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들을 읽게 되면, 애석하게도 나에게는 도달하지 않는 시들이 있다. 또 무난하지만 와닿지 않아 그냥 평이한 기억으로 남은 경우도 있고. 혹은 단지 한 행의 시에 온 마음을 빼앗겨 좋아하는 시인이 되기도 한다. 진짜 행운의 경우는 몇편이나 좋고 좋은 시들이 있는 경운데 확률상 매우 드물다. 이장욱의 시는 그 어려운 확률의 몇 편이나, 좋고 좋은 시들이다. 소설 단편도 좋던데...... 이러면 반칙아닌가. :)2015. Feb.
의자는 책상의 먼 곳에서 타오르고기린의 목이 점점 더 길어지고나는 왜 조금씩 내가 아닌가? - 반대말들 중
나는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왔을뿐인데난데없이인생이 깊은 늪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늪 중
나는 단순한 인생을 좋아한다이목구비는 없어도 좋다이런 밤에는 거미들을 위해더 길고 침착한 영혼이 필요해 - 뼈가 있는 자화상 중
밤이란 일종의 중얼거림이겠지만의심이 없는성실한그런 중얼거림이겠지만밤은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않고맹세를 모르고유연하고 겸손하게 밤은모든 것을 부인하는 중- 밤의 연약한 재료들 중
손가락은 외로움을 위해 팔고귀는 죄책감을 위해 팔았다. 코는 실망하지 않기 위해 팔았으며흰 치아는 한번에 한 개씩오해를 위해 팔았다. - 토르소 중
볼로네즈 소스를 잔뜩 만들어서 파슷파슷해먹고, 손발찬데 좋다길래 부추사다 전부쳐먹고. 일케 먹었는데 왜 배가 고픈가요 ;ㅂ;
김숨 작가의 <국수>를 인상깊게 읽었었다.그 작가의 <뿌리이야기>. 끊임없이 자기 말만, 뿌리에 대해서만 강박적으로 말하는, ˝그˝이런 존재, 공포스럽다. 왠지 싫은 사람이 냄새가 훅 끼쳐오기도 하고. 자신의 결핍으로부터 도망치듯 침잠하는 인물. 뿌리의 강한 흙냄새같이 강렬한 작품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왠지 국수와는 다른 그로테스크. 자선작 <왼손잡이 여인>에서도 강하게 다가온다.조경란의 <기도에 가까운>. 이 단편에 후반부에서 덜컥 붙들리고야 말았다. 죽음이 한발짝 앞에서 어른거리고 있다는 것. 그것을 감지한 상태로 일상과 비일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남아있을 것들과 천천히 행해야하는 이별. 마음이 무겁고 손발이 땅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마냥 축__ 늘어진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단 한사람의 부재. 윤성희의 <휴가>와 이장욱의 <크리스마스 캐럴>도 무척 좋았다. 저 뿌리를 보라니까...... 라르고의 생명력으로 땅 속을 장악해갔을 뿌리를..... 관조된 시간이 느껴지지않아? 뿌리가 땅 속에서 일보 일보..... 극한의 기호를 필요로 할만큼 미분된 시간을 기록하듯 내딛는 동안 땅 위 지상으로 뻗은 가지들에는 잎과 꽃이 수없이 피었다 지고 열매가 맺혔겠지. 문득문득 새들이 날아들어 쓸 거야. 46억년이나 32억년 우주를 떠돌던 운석이 지구로 떨어지듯 새들이 날아들어, 둥지를 틀고 알을 낳기도 했겠지. - p. 14, 뿌리 이야기 중어째서인가 한 이야기들보다 하지 못한 말들이 저 빗방울처럼 가슴을 적시고 있는 것 같았다. - p. 193, 기도의 가까운 중. 2015. Feb.
네이버에 작가의 블로그가 있다. 그 곳에 얼마 전까지 베를린 체류기를 썼다. 심신이 지치고 우울한 날 그 블로그에 기웃거리면, 제법? 기운이 났다. 박장대소까지는 아니어도 피싯~ 하며 웃을 수 있는 일기였다. 이미 장편과 에세이를 읽어보았지만 체류기를 본 이후에 읽는 풍의 역사는 조금 체감지수가 다르다. 생활인으로의 작가의 민낯을 본 이후라서 그런듯 하다. 백퍼센트 내 취향은 아니지만 속도감도 있고 재미도 있다. 신작이 나오면 또 사게되겠지. 이풍. 이구. 이언 삼대의 이야기 인데,말끝에 허허허 웃음을 붙이는 할아버지 ˝풍˝덕에 허씨로 통하는, 허풍. 허구. 허언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굵직한 역사의 에피소드마다 영문모른채 얼굴을 들이미는 스냅사진의 인물같이 불쑥불쑥 오지랖 흩뿌리며 살아온 개인의 역사를 읽게된다. 천명관의 고래도 떠오르는 스타일. 2015. F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