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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미술관 - 지친 하루의 끝, 오직 나만을 위해 열려 있는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2년 8월
평점 :
늦었다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한 나이인 75세에 붓을 잡기 시작한 그랜마 모지스, 모든 것을 얻었다가 모든 것을 잃었던 렘브란트, 시련을 자양분 삼아 더 단단하게 성장했던 쿠르베와 발라동, 부족한 환경, 치명적인 육체적 결함 같은 결핍을 오히려 재능으로 꽃피운 무하와 로트레크….
책을 통해 만나게 될 그림에 앞서서 이 책의 표지와 컬러감, 고급진 속지의 세련됨, 텍스트의 아름다움까지 한껏 느꼈다. 소제목들과 곳곳에 안착한 문장의 배열이 아름답기까지 해서 미술관에 그림을 한 점, 한 점 거는 것 같은 섬세함을 느끼게 되는데 책의 내용과 함께 정성을 많이 들인 책이구나 싶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물론 위대한 예술가들과 나의 삶을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누구도 쉬운 삶을 산 이는 한 명도 없다는 것.
우리는 매일 좌절을 경험한다.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때때로 사람으로 인해 상처도 받는다. 이해받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며 마음의 문을 닫기도 한다.
그런데 부족해서, 고통스러워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서, 너무 늦어서, 오히려 모든 절망을 경험했기에 모두를 위로할 수 있었던 예술가들이 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인생의 여정에서 그들은 어떻게 자신을 믿으며 옳다고 생각한 길을 묵묵히 걸을 수 있었을까? 극도의 절망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던 힘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지친 하루의 끝, 오직 나만을 위해 열려 있는 미술관
<위로의 미술관> 속 작품들은 지친 하루의 끝 가만히 책장을 열어줄 당신만을 위해 놀랍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오롯이 품고서 기다리고 있다.
한 번 미술관에 간다고 그림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여러 번 찾게 되는 마음처럼 그림과 화가 이야기는 언제나 새롭고 좋다. 그것은 많은 시선을 느끼게 한다.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미술사에 대해 딱히 아는 바가 없는 나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는데 화가와 그림에 관한 이야기와 역사의 흐름도 간단하게 함께 큐레이션 해주니 책 안에서 길을 잃는 일이 없었다.
두려움을 이겨낸 열정
모네의 <수련>에 담긴 위로
모네는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작품을 통해,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수련이 흐드러진 고요한 연못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길수 있는 안식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자신도 오랜 세월 수많은 실패와 수모, 절망을 겪었기에 이 모든 감정을 위로하는 작품을 남기려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시선을 여러 곳으로 흐르게 해주는 이런 그림은 내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언제나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지만 하늘 한 번 보기 힘든 일상에서 탁상 달력에서라도 만나는 그림으로 잠시 복잡한 생각을 멈춰 세울 수 있담면 그 순간이 위로이다.
느릴 순 있어도 늦은 건 없다
모리스 허쉬필드, 그랜마 모지스
일흔이 넘어서 그린 1600여점의 그림.
꿈을 꾸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 그들의 이야기는 언젠가 이룰 꿈을 마음 깊이 간직한 모든 이에게 응원과 희망이 되고 있다.
나보다도 부모임에게 새로은 꿈을 일깨워 드리고 싶게 하는 스토리를 가진 그림이기도하다.
병 때문에 열린 새로운 예술의 길
인생은 내가 까야 하는 굴이다
앙리 마티스
< 이카로스>, < 푸른 누드 >, < 굴이 있는 정물화>
스무 살 즈음 맹장염 수술로 침대에 머물던 시절, 그림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처럼 다시 한번 육체적 고통을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으며 새로운 방식의 예술을 또다시 침대 위에서 도전한다.
일흔이 넘어 암 수술을 받을 당시 그는 의사에게 작품의 마무리를 위해 3~4년만 더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 기적같이 84세까지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며 수많은 이에게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기 나름이라는 감동을 주었다. 마티스는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화가이자 자신의 삶과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용기와 행복을 북돋아 주는 어른이기도 하다.
우울한 화가에게 찾아온 은둔의 시간
본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
폴 세잔
1893년 27세의 젊은 나이로 파리에 갤러리를 연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당기의 화방을 방문한 후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세잔의 그림에 매혹된다.
세잔의 첫 개인전을 찾은 젊은 화가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400년간 지배하던 미술의 규칙을 완벽히 무너뜨린 그의 그림을 보며 용기를 얻은 것이다. 그들은 세잔이 머무는 엑상프로방스를 마치 순례하듯 방문했고, 그와 대화하며 자신의 세계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세잔은 나이 60세가 다 돼서야 새로운 미술의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와 똑같이 고향에 머물며 들뜨지 않은 채 묵묵히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한 평론가에게 “자연은 아주 복잡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작업을 무척 천천히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끝이 없는 것 같다"라는 겸손한 말을 전한다.
하지만 끝이 없을 것 같던 그의 묵묵한 발걸음은 1906년 10월에 멈춘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 쓰러진 세잔이 결국 일어서지 못한 것이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남긴 편지에, 자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는 글을 남겼다.
아이바스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감상자가 실제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는 바다를 숱하게 여행하며 자신이 본 풍경을 사전 스케치하지 않고, 작업이 시작되면 기억한 내용을 캔버스에 간단히 스케치한 후 그대로 채색을 이어갔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격렬하게 뒤흔드는 영원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도스토옙스키도 황홀감을 표시했다는데, 위험해 보이는 이 그림에서 묘하게 안정감과 희망을 느낀다. 어떤 격동이 있더라도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다잡게 되고 고난을 이겨낸 모든 결과가 가치롭기를 희망하게 되기도 한다. 불규칙 속에서 다시금 규칙을 발견하고 언제든지 적응해내는 인간을 나역시 고귀하게 보고싶다.
이후로도 많은 이름과 그림이 기다리고 그 중 오늘 지친 하루를 잊게하는 그림에 대해 묻는다면 전진한 아이와 반려동물의 표정이 리얼하게 담긴 그림들이 좋았다. 감정이 다 느껴지고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줄 것 같은 그림들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