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 위픽
듀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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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들의 욕망, 이라는 말이 성립될까.

프로그래밍된 목표 지점을 향해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욕망이라면,
파괴하는 것이 지향점인 생명체를 키워내는 일이 목표라면,
아마도?

인간의 육아가 목표인 바리와 새로운 행성에 신문명을 일구는 것이 목표인 하늘구름.

아무래도 인간은 아닌 형태를 지닌 트럼펫이라는 종족의 최악의 폭력성과 파괴본능을 보면 이 종족은 '어쨌든' 인간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외부 생명체에 대한 강한 배타성, 호전성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파괴하는 본능까지 인간 그 자체.

짧지만 강렬하고 신랄한 SF.
인상적이고 멋진 이야기다.

- 지구에서는 연락이 옵니까?
거기에서는 어떤 신호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전파 기반 통신을 하지 않거나 멸망한 것 같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저희는 지구의 도움 없이 모든 것을 잘해왔습니다. 오세요. 저희가 만든 도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 10

- 지구 생태계보다 효율적입니다. 지구 생물들은 자길 먹으려는 동물에게 협조하지 않으니까요. 이 세계에서는 그렇게 해서 남은 힘을 주변 환경을 바꾸는 데에 쓰고 있지요.
(...)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지구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자연을 착취해서는 안 됩니다. - 18

- 하늘구름에게 지구 생명체들의 삶은 점점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행성의 생명체들에 비하면 더욱 그랬다. 지구의 삶은 어떤 모습을 취하고 어느 위치에 있어도 결국 고통과 공포와 필연적인 죽음으로 연결되었다. 잠시의 기쁨은 이를 감추기 위한 기만이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존재를 시작할 필요가 있을까. 놀랍게도 인간들은 이미 여기에 대해 수천 년을 고민해왔다. - 27

-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바리는 하늘구름에게 말했다.
"저는 그냥 의미 없는 삶을 살게 될까요. 아니면 존재를 멈추어야 할까요?"
"욕망이 따르는 대로 해야겠지요."
하늘구름이 대답했다.
"그날이 오면 아마 바리 님의 욕망은 새로 걸어야 할 길을 가르쳐 줄 겁니다. 그리고 지금 그걸 걱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트럼펫의 자립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고 그동안 바리 님도 바뀔 테니까요. 아마 욕망도 바뀔지 모릅니다. 욕망이 바뀌지 않아도 거기에 맞는 새로운 대상과 임무가 나타날지도 모르지요." - 41

- 우린 괴물들을 키우고 있었던 거야.
하늘구름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 괴물들에게 뇌와 언어, 심지어 도구까지 주면서 폭력성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했어. 자연 상태로 두었다면 엄마 내장을 뜯어 먹는 습성 때문에 자멸했을 저 짐승들에게. - 49

- 트럼펫들은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존재 자체가 고통이었고 살아 있는 한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었지요. 고통은 폭력성의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우린 트럼펫들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 53

- 우리의 욕망과 맞습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요. 우리는 그렇게 존재해가는 겁니다. 불완전한 욕망과 불완전한 의무감을 갖고요. 그러면서 우리는 계속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가치 있게 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가겠지요. - 56

2024. sep.

#바리 #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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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399
이수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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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의 시가 와닿지 않아 1부 시들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2부의 시는 또 몹시 취향인 점.

한 번 더 읽어 봐야지 싶은 시집.

신형철의 해설도 촘촘하게 읽은 건 아니지만 마지막 문장이 남았다.

2024. sep.

#언제나너무많은비들 #이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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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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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안주.

술꾼이라 자부하는 작가의 음식들은 과연 안주로 가능한 것들이 많구나.
소주로 키운 입맛이라는 작가의 말이 딱 어울린다.

요리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이미 꽤 근사한 손맛이 연상되는데,
계란말이라도 당장 둘둘 말아 먹고 싶은 기분이 된다.

이제껏 무척 좋았던 권여선 작가의 글들엔 '술'이 존재했었는데, 술을 의도적으로 배제했을 때 조금 감흥이 떨어졌었던 기억을 보면 확실히 '술'의 작가랄까.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있고,
이전의 술꾼? 시절에도 딱히 술이 좋았던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부러운 술과의 궁합이다.
맛있게 한 잔, 들이키는 기분이 가끔 필요한데 그러질 못해서..
대신 글로 영상으로 그 기분을 대리 경험하고 있다. 그 점이 조금 아쉽다.

어쨌든 어서 돌아오세요 주류!!! 문학의 세계로. 작가님!

- 다만 내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혼자 순댓국에 소주 한 병을 시켜 먹는 나이 든 여자를 향해 쏟아지는 다종 다기한 시선들이다. 내가 혼자 와인 바에서 샐러드에 와인을 마신다면 받지 않아도 좋을 그 시선들은 주로 순댓국집 단골인 늙은 남자들의 것이다. 때로는 호기심에서, 때로는 괘씸함에서 그들은 나를 흘끔거린다. 자기들은 해도 되지만 여자들이 하면 뭔가 수상쩍다는 그 불평등의 시선은 어쩌면 '여자들이 이 맛과 이 재미를 알면 큰일인데'하는 귀여운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에게 메롱이라도 한 기분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요절도 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반세기 가깝게 입맛을 키우고 넓혀온 타고난 미각의 소유자니까. - 26

- 첫 단식 이후로 나는 몇 년에 한 번씩은 단식을 한다. 단식을 하면서 내 속에 있는 오래된 서랍을 열어 이것저것 하나씩 꺼내 들여다본다. 내가 살아온 과거들을 차근차근 짚어보고, 지금 맺고 있는 관계들을 곰곰이 따져본다. 그러다 문득 달걀을 푼 라면이 먹고 싶어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행복한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면 그 꿈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젊은 날의 과오를 떠올리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내 곁을 떠난 사람들 생각에 슬퍼하기도 한다. 열무김치에 고추장 넣고 맵게 비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극히 사소한 이유로 화가가 되지 못한 것에 서운해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따위가 소설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감정들이 쓸데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내 속에 웅크린 채 언젠가는 내가 한 번 뒤돌아 보아주고 쓰다듬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고아처럼 어리고 상처 입은 감정들이다. 내가 그렇게 해준 뒤에야 그것들은 비로소 조용히 잠이 든다. - 68

- 공부와 음주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리미리 준비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 118

- 나는 사람들을 가장 소박한 기쁨으로 결합시키는 요소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놓고 둘러앉았을 때의 잔잔한 흥분과 쾌감, 서로 먹기를 권하는 몸집을 할 때의 활기찬 연대감, 음식을 맛보고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의 무한한 희열. 나는 그보다 아름다운 광경과 그보다 따뜻한 공감은 상상할 수 없다. - 170

- 집에서 해 먹는 게 집밥이라면, 집집마다 그 집 부엌칼을 쥔 사람이 다른데 어떻게 그게 죄다 소박하면서 맛깔날 수 있단 말인가. 집밥이 무조건 맛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옳지는 않다. - 183

2024. sep.

#술꾼들의모국어 #권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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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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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는 일을 하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던 직업이 휘트먼을, 포크너를 불태우는 직업으로 바뀐 사회.
주체의식 없이 그저 방화수로 살아가던 몬태그 앞에 문득 나타난 이상주의자이자 자유로운 영혼이길 원하는 소녀 클라리세.
소녀의 말 한마디에 한마디에 감화되던 몬태그는 방화의 현장에서 책을 훔치게 되고, 사회가 규정한 범죄자가 된다.

도주 중에 마주치는 책을, 지식과 철학을 수호하려는 숨어있는 인류와 마주치는 흥미로운 이야기.

인간들을 획일된 사고방식에 가두고 그것이 진정한 평등이고 자유라고 주입하는 세상. 현 시대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반 지성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극적이고 무용한 정보들에만 노출되어 있는 도파민 중독인 인간들에 대한 묘사가 소름 끼치는 이유는 그게 비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매한 대중을 만드는 방법이 리얼하게 설정되어 있어 씁쓸하다.

클래식한 공포라고 할 만한 이야기, 명작이다.

다만 클라리세의 존재가 어찌 되었는지 흐려진 부분이 조금 아쉽다. 작가 자신도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 후기에서 밝혀져 있다.

- 그들이 가지런히 줄 처진 종이를 주거든 줄에 맞추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써라. - 후안 라몬 히메네즈

- 불태우는 일은 즐겁다.
불꽃은 춤추면서 천천히, 그러나 결코 멈추는 일 없이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간다. 점점 색깔이 어두워지다 이윽고 검은색으로 변하고 마침내 본래의 것과는 전혀 다른 물질로 변해 버린다. 그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야릇한 쾌감이 온몸에 번져 오는 것이다. - 15

- 몬태그의 미소는 어느덧 사라졌다. 미소는 접혀져서, 녹아서, 미끈미끈한 그의 피부를 타고 흘러내린다. 황홀하게 타오르던 양초가 이윽고 마지막 심지를 불사르며 극적으로 무너져 내리듯이. 어둡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몬태그는 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껍데기를 벗겨 보면 드러나는 나의 참 모습은...... 행복하지 않다. - 28

- 간밤에 나는 지난 10년 동안 내가 불사르느라 뿌렸던 등유를 생각했어. 그리고 불태운 책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았지. 불에 타 없어진 하나하나의 책들마다 제각기 한 사람씩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그게 누구든지 한 권의 책을 채우기 위해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해 낸 거야. 책 한 쪽 한쪽을 알맹이 있는 글로 채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는지 알 수 없지. 전에는 결코 이런 생각을 해 보지 못했어. - 89

- 타오르는 불이 아니었다. 따뜻한 불이었다.
따뜻한 그 불의 혜택을 받고 있는 수많은 손들. 어둠에 숨겨진 팔 없는 손들. 그 손 위로 불빛을 받아 앞뒤로 흔들리거나 깜박거릴 뿐인 정지된 얼굴들이 나타났다. 불이 이렇게도 보일 수 있다니. 태워 버리는 기능 외에 이렇게 따뜻함을 주는 기능도 갖고 있다니. 그런 생각은 평생 해 보지 못했다. 냄새조차 다르다. - 224

2024. jul.

#화씨451 #레이브래드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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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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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인물은 십대와 이십대.

<병원> 의 정유림 <추앙>의 정원에게 심리적으로 동요되어 그의 주치의 처럼 혹은 아는 언니처럼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실제 문단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내용은 읽고 있는 입장도 단순히 사건의 목격자 정도의 스트레스 이상의 정신적 피폐함을 갖게 된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세상이 좀 나아지길 진짜 정말 에휴... 쫌! 나아지길...
그렇게 바라마지 않는데, 세상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더 다채로워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쓸데없이 꼴같잖게 버라이어티하다.

무너진 일상과 마음을 어떻게든 복구하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노력이 미약할 수는 있겠지만, 헛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 기열의 친구들도, 기열의 이름만 아는 아이들도, 기열의 이름을 모르던 아이들도, 종일 기열에 대해 이야기했다. 몇몇 아이들은 점심을 먹지 않았고, 몇몇 선생들은 수업 도중 눈물을 흘렸다. 몇몇 아이들은 이 반 저 반을 돌아다니며 기열을 잃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했다. 갑자기 모든 사람이 기열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 11, 줄 게 있어 중

- 아버지는 틀린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돈 말고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
이 말을 한 날, 아버지는 미래은행 여의도지점장을 그만두었다.
"돈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버지의 말은 은행 지점장으로 지내온 아버지의 세월을 기차처럼 통과하고 있었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건 오직 대화야." - 16, 줄 게 있어 중

- 정원이 쓴 항의 메일은 초라했다. 자신이 느낀 분노도 수치심도 좌절도, 정원은 제대로 적지 못했다. 좋은 문학적 자질이란 무엇일까. 정원은 자신이 좋은 문학적 자질을 가졌다는 말에 모멸감을 느꼈다. - 90, 추앙 중

-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다리를 주무르던 밤, 정원은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 자퇴원을 인쇄했다. 학교와 함께 글쓰기도 그만둘 생각이었다. 자퇴원에는 자퇴 사유를 입력하는 칸이 있었다. 시적 자유와 낭만성으로 포장되는 모든 폭력이 싫습니다. 그 문장을 적고 나서야 정원은 침대에 누워 깊은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정원은 그 문장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정원은 문장을 첨가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문장을 첨가했다. 그러나 또 다음날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객관적인 사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주관적인 고통을 전달해야 했다. 개인적 경험이나 아픔을 드러내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었다. 사회의 윤리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문학을 추앙하는 태도와 그런 태도를 가진 자들을 추앙하는 태도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 연결에 얼마나 내밀한 권력관계가 작동하는지를 적어보고 싶었다. 연결 안팎에 있는 이들에게 권력관계가 얼마나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으로 행사되고 있는 지를 드러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정원은 자신을 위해 말을 해야 했다. 타의에 감금된 자신을 최소한 자기 자신을 마주할 때에는 풀어주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정원은 자퇴 사유를 적는 일에 몰두해갔다. 어느새 그 일은 자퇴를 위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오직 그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 정원은 매일 썼다. 무너져내린 것을 방치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대처였다. - 95, 추앙 중

- 언니는 정상이 되고 싶댔지. 나도 언니가 생각하는 정상이 되고 싶어한 적이 있다는 걸 언제고 언니에게 꼭 말하고 싶었어. 정상이라는 것은 계급이고 권력이라고 생각해. 정상이라 여겨지는 그 영역 안에 종속되어야 안심이 되니까. 나는 비정상이어서 아픈게 아니라 나를 거부하면서까지 정상이 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아팠어. - 118.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 중

2024. aug

#눈과사람과눈사람 #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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