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 유명해서 못 읽고 놓치는 책이 있지요.

제게는 바로 김영하 님의 책들이 조금 그런 것 같아요. 너무나 좋았던 < 여행의 이유> 이후에 다른 책은 읽지 못했고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더 자주 뵈었네요. 이번 소설은 <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의 소설이라고 해요.

"난 내가 인간이 아닐 거라고는 한순간도 생각해본 적 없어."

책을 읽으며 '와 ~ 미쳤다. 너무 좋아'

인문학 전체를 소설 안에 다 녹여낸 느낌이네요. 인문학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통쾌한 정리감을 줄 것 같습니다. 그 느낌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특성이 참 잘 드러나는 소설. '인간이기가 그렇게 쉬울 리가 없어'라고 말하는 소설. ' 인공지능이 인간을 쉽게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흉내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SF 인문 소설입니다.

잘 알지 못하고 쓰는 리뷰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오늘 딱 100페이지까지 읽었어요. 여운을 즐기는 중입니다. 스포를 하고 싶지 않기에 지금까지의 내용만으로 리뷰를 하고자 해요. 다 말해버리면 안 될 것 같고 저 역시 뒷부분이 매우 궁금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미 본 것만으로도 이미 뭔가로 가득찬 마음은 앞으로에 대한 믿음으로도 가득합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생각나게 했던 고양이와 인간을 언급하던 도입부를 지났는데 개인적으로 김영하의 소설 <작별 인사>는 베르나르의 소설 <문명 1,2>나 <행성 1,2>를 넘어선 느낌이에요. 크~~

고양이 대신 휴머노이드를 통해 인간을 드러내는 김영하 쪽이 저는 훨씬 좋네요. 쉽고 화려하게 쓰는 게 어려운데 완전히 인정합니다. 인문학의 매력이 가득한 소설입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이렇게 해놨네요.

손상 없이 잘 떨어지는 메모지와 인덱스지만 깔끔히 원상복구 시키려니 마음이 아픕니다. '구매해서 마음껏 밑줄 치고 메모하고 읽을 걸 그랬다'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책을 소장하고 아이들도 읽히고 싶은 책이에요.

주인공 철이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세계와 관계가 뒤집히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의심해 보게 됩니다.

철이가 자신의 존재를 의심해 봐야 했듯이 독자들도 철이의 존재에 대해 계속 의문이 생깁니다. ( 100페이지 까지 읽은 저는 아직 모르는 게 많고 철이도 아직은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아마도 저는 철이와 함께 성장을 경험 할 것 같아요. 이 소설 어디에 도달하게 될까요? '김영하가 도달한 현재' )

마치 김영하의 소설 <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자신이 가진 기억에 대해 계속 의심해 보던 모습처럼 말이죠. 강하게 믿는 만큼 의심은 괴롭기도 합니다.

그래도 스스로 계속 묻습니다. 나는 누군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가 시작인거죠.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렇게 간단할 리 없잖아

철이의 성장 소설이기도 하고 SF 휴머노이드 소설이기도 하고 휴먼 히스토리 소설이기도 해요. 여하튼 쉽게 읽히면서도 다채롭죠.

휴머노이드가 구현 가능한 인간의 특성을 쭉 써보다가 휴머노이드가 흉내 내지 못하는 인간의 특성이 뭔지 계속 질문하게 만드네요. 다음 주 독서모임 멤버들과 그런 얘기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음식을 먹고 음식물을 소화해서 용변 처리까지 하는 휴머노이드가 왜 필요하게 된 거죠? 아이를 교육하듯 가르치는 리얼 휴머노이드, 펫 패밀리처럼 반려 역할을 하는 휴머노이드, 잠을 자고 상처에서 피도 흘리고 당연히 고통도 느끼고 노화의 과정까지 구현해 내는 휴머노이드가 끝까지 흉내 내지 못하는 인간의 특성은 무엇일까요?

(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긴 것은 고도로 계산된 지능이라면 '두지 않을 수'를 두는 선택을 내리는 용기라고 생각했다가 사실은 '거짓의 한 수' 때문에 의도를 읽지 못한 알파고가 당황해서 흔들렸던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거짓을 말하고 거짓도 믿고 연대할 수 있는 인간의 특별한 재능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지 매우 궁금합니다. 이것은 적절한 지능을 갖춘 뇌라면 어느 동물이건 가능할까요? 왠지 그럴 것 같지도 않아요. 인간의 범죄를 연구하는 것이나 인간의 이유 없는 선행을 연구하는 것이 인간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저런 생각에 많은 것들이 궁금합니다.)


P 77

“난 그냥 모두를 돕는 거야. 누군가가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난 그걸 느낄 수 있어. 그럼 외면할 수가 없어.”

선이는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누군가를 돕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았다. 마음의 촉수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을 향해 뻗어 있었다. 


p 77

거기에도 분명 기억할 만한,

빛나는 순간들은 있었다.

소설을 보며 떠오르던 책이 있는데요.

소설 <죽음의 수용소>와 < 단테의 신곡 >입니다. 신곡에서 연옥은 갇힌 공간입니다. 더 깊은 지옥으로 가지 않는 안전지대인 동시에 천국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정체된 곳이죠. 이 딜레마 공간이 휴머노이드와 참 잘 어울립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성장도 추락도 없이 변화가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p 59

인간도 싫어하지만 저들( 기계들)이 가장 미워하는 건 자기가 인간인 줄 아는 기계야.


p 64

휴머노이들끼리 서로를 죽이겠지. 여기는 휴머노이드들의 연옥이야.

각자의 지옥이자 연옥을 견디는 방식은 저마다 다릅니다. 태어난 성격과 재능이 다를뿐더러 경험과 배움이 다르죠. 공통점이 있디면 무엇을 하건 그 과정에서 자기의 소명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단테의 신곡, 연옥에 비유한 휴머노이드의 지옥과 인간의 지옥, 경계를 넘어서는 호기심과 발견 그런 포인트들이 너무 재밌네요.



기계식 휴머노이드는 필요한 기능에 맞춰 필요한 데이터를 메모리칩에 저장했다가 주입하는 단순 지식의 형태라면 하이퍼리얼 휴머노이는 인간의 특성을 모두 구현해 내고자 해요.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스스로 인식, 학습, 사고하는 것이 고차원의 휴머노이드죠. 그 경계와 특성을 소설이 아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재밌습니다.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기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휴머노이드들인 기계파.

인간의 기능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자신이 진짜 인간인 줄 알고 있는 휴머노이드

그리고 인간.

그리고 좀 더 복잡한 인식들이 만든 부류들이 생겨납니다. 자신이 기계인 것은 알지만 인간인 척하는 휴머노이드도 있어요. 또 살아남기 위해 기계인 척하며 연기를 하고 가면을 쓰는 듯이 페르소나를 가진 휴머노이드를 보면서 놀라고 찌릿 ~ 했답니다.

인간을 대표하는 선이의 특별한 재능이었던 거래의 재능을 매우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이게 바로 인간 문명의 시작이구나 싶었지요. 서로에게는 언제나 서로 다른 결핍과 필요가 있고, 다행히 서로를 통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었고 대항해 시대도 그렇게 탄생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겹치거나 그것이 한정적이고 부족해지면서 전쟁도 불가피해져 왔습니다.

구형 휴머노이드가 인간을 존중하던 모습은 고전이 추구하던 가치를 되새기는 것 같았습니다.

스포일러 같은 리뷰지만, 스포는 없었다고 생각하며 1/3만 감상을 나눠봅니다.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던 소설의 초고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이야기로 나아갔다. (자신이 인간이 아닐 거라고는 한순간도 생각해본 적이 없을) 우리 역시 언젠가 삶과 작별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죽음에는 수천 가지 이유가 있단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감 2022-12-0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읽는 중인데 굉장히 좋습니다.
역시나 김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