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것 - 삶과 영화에 대한 고백들
오정미 지음 / 무제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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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스며들어 있는 삶들.

누구나, 어디서나 삶은 무겁다.
그 자명한 사실을 매번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깨닫는 게 살아가는 일인가 싶다.
너무 피로한 일이다. 그럼에도 외면하지 못하고 늘 궁금하다.

나와 타인의 삶들이.

그런 관점에서 이 에세이랄까, 르포르따쥬라고 할까...
주류에서는 비껴서 있는 인물들을 따라가는 시선이 진정성도 느껴지고 더 내면을 건드리는 지점이 있다.
이들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착각하듯 서술하거나 혹은 측은지심의 일종의 오만한 공감이 아니라는 점이 너무 고맙게 느껴지는 글.

이런 정서들의 감정적 교집합의 글들을 수집해 일회성아닌 꾸준함으로 출판하는 무제의 행보도 더더더 응원하게 된다.

- 그게 어떤 장면이었냐면...... 사실 되게 잔인하거든요. 여자애를 성매매시키는 방식이요. 처음에는 집단 성폭행을 해요. 그리고 그거를 영상으로 찍은 다음, 니가 성매매를 안 하면 이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식으로 협박을 해요. 그래서 여자애는 어쩔 수 없이 성매매를 하게 되는 거죠. 그러던 어느 날, 여자애가 넓은 들판으로 나가서 사람들이 연을 날리는 걸 보게 돼요. 그때 엄청 해맑은 표정으로 계속 파란 하늘을 보고 있거든요. 그런 다음 송전탑으로 가서 뛰어내려 죽어요. 그런데 그때 그 애가 되게 해맑았던 게...... 실은 되게 압도적인 순간이 오면 저도 당장을 해맑게 있었던 거 같거든요. 그냥, 뭔가 생각하고 그러려고 하면 이해가 잘 안되는 일이니까요. - 23 연날리기 중

- "저는 그냥...... 저는 제가 그 학교에 같이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제가 그 나이 때의 제가 아니라 지금 저의 정신 상태로, 그 학교에 그 애랑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그러면......"
그때 노아는 나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그냥 피해자가 한 명 느는 거죠. 그렇지만 덜 외롭잖아." - 30 연날리기 중

- 그리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진실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느낀다. 그것은 폭력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는 법이라는 진실이다. 자연이 그랬든, 인간이 그랬든, 네가 나에게 그랬든, 내가 나에게 그랬든, 그것이 어떤 종류의 폭력이든 간에 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만은 꼭 노아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때 노아에게 가해졌던 폭력은 노아의 몸에 명백한 흔적을 남겼다고. 그래서 그때 노아가 분명히 아팠다는 것을 이제는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가 안다고. - 35 연날리기 중

- "참 다행이야. 영화랑은 다르게 우리 집은 순서대로 갔잖아." 나중에 콜리는 이런 농담을 하며 웃었는데, 우리는 누구든 부모를 떠나보낸 자식으로부터 이와 같은 미소를 볼 때가 있다. 그러면 마치 봄을 잃은 꽃봉오리가 툭 하고 떨어지는 걸 볼 때처럼, 그저 가슴 한구석이 조용히 아려 올 뿐이다. - 52, 바닷가 묘지에서 중

- 콜리의 말이 옳다. 시간은 정말 이상하다. 시간은 절대로 당신 손에 잡히지 않지만 늘 곁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죽음 같은 것이다. 혹은, 죽은 엄마 같은 것이다. - 62 바닷가 묘지에서 중

- 그런데 그런 엄마 때문에 제가 깨달은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요, 사람한테는 가족이 중요하죠, 물론. 그렇지만 자기 삶을 사는 건 훨씬 더 중요해요. 어쨌든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해요, 사람은. - 96 자기만의 방 중

- 그럼에도 누군가는 나에게 말한다. 고통을 보려고 하는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고통을 화려함으로 덮어 버리는 영화 말고,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마치 길가에 있는 어느 잡초에게로 다가가 그의 슬픔을 들여다보듯이, 우리가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또 사라지지 않고 있는 그런 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 182 빈칸으로 남은 영화 중

- "조금 더 품위 있게,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무영은 말했다.
(...)
강박은 무엇보다 아버지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영의 바람과 달리 아버지는 그의 품위로부터 할 수 있는 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고, 그러면 무영은 어떻게든 그가 놓친 그 품위를 주워 들고서 그를 쫓아 뛰고 또 뛰었다. - 212 약사들 중

- 열세 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과 달리 서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또는 스스로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작자는 삶의 무대에서 끊임없이 옷을 바꿔 입으며 이름 없는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 서사란 것이 무엇인지, 영화와 예술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어린 시절 맞닥뜨린 작은 반병아리 사체를 통해서도 세계의 폭력을 일깨우고, 사회적 재난에 의한 수백 명의 주검 위에 세워진 어느 고급 주상 복합 아파트에 대한 누군가의 기억을 통해서는 보통 사람들의 무의식에 새겨진 트라우마와 우리 시대 욕망의 잔인함을 묻는다. 신의 침묵을 향한 죽음을 앞둔 늙은 수녀의 소리 없는 절규, 아파트 단지 내에 길냥이를 살리려고 애쓰는 할머니 캣 맘, 가수의 욕망을 이루지 못한 채 먼 이국 땅에서 치매 환자에게 노래 부르는 일을 하는 무명 가수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의미와 진정한 삶의 용이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까지 연주하는 <타이타닉>의 악사들을 기억하는 아들은 대소변도 못 가리는 병든 아버지가 죽음 앞에서 끝까지 품위를 지키도록 애쓰고, 힘들고 고달픈 일상 속에서 스스로도 삶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헛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또한 작자는 독자에게 예술이란 결국 누구나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죽음 앞에서 품위를 지키는 행위라는 것을 설득해낸다.
<내 모든 것>의 글들은 영화의 본질, 영화와 관객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보기 드문 에세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이야기뿐만 아니라, 뛰어난 에세이가 그러하듯 우리 시대의 문제들, 고통과 외로움, 삶과 죽음의 경계, 예술의 역할, 영화의 운명 같은 것으로 주제는 자유롭게 확장되고 심화된다. 또한 무엇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인 열세 편의 단편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은 어떤 단편소설들보다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이 이야기들이 결코 허구로 지어낼 수 없는 실제 삶의 생생한 디테일, 사람들의 진짜 목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추천의 말, 이창동

- 지하철을 탈 때면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기막힌 이야기들이 이 칸에 실려 흔들리고 있을까. 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는 것뿐이야. - 추천의 말 김혜리


2025. oct.

#내모든것 #오정미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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