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의 문으로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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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사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이야기.

꿈이라는 요소의 주술적 분위기가 더해지는 그런 류에 매혹되는 성향이 독자는 아니라서 읽는 내내 ‘당췌... 꿈이어라.‘ 하는 느낌.
좀처럼 흥미가 끌어 올려지지 않았다. 최근 작품이 좀 그런 것 같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이런 거 끔찍하고 ‘출구없는 꿈에 빠지다‘이런 거에 몸서리치는 사람은 정말 재미 없을 듯.
불경 같은 문체도 약간....(사실 불경 잘 모름)

- 우선 당신이 누구도 아니고 아무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 주세요. 그걸 넘어서 누구라든지 아무라든지 그 자체에 의미를 두지 마세요. - 190

-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다. (전도서 5: 7) - 205

2021. dec.

#상아의문으로 #구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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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 1세대 페미니스트 안이희옥 연작소설 70년대부터 현재까지 역사가 된 일상의 기록
안이희옥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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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페미니스트 작가의 여성 역사 소설.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여성으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부조리와 불의를 뚫고 살아 남은, 여성들의 고단한 삶.

읽다 보면 여성 서사가 언제나 일정 부분 그렇듯 답답한 마음이 들지만. 굳이 나 자신의 경험은 아님에도,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읽어와서 트리거워닝이 필요할 만큼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논란이 되었던 드라마 설강화의 역사왜곡이 떠오르는 부분도 있다. 민주화운동에 간첩혐의 씌우기, 안기부 미화하기 등등을 비판하는 대목들.

결국 생존한 여성들의 삶이 안락하고 풍요롭지 못한 장면은 역시 답답하다.

- 왜 영웅심도 없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느냐고요? 양심과 정의감 때문이죠. 저는 어릴 때부터 교육 받은대로 올곧고 정직하게 살려고 무척 노력했어요. 그러다보니 사회의 소모품으로 고생만 잔뜩하고 빈털터리가 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 대해서는 분노가 차올라요. - 18

- 갑자기 오래전에 입원했던 정신병동이 나타났다. 이건 아니야. 다시 갇히기 싫어. 안젤라는 도망칠 생각으로 뛰기 시작했다. 무거워 보여, 내가 들어줄까. 어디선가 소복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 물었다. 누구세요? 정인숙이야. 박정권 때 의문사한 정인숙? 놀란 안젤라가 원고 뭉치를 꽉 껴안고 방향을 틀어 도망쳤다. 거긴 벼랑이야, 그쪽으로 가지 마. 누구시죠? 저번에 봤잖아, 궁정동 피해자. 독일에서 여성학 공부하고 있지. 거짓말, 정신병원에 있었으면서...... 누군가 안젤라의 어깨를 건드렸다. 돌아 보니 장자연이 입꼬리를 들어 올린 채 서 있었다. 나를 잊지 말아줘. 내 이야기를 써 줘 작가님. - 114

- 그 사람들이 저를 기계 속에 넣고 갈아서 흔적조차 없게 만들어 버리겠다고 협박했어요. 엄청난 공포와 혼란을 이나마 설명할 수 있게 된건 세월이 흐른 덕분이에요. 시대가 민주화된 덕택이죠. 그냥 민주화 된 게 아니고 숱한 투쟁과 희생이 있었지만...... - 131

- 무언가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왜 여자들이 집회나 시위를 하면 취조방법이 이따위인가? 여자들에게 요구되는 전통적 규범을 벗어나기 무섭게 조롱하고, 비판하고, 나아가 멸시와 폭력까지 가하는 단단한 가부장제라는 암벽에 정면으로 부딪힌 느낌이었어. 한국사회에 내재하는 사상의 삼팔선 말고도 다른 차원에서 존재해 온 남녀간에 삼팔선을 맞닥뜨린 실감. - 288

- 작디 작으면서 큰 서사. 일상에서 광장으로, 광장에서 다시 일상으로 오가면서 소시민인 한 여성이 자신의 자리에서 지켜낸 것들에 관한 이야기랄까요? - 308

2021. dec.

#안젤라 #안이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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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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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응시, 냉소적인 묘사.
가볍게 시작해서 묵직하게 끝난 독서.

제임스 설터가 이렇게 좋았나 싶었다.
내가 나이가 든 걸 수도 있고.
설터의 작품을 좀 더 진지하게 마주 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 그들의 삶은 미스터리였다. 숲과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되고 묘사될 수 있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흩어져 빛과 그림자로 조각났고, 그 빽빽함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는 형태가 없었고, 경이로울 정도의 디테일만이 어디나 가득 했다. - 51

- 지식은 사람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인생은 지식을 경멸한다. 지식 따윈 대기실에서, 밖에 앉아 기다리라고 한다. 인생이 숭배하는 건 열정과 에너지와 거짓말이다. - 67

- 완전한 삶이란 없다. 그 조각만이 있을 뿐.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모든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빠져나갈 이 모든 것들, 만남과 몸부림과 꿈은 계속 퍼붓고 흘러넘친다. - 67

- 그는 행복했는가? 너무 진지한 질문이어서 오히려 가벼웠다. 꿈을꾸어도 절대로 하지 못 할 일들이 있었다. 그는 종종 자신의 인생을 가늠해 보았다. 아직 젊지만 앞에 놓인 세월이 끝없는 고통처럼 느껴졌다. - 117

-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건 결국 하나의 문단, 하나의 진술이다. - 238

- 하루하루, 고열같이 솟구치는 감정이나 만족감뿐 아니라 허망함과 공포까지 재료삼아 그녀는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같다. 나는 고독의 공포를 넘어섰다고, 그건 초월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흥분이 되었다. 나는 그 위에 있고 가라앉지 않을 거야. 이 굴복이, 이 승리가 그녀를 더욱 강하게 했다. 마치 하위단계들을 다 지나 삶이 마침내 가치있는 형태를 갖추게 된 것 같았다. 바보같은 희망과 기대, 꾸민것 같은 부자연스러움이 사라졌다. 그 어느 때 보다 행복할 때도 있었다. 이 행복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스스로 찾아 나서 얻어낸 성취였다. 그보다 못한 것은 -그것이 비록 대체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 모두 포기하고 얻은 것이었다. 그녀의 삶은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가져갈 수 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 - 375

- 모든 건 순식간에 일어났다. 긴 하루였고, 끝없는 오후였다. 친구들은 떠나고 우리는 강변에 서 있다. 그래, 그가 생각했다. 나는 준비됐고,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었어. 마침내 준비가 되었다고. - 437


2021. dec.

#가벼운나날 #제임스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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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2-03-17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터의 작품은 아직 읽어 본 적은 없어요. 리뷰는 많이 봐왔지만. 헬라스님 리뷰읽고 나니 저도 슬슬 궁금해집니다.

hellas 2022-03-17 00:55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 설터 읽었을 땐 딱히 뭐가 남은 기억이 없는데 몇년 지나 읽은 작품에는 왜이렇게 꼿힐까 생각해봤는데. ㅋㅋㅋ 나이가 들어서라고 밖엔 설명이 안되는거 같아요. 잘 이해할수 있게 된 인생의 무엇. 이요 :)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이장욱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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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화된 듯한 자아들.

- 하지만 진심이란 대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가. 인간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것도 바로 그것때문 아닌가. - 230

- 나는 이런 마음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것으로 고유한 차이를 지우는 마음보다, 전체적인 것의 압력을 고유한 차이들이 견뎌내고 이겨내고 급기야 변경시키는 마음이 더 소중하다고. 사회도 그렇고 인간도 그렇고 소설도 그럴 것이다. 일생을 고독 속에 살았던 카프카도 비슷한 견해였으리라고 믿는다. - 작가의 말

2021. dec.

#에이프릴마치의사랑 #이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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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 이기리 시집 민음의 시 279
이기리 지음 / 민음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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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겪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악몽.
이게 과연, 설마 실제일까 생각하게 된다.

- 나는 이 장면을 영원히 간직하거나
지워 버릴 수도 있지만
다시 눈을 뜨고 끝까지 다 보기로 한다 - 일시 정지 중

- 나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하면서도
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그렇구나, 말할 수밖에 없는 것들과
그렇지만, 말하며 다시 데려오고 싶은 순간들
추분과 춘분의 차이를 알지 못했고
우리는 마음을
척력으로만 쓰는 일도 그만 두었다 - 꽃과 생명 중

- 부르지 않아도 태어나는 이름이 있었다 - 좋은 화분 중

2021. dec.

#그웃음을나도좋아해 #이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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