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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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은 도서관을 사랑한다. 야생동물 도감을 보며 동물 이름 외우고 멸종위기 동물의 그림을 그려서 마켓에서 팔아 동물보호 단체에 기부한다. 개울에서 갑각류 놀이를 하고 산속에서 별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홉살 소년이다. 로빈의 엄마는 차사고로 돌아가셨다. 로빈은 엄마가 물을 사랑하는 도롱뇽이 되어 생태계로 돌아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했다.

학교와 사회, 어른의 시선은 아스퍼거, 강박장애, ADHD 등의 이름으로 로빈을 분류하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로빈을 특정 부분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특정 부분이 더 발달한 소년이라고 보고 싶다. 그러나 로빈은 상실에 민감한 소년이었다. 로빈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학교에 가는 일과 생명체에 해를 끼치는 행위이다.

로빈을 불안정하게 보고, 로빈의 아빠를 무책임한 방임부모로 보는 시선이 내가 보내는 시선이 아니기를 바란다. 어딘가 아린 이 이야기는 로빈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순수한 외침이다. 이 섬세하고 크고 넓은 소설이 많이 읽히는 것은 세상에 뿌려지는 씨앗이 될 것 같다.

'나는 아홉살이야, 아빠. 감당할 수 있어.'

나는 마흔다섯 살이고, 감당할 수 없었다.

열한 살의 로빈이 지금 내가 저지른 또 어떤 실수를 말해줄지 또. 누가 알까. 하지만 제 어머니의 죽음에서도 살아 남았으니 내 선의의 실수들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겠지...



엄마가 없는 로빈에게 듬직한 싱글대디로, 세상 누구보다 로빈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전혀 종잡을 수 없는 로빈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아는 아빠는 최선을 다한다.

소설은 로빈이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 있는 모습을 잠시 비추기도 하는데 동물보호가였던 엄마가 하던 활동들을 지표삼아 로빈은 세상의 생명들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로빈은 공립 고등학교를 다니며 박테리아 학자가 가르치는 생물학 수업을 들었다. 그 교수는 생명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사람들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로빈은 미생물학 프로그램이 탄탄한 워싱턴 대학 조교가 되었고 로빈은 극한 미생물 쪽에 관심이 많았으며 박사 과정도 밟는다.

어딘지 모르게 한계와 상실의 아픔이 느껴지는 이 소설은 우리가 두렵게 생각하는 불완전함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으며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일깨우는 것 같다. 기후위기, 멸종동물보호, 생명에 대한 로빈의 사랑과 세상에 뿌리는 작은 씨앗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한다.

또 하나 우리가 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아직 우리가 아는 것들 외에 나머지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에 대해 일깨우는 것이다. 지금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조차 바뀔 수 있고 상실은 상실이 아니고 무모함도 무모함만은 아니다.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그러면 신은 어때, 아빠?' 하고 묻는 로빈의 질문은 세상을 향해 있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아빠, 아빠! 아빠는 상상도 못할거야'

'그래서 다들 멸종해 버리는 거야.

모두가 나중에 해결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 어딘가에서는 시작해야 해, 아빠. 내 항의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은 줄지도 몰라.'

♡ 로빈이 하는 말들, 질문들을 다시 보노라면 이상한 감정이 든다. 우리가 잊고 지내지만 잊지말아야 할 것들을 만나게 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서 해방되기를

이쯤에서 이 책이 2021년 부커상과 전미도서상 후보였고, 저자 리처드 파위스가 퓰리처상 수상 작가라는 것이 이해되었다. 인간의 해방과 자유를 부르짓는 동안 인간이 망쳐버린 모든 것들이 인간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하는 소설이다.



아홉살 로빈은 아카이브에 저장된 엄마 이름으로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김초엽의 소설 <관내분실>에서 보았던 미래다. 죽은 자들이 사라지지 않고 파일에 담긴 기억으로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로빈은 과거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언제나 되풀이되는 행성에서 살고 싶어했다.

로빈의 사랑

그 여자는 어떤 예견처럼 여기로 오고 있는 도중에 문제가 느껴졌다. 작지만 행성 같은 사람. 내가 사랑하는 시인 네루다도 나와 같은 순간의 사랑에 빠졌을 것 같았다. p 80

그 무엇보다 괴상한 행운으로 그 여자는 내 농담에 환한 웃음을 터뜨렸다. 심지어 나도 내가 농담을 하고 있는 줄 몰랐을 때마저. 우리의 조화는 딱 맞지 않으면서도 훌륭했다.

p 81


♡ 이 소설에서 내 시선을 끈 두 개의 문단을 소개하고 싶다. 천문학과 유년기를 담은 이 대목들이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아빠와 지금은 없는 엄마가 로빈을 광활한 우주 속의 로빈을 어떻게 감싸고 이끄는지 보는 아름다움이었다.

p 99

천문학과 유년기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어마어마한 거리를 가로지르는 항해다. 둘 다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사실들을 찾으려 한다.

둘 다 엉뚱한 이론을 만들고 가능성이 무한히 증식 하도 록 놓아 둔다.

둘 다 몇 주마다 초라해 진다.

둘 다 모르기때문에 움직인다.

둘 다 시간 때문에 곤란해 진다.

둘 다 언제까지나 시작점이다.

p 100

내가 시간을 낭비 한다고 생각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행성을 시뮬레이션에서 무슨 소용인가? 심지어 그 중 상당수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현재 있는 도구의 탐지 능력을 넘어서는 목표물을 준비하면 무슨 소용인가? 그런 이들에게 나는 언제나 유년기의 쓸모가 무엇이겠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수백명의 동료들과 내가 로비한 유사 지구찾기 프로젝트, 즉 플래닛 시커 만원경이 십년이 지나기 전에 나올 것이며 네 모델들에 진짜 데이터를 심어줄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 씨앗들로부터 가장 터무니없는 결론들이 자라나리라.

♡ 미래 이야기에서 '아이'는 그야말로 미래의 상징이다. 미래의 아이들의 유년기인 오늘 우리가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숙고를 하게 하며 ' 하찮은 것들이 우리를 구할거야~ '그 말도 함께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지만 좋은 씨앗을 뿌리는 일에 포싸이트 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한다.





천문학과 유년기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어마어마한 거리를 가로지르는 항해다. 둘 다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사실들을 찾으려 한다.

둘 다 엉뚱한 이론을 만들고 가능성이 무한히 증식 하도 록 놓아 둔다.

둘 다 몇 주마다 초라해 진다.

둘 다 모르기때문에 움직인다.

둘 다 시간 때문에 곤란해 진다.

둘 다 언제까지나 시작점이다 - P99

내가 시간을 낭비 한다고 생각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행성을 시뮬레이션에서 무슨 소용인가? 심지어 그 중 상당수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현재 있는 도구의 탐지 능력을 넘어서는 목표물을 준비하면 무슨 소용인가? 그런 이들에게 나는 언제나 유년기의 쓸모가 무엇이겠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수백명의 동료들과 내가 로비한 유사 지구찾기 프로젝트, 즉 플래닛 시커 만원경이 십년이 지나기 전에 나올 것이며 네 모델들에 진짜 데이터를 심어줄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 씨앗들로부터 가장 터무니없는 결론들이 자라나리라.​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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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05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아름다운 이야기일것 같네요. 이 책 읽을까말까 고민중이었는데 덕분에 읽고 싶은 생각이 막막 듭니다. ^^

2022-06-05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든것이좋아 2022-06-06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꼼히 읽어주시고 친절한 댓글에도 감사드립니다.
비밀 댓글로 남겨주신 배려도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