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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 마지막 3년의 그림들, 그리고 고백 ㅣ 일러스트 레터 1
마틴 베일리 지음, 이한이 옮김 / 허밍버드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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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남긴 것이라면 그림과 편지가 있다.
고흐의 편지가 없었다면 고흐의 그림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편지의 수령인은 동생 테오, 테오의 부인 요 봉어르, 여동생 빌 반 고흐, 어머니 아나 반 고흐, 폴 고갱, 존 러셀, 아크놀트 코닝, 폴 시나크, 에밀 베르나르, 외젠 보흐, 아를의 여인의 모델이기도 한 아를의 카페 드 라 가르의 주인 부부 등이다.
고흐는 가족과 친구에게 쓴 편지에 자신의 그림을 언급하며 작업중인 그림을 설명하고 작게 그린 스케치를 함께 보내곤 했다. 글을 통해 설명하는 고흐의 색채는 여기에서 저기를 가는 과정을 아우르는 것 같다. 고흐의 글씨를 보는 것 역시 또다른 즐거움이었는데, 강조된 스펠링이 있어서인지 글씨가 그림 같았고 그대로 작품 같았다. 이 책의 묘미는 이 손글씨와 드로잉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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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고흐의 그림을 생각하면 노란색을 떠올리며, 황금빛 들녁이나 일출, 일몰, 불빛, 별빛에 많이 끌렸었다면 이번엔 녹색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크게 들리기도 했다. 아~ 노랑이 있려면 녹색이 있어야 하는구나! 또 자주 등장하는 코발트빛에 매료되고 주황, 적색, 보라색 등 색채는 고흐에게 매우 중요했다. 이글대는 입체감을 간직한 고흐의 채색은 아주 입체적이고 스스로 빛의 명암을 가진다. '고흐는 찢어지는 듯한 삶의 고통을 황홀한 아름다움으로 바꿔놓는다'고 말하는 것을 어디선가 읽었다.
색채를 쓰는 뛰어난 감각을 지닌 고흐는 우리가 모르는 더 많은 것을 보았던 것이 틀림없다.
녹색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고흐가 보는 자연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고흐가 모델로 담은 소박한 사람들은 언제나 과장되지 않고 꾸며지지 않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느꼈다. 고흐에겐 연민의 눈이 있다.
여전히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커다란 성당이 아니라 민중의 눈이야......
빈센트
나는 붉은색과 초록색을 통해 인간의 끔찍한 열정을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빈센트
초록색이 이렇게 많이 보일줄이야! 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을까?
<빈센트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는 확실히 밝은 노란색과 짙은 초록색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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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 곳을 찾아 헤매며 살아가는 운명
고흐는 떠나고 싶어했고 아를에 닿았다.
봄에 프랑스 남부 지방으로 갈 것 같습니다.
푸르른 빛깔에 생생한 색채가 넘쳐나는 그곳에요 -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
네덜란드 출생,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20세기 미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900 여점의 그림과 1100 여점의 드로잉과 스케치 등의 유작을 남겼다.
1866년~1888년
260통의 편지 중에서 109통의 편지와 스케치를 포함한 그림 150 여점이 이 책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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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말한다.
'아, 내가 요즘 보는 것들을 너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이지 너무나 사랑스러운 것들이 많아서 마음을 빼앗아 간단다. 특히나 그림이 좀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더 그렇단다......'
자신이 본 대로 그릴수 있고, 사람들이 자신이 보는 것들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고흐의 열정에 깊이 닿는다. 아를을 담은 그림들은 은둔성향이 있는 내게도 그곳으로 떠나고 싶게 한다. 그를 이해하면서도 그를 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그의 편지로 선명해지는 것 같다.
고흐가 경제적으로 캔버스나 물감 값, 방임대료, 음식비 등을 걱정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힘들었다. 고흐도 사람들과 무슨 대화든 나누고 싶어했다. 누구라도 먼저 친절히 인사라도 해준다면 말이다. 과장되고 가식적인 사람들을 떠나 남부의 조용한 마을에서도 집안에 머무르거나 인적이 드문 곳을 찾으며 은둔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예술적 교류 만큼은 누구보다 넓게 유지하며 진심으로 예술을 사랑했던 고흐를 통해 평생 더 많은 것들을 느껴갈 것 같다. 또 만나고, 또 만나며 오해와 편견으로 만났던 것들을 더 진실하고 소박하게 만났으면 하는 바램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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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11월 1~2일 B19a/716
친애하는 동료 베르나르에게
오랫동안 생각해 온 건데, 화가라는 우리의 고약한 직업에는 인간이 지닌 손과 노동자의 배고픔이 가장 필요한 것 같아. 파리 거리의 탐미적인 멋쟁이들보다는 자연적인 취향( 사랑하고, 너그러운 기질)이 필요한 것 같다고.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그림 외에도 고흐가 무엇을 담고자 했는지 늘 언제보다 천천히 걸어보고 싶은 책이다. 그중에도 허밍버드 출판의 이번 책은 고흐가 마지막 3년을 보낸 아를에서 쓴 편지와 그때 그린 드로잉, 습작, 채색을 마친 완성작들을 볼 수 있다.
고흐의 드로잉이 채색을 거쳐 완성작이 되는 과정이 꽤나 긴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고 그가 해바라기, 씨부리는 사람 같은 연작을 그리는 고흐를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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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테오가 보낸 주 50 프랑의 돈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매달 집 임대료를 내고 욕심내서 캔버스와 물감, 그리고 도판과 책을 구하고 나면 고흐의 식사는 비루했고, 커피로 대신 하는 날들도 많았는데 무엇보다 동생 테오에게 지운 경제적인 짐을 하루라도 빨리 벗게 해주고 싶은 마음과 반대로 생전에 딱 한 점의 그림만이 팔렸다니 안타깝기만 했다. 돈을 벌지많으면 독립된 인간이기 어렵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라는 칭송을 듣지만 그럴수록 더 미안해지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음에 드는 노란집에서 자기 방을 꾸미는 빈센트에게서 희망과 즐거움이 느껴기지도 한다. 그러나 집을 구하고도 가구가 변변치 않아서 집에 온전히 들어가서 살기까지 4개월 더 여관에 머물렀다니 고흐에게 넉살과 융통성이 좀 더 있었다면 달랐을까? 그가 좀 덜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온전한 가정을 꾸려서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키우고 함께 하는 것을 고흐도 많이 꿈꾸지 않았을까? 누구의 방해도 없이 또 매섭고 차가운 바람과 비를 피해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방 하나의 소중함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이번엔 또 어쩐일인지 고흐와 니체가 너무나 많이 닮아보여서 또 한번 놀랐다.
아를의 조그마한 노란 집은 아프리카, 열대 지방, 북쪽 사람들 사이의 간이역이 될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
고흐의 드로잉과 그림 그리고 편지 속의 고흐를 읽고 싶어서 쉴 새 없이 눈을 옮기고 다시 읽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책의 여운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관련 영화를 보곤 한다. 두 편의 영화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는 기쁨을 느낀다.
<러빙빈센트>, <고흐,영원의 문에서>를 다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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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감사히 읽고 솔직히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