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참 이상한 마음 황인찬 시에세이 2
황인찬 지음 / 안온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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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 에세이 두 번째지만 첫 번째는 읽어보지 않았다.
괜찮으면 읽어볼 텐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시를 통한 다정한 대화의 시도.
시 한편 마다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말하고 있어 어느 부분을 펼쳐보아도 좋을 형식.
그렇기에 깊이가 있다고는 할 수 없이 그저 다정한 말만 있는 것 같다.
그 지점이 반복적으로 느껴져 지루할 수는 있으나,
여러 시인의 시를 감상과 곁들여 읽기에는 나쁘지 않다.

재밌었던 부분은 '나답다'라는 것에 던지는 질문. 오은 시인의 시에서 시작되어 '나다운 게 뭔데!'라는 사춘기적 단발마인 밈의 시작이 실미도와 베토벤바이러스라는 것에 새삼 ㅋㅋㅋ 이 개념은.... 선사시대 때부터 아닌가? ㅋ

- 대화란 것이 원래 그렇지요. 상대가 전하는 말은 나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않습니다. 말이란 그토록 불투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얼렁뚱땅 만들어진 헐거운 그물 같은 것이고, 사람들은 그 언어로 대강 말하고, 대충 알아들으며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것 좀 갖다 줘'라는 정도의 얼렁뚱땅 말하기로도 무리 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지요. 그러나 반대로 언어란 그렇게 헐거운 것이기에, 그 어떤 뜻도 의미도 온전히 전달될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만으로는 도무지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 것처럼요. - 9

-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일 자체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고요. 삶이 복잡해지며,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좀처럼 가리기 어려워진 이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주고받는 그 수많은 말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그리고 진실과 거짓을 통해 우리는 또 어디로 갈 수 있을지 하는 것이겠지요. - 76

- 무엇이든 절반쯤은 미지

미지가 나를 떠나려고 하네 - 세기말을 떠나온 신인류는 종말을 아꼈다 중, 고선경

-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 마음 한철 중, 박준

2026. feb.

#시는참이상한마음 #황인찬 #안온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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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책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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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고양이 시점의 잠언집. ㅋ

점잖은 천재묘 '당주'와 천방지축 '헤세'의 조합이 익숙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선비 타입의 고양이가 이러쿵저러쿵 인생 강의하는 모습이 떠오르며, 고양이로소이다 현대판 같기도.

세상사에 통달한 고양이라는 의인화는 이제 부쩍 트렌드가 된 기법이 아닐까 한다.
고양이를 반려하는 인구수가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부가 콘텐츠도 많아지고,
그에 비례하여 동물에 대해 상식적이고 바람직하게 생각하게 되는 세상이 되어 조금은 마음이 좋기도 하지만, 역시 아직은 모자란 부분이 많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된다.

사실 고양이뿐 아니라 동물을 반려로 삼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여러모로 팔불출이 되곤 하지.
현재 봄이라는 느긋한 성격의 고양이와, 루키, 에코라는 성격 다른 남매 고양이와도 살아봤기에 여러 옛 생각이 나면서 조금은 센티멘털해졌다.

- 사는 게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저는 '고양이처럼 살자'라고 다짐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고, 싫은 존재 앞에서는 하악질하고, 무서울 땐 숨고, 불안할 땐 높은 곳에 올라가고, 창밖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잠을 푹 자고, 사랑하는 존재에게 가서 등을 내보이고 얼굴을 비비며 살자고 생각하죠.
고양이는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합니다.
여기에 묘책이 있지 않겠어요? - 8

- 인간들은 중심을 잡고 사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게 분명하다. 중심을 잡는다는 건 스스로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아는 일이다. 그런데 인간은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되고 싶은 것, 되기 싫은 것 이외에도 무엇처럼 보이고 싶거나 보이기 싫은 것, 좋지만 하면 안 되는 것, 싫지만 해야 하는 것, 지금도 좋지만 더 좋게 만들어야 하는 것들 사이에서 허우적댄다. 혼란 속에 자기를 세워두고 중심을 못 잡아 버둥대는 것 같다. 어쩌자고 나는 이들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어, 답답한 모습까지 가련히 여기게 된 걸까? - 33

- <신>
살아 있는 신을 모시고 싶어
집에 고양이를 들였다

털복숭이 신
점프의 신
용맹한 발톱의 신

비린내 나는 신

목숨이 닳지 않는 신
사랑을 모르는 사랑의 신

나를 쥐고 멀리 가는 신
가서,
돌아오지 않는 신

살아있는 신을 섬기고 싶어
집에 고양이를 들였다

고양이는 살아냈다

살아냈다는 말은 엄청,
사랑했다는 말

신에게 올리는 기도 소리에
고양이는 눈을 끔뻑인다

그냥 있어
그냥 두렴

- 내가 생각하기에 평화란 밤이 오고 밤이 가는 거야. 아침이 오고 아침이 가는 거지. 슬픔이 오고 슬픔이 가는 것, 이런 게 평화에 가깝다고 생각해. - 134

-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난 것처럼, 우리는 고양이로 태어나 고양이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야. 좋고 싫다고 평가하는 건 사람들이지,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야. 한 존재를 경험하기 전엔 누구도 다 알 수 없잖아. - 161

- 화장실에서 나온 연집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봐.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는데 정말 바보 같지 뭐야. 세상이 어떤지 확인하려면 창을 열고 밖을 내다봐야지. 새가 날고 구름이 흘러가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진짜 세상'이 바로 저기 있는데! - 196

2026. jan.

#묘책 #박연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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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한다는 것
최강록 지음 / 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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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궁금증이 책 구매로 이어졌다.

화면으로 보던 대로의, 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요리사여서 조금 웃었다.

남 걱정의 일환이라 쓸데없지만,
과하게 소비되어 흩어지는 유명인이 되지는 않았으면,
안정적인 식당을 꾸려가는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 어쩌면 사는 것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비슷하게 좋았던 기억을 재빨리 꺼내보고 맞춰보며 견디는 것. 나는 맛의 모험을 할 때는 적극적으로 맛의 스펙트럼을 넓히면서 맛있는 기억을 늘려갔지만, 삶에서는 잘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많이 있으니 아직까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최상의 맛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입안에서든 내 삶에서든 말이다. - 65

- 한번 칼이 지나간 자리는 다시 붙일 수 없다는 건 생선회를 조리하는 데도 필요한 말이지만,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좋은 말인 것 같다. 진지하되 두려워하지 말 것. 장난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될 테니까. - 81

- 슻은 피크 포인트가 있다는 점. 자신의 삶에서 최고의 순간인 전성기가 있다는 점 때문에 인생에 비유하고 싶었는데, 결국은 재가 되어버리는 허무함도 갖추었구나. - 84

- 나는 담백한 요리를 선호하지만 이런 덴푸라 전문점에 가는 건 엄청 좋아한다. 바삭하게 튀겨진 재료를 하나하나 받아먹는 재미도 있는데, 무엇보다 남이 그렇게 해주니까, 내가 안 해도 되니까 좋은 것 같다. - 94


2026. jan.

#요리를한다는것 #최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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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것 - 삶과 영화에 대한 고백들
오정미 지음 / 무제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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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스며들어 있는 삶들.

누구나, 어디서나 삶은 무겁다.
그 자명한 사실을 매번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깨닫는 게 살아가는 일인가 싶다.
너무 피로한 일이다. 그럼에도 외면하지 못하고 늘 궁금하다.

나와 타인의 삶들이.

그런 관점에서 이 에세이랄까, 르포르따쥬라고 할까...
주류에서는 비껴서 있는 인물들을 따라가는 시선이 진정성도 느껴지고 더 내면을 건드리는 지점이 있다.
이들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착각하듯 서술하거나 혹은 측은지심의 일종의 오만한 공감이 아니라는 점이 너무 고맙게 느껴지는 글.

이런 정서들의 감정적 교집합의 글들을 수집해 일회성아닌 꾸준함으로 출판하는 무제의 행보도 더더더 응원하게 된다.

- 그게 어떤 장면이었냐면...... 사실 되게 잔인하거든요. 여자애를 성매매시키는 방식이요. 처음에는 집단 성폭행을 해요. 그리고 그거를 영상으로 찍은 다음, 니가 성매매를 안 하면 이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식으로 협박을 해요. 그래서 여자애는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하게 되는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여자애가 넓은 들판으로 나가서 사람들이 연을 날리는 걸 보게 돼요. 그때 엄청 해맑은 표정으로 계속 파란 하늘을 보고 있거든요. 그런 다음 송전탑으로 가서 뛰어내려 죽어요. 그런데 그때 그 애가 되게 해맑았던 게...... 실은 되게 압도적인 순간이 오면 저도 당장을 해맑게 있었던 거 같거든요. 그냥, 뭔가 생각하고 그러려고 하면 이해가 잘 안되는 일이니까요. - 23 연날리기 중

- "저는 그냥...... 저는 제가 그 학교에 같이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제가 그 나이 때의 제가 아니라 지금 저의 정신 상태로, 그 학교에 그 애랑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그러면......"
그때 노아는 나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그냥 피해자가 한 명 느는 거죠. 그렇지만 덜 외롭잖아." - 30 연날리기 중

-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진실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느낀다. 그것은 폭력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는 법이라는 진실이다. 자연이 그랬든, 인간이 그랬든, 네가 나에게 그랬든, 내가 나에게 그랬든, 그것이 어떤 종류의 폭력이든 간에 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만은 꼭 노아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때 노아에게 가해졌던 폭력은 노아의 몸에 명백한 흔적을 남겼다고. 그래서 그때 노아가 분명히 아팠다는 것을 이제는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가 안다고. - 35 연날리기 중

- "참 다행이야. 영화랑은 다르게 우리 집은 순서대로 갔잖아." 나중에 콜리는 이런 농담을 하며 웃었는데, 우리는 누구든 부모를 떠나보낸 자식으로부터 이와 같은 미소를 볼 때가 있다. 그러면 마치 봄을 잃은 꽃봉오리가 툭 하고 떨어지는 걸 볼 때처럼, 그저 가슴 한구석이 조용히 아려 올 뿐이다. - 52, 바닷가 묘지에서 중

- 콜리의 말이 옳다. 시간은 정말 이상하다. 시간은 절대로 당신 손에 잡히지 않지만 늘 곁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죽음 같은 것이다. 혹은, 죽은 엄마 같은 것이다. - 62 바닷가 묘지에서 중

- 그런데 그런 엄마 때문에 제가 깨달은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요, 사람한테는 가족이 중요하죠, 물론. 그렇지만 자기 삶을 사는 건 훨씬 더 중요해요. 어쨌든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해요, 사람은. - 96 자기만의 방 중

- 그럼에도 누군가는 나에게 말한다. 고통을 보려고 하는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고통을 화려함으로 덮어 버리는 영화 말고,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마치 길가에 있는 어느 잡초에게로 다가가 그의 슬픔을 들여다보듯이, 우리가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또 사라지지 않고 있는 그런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 182 빈칸으로 남은 영화 중

- "조금 더 품위 있게,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무영은 말했다.
(...)
강박은 무엇보다 아버지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영의 바람과 달리 아버지는 그의 품위로부터 할 수 있는 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고, 그러면 무영은 어떻게든 그가 놓친 그 품위를 주워 들고서 그를 쫓아 뛰고 또 뛰었다. - 212 약사들 중

- 열세 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과 달리 서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또는 스스로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작자는 삶의 무대에서 끊임없이 옷을 바꿔 입으며 이름 없는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 서사란 것이 무엇인지, 영화와 예술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어린 시절 맞닥뜨린 작은 반병아리 사체를 통해서도 세계의 폭력을 일깨우고, 사회적 재난에 의한 수백 명의 주검 위에 세워진 어느 고급 주상 복합 아파트에 대한 누군가의 기억을 통해서는 보통 사람들의 무의식에 새겨진 트라우마와 우리 시대 욕망의 잔인함을 묻는다. 신의 침묵을 향한 죽음을 앞둔 늙은 수녀의 소리 없는 절규, 아파트 단지 내에 길냥이를 살리려고 애쓰는 할머니 캣 맘, 가수의 욕망을 이루지 못한 채 먼 이국 땅에서 치매 환자에게 노래 부르는 일을 하는 무명 가수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의미와 진정한 삶의 용이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까지 연주하는 <타이타닉>의 악사들을 기억하는 아들은 대소변도 못 가리는 병든 아버지가 죽음 앞에서 끝까지 품위를 지키도록 애쓰고, 힘들고 고달픈 일상 속에서 스스로도 삶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헛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또한 작자는 독자에게 예술이란 결국 누구나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죽음 앞에서 품위를 지키는 행위라는 것을 설득해낸다.
<내 모든 것>의 글들은 영화의 본질, 영화와 관객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보기 드문 에세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이야기뿐만 아니라, 뛰어난 에세이가 그러하듯 우리 시대의 문제들, 고통과 외로움, 삶과 죽음의 경계, 예술의 역할, 영화의 운명 같은 것으로 주제는 자유롭게 확장되고 심화된다. 또한 무엇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인 열세 편의 단편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은 어떤 단편소설들보다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이 이야기들이 결코 허구로 지어낼 수 없는 실제 삶의 생생한 디테일, 사람들의 진짜 목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추천의 말, 이창동

- 지하철을 탈 때면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기막힌 이야기들이 이 칸에 실려 흔들리고 있을까. 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것뿐이야. - 추천의 말 김혜리


2025. oct.

#내모든것 #오정미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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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자서전
마리-헐린 버티노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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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해서 이야기에 빠져드는데 솔직히 좀 시간이 걸렸다.
또 흔한 서양 문화권의 여자아이 성장기인가?? 하는 시큰둥함도 같이 있었기에 조금 더 그랬던 것 같다. 주인공이 성인이 되면서 점점 재미가 더해졌다.

삶의 목적과 의욕이 없는 상황, 언젠가는 떠날 존재라는 자각 속에서 체념에 가까운 태도를 견지하던 주인공이 성인이 되고 돌볼 존재들을 인식하게 되면서라고 해야 할까.

모호한 쓸쓸함, 우울, 무력감 등이 심경의 전반을 구성하는 게 외계에서 지구로 떨어져 나온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엔딩도 좀처럼 행복하고, 충만 하다는 느낌보다는 공허하다는 감각.
인상 깊은 감동과 공감의 독서라기보단 빈 자리가 많은 독서임에도 마음이 쓸쓸해지면 책을 덮게 되는 여운이 남는 것은 계절성 우울감이 영향을 미쳐서 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은 작가를 만났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동진 평론가의 언급, 추천이 있었다고 광고를 하는데 관련 영상도 찾아봐야겠다.
다른 이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하네.
북플에 다 읽음 표시를 남기며 다른 이들의 별점을 보게 되었는데 정병러의 웅얼거림이라는 악평도 눈에 띄었다. 
삶의 고독을 모르는 사람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까지 오독될 이야긴가 싶기도 하고...

- 인간은 다른 인간이 행복해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다음 날 아침에 답이 도착한다. 유감이군.
아디나는 반대편에 있을 누군가가 그녀를 걱정하며 응원하고 있다고 상상한다. - 32

- 인간은 자기 삶이 충분히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롤러코스터를 발명했어요. 롤러코스터는 철로 위에 일부러 만들어둔 위기 상황들의 연속이에요. 하지만 막상 진짜 문제를 직면하게 되면 인간은 인생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고 말해요. 쉬는 날 재미로 타려고 만든 거면서 말이에요. 아디나는 팩스를 보낸다. - 121

- 칼 세이건의 글에 따르면, 그녀의 그리움은 애초에 무의미하다. 그녀의 종족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어 훨씬 발전했을 것이고 그래서 시공간과 인과관계의 개념을 초월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시간은 선 위의 점들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담긴 하나의 몸짓이다. 이렇게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슬퍼하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거나 아주 오래전에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사건을 애도하는 것과 같다. 은하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디나는 끝없이 뻗은 무한의 도로를 내려다보며 차가 올 기척을 찾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먼지가 일기를, 도로 위의 자갈이 흔들리기를. 하지만 세상은 꿈쩍도 않고, 자신의 종족과 시간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어ㅓ 있는지조차 그녀는 모른다. 광막한 우주에 던져진 그녀의 슬픔은 어디에도 닿지 못한다. 어디 있어요? 데리러 와주세요. 여기서 데려가줘요. 그녀는 가지고 있는 모든 필립 글래스의 음악 카세트테이프를 듣지만 소용없고 초라하고 위험하고 슬프고 반항적인 감정이 들 뿐이다.
아디나는 미국의 십대가 되었다. - 125

- 아디나는 스쳐 지나가는 집들의 따뜻한 창문을 응시한다. 가끔은 모르는 사람들의 삶이 엿보인다. 냄비를 들고 식탁으로 걸어가는 여자. 화분에 물을 주는 남자. 저들 모두에게 엄마가 있다. 긴 생일 주간의 끝에, 소금기 묻은 공기에 피로해진 채, 그 단순한 생각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 150

- 혼자라는 건 탁 트인 들판 위로 슬픔이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걸 지켜보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예요. 당신은 의자에 앉아 그것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죠. 먹구름이 당신을 통과할 때면, 손을 내밀어 그 구석구석까지 느껴볼 수도 있어요. 그렇게 먹구름이 지나가고, 당신이 다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면 심지어는 그 슬픔이 그리워지기도 해요. 왜냐하면 그건 연인처럼 내 곁을 지켜줬거든요.
잘하고 있다. - 196

- 우리는 왜 이토록 연약한가, 아디나는 생각한다. 보잘것없고 나약한 몸은 이 모든 걸 견딜 수 없는데, 대체 어떻게 하루를 살아내는 걸까? - 329

- 아디나의 삶에서 로맨스 프로젝트는 끝이 났다. 슬픔과 안도감이 함께 밀려온다. 그녀는 그에 대한 사랑을, 집에서 거미를 내보내듯 서서히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이다. 결국 그들은 평범한 인간적인 이유로 헤어진다. 서로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 363

- 모든 인간은 죽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일은, 매일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행동한다는 거예요. 그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배려 없이 대하거나, 누군가를 속이며 살아가죠.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작은 죽음이에요. 인간은 마지막 죽음이 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작은 죽음들을 겪어요. 
응답 없음. - 382

- 그 얼어 붙은 나무 아래에서,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했던 그 순간에도 아디나는 외로웠다. 외로움은 복합적인 감정이다. 얄궂게도, 그것은 혼자 존재할 수조차 없다. 분노, 굶주림, 두려움, 질투가 동반된다. 아디나는 그것을 자신이 떠나온 별에 대한 향수라고 착각했으나 그 감정은 자신이 갈망하는 장소에 있지 못할 때 느끼는 초조함이기도 했다. 삶에서 가장 충만한 감정을 느꼈던 순간은 토니와 그 작은 개가 함께였을 때였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도대체 어디에? - 398

- 그는 그녀의 소리 혐오를 일컫는 말이 있다고 말한다. 청각과민증. 이 병은 오랫동안 부정적으로 여겨졌지만 요즘엔 인식이 개선됐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목을 가다듬거나 먹는 소리에 분노를 느끼고, 펜을 딸깍거리는 소리에 꽥 고함을 지르기도 해요. 어떤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꾸짖기도 하죠."
아디나는 이 단어를 알게 되어 놀랍고 기쁘다. 그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인간의 용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어떤 성향을 외계인의 것으로 여겨왔던 것이, 사실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면 뭐든 낯선 것으로 취급하는 인간적 경향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는 새로운 물건들을 구한다. 실크 베개, 명상안내 책자. 청각 과민증. 사악한 마녀, 머나먼 땅 같은 병명.
어떤 세월은 당신을 나이 들게 만들고, 어떤 세월은 젊게 만든다. 어쩌면 내년에는 다시 젊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413

2025. nov.

#외계인자서전 #마리헐린버티노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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