는 자신의 아들을 씹치남이고 한남충의 후예이기에 사라져야 한다고 말해야 했다. 모드가 과연 그런 대사를 하던가? 비 오는 날 창문 너머로 아이를 보기 위해 서서 기다린 모드. 아이의 생일일 때 집에 찾아가니 강제 입양되는 모습에서 오열하는 모드를 볼 수 있다.
서프러제트 운동에서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기혼여성이었고, 집에 아이를 둔 어머니이었다. 그녀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싸운 것이지 자신들의 오만을 위해 싸운 게 아니다. 참 당황스럽다. 어째 저런 인간들을 서프러제트 운동가들과 비교할 수 있을까? 되먹지 못한 남자들을 보고 쌍욕하고 화를 내는 건 당연하나, 그런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어린아이를 가지고 장난치는 인간들을 두고 뭐라 해야 할까? 아동인권(어린아이와 그 어린아이의 어머니)을 존중하지 않은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아동인권을 존중하지 않은 인간(남녀 모두)들은 자유주의자도 민주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아니다. 그냥 쓰레기다.
2016.8.19 업그레이드한 사진입니다. 메갈이나 메갈의 후예 워마드 논리에 따라가든 말든은 자유나, 이런 것을 두고도 비판하지 않으면 그 운동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전태일 열사가 노동착취를 당한 어린 여공을 위해 분신자살까지 선택했는데, 그분의 여동생은 지금도 오빠생각에 가슴이 찢어지는데 과연 이게 인간의 얼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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