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 우리 시대 여성을 만든 에멀린 팽크허스트 자서전
에멀린 팽크허스트 지음, 김진아.권승혁 옮김 / 현실문화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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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임에도 엄청나게 빨리 읽었다.

아마도 역대급 고구마타입의 분노가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이 자서전에서 유발된 분노는 1900년대 초의 영국 여성들이 당연한 요구에도 조롱받고 억압받는 상황때문이기도 하고,

백년도 더 뒤인 지금 여기에서도 투표권이 있다는 것 외에 딱히 뭐가 다른가 싶은 좌절감 때문이기도 하다.

몇 번에 걸쳐 진술된 날선 연설과 법정에서의 변호진술 이외의 모든 문장이 고구마, 수분 제로의 고구마 그 자체였다.

더울 때 이런거 읽으면 현기증난다는 사실을 알고도, 한번 읽기 시작하니 멈출 도리가 없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명망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여성 참정권 운동을 했다는 것은 어쩌면 엄청난 혜택임과 동시에 오히려 발을 뺄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점이지 않았을까.

투옥 중 많은 참정권자들이 당한 병원처치(라고 쓰고 튜브를 이용한 강제 음식물급여라는 고문 이라고 읽는다), 시위 행진 중 당하는 폭행, 집요한 공권력의 감시...

아주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 아마 다른 국가의 독자들 보다 이 나라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쉬울거라 생각하니 그것도 고구마...

참정권자들의 시위가 공개석상에서 남성 정치가에게 여성참정권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으로 시작했다는 것, 고위 공직자들의 집무실에 항의방문을 시도 했다는 것,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신문을 만든다는 것 에서 시작했다는 점도 기억해둘만하다.

고작 질문하는 행위를 감히 여성들이 하는 것을 못견뎌하는 기득권 남성들의 모습이라니...

합법적 시위로는 한삽도 뜰 수 없는 처지에서한 극단의 시위라는 것이 유리창 깨기, 우체통 방화(물론 후엔 좀더 대규모 방화가 되기도..), 전시물 훼손 이라니...

국가를 전복하려한 것도, 암살을 한 것도 아니고...

일종의 반달리즘이 그들이 전투파로 불리는 이유라니.

초기의 집회에서 여성들의 목소리에 당황한 경찰이 집회 참여자의 이름을 적어가는 장면은 아예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너 이름이 뭐니...라는 애처로움이랄까.

어쨌든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결국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것을 직접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고구마 자체다.

그래도 읽어야만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남성들의 전투는 몇 세기 동안 세계를 피로 물들였다. 남성들은 이러한 공포와 파괴 행위에 대해 기념비와 위대한 노래와 서사시라는 보상을 받았다. 올바른 대의를 위해서 싸운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숨 말고는 누구의 목숨도 해치지 않았다. 이 여성들이 어떤 보상을 받게 될지는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 15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법안은 진지한 심의 대상이 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전제로 깔고 제출되었던 것이다. 통과될 가능성이 조금도 없는 법안을 제출한 데 대해 홀데인 씨에게 항의하기 위해 스탠튼 블래치 여사와 함께 법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아, 그 법안은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라고 홀데인 씨는 말했다. 그들이 어떤 여성참정권법안을 제출하든 그것은 머나먼 미래, 즉 너무도 멀어서 언제일지 알 길이 없는 미래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1891년에 이미 그 점을 깨닫고 있었다. - 44

1906년 앤서니가 사망하자 크리스타벨은 인류를 위해 그토록 훌륭한 일을 한 분이 평생 희망했던 일을 못 이루고 죽었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분노했다. ˝또 다른 세대가 여성 투표권을 구걸하면서 삶을 낭비할 것을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요.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면 안 돼요. 바로 행동에 돌입해야 합니다.˝ - 64

버밍엄의 한 신문은 ˝여성들이 정치적 지위와 권력을 가지면 안 된다는 증거를 맨체스터 사건이 제공했다˝라고 선언했다. 여성 참정권 문제를 아는 척도 안 했던 신문들은 자신들이 이전까지 여성 참정권에 우호적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을 너그럽게 봐줄 수가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 79

여성들의 방해는 처음부터 비이성적인 분노를 자아냈다. 나는 언젠가 데이비드 로이드-조지 씨가 자신의 연설을 방해한 남자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을 쫓아 내지 마세요. 저는 방해받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내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참석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사람들의 의견을 바꿀 기회가 제게 주어지니까요.˝ 하지만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그의 연설을 방해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양이들이 야옹거리는 데 관심을 두지 맙시다.˝ 다른 내각 각료들은 좀 점잖은 표현을 쓰긴 했지만, 어쨌든 모두 경멸과 분노를 드러냈다. 여성들이 자유당 소속 관리인들에게 거칠게 쫓겨나면 모두들 만족감을 표했다. - 100

우리는 행진이나 회의와 같은 모든 수단을 시도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위를 하게 되었고 결국 창문을 깨뜨려야만 했습니다. 더 많은 창문을 깨뜨렸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말의 후회도 없습니다. 우리 여성들은 파업을 일으킨 광부보다 훨씬 더 나쁜 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키우려고 아등바등하는 과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식 다섯 명 중에서 두 명 빼고는 몸이 약해서 군인도 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과연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요? 영국은 확실히 쇠퇴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직 한 가지 관점만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성의 관점입니다. 그러나 남성들이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여성의 관점이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라 전체가 너무나 끔찍해서 상상하기도 힘든 수렁에 빠져 있다고 믿습니다. - 283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하건대, 우리의 정책은 결코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위태롭게 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우리의 적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은 전쟁을 벌이는 남성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런 일은 여성들이 취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대중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투쟁은 있었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사람의 삶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재산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산을 통해서 적을 공격할 것입니다. - 342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정의를, 동등한 정치적 정의를, 동등한 법적 정의를, 동등한 산업적 정의를, 그리고 동등한 사회적 정의를. - 439

2016.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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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의 일 읽었는데. 고구마. 이런 고구마.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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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8-16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구마...가 무슨 뜻이에요, 헬라스님??

hellas 2016-08-16 11:05   좋아요 0 | URL
물없이 먹은 고구마마냥 답답하다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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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고 구성도 촘촘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이 문장으로 충분히 설명이 될 것 같다.
재밌고 이런저런 인연이 잘 버무려진것이.
작가의 책들이 편차가 있는것이 사실이라 잘 선택하지 않는 작가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니 읽어보게 된다.

할배의 정성스러운 답변보다 `쭉정이 백수들`의 답변에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

휴일 하루 날 잡아 읽으면 반나절에 충분히 소화할 만함.

2016.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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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인 2017-08-11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에도 나미야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도 ‘나미야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에 ‘나미야 잡화점을 현실로‘라고 검색하니 실제로 누군가가 익명 편지 상담을 운영하고 있더라구요.
namiya114@daum.net 여기로 편지를 받고 있고,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52-2, 3층 나미야할아버지 로 손편지를 보내면 손편지 답장도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아마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저같은 생각을 한번쯤 해보셨을 거라 생각돼 이곳에 공유합니다.
 
랑야방 : 권력의 기록 3 랑야방
하이옌 지음, 전정은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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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클라이막스를 위해 달려온 대 서사.

드라마와 같은 결말은 조금 섭섭하지만.

재밌었다. 안녕. :)

2016.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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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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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벤야멘타 하인학교라는 책을 읽었다.

바틀비와 상당히 다르지만, 어딘지 모르는 접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선택하거나, 행하지 않는 편을 택하는 삶.

바틀비의 선택이 어떤 트리거에 의한 것인지는 소설 말미에 짐작할 만한 단서가 있다.

선택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는 왠지 비장하다.

창백하리만치 말쑥하고, 가련하리만치 점잖고, 구제불능으로 쓸쓸한 모습으로 ˝I prefer not to...˝라고 반복하는 바틀비는 어쩐지 고행을 자처한 사람같으니까.

짧지만 깊은 여운이 있는 단편이다.

일러스트 역시 엄청 마음에 든다.

2016. A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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