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 시인선 589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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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촉진하는 밤> ..
특별히 좋았던 시를 골라 제목을 쓰려다 플래그를 붙여놓은 부분들을 다시 읽어보니
고를것 없이 모든 시들이 아름다웠다.

나의 최애 시인...

- 어제와 오늘
사이에 유격이 클 때
꿈에 깃들지 못한 채로 내 주변을 맴돌던 그림자가
눈뜬 아침을 가엾게 내려다볼 때
시간으로부터 호위를 받을 수 있다
시간의 흐름만으로도 가능한 무엇이 있다는 것
참 좋구나
우리의
허약함을 아둔함을 지칠 줄 모름을
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더딘 시간을
이 드넓은 햇빛이
말없이 한없이
북돋는다 - 촉진하는 밤 중

- 충분하다는 건 기쁘다는 것과 좀 달랐다
그녀는 완전하게 기뻐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일에서 분노를 잔향처럼 느꼈다
그녀는 단 하루도
죽음을 떠올리지 않은 적 없었다
평생 동안 사랑해온 단 한 명을 대하듯 했다
그녀의 방에서만큼은
아무것도 아닌 그녀가 조용히 슬리퍼를 끌고
먹을 것을 챙겨 먹으며
다만 자기 자신을 위해 시를 썼다 - 이 느린 물 중

- 질문에 대해 답을 하지 않아도 돼
질문에 대해 답을 해보려 노력하다가 다른 진심을 전달해도 돼
그럴듯함과
그러지 못함과
그럴 수밖에 없음에 대하여 - 2층 관객 라운지 중

-수평선이 눈앞에 있고
여기까지 왔고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햇살에도 파도가 있다
소리는 없지만 철썩대고 있다
삭아갈 것들이 조용하게 삭아가고 있었다
이제 막 사람들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다 - 가장자리 중

- 누군가의 응원이 미행하듯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압니다
고마우나 달갑지 않은, 달지만 뱉고 싶은, 소중하되 떨치고 싶은
그런 인사말 같은 것들이
나를 추월해서 앞서가버릴 때까지
속도를 늦춥니다 - 꽃을 두고 오기 중

- 지금 쓰고 있는 이 시의 첫 연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시를 읽는 한 사람은
이 페이지를 쉽게 덮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더 궁금한 것 없이 다음 세계로 가뿐히 가버린다면
나는 그 시를 이어서 쓸 수 있으리라 - 올가미 중

-어둠에 대해 말했다면
어둠을 끝까지 노려보며 쓰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없어서는 아니다 - 식량을 거래하기에 앞서 중

2023. oct.

#촉진하는밤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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