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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데모 - 데모하러 간다 ㅣ 아무튼 시리즈 63
정보라 지음 / 위고 / 2024년 3월
평점 :
이 만큼이나 행동하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간 읽은 소설에서도 작가의 그런 거침없는 태도가 느껴지긴 했지만...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를 읽고 작가가 더욱 궁금해져서 읽게 된 책이다.
처음엔 다양한 성격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작가가 대단하다 느껴졌는데,
읽고 나니 그렇게 다양한 성격의 현장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막연한 공포가 밀려왔다.
투쟁의 장소가 아닌 곳이 없는 것만 같았다. 세상이 이래도 되나.... 하는 허무함.
그렇지만 이 모든 곳에 연대하고 응원하고 작은 손이라도 보태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기적 같다.
세상... 이래도 되냐고... 계속 생각은 들지만.
아무튼 시리즈 좋은 이야기가 많아 자주 찾아 읽게 된다.
정보라 작가도 더더더 좋아졌다.
- 2014년 7월 18일경, 광화문에 세월호 농성장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서명대에 찾아왔던 말레이시아인 부부를 기억한다. 부인 쪽이 원해서 남편과 함께 서명대에 찾아온 것 같았다. 푸른 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 부인에게 내가 상황을 설명하려 하자 젊은 부인이 내 말을 막았다.
"Our plane fell. We know."(우리는 비행기가 추락했다. 우리도 안다.)
(...)
일반 시민 수백 명을 태운 대형 교통수단이 사라졌는데 정부가 진상 규명도 생존자 수색도 사망자 수습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 놓고 쉬쉬하는 상황...을 2014년 7월의 말레이시아 사람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날 푸른 옷을 입은 젊은 말레이시아인 여성의 "우리도 안다"는 짤은 발, 그 목소리와 표정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너무 고맙고, 너무 참담하고, 너무 슬프고 원통했다. 그 부부는 세월호 서명대에 와서 서명을 해주었는데, 나는 MH17편 피해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잊지 않기로 했다.
(...)
나중에 2022년 1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조지타운 문학축제에 갔을 때 나는 그 "우리도 안다"는 한마디가 얼마나 참담하고 슬프고 고마웠는지 이야기하고 말레이시아 청중들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조금 울었다. - 37
- 이덕인 열사에 대해서는 2015년 전장연이 진행한 이덕인 열사 20주기 추모 집회에서 처음 알았다. "서울 거리에 턱을 없애주시오"라고 외친 김순석 열사에 대해서도 전장연 집회에서 처음 배웠다. 바퀴 달린 가방을 끌며 보도에서 턱이 없는 곳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나는 턱 없는 거리를 위해 누군가 목숨을 바쳤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그런데 살아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당했던 분들은 그토록 온몸을 던져 사회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도록 애쓰고 노력했건만 죽어서도 장애인이라서 그냥 묻히거나 지워졌다. - 47
- 1인 가구 비율이 대한민국 전체 가구 수의 40퍼센트를 넘어선 지금, 혼자 살다 혼자 아프고 혼자 죽는 삶도 또한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는 제도적 관점과 대응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혈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독립된 개인 당사자끼리 신뢰해서 합의하면 당사자의 여러 가지 결정을 대리할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남자'와 '여자'가 혼인해서 2.1명 혹은 1.8명의 비장애인 아이만 낳아 키우고 노후에는 자식과 손자들, 즉 사회제도의 지원 없는 가족 안의 (주로 여성의 무급 노동에 의지한) 돌봄으로 노년의 돌봄 수요를 해결하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 만한 연령대에 적당히 사망해주기를 기대하던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다양한 삶이 이미 사회 안에 존재하고 있는 지금,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동성혼 법제화는 현실적인 요구이다. 다시 말하지만, 삶은 형벌이 아니기 때문이다. - 68
- 세상은 점점 나빠지는 것 같다. 드디어 또다시 "어제가 제일 좋은 날"이었던 시기가 돌아온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러니까 나는 데모한다. - 165
2024. jun.
#아무튼데모 #정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