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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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장편. 김애란 작가가 돌아왔다.
코멘터리 북을 보니 개인적인 건강 문제도 좀 있었나 보다, 같이 나이 들고 있다는 감각의 작가라서 마음에 걸렸다. 건강 잘 챙기세요 작가님.:)

이야기는 조금 평범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특유의 잔잔한 위로와 안정감이 존재한다.
세 주인공이 결국엔 평안함에 이르렀으면,
불안하고 흔들리는 그런 시간들을 지나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알게 되었으면,
그러니 크게 상심 말고 행복한 순간들을 조금 더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미성년 학생이라 그들의 가족에 더 심적으로 기울었다는 점이 평이한 이야기라고 느끼는 요인인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역시 장편이 읽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

장편을 자주 만나고 싶다.

- 가정 시간에 인간의 발달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다 "인간은 기기 시작할 무렵 비로소 깊이에 공포를 갖는다"는 말을 듣고 놀란 기억이 났다. 채운은 깊이나 높이에 대한 공포처럼 단순한 감각도 날 때부터 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그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인간은 앉는 법과 서는 법, 물 삼키는 법까지 일일이 배워야 하는 존재였다. 어느 건 배워도 안 지키고, 알고도 실천 못하는. - 23

- 지우가 잠시 숨을 가눈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난이란......
지우는 문득 교실 안이 조용해지는 걸 느꼈다.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지우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지만 조금 의연해진 투로 다음 문장을 읽어나갔다.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 - 85

- 소리는 가끔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자기 꿈과 깨끗이 작별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엄마는 '그저 다음 단계로 간 것뿐"이라며, '작별한 건 맞지만 깨끗이 헤어진 건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의 어른이 그렇게 사는데 그건 꼭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니'라면서.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요즘에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 재능은 있되 그게 압도적인 재능은 아님을 깨달아서였다. - 129

- '반면에, 그리고, 그래서, 그런데, 한편으로는......'
채운은 앞으로 자기 삶에 이어질 접속사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한 사건과 다음 사건 사이에 놓일 말로 적절치 않아 보였다.- 172

- 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 작가의 말


2024. aug.

#이중하나는거짓말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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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소녀 (워터프루프북) 쏜살 문고
메리 셸리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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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북클럽 에디션의 책.

메리 셸리도 어쩔 수 없이 옛날 사람인지라.. 지금의 감수성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지만...

<변신>에서의 망나니 우쭈쭈 같은 건 못봐주겠달까.
'어이쿠 악마한테 당할 뻔' 이지랄 하는거 보면... 으아악 싶어짐.

<비이지 않는 소녀> 에서도 여성을 적대시 하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심리적인 거리감은 생기지만 그러나 어지간한 모든 분야를 통틀어 사회적 행위에서 배제된 여성이 잉여의 시간에 쏟는 노력이 어디로 향하겠는가를 생각하면 그시절이라면... 이라는 이해가 가능하다.
아무래도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여성일 수록 가족 안의 아름답고, 어질고 행복해 보이는 피사체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어쨌든 통속은 재밌으니,
그 시대를 풍자하는 역할로, 말 그대로의 엔터테인먼트로 좋았을 것 같다.


- 비통한 아픔으로
아려 오는 이 마음이
내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게 하였고
나는 자유가 되었다.
그 후로 시시때때로
그 아픔이 돌아오고
내 끔찍한 이야기가 말하여질 때까지
이 내 심장은 타오른다. -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노수부의 노래>

2024. aug.

#보이지않는소녀 #메리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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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1 - 3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1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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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몸을 움직이는 상현, 조국에 인연에 더 이상 미련 없이 떠나버리려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시대가 어수선하니 사이비 종교가 득세하기도 하고, 독립운동의 세력 간에도 미묘한 반목이 펼쳐진다.

아편에 중독되어 폐인이 된 봉순이.... 부초처럼 떠돌며 정착하지 못한 여인의 말로가 쓸쓸하다. 유일한 혈육인 딸 양현에게도 집착을 버린듯한 모습, 모든 기운이 다한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환이의 마지막도 허무하고 덧없다...라는 회한.

계명회 회원 검거된 사건에 휘말려 간도의 길상 역시 형무소 생활을 시작한다.

한편에선 부두 노동자들의 파업 등 노동운동에 대한 의식도 깨어난다.


- 용이는 개운치가 않다. 더욱 기분이 나쁘고 찝찔하다. 자신이 배신자만 같다. 나쁜 놈 같고 야박하기 짝이 없는 놈 같다. 살아 남았기 때문에, 처참했던 윤보의 죽음, 어느 때든 내 반드시 돌아오리, 와서 뼈라도 추려서 양지바른 마을 뒷산에 묻어주리라, 그 굳은 맹세도 세월 따라서 까맣게 잊어버렸으며 윤보를 생각하는 일조차 드물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것은 사람이구나. 용이는 쓴웃음을 띤다. 죽음은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것 같았다. 무더기 무더기 널려 있는 것만 같았다. 조금 전까지 지난 세월은 자신과 아무런 인연이 없고,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조차 낯선 나그네처럼 지나갈 것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이 세월은 살아서 몸을 일으키고 그 수많은 죽음들이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어 용이에게 육박해 오는 것을 느낀다. 부모와 누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여 강청댁의 얼굴이며, 월선의 얼굴이며, 임이네 얼굴이며, 최치수, 윤씨 부인, 별당아씨 얼굴이며, 노비들, 윤보에 한조, 서금돌, 김 훈장, 어찌 다 셀 수 있을 것인가. 삼월이면 김평산, 귀녀, 실성이, 핏자국 같은 그들 생애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넓은 가을 들판에, 베어서 눕혀놓은 볏가리들처럼 멀리 가까이, 그것은 모두 죽음들이며, 죽음에 이른 무수한 삶의 이력, 삶의 잔해만 같은데 용이에게는, 그것들에 둘러싸여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 엄습해 온다. 저승과 이승의 끝없는 벌판을 무엇들이 그렇게 애타게 살다갔더란 말인가. 그리고 혼자 살아 남았는가. - 34

- 한 번도 따뜻하게 대해 준 일이 없는 여자, 죽음은 살아 남은 사람에게 회한을 남기게 마련이다. 좋지 않은 추억들을 다 떠내려 보내기 위해선 임이네 생각을 말아야 하고, 그 고독하고 처참한 죽음에 대한, 불쌍한 망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절이다. 임이네의 죽음은 슬픔이나 애통보다 용이에게는 충격이었다. 죽음과의 처절한 싸움, 밑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절망, 죽음은 무도 그럴 것이지만 뼛골까지 스며드는 그 외로운 죽음을 용이는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연민이었으나 임이네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절망이었고, 그 절망감은 죄의식을 몰고 오는 것이다. - 42

-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환이는 자신의 생애가 성인의 길이 아니었음을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투쟁과 방랑, 애증과 원한의 가파른 고개를 넘은, 평지가 오히려 발끝에 설었던 오십 평생은 마음과 몸이 피로 물들었던 것처럼 격렬했었다. 환이는 무엇 때문에 살고 죽는 것인지 그것을 생각한다. - 155

- 서희는 걸음을 옮겨놓으면서 남편의 눈빛을 생각한다. 눈에 담긴 빛의 함량은 어느 만큼이든가. 그것은 생명력을 측량해보는 것이기도 했다. 잘 견디고 있는가. 잘 견디어낼 것인가. 길상의 눈빛은 서희 자신의 눈빛이었다. 그쪽에서 빛이 나면 이쪽도 빛이 난다. 그쪽에서 못 견디면 이쪽에서도 못 견딘다. - 281

- 김환이 진주 경찰서에서 자살한 것은 이 년 전의 일이다. 어둠 속에 묻혔던 인물 김환, 그의 죽음은 최 참판댁의 그 엄청난 비극의 종언을 뜻한다. 김환을 마지막으로 비극의 주인공들은 다 사라진 것이다. 최 참판댁의 영광, 최 참판댁의 오욕, 이제 최 참판댁의 상징은 재물로만 남았고, 호칭도 최 참판댁보다 최 부자댁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 최서희의 집념은 창 없는 전사, 노 잃은 사공, 최 참판댁의 영광과 오욕과는 상관없이 단절된 채 아이들은 자라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존재만이 그들 가슴속의 신화요, 아버지의 존재로 하여 아이들 가슴속에는 민족과 조국에 대한 강렬한 의식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 286

2024. jul.

#토지 #3부3권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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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의 야수
헨리 제임스 지음, 조애리 옮김 / 민음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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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너무 예쁘다. 아주 큰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쏜살문고의 디자인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단연 예쁘다.

<진짜>에서 진짜 귀부인과 신사라는 허울에 집착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시대를 막론하고 통하는 이야기 허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표면적인 섬세함만이 아닌 내면의 섬세함까지 풀어내는 작가, 인생의 고비고비 허무함과 무의미함 생의 의미에 대한 몰이해, 뒤늦은 후회 등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작가.

- 나는 그들이 좋았다. 그들의 친구들이 느꼈을 법한 종류의 호감을 느꼈다. 모델로 적합하다면 채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데도 어쩐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그들은 아마추어였고 나는 아마추어를 혐오했다. 또 내게는 다른 괴벽, 진짜보다 재현된 주제를 더 좋아하는 타고난 괴벽이 있었다. 실제 결점은 너무 쉽게 재현의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짜보다 차라리 그럴싸해 보이는 걸 좋아했다. 그런 것에는 믿음이 갔다. 그들이 진짜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였고, 또 무익한 질문이기도 했다. - 17, 진짜

- 그녀는 죽어 가고 있고, 죽을 것이며, 그는 고독해지리라. 이것이야말로 그가 밀림의 야수라고 부르던 것이 아닐까? 이것이 그를 기다리던 운명은 아닐까? - 94, 밀림의 야수

2024. jun.

#밀림의야수 #헨리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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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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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인 윤리성의 상실로 불편함을 야기하는 이야기.

상식과 윤리로 스스로를 단련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원활한 과정을 찾아가는 것이 문명의 한 조건일텐데,
지금은 그런 것들보다도 자신의 이익과 유불리에 더 많은 의미를 두는 시대가 되었다고 느껴진다.

윤리적이라고 자부하는 이들도 이중적인 삶을 살기도 하겠지만, 그 위선도 '선'의 일부 아닌가.
그래서 '위선이라도 떨며 살자' 라는 말이 호응을 얻는 것이다.

작가가 밝혔듯, 일부러 위악을 떠는 인물들을 그렸고, 그 위악이 독자를 끊임없이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위악의 통쾌함을 혹은 불쾌함을 목도하기까지 너무 길게 보여지는 주인공의 억압의 상태 서술은 사실 일상에 너무 흔한 일이라 결국 조금은 통쾌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읽었는데,
결코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 의미 있다.

자비 없는 카타르시스.. 별로 없었다.

조금 지루한 전개와 충격이라고 설정된 후반이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아서 전체적인 재미는 반감되었다.

- 자유가 우릴 추하게 만든다. - 9

- "우리 예전에 정말 좋았지?"
"지금도 좋잖아."
"그럼 내일도 좋을까?"
한 손 운전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수원이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한 손을 뻗어 내 손을 감쌌다. 따뜻했지만, 햇살의 온도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온기였다.
"좋아지려고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진다는 믿음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제법 많은 인간이 과거를 동경하게끔 설계되었다는 걸 은주와 수원을 알고 있을까. - 18

-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지기 전에는 그 누구도 자유로워질 수 없고, 모든 사람이 도덕적이기 전에는 그 누구도 완전히 도덕적일 수 없다. 또한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 전에는 그 누구도 완전히 행복해질 수 없다. - 허버트 스펜서 <사회정학> 중

- 나는 쉬운 선택지를 택했다.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보다 일상에 모순을 더하는 일이 쉬웠다.
같은 정당이라면 아무리 멍청한 소리를 해도 지지하는 정치인을 머저리다 욕할 필요가 없다. 친구가 장사하면, 아무리 바보 같은 물건이라도 좋다고 홍보해 주는 사람을 거짓말쟁이다 욕할 필요도 없다. 사람은 다 그렇게 살고 있다. 사람다움의 본질은 때때로 얄팍하다. - 124

- 나는 너를 존중할 수 있다.
단 네가 나를 존중할 때만. - 125

- "이 일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건가요?"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머릿속, 금이 간 전구의 필라멘트에 불이 들어왔다. 이제야 모든 게 환해졌다. 나는 정말이지 세계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 151


2024. aug.

#오렌지와빵칼 #청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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