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유 재산 - 메리 루플 산문집
메리 루플 지음, 박현주 옮김 / 카라칼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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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성찰.
여성의 노화에 대한 다소의 불쾌함에 대해 각성하고 있는 요즘, 메리 루플의 세계가 다가왔다.

젊음이나 늙음이나 어떤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 그저 경계없는 경계에 대해서.
조금은 울적한 나날에 다양한 색깔의 슬픔과 안도를 생각한다.

- 그래서 경찰들이 내게 달리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지만 자기 자신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러다 우리가 마침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될 때면 더 이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들은 그 말에 만족한 듯 보였다. 경찰들도 참, 그들은 모두 젊다. - 14

- 궁극에는 그들 사이에 진정성있는 감정이 오고 갔기를. 이것이 나의 가장 깊은 바람이다. 비록 그 감정이 일종의 패배감이었다 할지라도. - 17

- 가끔은 완곡어처럼 들리는 ‘삶의 변화’라는 단어도 보았지만, 실은 완곡어법도 아니다. - 35

- 행복한 노년은 맨발로 다가오며, 그와 함께 우아함과 상냥한 말들을 가지고 온다. 음울한 청춘은 절대 알 수 없었던 방식으로. - 42

- 그 모든 실패에 대해 생각했다. 파케트 선생은 프랭크에 대해, 허먼 멜빌에 대해, 바틀비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안타까운 기분을 느꼈다. 자기 잘못이 없다고는 해도 세계를 구해야만 했으나 구할 수 없었던 문학에 대해서. - 50

- 나는 결코 외롭지 않고, 지루하지도 않다. 내가 나 자신을 지루하게 할 때를 제외하고는. 이것이 외로움에 대한 나의 정의이다. 자신을 지루하게 하는 일. 한 신체를 쓸쓸하게 하는 일, 바로 그것이다. - 65

- 가을의 이 페이지들을 책장을 넘기듯 넘겨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책의 맨 아래에 이를 때마다 페이지를 응시하며 넘어가! 넘어가, 넘어가란 말이야, 넘어가, 라고 하는 것처럼. 그는 저녁의 무감각 속에서, 절망 속에서 울었다. 그렇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120

- 세계에서 가장 대단한 작가들에게는 대부분 하인이 있었다. 그들이 셀제로 설거지를 해본 적이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건 참 안된 일이다. 그들은 설거지를, 특히 저녁 식사 후의 설거지를 재미있어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동작은 다른 것들로부터 정신을 돌릴 수 있도록 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것들’이란 이 세계의 걱정거리를 뜻한다. - 128

- 덧붙이는 말 : 색깔을 다룬 각각의 글에서, ‘슬픔’이라는 단어 대신 ‘행복’이라는 단어를 넣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 153, 감사의 말 중

2023. oct.

#나의사유재산 #메리루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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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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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유튜브 채널에서 노벨문학상에 대한 라이브를 했는데, 노벨상 발표를 기다리며 진행된 라이브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사실 이제 더이상 노벨 문학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업었지만, 라이브를 보며 한참 웃고 수상자 소식까지 전해듣고나니 왠지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바로 주문한게 이 책이었다.

길고 긴 문장이 이어지고, 그것이 마치 끊어지지 않는 생명력같이 느껴졌다. 그 여운이 좋았다. 마치 대자연속에서 당연한 흐름처럼 흘러가는 생명.

연극적이고 고요하고, 독서지만 명상같은 독서.

- 그리고 그 아이가 이제 곧 나온다, 마르타, 아이의 어머니는 고통으로 비명을 지른다,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 - 15

- 그럼 마음 아픈 일이지, 레이프가 말한다
그래도 닥칠 일은 닥치는 법이야, 그가 말한다
사람이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언젠가는 우리 모두 차례가 오는걸, 그가 말한다
그런 거지 뭐, 그가 말한다
싱네가 그의 팔을 놓는다
그래 이제 아버지도 돌아가셨어, 그녀가 말한다 - 124

- 목적지가 없나? 요한네스가 말한다
없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위험한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위험하지는 않아, 페테르가 말한다
위험하다는 것도 말 아닌가,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란 게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 131

2023. oct.

#아침그리고저녁 #욘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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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문학동네 시인선 201
한여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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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아련한 것들에 대해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불안한 현실에 오소소한 소름이 돋다가, 왠지 안도하며 덮게된 시집이다.

-허름한 작은 방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먹고 자고 계속 살았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미선 언니도 언젠간 다 그랬을 것이다
얇은 벽에 기척을 들키지 않으려고
자꾸만 이불 안으로 움츠러들었겠지
몸은 자꾸만 넘치려 하고 터지려 하고
그러니 뭐라도 막으면 좀더 살 만하지 않겠냐며
어떤 날은 귀를 막고 어떤 날은 입을 막고
사람 사는 꼴이 뭔지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걸까 - 미선 언니 중

-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가령,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 같은 것 - 영동고속도로 끝에는 미래가 중

- 어제와 엊그제와 모든 삶이
거대한 기록이라는 게
참 이상하지 - 겨울 소설 중

2023. oct.

#두부를구우면겨울이온다 #한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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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 시인선 589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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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촉진하는 밤> ..
특별히 좋았던 시를 골라 제목을 쓰려다 플래그를 붙여놓은 부분들을 다시 읽어보니
고를것 없이 모든 시들이 아름다웠다.

나의 최애 시인...

- 어제와 오늘
사이에 유격이 클 때
꿈에 깃들지 못한 채로 내 주변을 맴돌던 그림자가
눈뜬 아침을 가엾게 내려다볼 때
시간으로부터 호위를 받을 수 있다
시간의 흐름만으로도 가능한 무엇이 있다는 것
참 좋구나
우리의
허약함을 아둔함을 지칠 줄 모름을
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더딘 시간을
이 드넓은 햇빛이
말없이 한없이
북돋는다 - 촉진하는 밤 중

- 충분하다는 건 기쁘다는 것과 좀 달랐다
그녀는 완전하게 기뻐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일에서 분노를 잔향처럼 느꼈다
그녀는 단 하루도
죽음을 떠올리지 않은 적 없었다
평생 동안 사랑해온 단 한 명을 대하듯 했다
그녀의 방에서만큼은
아무것도 아닌 그녀가 조용히 슬리퍼를 끌고
먹을 것을 챙겨 먹으며
다만 자기 자신을 위해 시를 썼다 - 이 느린 물 중

- 질문에 대해 답을 하지 않아도 돼
질문에 대해 답을 해보려 노력하다가 다른 진심을 전달해도 돼
그럴듯함과
그러지 못함과
그럴 수밖에 없음에 대하여 - 2층 관객 라운지 중

-수평선이 눈앞에 있고
여기까지 왔고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햇살에도 파도가 있다
소리는 없지만 철썩대고 있다
삭아갈 것들이 조용하게 삭아가고 있었다
이제 막 사람들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다 - 가장자리 중

- 누군가의 응원이 미행하듯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압니다
고마우나 달갑지 않은, 달지만 뱉고 싶은, 소중하되 떨치고 싶은
그런 인사말 같은 것들이
나를 추월해서 앞서가버릴 때까지
속도를 늦춥니다 - 꽃을 두고 오기 중

- 지금 쓰고 있는 이 시의 첫 연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시를 읽는 한 사람은
이 페이지를 쉽게 덮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더 궁금한 것 없이 다음 세계로 가뿐히 가버린다면
나는 그 시를 이어서 쓸 수 있으리라 - 올가미 중

-어둠에 대해 말했다면
어둠을 끝까지 노려보며 쓰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없어서는 아니다 - 식량을 거래하기에 앞서 중

2023. oct.

#촉진하는밤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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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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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이 지나도록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짐작하기 어려웠고, 캐릭터들의 이미지도 선명하지 않고 다들 내면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것만 같은 혼돈이 있었다.

정보라 작가의 이야기 답게 불편하고 어두운 느낌이 끝까지 전해져왔다.
누구에게도 해피엔딩이 아닌 것처럼.

-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엽은 생각했다. 잘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혹은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그다지 능숙하게 감당하지 못했다. - 125

- 그래서 태는 질문했다.
“내 고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태는 간절하게 물었다.
“어째서 나입니까? 어째서 내가 이 모든 일을 겪어야 했습니까?”
고통에 의미 같은 건 없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 282

- 의미 없는 고통은 거부해야 한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모두 다 가치 있는 일은 아니다. 충분히 잘 먹고 충분히 잘 쉬고 내 몸을 잘 돌보았을 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괴로운 상황을 탈출할 길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 작가의 말 중

2023. oct.

#고통에관하여 #정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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